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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부활신앙(요 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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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55 2007.04.07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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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부활신앙(요 11:25-27) 뉴스위크지가 2007년 3월 30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들 가운데 91퍼센트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그 가운데서 82퍼센트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성인들 가운데 48퍼센트가 진화론에 반대했고, 3퍼센트만이 무신론자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입소스 라이드(Ipsos Reid)가 캔웨스트 뉴스 서비스/글로벌 뉴스(CanWest News Service/Global News)를 대신해서 2006년 4월 11-12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캐나다인의 73퍼센트, 미국인의 78퍼센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영원한 생명에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캐나다인의 17퍼센트, 미국인의 13퍼센트만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은 조작이며, 예수님이 결혼해서 가족을 이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나마 이들 부정적인 수치도 최근 문제를 일으킨 다빈치 코드나 예수님의 가족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동에 따른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미션널 리서치 센터(Center for Missional Research)가 2007년 3월 22-26일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75퍼센트 이상이 성서에 기술된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그대로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해리스 인터랙티브(Harris Interactive)가 2003년 1월 21-2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자들의 90퍼센트가 하나님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고, 89퍼센트가 기적을, 84퍼센트가 죽은 후 영혼의 생존을, 82퍼센트가 천국을, 69퍼센트가 지옥을, 68퍼센트가 마귀를, 51퍼센트가 귀신을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여론 조사들을 종합해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센세이션을 일으킨 다빈치 코드나 동굴 무덤에서 예수님의 가족유골함들이 발견되었다는 소동에 따른 영향에도 불구하고, 미국인과 캐나다인의 90퍼센트가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고, 하나님의 실존을 믿는 자들 가운데 82퍼센트가 기독교인이며, 75퍼센트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고 있고, 80퍼센트 이상이 사후의 세계를 믿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수치를 근거로 볼 때, 미국과 캐나다 인구의 75퍼센트, 곧 네 사람 가운데 세 사람이 기독교인인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명실상부한 기독교 국가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성인 53퍼센트, 우리나라의 경우 천주교 포함해서 30퍼센트가 기독교인이라고 밝힌 것에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00년 전 미국의 기독교 인구가 15퍼센트였으니까 75퍼센트까지 도달하는데 200년이 걸린 셈입니다. 유럽에서는 주후 30년 예루살렘 교회 창립이후 이 수준에까지 도달하는데 대략 40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도 잠자던 무덤에서 깨어나 힘차게 부활의 날갯짓을 한다면 1-2백년 내에 75퍼센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은 일상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말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부활이고, 영적으로는 죄 사함 받고 새 사람 된 것이 부활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 남녀차별, 인종차별, 신분차별 등에서 벗어난 것이 부활입니다. 육체적으로는 각종 질병에서 벗어난 것이 부활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스트레스나 우울증, 절망상태와 같은 침체에서 벗어난 것이 부활입니다. 자연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듯 부활은 봄기운처럼 활기차고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은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지혜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은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에 대해서 기독교가 제시하는 해답이자 핵심메시지입니다. 부활의 특징은 빛과 질서와 생명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한 책이 요한복음입니다. 요한복음의 핵심메시지는 예수님을 만나서 일어나는 긍정의 변화, 곧 생명의 부활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일곱 개의 표적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들 일곱 개의 표적들이 모두 부활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들 표적들은 우리 인간들이 겪는 모든 부족과 상실과 죽은 것들로부터 채워지고 찾아지고 회복되는 일들을 상징합니다. 재물의 부족, 건강의 부족, 믿음의 부족, 능력의 부족, 지혜의 부족으로부터 채워지고 회복되는 일들을 상징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행한 일들을 이적이나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고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표적이란 이적이나 기적이 일어나는 목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이적이고 기적이지만, 표적은 아닙니다. 