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 ‘카샤룻’ 음식법(마 9:9-13)
본문
예수님의 말씀: ‘카샤룻’ 음식법(마 9:9-13)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려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고자 하실 때, 환상으로 네 발 달린 온갖 짐승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을 골고루 보여주시고, 잡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한 번도 먹은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을까요?
사도행전 11장 2-3절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방문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때,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은 일에 대해서 크게 힐난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왜 유대인들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힐난했을까요?
또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을 보면, 베드로가 바울에게 책망당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했고,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 자리를 피했으며, 바나바까지도 자리를 피하는 외식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자리를 피했을까요?
마태복음 9장 9-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잡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제자들에게 힐난하며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했을까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유대인들에게는 보편적인 사고의식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 곧 사람과 동식물, 사물 등이 세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해 있다고 믿습니다. 부정(不淨)한 것(unclean), 정(淨)한 것(clean), 거룩한 것(holy)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합니다. 만일 무슨 이유로 해서 부정해졌다면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합당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사고의식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과 사물도 마찬가집니다. 동물에는 정한 동물이 있는가하면, 부정한 동물이 있고, 그릇에는 정한 그릇이 있는가 하면 부정한 그릇이 있으며, 음식에도 정한 음식이 있고,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정한 것만 먹고 정한 것만 사용해야 합니다.
2. 유대인들에게는 까다로운 음식법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음식법을 ‘카샤룻’(Kashrut)이라 부릅니다. ‘카샤룻’은 무슨 음식은 먹을 수 있고, 무슨 음식은 먹을 수 없는지, 그 같은 음식들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다룬 유대인의 율법입니다.
이 ‘카샤룻’에 의해서 먹기에 합당한 음식과 의식과 의식용에 합당한 물건들을 ‘코숴’(kosher)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가공식품이 많기 때문에 음식에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어떻게 가공됐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랍비들이나 인증단체에서 철저히 조사해서 제품에 인증마크를 찍어줍니다. 코숴’ 소비자들은 인증마크를 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나 쓰기에 부적당한 것들을 ‘트레이프’(treyf)라 부릅니다. ‘트레이프’란 문자적으로 ‘찢긴’이란 뜻인데, 다른 동물들에 찢긴 동물들을 먹지 말라는 계명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3. 왜 유대인은 까다로운 ‘카샤룻’ 음식법을 지킬까요? 유대인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카샤룻’ 음식법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기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정결과 불결, 성결과 불경사이를 구별하는 능력은 유대주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을 수 없는가에 대한 율법들을 부과한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본능까지도 조절하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랍비 도닌은 ‘카샤룻’ 율법들이 음식을 먹는 단순 행위를 종교의식에로 승화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랍비 문학에서 유대인의 저녁 테이블은 때때로 성전 제단에 비교되어집니다.
‘코숴’ 음식은 매우 위생적입니다.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으면 소화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낙타와 돼지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낙타가 식용보다는 짐을 나르는 데 더 유용하기 때문이고, 중동기후에서 돼지는 식용가치보다는 사료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카샤룻’ 음식법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외경사상이 들어있다는 주장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음식물은 채식뿐이었고, 실제로 채식만 했다는 것입니다(창세기 1:29). 육식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허락되었고, 육식으로 인해서 생명파괴가 불가피해졌지만, 육식만을 위한 생명파괴가 금지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하나님만이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유대인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만을 육식으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여 년 전 성전이 파괴된 이후 희생제사가 사라지고부터는 이 방법으로는 육식을 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절차 없이 마구 잡아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희생제사는 사라졌지만, 음식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생긴 종교의식적인 도살을 ‘쉐히타’(shechitah)라 부르게 되었고, 이 도살을 종교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쇼헽’(shochet)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카샤룻’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쇼헽’에 의해서 ‘쉐히타’ 방법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는 ‘코숴,’ 곧 합당한 고기가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도살된 생명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카샤룻’ 음식법을 주신 것은 이교인과의 교제를 막으려한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음식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일수록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꺼립니다.
