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간절함(눅 7:1-10)
본문
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간절함(눅 7:1-10)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은 ‘간절함’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방인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이 종을 살리고자한 주인의 간절함과 그를 돕고자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교 장로들의 간절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유대인들의 호감을 산 것은 그가 유대민족을 사랑할 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또 예수님의 호감을 산 것은 겸손함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6-8절을 보면, 백부장이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어 말하기를,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듣고 저를 기이히 여기셨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다.”까지 하시면서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백부장의 간절함이 사랑하는 종을 죽음에서 살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평소 깊은 신앙심으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겸손함과 분명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샀습니다. 결국 백부장의 행동은 그의 사랑하는 종을 살려야 한다는 유대교 장로들의 간절함과 예수님의 간절함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병으로 죽어가던 백부장의 종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의 자녀들의 간절함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의존해야할 능력이 다름 아닌 간절함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12절을 보면, 그 유명한 삭개오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사는 여리고지방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의 간절함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도로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요즘 뽕나무가 사람의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건강식품으로 날개돋힌듯시 팔리는 것을 생각하면 뽕나무는 역시 사람을 살리는 나무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자한 그 간절함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집에 모시게 되는 광영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19장 6절을 보면,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삶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만일 남의 것을 속인 것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회개를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간의 구원은 간절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의존할 능력은 간절함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KBS 1TV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보면, 대조영이 이해고의 칼과 활에 맞아 죽게 되었으나 미모사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건지게 됩니다. 그러나 전신마비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일어서게 되고 손에 칼과 활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반드시 고구려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그 자신의 간절함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의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에세이집, 물과 원시림사이에서를 보면, ‘원시림의 사회문제’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그가 다룬 아프리카 토인들의 노동문제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 전에도 흑인들은 백인들이 볼 때 몹시 게으를 뿐 아니라, 도벽이 심한 인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15명의 흑인들이 36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카누를 저어서 중병에 걸린 백인을 하류에서 실어 온 일이 있고부터는 흑인이 게으르다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은 사정에 따라서는 참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인들은 자기들이 절실하게 느낄 때 필요한 만큼만 일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일을 시켜야 하는 백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통이 터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이런 토인들을 ‘자연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토인들은 언제나 일시적인 노동자에 불과합니다. 원시림의 토인들은 비록 그들이 몹시 가난할지라도 조금만 움직여 일하면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자연에서 무상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 쌓아둘 필요도 없습니다. 숲에서 햇빛과 비를 피할 오두막을 짓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재료들을 얻을 수 있고, 최소한의 식량을 얻기 위해서 바나나와 마니호트를 재배하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합니다. 그러면 생필품을 모두 갖추는 셈이 됩니다. 따라서 노동 품을 팔아가며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필요할 때, 돈이 꼭 필요할 때는 열심히 일합니다. 아내가 될 사람을 돈 주고 사야할 때, 아내와 첩들을 위한 옷감, 설탕, 담배 등을 사야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도끼, 브랜디, 구두, 의복 등을 사고자 할 때는 노동 품을 판다고 합니다.
