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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엡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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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07 2007.10.13 15:19

본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엡 1:1-23)

에베소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쓴 서신입니다. 학자들은 에베소서를 골로새서와 함께 쌍둥이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두 서신들에 담긴 비슷한 내용들 때문입니다.
이 두 서신들의 특징은 에베소서가 “왜 교회여야 하는가?”를 말해 주는 것이고, 골로새서는 “왜 예수 그리스도여야 하는가?”를 말해주는데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큰 고민 중에 하나는 유대교의 역할이 끝나고 기독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면, 선민인 유대인들의 역할이나 혜택이 무엇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장 1-5절을 보면, 바울에게는 동족을 위하는 큰 슬픔과 마음에 끊임없는 고통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에서 바울은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다.”고 했고, 4절에서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이 있고,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이 있고, 율법이 있고, 예배가 있고, 하나님의 약속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5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님조차도 육신적으로는 그들의 혈통을 잇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 하나님과 맺은 언약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담긴 성서, 하나님이 지시한 독특한 예배, 기타 하나님의 약속들, 이러한 것들은 유대교인들의 큰 자랑이요, 특별한 은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특혜를 누렸던 민족이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도달했던 높은 영성은 2천 년 전 상황에서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은 그들이 꺼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로 보내셨고, 그들이 원치 않는 기독교회를 ‘올람 하바’ 곧 그들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셨는가?”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하나님이 세우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것인가를 설명한 글이고, 골로새서는 “하나님이 보내기를 원하셨던 메시아는 어떤 인물인가를 설명한 글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서신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기독교가 왜 유대교와 다른가를 밝힌 글이기도 합니다.
초창기 유대인들은 예수운동을 유대교의 한 분파나 메시아운동 정도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방식의 메시아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민족주의적이고 배타적인 편협한 유대주의를 벗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전에는 메시아에 관한 생각이 다른 유대인들의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에서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내려가 한 동안 이 일을 묵상하며 지낼 때 비로소 하나님의 큰 뜻을 이해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던 간에 바울은 좁고 편협한 민족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크고 넓은 우주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큰 뜻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유대민족만의 하나님이 아닌 온 인류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만을 총애하는 하나님이 아닌 온 인류를 동등하게 사랑하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민족에게만 구원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닌 모든 민족을 동등하고, 차별 없이,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하기를 원하는 분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큰 틀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과 섭리를 이해함으로써 바울은 유대교의 좁고 편협한 사상의 틀에서 벗어나 기독교 사상을 세우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세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골로새서에서 밝힐 수 있었고, 그 분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는 또 어떤 특성을 가진 공동체인가를 에베소서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은 에베소서 1장입니다. 이 한 장에서만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아들 안에서’ 혹은 ‘그분 안에서’란 말을 10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에 관한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온갖 영적인 복을 주시는 데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는 영적인 복을 받을 수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니 신령한 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 수 있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왜 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지,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품에 머물러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온갖 영적인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복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열거해보겠습니다.
첫째, 4절에서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둘째, 5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셨습니다.
셋째, 7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넷째, 8절에서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셨습니다.
다섯째, 9절에서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여섯째, 11절에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일곱째, 13절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가 받을 상속들에 관한 약정서에 직인 찍음으로 주셨습니다.
여덟째, 14절에서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가 받을 상속들에 관한 약정서의 담보물로 주셨습니다.
이 여덟 가지 복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라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모든 영적인 복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밖에서는 이와 같은 신령한 복들을 받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만 유대교인들에게는 이런 축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신뢰하기만 하면, 구세주로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차별 없이, 은혜로, 값없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들을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복을 값없이 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바라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하는 애절한 마음이 담긴 바램입니다.
첫째, 17절에서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성도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목적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모두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깨달아 알 수 있고, 그분의 깊고 넓은 하해 같은 사랑을 깨달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다수의 유대들에게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뜻을 깨달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만 독차지하려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고,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 하려는 선민의식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류의 유일한 신이시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유일신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유대민족만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한분뿐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신들이 더 있다면 몰라도, 단 한분뿐인 신을 유대민족이 독차지해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에는 민족의 차별, 남녀의 차별, 신분의 차별, 노소의 차별, 색깔의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로서는 그 사실을 받아드리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누구든지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과 섭리와 큰 뜻을 이해하고 받아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지혜와 계시의 영입니다. 이런 영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18-19절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는 것입니다. 목적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으신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 것 아닙니까? 마음의 눈이 열려야,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가 받을 상속들에 관한 약정서에 직인 찍음으로 주시고, 우리가 받을 상속들에 관한 약정서의 담보물로 주신 이유를 알 것 아닙니까? 또 우리 안에 내주동거하시면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것 아닙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1장 20-23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능력의 한 예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게 하신 능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을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불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신 것이며, 만물을 그분의 발아래에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예로 들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우리 믿는 자들 안에서도 이런 능력이 나타날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는 힘없이 살고, 연약하게 살고, 가난하게 살지만, 그 약함 속에 담긴 강함이 무엇인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신자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라고 간구하셨습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 연약한 성도들에게 주신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고, 하나님께서 우리 힘없는 사람들에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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