4. 유대인들에게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발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동물은 어떤 것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레 11:3; 신 14:6). 양, 소, 염소, 사슴은 먹을 수 있지만, 낙타, 토끼, 오소리, 돼지는 먹을 수 없습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먹을 수 있습니다(레 11:9; 신 14:9). 따라서 오징어, 낙지, 꼴뚜기, 문어, 새우, 굴, 갯가재, 새우, 조개류, 게류와 같은 갑각류는 먹을 수 없습니다. 상어, 고래, 미꾸라지도 먹을 수 없습니다.
포식성이나 썩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새들은 먹을 수 없습니다(레 11:13-19; 신 14:11-18). 독수리, 매, 타조, 부엉이, 펠리칸, 갈매기, 박쥐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닭, 거위, 오리,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은 먹을 수 있습니다.
곤충은 먹지 못합니다(레 11:22). 쥐, 다람쥐 같은 설치류, 파충류, 양서류는 먹는 것이 금지됩니다(레 11:29-30, 42-43).
5. 식용이 허용되는 동물일지라도 ‘카샤룻’ 음식법에 따라서 도살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신 12:21).
질병이 없는 것이어야 하고(민 11:22), 스스로 죽은 것(신 14:21)이나 다른 동물에 살해된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카샤룻’ 음식법 ‘쉐히타’(shechitah)에 따라서 ‘쇼헽’(shochet)이 도살하는데, 도살방법은 흠집이 없고 고르며 완벽하게 날이 선 칼날로 목구멍을 가로지르는 신속하고 깊은 타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고통이 없고, 2초 이내에 의식이 사라지게 하며, 가능한 범위에서 짐승을 가장 자비롭게 죽이는 도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쉐히타’의 방식의 장점은 빠르게 완전하게 피를 빼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를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쇼헽’은 단순히 도살자가 아닙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어야 하며, 유대인의 율법, 특히 ‘카샤룻’ 음식법을 잘 훈련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랍비가 ‘쇼헽’의 일을 함께 보기도 합니다. 성전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이 일의 담당자들이었을 것입니다.
6. ‘카샤룻’ 음식법에 따라서 도살된 고기라도 먹기 위해서는 피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레 17:11)는 것과 피를 먹지 말라(레 7:26-27, 17:10-14)는 계명 때문에 유대인은 피를 먹지 않습니다.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기에 합당한 ‘코숴’ 고기는 피를 완전히 제거한 고기입니다.
‘쇼헽’의 신속한 도살로 대부분의 피는 빠지지만, 그래도 남은 피는 굽거나 담가서 소금을 뿌려서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간은 굽는 방법으로만 ‘코숴,’ 곧 합당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살 후 72시간 이내에 고기가 얼거나 갈아서 잘게 부수기 전에 피 빼는 과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피가 섞인 알(계란)은 먹지 않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알이 발견되기 때문에 알을 먼저 깨서 그릇에 넣고, 요리하기 전에 피가 섞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7. 비유대인이 만든 포도주와 포도제품들의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모든 고대종교들의 의식들에서 흔하게 사용되었고, 그것이 제조되는 동안 이교적인 목적들을 위해서 흔하게 성별되었기 때문에 비유대인에 의해서 제조된 포도주와 다른 포도제품들의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막자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이 ‘카샤룻’ 음식법은 포도주와 포도주스에만 적용됩니다. 그러나 포도주스로 단맛을 낸 많은 과일음료나 과일 맛 음료에도 적용되며, 포도주 발효 때 통에 가라앉는 침전물로 제조된 베이킹파우더의 사용도 안 됩니다.
8. 모든 유대인들이 ‘코숴’를 지킬까요?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약 25-30퍼센트가 대체로 ‘코숴’를 지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거주 유대인들의 경우 대략 40퍼센트가 ‘코숴’를 지킨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정통주의 유대인들, 많은 수의 보수주의와 재건주의 유대인들, 그리고 일부 개혁주의 유대인들이 포함됩니다.
서두에서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왜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는지, 왜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힐난했는지, 왜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유대인 성도들을 보고 자리를 피했는지, 왜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힐난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대해서 일부이긴 하지만 장황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명백해졌습니다.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엄격하게 ‘카샤룻’ 음식법을 지킵니다. 그래서 이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집이나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또 그들의 음식법에 의해서 엄격하게 만들어진 식료품이 아니면 사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이방인과의 식탁교제를 꺼린 이유였습니다.