흑인은 게으른 게 아니라 자유를 만끽하는 자연인이었던 것입니다. 원시림의 토인들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굳이 노동에 종사하여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토인들은 백인주인이 아무리 급하게 그들을 필요로 할지라도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면 미련 없이 작업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군이 필요할 때 일군을 얻기가 어렵고, 어렵사리 일군을 구했다 해도 지켜 서서 철저하게 감독하고 일일이 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품삯을 많이 줘도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의 결론은 욕망이 높아지고 수요가 커지면 자연인일지라도 지속적이고 훌륭한 노동자가 될 수 있지만, 욕망이 채워지고 공급이 충분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 것이 자연인들의 습성이란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들 자연인들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끝없이 재물을 모으고, 자연을 착취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둘 때에 그날 하루 먹을 양식만 거두게 한 것이나 필요한 만큼만 먹고 쓰고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 원시림의 토인들의 자유로운 삶이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아무리 게을러 보이는 원시림의 토인이라 할지라도 간절함이 발동할 때는 잠도 자지 않고 카누를 젓고 화전을 일구고 고기잡이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철저한 가부장 제도에 맏아들을 선호하는 히브리인 가정들에서 둘째나 셋째와 같은 차자들의 투쟁적인 간절함은 눈물겨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비굴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고, 나라도 세워졌습니다. 비단 야곱뿐만이 아닙니다.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이후 셋째였던 아브라함, 둘째였던 이삭, 넷째였던 유다, 열 한 번째였던 요셉, 둘째였던 모세 등을 비롯해서 맏형들을 물리치고 대를 이어간 차자들이 많습니다. 어린 요셉이 꾼 꿈들을 잘 살펴보면, 자기 친 어머니 라헬의 맏아들로서 자기 앞에 있는 열 명의 형들을 이겨내고 말겠다는 간절함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간절함들이 그들을 히브리민족의 위대한 족장들로 역사에 자리매김 되게 할 수 있었던 능력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전혀 부족함 없이 자녀들을 돌보고 키우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양약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궁핍하게 큰 아이들일수록 자립심이 강하고,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가장 현명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어떠한 돌보심의 방침을 갖고 계실까를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설파한 사도 바울의 깊은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자녀교육에 관한 노하우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다면 그분이 자녀인 우리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돌보시는가를 깨닫고 믿고 의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환난에 내맡기시는 것도 시련을 겪게 하시는 것도 어려움에 처하게 내버려두시는 것도 다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허락의지’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우리를 고통과 죄악 가운데 잠시 버려두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한 일들과 악한 사람들의 득세 때문에 하나님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십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과 시련 속에서 훌륭한 자녀들로 단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간절함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없는 사람은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욕구가 없는 사람은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성서내용의 대부분은 환난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의 방패시며, 나의 산성이시도다.”고 노래한 것을 보면, 심한 물리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간절하게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난과 시련 없이 평탄하게 살고 있는 사람한테서 이런 신앙고백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좋은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나 무엇인가 크게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평범한 삶 속에서 얻어진 것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도 피우기까지는 봄에는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고, 가을에는 된서리가 내리듯이, 우리의 꿈이 꽃피우고 우리의 희망이 결실하기까지 잠 못 이루는 10대 때에 소쩍새의 눈물과, 장래가 불확실한 20대 때의 천둥과 먹구름 같은 고생과, 불안정한 30대 때의 된서리 같은 역경이 있고서야 비로소 불혹의 40대 때에 온갖 풍상과 역경을 딛고 넉넉하고 안정된 누님과 같은 완숙함에 도달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환난과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축복이고, 간절함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기도란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간절함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간절한 마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필요한 것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고칠 것이 있으면 간절하게 그 고장 난 곳을 고치고자 할 것입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이웃사람의 영혼구원을 간절하게 바랄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간절하게 바란다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의 성공을 간절하게 바랄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주고 싶을 것이고, 잘 보이고 싶을 것이고, 마음을 주고 싶은 간절함이 있을 것입니다.
