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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엡 6: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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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57 2007.11.24 16:28

본문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엡 6:1-24)

에베소서 6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앞부분 1-9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주종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4절에서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를 언급하였고, 5-9절에서는 종과 주인 또는 고용인과 고용주의 관계를 설명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부드럽지만 강한 형제애와  평등사상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뒷부분인 10-20절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싸움의 대상과 무장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21-24절은 작별 인사입니다.
고대사회의 개념에서 말씀드린다면, 지난주 우리가 살펴본 남편과 부인의 관계, 오늘 우리가 살펴보게 될 자녀와 부모의 관계, 종과 주인의 관계는 모두 주종관계입니다. 모든 고대사회에서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유럽의 그리스와 로마사회, 그리고 근동의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는 남편이 부인의 주인이었고, 부모는 자녀의 소유주였으며, 주인은 노예의 소유주였습니다. 따라서 부인의 목숨은 남편에게, 자녀의 목숨은 부모에게, 노예의 목숨은 주인에게 달려있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에베소서 5장과 6장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엄격한 주종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관계, 평등관계로 바꿔놓고 있는 분이 바로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사상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신분과 처지에 관계없이 적어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는 어떠한 차별도 개입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가족이고, 형제와 자매들이란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6-29절에서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조리하고 불의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개혁을 부르짖거나 혁명을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신분과 처지에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며, 존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17절을 보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혹은 신분)대로] 각 사람은 주님께서 나누어 주신 은총의 선물을 따라서 그리고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처지(혹은 신분)대로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내가 모든 교회를 위하여 세운 원칙입니다.” [공동번역]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개혁이나 혁명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무력시위나 폭력에 의하지 않고, 사고(思考)전환을 통한 사회변혁을 꾀하였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00년 전 로마제국시대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한 형제자매라고 생각했고, 하나님의 동일한 가족이요, 약속의 유업을 이를 자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그리스도인들의 행동을 바꿔놓았고, 습관을 바꿔놓았고, 인격을 바꿔놓았고,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기독교는 요란한 혁명을 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부드럽지만 강한 형제애와 평등사상으로 불과 300여 년 만에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대제국 로마를 기독교왕국으로 바꿔놓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등사상은 바로 이 기독교사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런 놀라운 힘에 대해서 영국인 역사가 에릭 도즈(Eric R. Dodds)는 그의 책, ꡔ불안시대 속에서의 이교도와 기독교도ꡕ(Pagan and Christian in an Age of Anxiet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5)에서 네 가지 이유를 지적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가 하나님의 구원에는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어떠한 차별도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무력사용이 아닌, 이 단순한 사상하나로 전 로마인들과 제국의 속주민들의 행동과 습관과 인격과 운명을 바꿔놓았던 것입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몇 가지 중요한 물음들을 묻고 있습니다.
첫째 물음은, 우리가 누구였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이방인이었고, 남편과 부모와 주인의 소유물이었으며,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고,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육신의 정욕대로 살았던 사람들이며, 공중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악한 영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둘째 물음은,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솜씨로 멋지게 개조된 하나님의 작품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큰 은혜를 입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우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고, 우리의 능력에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란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명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물음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명품으로 만드신 목적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당한 목적을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위해서 헌신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아내들은 불순종함으로 남편들과 싸우지 말고,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함부로 대함으로 싸우지 말고, 오히려 제 몸처럼 사랑하고, 자녀들은 불복종함으로 부모와 싸우지 말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함으로 자녀들과 싸우지 말고, 종들은 눈가림으로 주인을 섬기지 말고, 오히려 성실함으로 주인을 섬기고, 주인들도 종들에게 협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피차에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신분이나 처지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지만, 하나된 마음으로 주께 하듯, 하나님께 하듯이 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당신의 몸을 버리신 것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더 이상 우리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넷째 물음은, 그러면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이 누군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 우리의 적은 부인도, 남편도 아니고, 자녀도, 부모도 아니며, 노예도 주인도 아니란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마귀의 궤계요, 어두움의 주관자들이며,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란 것입니다. 싸움의 대상을 바로 알자는 것입니다. 잘못된 싸움을 멈추고 올바른 싸움을 하자는 것입니다. 올바른 싸움의 대상과 올바른 싸움에 집중하자는 것입니다.