그러면 왜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이 동족인 죄인과 세리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렸을까요?
그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았거나 가난 때문에 ‘카샤룻’ 음식법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리들의 경우 돈은 있지만, 로마정부를 위해서 일했던 자들이었던 만큼 율법을 충실하게 지킨 자들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죄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엄격한 율법을 따라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 특히 음식법과 정결법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시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힐난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반응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제사보다는 긍휼을 원하신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율법에 매여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렸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검사의 눈으로 세리와 죄인들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의사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의사는 사람이 병들었다고 해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사람을 볼 때 병들어 쓸모없게 되었다고 소망을 끊지 않습니다. 의사는 병자에 대해 병만 치료해 주면 건강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의사로서 죄인을 치료해 주시고 살리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살림의 일을 위해서 생명의 빛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15-16절에서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그 음식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성결하다 해도, 사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지, 특정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에 있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만과 우월감에 빠져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하는 것은 마음의 악이 가득한 때문이요, 이것을 제거하지 않은 채, ‘코숴’ 음식만 먹는다고 해서 결코 성결해질 수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있지 않고, 그들의 외식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고, 외식에 치우쳐왔던 것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려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보내고자 하실 때, 환상으로 네 발 달린 온갖 짐승들과 땅에 기어 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을 골고루 보여주시고, 잡아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한 번도 먹은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왜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을까요?
사도행전 11장 2-3절을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방문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갔을 때,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은 일에 대해서 크게 힐난했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왜 유대인들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힐난했을까요?
또 갈라디아서 2장 11-14절을 보면, 베드로가 바울에게 책망당한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을 보고 그들을 두려워하여 자리를 피했고,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 자리를 피했으며, 바나바까지도 자리를 피하는 외식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왜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자리를 피했을까요?
마태복음 9장 9-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더불어 잡수실 때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제자들에게 힐난하며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님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했을까요?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유대인들에게는 보편적인 사고의식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상의 모든 것, 곧 사람과 동식물, 사물 등이 세 가지 중에 하나에 속해 있다고 믿습니다. 부정(不淨)한 것(unclean), 정(淨)한 것(clean), 거룩한 것(holy)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합니다. 만일 무슨 이유로 해서 부정해졌다면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합당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보편적인 사고의식입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과 사물도 마찬가집니다. 동물에는 정한 동물이 있는가하면, 부정한 동물이 있고, 그릇에는 정한 그릇이 있는가 하면 부정한 그릇이 있으며, 음식에도 정한 음식이 있고, 부정한 음식이 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은 정한 것만 먹고 정한 것만 사용해야 합니다.
2. 유대인들에게는 까다로운 음식법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음식법을 ‘카샤룻’(Kashrut)이라 부릅니다. ‘카샤룻’은 무슨 음식은 먹을 수 있고, 무슨 음식은 먹을 수 없는지, 그 같은 음식들을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하는지를 다룬 유대인의 율법입니다.
이 ‘카샤룻’에 의해서 먹기에 합당한 음식과 의식과 의식용에 합당한 물건들을 ‘코숴’(kosher)라고 부릅니다. 오늘날에는 가공식품이 많기 때문에 음식에 무슨 성분이 들었는지, 어떻게 가공됐는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랍비들이나 인증단체에서 철저히 조사해서 제품에 인증마크를 찍어줍니다. 코숴’ 소비자들은 인증마크를 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나 쓰기에 부적당한 것들을 ‘트레이프’(treyf)라 부릅니다. ‘트레이프’란 문자적으로 ‘찢긴’이란 뜻인데, 다른 동물들에 찢긴 동물들을 먹지 말라는 계명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3. 왜 유대인은 까다로운 ‘카샤룻’ 음식법을 지킬까요? 유대인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하나님의 계명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카샤룻’ 음식법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거룩함에로 부르기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정결과 불결, 성결과 불경사이를 구별하는 능력은 유대주의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을 수 없는가에 대한 율법들을 부과한 것은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본능까지도 조절하란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랍비 도닌은 ‘카샤룻’ 율법들이 음식을 먹는 단순 행위를 종교의식에로 승화시킨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랍비 문학에서 유대인의 저녁 테이블은 때때로 성전 제단에 비교되어집니다.