간절함은 우리가 의존할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축복을 받고, 병고침 받고, 성공한 사람들이 다 간절함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종을 살리고자한 백부장과 새 인생을 설계한 삭개오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을 앞두게 됐을 때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옥중에 갇혔을 때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을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언어 가운데도 ‘간절히’란 말이 유난히 많습니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일했는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간절함은 우리가 의존할 능력입니다. 간절함을 가져봅시다.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 교회성장에 대한 간절함, 교우들에 대한 간절함, 부모님과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에 대한 간절함, 성공에 대한 간절함, 이런 간절함을 가져봅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간절함이 있는 곳에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충만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말씀은 ‘간절함’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이방인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이 종을 살리고자한 주인의 간절함과 그를 돕고자 예수님을 찾아온 유대교 장로들의 간절함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백부장이 유대인들의 호감을 산 것은 그가 유대민족을 사랑할 뿐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회당을 지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또 예수님의 호감을 산 것은 겸손함과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6-8절을 보면, 백부장이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어 말하기를,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듣고 저를 기이히 여기셨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다.”까지 하시면서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백부장의 간절함이 사랑하는 종을 죽음에서 살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평소 깊은 신앙심으로 유대인들로부터 존경을 받았고, 겸손함과 분명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샀습니다. 결국 백부장의 행동은 그의 사랑하는 종을 살려야 한다는 유대교 장로들의 간절함과 예수님의 간절함까지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병으로 죽어가던 백부장의 종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의 자녀들의 간절함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의존해야할 능력이 다름 아닌 간절함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1-12절을 보면, 그 유명한 삭개오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리장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가 사는 여리고지방을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의 간절함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도로가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요즘 뽕나무가 사람의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건강식품으로 날개돋힌듯시 팔리는 것을 생각하면 뽕나무는 역시 사람을 살리는 나무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튼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자한 그 간절함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집에 모시게 되는 광영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19장 6절을 보면,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영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된 삶을 크게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진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만일 남의 것을 속인 것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회개를 몹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외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간의 구원은 간절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이 의존할 능력은 간절함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KBS 1TV 드라마 「대조영」에서도 보면, 대조영이 이해고의 칼과 활에 맞아 죽게 되었으나 미모사의 도움으로 목숨만은 건지게 됩니다. 그러나 전신마비로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일어서게 되고 손에 칼과 활을 잡을 수 있게 된 것은 반드시 고구려를 일으켜 세우겠다는 그 자신의 간절함은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의 ‘간절함’에서 비롯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에세이집, 물과 원시림사이에서를 보면, ‘원시림의 사회문제’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그가 다룬 아프리카 토인들의 노동문제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 전에도 흑인들은 백인들이 볼 때 몹시 게으를 뿐 아니라, 도벽이 심한 인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습니다. 15명의 흑인들이 36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카누를 저어서 중병에 걸린 백인을 하류에서 실어 온 일이 있고부터는 흑인이 게으르다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은 사정에 따라서는 참으로 일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인들은 자기들이 절실하게 느낄 때 필요한 만큼만 일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일을 시켜야 하는 백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통이 터지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이런 토인들을 ‘자연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아프리카 토인들은 언제나 일시적인 노동자에 불과합니다. 원시림의 토인들은 비록 그들이 몹시 가난할지라도 조금만 움직여 일하면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자연에서 무상으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욕심을 낼 필요도 없고 쌓아둘 필요도 없습니다. 숲에서 햇빛과 비를 피할 오두막을 짓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재료들을 얻을 수 있고, 최소한의 식량을 얻기 위해서 바나나와 마니호트를 재배하고 고기잡이와 사냥을 합니다. 그러면 생필품을 모두 갖추는 셈이 됩니다. 따라서 노동 품을 팔아가며 돈을 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이 필요할 때, 돈이 꼭 필요할 때는 열심히 일합니다. 아내가 될 사람을 돈 주고 사야할 때, 아내와 첩들을 위한 옷감, 설탕, 담배 등을 사야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도끼, 브랜디, 구두, 의복 등을 사고자 할 때는 노동 품을 판다고 합니다.