다섯째 물음은, 그러면 싸움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주시는 힘찬 능력을 받아 굳세어라 는 것입니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장비로 전신을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우리의 가족이나 교우들이 아니라, 기독교를 탄압하는 통치자들이며, 이 어둔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들 악한 세력들과 싸워 물러서지 않도록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장비로 완전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물음은, 구체적으로 그러면 무엇으로 무장을 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정의로 가슴막이를 하고, 평화의 복음을 전할 채비로 신발을 신고, 믿음으로 방패를 삼으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방패로 악한 영들과 그 영들의 지배를 받는 권세자들이 쏘는 불화살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으로 투구를 삼아 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칼을 삼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장은 무적을 자랑하는 로마군인의 무장을 비유로 든 것입니다. 진리로 탄띠를 차고, 정의로 방탄복을 입고, 평화의 복음으로 군화를 신고, 믿음으로 방패를 들고, 구원으로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을 삼아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일곱째 물음은, 그러면 어떤 전술로 싸울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전술을 쓰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그리스도의 군사들을 위하여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또 일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사령관인 바울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이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도록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적으로는 포로로 갇혀 있지만, 복음을 위해 싸우는 전사이기 때문에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할 질문은 우리가 왜 완전무장을 하고 전투에 나가 싸워야하는가라는 것입니다. 진리로 탄띠를 타고, 정의로 방탄복을 입고, 평화의 복음으로 군화를 신고, 믿음으로 방패를 들고, 구원으로 투구를 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을 삼아 완전무장하고,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를 전술로 삼아 싸워야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그리스도를 총사령관으로 모신 하나님의 나라의 군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의 나라의 군사라는 사실, 우리가 싸워야할 대상은 남편도 부인도 아니고, 자녀도 부모도 아니고, 노예도 주인도 아니고, 오직 악한 세상과 악한 영들이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적인 싸움에 승리하기 위해서 진리와 정의와 평화의 복음과 믿음과 구원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기도만을 전술로 삼아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군사(軍師)이신 성령님의 지혜와 인도를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백전백승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의 군사란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후 295년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속주에 키 150센티미터, 나이 22세의 세무공무원 막시밀리아누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군인출신이었기 때문에 병영세습제로 인해서 로마군에 입영을 해야 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신체검사장인 병영에 나가 합격통지를 받았지만, 끝내 입대를 거부하다가 참수되었습니다. 그가 로마군의 입대를 거부한 것은 자신은 이 세상군대의 병사가 아니라, 그리스도군대의 병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막시밀리아누스는 자신이 이미 그리스도의 병사배지를 지닌 주님의 병사가 된 이상 다른 군대의 병사가 되어 다른 주를 섬길 수 없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셋째 형인 정약종의 아들 가운데 정하상이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불과 7살 때, 아버지와 이복 철상이 기독교신앙 때문에 참수 당하였고, 나이 45세 때에는 자신과 어머니와 여동생이 예수님을 믿다가 어머니는 옥사하시고, 자신과 여동생은 참수를 당하였습니다. 그가 쓴 조선 최초의 기독교변증서인 「상재상서」(上宰相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지위에는 높낮음이 있고 일에는 중하고 가벼운 것이 있으니 집안의 아비가 가장 중하나 집안의 아비보다 높은 이가 나라의 임금이요, 나라 안에서 임금이 가장 중하나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이는 천지의 큰 임금입니다. 집안의 아비의 명을 듣고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지 아니 하면 그 죄가 무겁습니다. 나라 임금의 명령을 듣고 천지대군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그 죄는 더욱 커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주를 받들어 섬김이 임금의 명령을 일부러 어기려는 것이 아니요 부득이 한데서 오는 것인데 이것을 들어, 무군무부(無君無夫), 곧 부모와 임금을 업신여긴다 함이 옳은 말이옵니까?
다산 정약용의 맏형인 정약현에게는 황사영이란 사위가 있었습니다. 황사영은 16세 때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하여 정조대왕이 친히 탑전(임금의 의자)으로 불러 손목을 잡고 "네가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게 벼슬을 주고 나라의 큰 소임을 맡기겠노라"고 한 약속을 받았지만, 정약종의 제자가 되어 그로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 후에 고백하기를,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의 뜻은 신하의 입장에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므로 나라의 주인이신 임금을 포기하고 천지의 임금이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말입니다. 황사영은 이 정신무장 때문에 27세의 나이로 사지가 찢겨 죽는 고통에도 비굴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세 사람, 막시밀리아누스, 정하상, 황사영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갖춰야할 가장 중요한 정신무장, 신앙무장, 충성무장입니다. 자신들이 충성을 바쳐야할 대상이 누구인가를 제대로 파악한 일당백의 신실한 군사들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서 그들의 젊음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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