‘코숴’ 음식은 매우 위생적입니다.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으면 소화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낙타와 돼지를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은 낙타가 식용보다는 짐을 나르는 데 더 유용하기 때문이고, 중동기후에서 돼지는 식용가치보다는 사료비가 더 많이 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카샤룻’ 음식법에는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외경사상이 들어있다는 주장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음식물은 채식뿐이었고, 실제로 채식만 했다는 것입니다(창세기 1:29). 육식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허락되었고, 육식으로 인해서 생명파괴가 불가피해졌지만, 육식만을 위한 생명파괴가 금지되었습니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므로 하나님만이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유대인은 하나님께 드린 제물만을 육식으로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여 년 전 성전이 파괴된 이후 희생제사가 사라지고부터는 이 방법으로는 육식을 취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절차 없이 마구 잡아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비록 희생제사는 사라졌지만, 음식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생긴 종교의식적인 도살을 ‘쉐히타’(shechitah)라 부르게 되었고, 이 도살을 종교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쇼헽’(shochet)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카샤룻’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쇼헽’에 의해서 ‘쉐히타’ 방법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 먹을 수 있는 ‘코숴,’ 곧 합당한 고기가 아닐 뿐 아니라, 하나님과 도살된 생명체에 대한 모독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일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카샤룻’ 음식법을 주신 것은 이교인과의 교제를 막으려한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음식법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들일수록 이방인들과의 교제를 꺼립니다.
4. 유대인들에게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발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동물은 어떤 것이나 먹을 수 있습니다(레 11:3; 신 14:6). 양, 소, 염소, 사슴은 먹을 수 있지만, 낙타, 토끼, 오소리, 돼지는 먹을 수 없습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먹을 수 있습니다(레 11:9; 신 14:9). 따라서 오징어, 낙지, 꼴뚜기, 문어, 새우, 굴, 갯가재, 새우, 조개류, 게류와 같은 갑각류는 먹을 수 없습니다. 상어, 고래, 미꾸라지도 먹을 수 없습니다.
포식성이나 썩은 고기를 먹어치우는 새들은 먹을 수 없습니다(레 11:13-19; 신 14:11-18). 독수리, 매, 타조, 부엉이, 펠리칸, 갈매기, 박쥐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닭, 거위, 오리, 칠면조와 같은 가금류은 먹을 수 있습니다.
곤충은 먹지 못합니다(레 11:22). 쥐, 다람쥐 같은 설치류, 파충류, 양서류는 먹는 것이 금지됩니다(레 11:29-30, 42-43).
5. 식용이 허용되는 동물일지라도 ‘카샤룻’ 음식법에 따라서 도살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신 12:21).
질병이 없는 것이어야 하고(민 11:22), 스스로 죽은 것(신 14:21)이나 다른 동물에 살해된 것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카샤룻’ 음식법 ‘쉐히타’(shechitah)에 따라서 ‘쇼헽’(shochet)이 도살하는데, 도살방법은 흠집이 없고 고르며 완벽하게 날이 선 칼날로 목구멍을 가로지르는 신속하고 깊은 타격을 가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고통이 없고, 2초 이내에 의식이 사라지게 하며, 가능한 범위에서 짐승을 가장 자비롭게 죽이는 도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쉐히타’의 방식의 장점은 빠르게 완전하게 피를 빼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피를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쇼헽’은 단순히 도살자가 아닙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이어야 하며, 유대인의 율법, 특히 ‘카샤룻’ 음식법을 잘 훈련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랍비가 ‘쇼헽’의 일을 함께 보기도 합니다. 성전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이 일의 담당자들이었을 것입니다.
6. ‘카샤룻’ 음식법에 따라서 도살된 고기라도 먹기 위해서는 피를 완전히 제거해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레 17:11)는 것과 피를 먹지 말라(레 7:26-27, 17:10-14)는 계명 때문에 유대인은 피를 먹지 않습니다.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기에 합당한 ‘코숴’ 고기는 피를 완전히 제거한 고기입니다.