흑인은 게으른 게 아니라 자유를 만끽하는 자연인이었던 것입니다. 원시림의 토인들은 필요할 때가 아니면 굳이 노동에 종사하여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토인들은 백인주인이 아무리 급하게 그들을 필요로 할지라도 자신의 목적이 달성되면 미련 없이 작업현장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군이 필요할 때 일군을 얻기가 어렵고, 어렵사리 일군을 구했다 해도 지켜 서서 철저하게 감독하고 일일이 시키지 않으면 아무리 품삯을 많이 줘도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의 결론은 욕망이 높아지고 수요가 커지면 자연인일지라도 지속적이고 훌륭한 노동자가 될 수 있지만, 욕망이 채워지고 공급이 충분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 것이 자연인들의 습성이란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들 자연인들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끝없이 재물을 모으고, 자연을 착취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거둘 때에 그날 하루 먹을 양식만 거두게 한 것이나 필요한 만큼만 먹고 쓰고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는 원시림의 토인들의 자유로운 삶이 우리가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아무리 게을러 보이는 원시림의 토인이라 할지라도 간절함이 발동할 때는 잠도 자지 않고 카누를 젓고 화전을 일구고 고기잡이에 나선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철저한 가부장 제도에 맏아들을 선호하는 히브리인 가정들에서 둘째나 셋째와 같은 차자들의 투쟁적인 간절함은 눈물겨운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야곱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장자권을 빼앗기 위해서 온갖 비굴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되었고, 나라도 세워졌습니다. 비단 야곱뿐만이 아닙니다. 아담의 셋째 아들 셋이후 셋째였던 아브라함, 둘째였던 이삭, 넷째였던 유다, 열 한 번째였던 요셉, 둘째였던 모세 등을 비롯해서 맏형들을 물리치고 대를 이어간 차자들이 많습니다. 어린 요셉이 꾼 꿈들을 잘 살펴보면, 자기 친 어머니 라헬의 맏아들로서 자기 앞에 있는 열 명의 형들을 이겨내고 말겠다는 간절함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간절함들이 그들을 히브리민족의 위대한 족장들로 역사에 자리매김 되게 할 수 있었던 능력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전혀 부족함 없이 자녀들을 돌보고 키우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양약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교훈해 줍니다. 궁핍하게 큰 아이들일수록 자립심이 강하고,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가장 현명하시고 지혜가 충만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어떠한 돌보심의 방침을 갖고 계실까를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고 설파한 사도 바울의 깊은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만의 자녀교육에 관한 노하우를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다면 그분이 자녀인 우리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돌보시는가를 깨닫고 믿고 의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환난에 내맡기시는 것도 시련을 겪게 하시는 것도 어려움에 처하게 내버려두시는 것도 다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허락의지’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서 우리를 고통과 죄악 가운데 잠시 버려두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악한 일들과 악한 사람들의 득세 때문에 하나님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십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고통과 시련 속에서 훌륭한 자녀들로 단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간절함으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없는 사람은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욕구가 없는 사람은 간절함이 부족합니다. 성서내용의 대부분은 환난과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의 방패시며, 나의 산성이시도다.”고 노래한 것을 보면, 심한 물리적인 공격을 받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고, 간절하게 도움을 필요로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환난과 시련 없이 평탄하게 살고 있는 사람한테서 이런 신앙고백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좋은 시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나 무엇인가 크게 업적을 이룬 사람들을 보면, 평범한 삶 속에서 얻어진 것들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도 피우기까지는 봄에는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천둥이 먹구름 속에서 울고, 가을에는 된서리가 내리듯이, 우리의 꿈이 꽃피우고 우리의 희망이 결실하기까지 잠 못 이루는 10대 때에 소쩍새의 눈물과, 장래가 불확실한 20대 때의 천둥과 먹구름 같은 고생과, 불안정한 30대 때의 된서리 같은 역경이 있고서야 비로소 불혹의 40대 때에 온갖 풍상과 역경을 딛고 넉넉하고 안정된 누님과 같은 완숙함에 도달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환난과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축복이고, 간절함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기도란 것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간절함을 드리는 것이 아닐까요? 간절한 마음,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필요한 것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고칠 것이 있으면 간절하게 그 고장 난 곳을 고치고자 할 것입니다. 영혼구원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이웃사람의 영혼구원을 간절하게 바랄 것입니다. 교회성장을 간절하게 바란다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의 성공을 간절하게 바랄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남편을 사랑한다면, 남편의 마음을 간절하게 얻고자 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주고 싶을 것이고, 잘 보이고 싶을 것이고, 마음을 주고 싶은 간절함이 있을 것입니다.
간절함은 우리가 의존할 능력입니다. 성경에서 축복을 받고, 병고침 받고, 성공한 사람들이 다 간절함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종을 살리고자한 백부장과 새 인생을 설계한 삭개오는 말할 것도 없고, 죽음을 앞두게 됐을 때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옥중에 갇혔을 때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을 보면,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언어 가운데도 ‘간절히’란 말이 유난히 많습니다. 그것은 그가 얼마나 간절히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일했는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간절함은 우리가 의존할 능력입니다. 간절함을 가져봅시다.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 교회성장에 대한 간절함, 교우들에 대한 간절함, 부모님과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에 대한 간절함, 성공에 대한 간절함, 이런 간절함을 가져봅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 간절함이 있는 곳에 성령님의 위로하심이 충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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