‘쇼헽’의 신속한 도살로 대부분의 피는 빠지지만, 그래도 남은 피는 굽거나 담가서 소금을 뿌려서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간은 굽는 방법으로만 ‘코숴,’ 곧 합당한 음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살 후 72시간 이내에 고기가 얼거나 갈아서 잘게 부수기 전에 피 빼는 과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피가 섞인 알(계란)은 먹지 않습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그런 알이 발견되기 때문에 알을 먼저 깨서 그릇에 넣고, 요리하기 전에 피가 섞였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7. 비유대인이 만든 포도주와 포도제품들의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모든 고대종교들의 의식들에서 흔하게 사용되었고, 그것이 제조되는 동안 이교적인 목적들을 위해서 흔하게 성별되었기 때문에 비유대인에 의해서 제조된 포도주와 다른 포도제품들의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를 막자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이 ‘카샤룻’ 음식법은 포도주와 포도주스에만 적용됩니다. 그러나 포도주스로 단맛을 낸 많은 과일음료나 과일 맛 음료에도 적용되며, 포도주 발효 때 통에 가라앉는 침전물로 제조된 베이킹파우더의 사용도 안 됩니다.
8. 모든 유대인들이 ‘코숴’를 지킬까요?
미국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의 약 25-30퍼센트가 대체로 ‘코숴’를 지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거주 유대인들의 경우 대략 40퍼센트가 ‘코숴’를 지킨다고 봅니다. 여기에는 대부분의 정통주의 유대인들, 많은 수의 보수주의와 재건주의 유대인들, 그리고 일부 개혁주의 유대인들이 포함됩니다.
서두에서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왜 베드로는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지 않았는지, 왜 유대인들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을 먹은 것에 대해서 힐난했는지, 왜 베드로는 이방인 성도들과 함께 먹다가 유대인 성도들을 보고 자리를 피했는지, 왜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예수님을 힐난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런 물음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음식법에 대해서 일부이긴 하지만 장황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그 이유가 명백해졌습니다. “속되고 부정한 것”을 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엄격하게 ‘카샤룻’ 음식법을 지킵니다. 그래서 이 음식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의 집이나 음식점에서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또 그들의 음식법에 의해서 엄격하게 만들어진 식료품이 아니면 사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이방인과의 식탁교제를 꺼린 이유였습니다.
그러면 왜 율법을 잘 지키는 유대인들이 동족인 죄인과 세리들과의 식탁교제를 꺼렸을까요?
그들이 율법대로 살지 않았거나 가난 때문에 ‘카샤룻’ 음식법을 지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리들의 경우 돈은 있지만, 로마정부를 위해서 일했던 자들이었던 만큼 율법을 충실하게 지킨 자들이었다고 보기 어렵고, 죄인들은 가난했기 때문에 엄격한 율법을 따라 살기가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 특히 음식법과 정결법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고 힐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시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힐난에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반응하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12-13절에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은 제사보다는 긍휼을 원하신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율법에 매여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버렸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검사의 눈으로 세리와 죄인들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의사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의사는 사람이 병들었다고 해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의사는 사람을 볼 때 병들어 쓸모없게 되었다고 소망을 끊지 않습니다. 의사는 병자에 대해 병만 치료해 주면 건강하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습니다. 의사의 사명은 병을 치료해 줌으로써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적 의사로서 죄인을 치료해 주시고 살리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살림의 일을 위해서 생명의 빛으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7장 15-16절에서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그 음식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혹은 의식적으로 성결하다 해도, 사람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마음의 악을 제거하는 것이지, 특정 음식을 먹고 안 먹는 것에 있지 않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만과 우월감에 빠져 세리와 죄인들을 멸시하는 것은 마음의 악이 가득한 때문이요, 이것을 제거하지 않은 채, ‘코숴’ 음식만 먹는다고 해서 결코 성결해질 수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에 있지 않고, 그들의 외식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본질에 접근하지 못했고, 외식에 치우쳐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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