표적은 발생된 이적으로 인해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고 심령의 변화를 일으켜 회개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생기고 심령의 변화를 일으켜 회개와 회복이 일어나는 것을 영적인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2장에 실린 첫째 표적에서 포도주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유익한 변화, 건설적인 변화,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아서 넘치는 변화를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실린 둘째 표적에서 왕의 신하의 아들이 죽을병에서 고침 받고 회복된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앞서 기술된 유대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가서 거듭남, 곧 빛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과 사마리아인 여성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영생의 물에 대해서 깨닫게 된 에피소드에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이들 세 가지 에피소드는 유대인인 율법사, 사마리아인인 여성, 이방인인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믿고 겪게 되는 변화와 거듭남을 말한 것인데, 남녀, 민족, 신분을 초월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밝힌 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변화에는 남녀의 차별, 민족의 차별, 신분의 차별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실린 셋째 표적에서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고 회복된 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38년 된 병자가 고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날이 안식일이었는데, 이 일로 인해서 안식일 논쟁이 일어납니다. 일을 하지 말아야할 안식일에 생명을 구하는 일을 금해야 하는가, 아니면 허락해야 하는가가 논쟁의 초점이었습니다. 여기서 나타난 특징은 생각의 전환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둠의 생각이 빛의 생각으로, 혼돈의 생각이 질서의 생각으로, 죽임의 생각이 살림의 생각으로, 파괴적이고 폐쇄적인 생각이 창조와 열림의 생각으로 변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에 실린 넷째 표적에서 예수님은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빈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십니다. 이 사건 또한 부활을 상징합니다.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처럼, 사렙다 과부의 집의 통의 가루가 없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다하지 아니한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충만한 인생에로 부활하게 됩니다. 또 같은 6장에 실린 다섯 번째 표적에서 예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십니다. 이 역시 부활을 상징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 안으로 영접했을 때 폭풍이 멈추고 죽음의 위기에서 건짐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순간순간 닥쳐오는 인생의 위기로부터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9장에 실린 여섯째 표적에서 예수님은 타고난 소경을 고치십니다. 이도 역시 부활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어둠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실린 일곱째 표적에서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이 생명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됩니다. 나사로는 동굴 무덤에 안장된 지 이미 나흘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나사로는 죽은 지 최소 4일에서 7일이 되었습니다. 회생할 가망이 전무했던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물었을 때, 마르다가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믿었을 때, 나사로의 죽음이 생명이 되고, 절망이 희망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 실린 일곱 개의 표적들 가운데 대미를 장식한 나사로의 부활사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살펴봐야할 것이 동굴 무덤입니다. 사람이 동굴 무덤처럼 폐쇄된 생각에 갇히게 되면 정상적인 판단이 어렵게 됩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보면, 족쇄에 묶여 벽만 바라보던 죄수들이 있었는데 배후 입구 쪽에서 비치는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실체로 알고 믿어왔습니다.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족쇄에 매어 죄의 동굴에 갇힌 사람은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부활이나 영생을 믿지 못합니다. 생각이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답답증에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족쇄가 풀리고 동굴 밖으로 나오게 되면, 태양빛이 내리쬐는 광활한 세계를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어둔 생각이 물러가고, 혼란이 진정되며, 답답함이 시원함이 되고, 막힘이 뚫림이 됩니다. 1901년 3월에 이원긍(법무협판), 이상재(의정부 참찬), 유성준(내무협판), 김정식(경무관), 이승인(부여군수, 이상재의 아들), 홍재기(개성군수), 이승만(철학박사), 안국선(회경군수), 김린(관직미상) 등이 한꺼번에 체포되어 한성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이들은 삼년간 괴롭고 참담한 철창생활로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의 마음에 희망이 샘솟고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선교사들이 차입해준 신앙서적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을 갖게 되자, 무덤 속과 같았던 감옥이 변하여 천국이 되고, 죽음이나 다름없던 삶이 변하여 부활과 환희의 삶이 되었습니다. 3년 후 그들은 감옥 무덤에서 풀려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서울 연동교회, 중앙기독청년회, 안국동교회, 도쿄기독청년회 등에서 활동하였습니다. 롯과 두 딸은 소돔성에서 겪었던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소알성으로 피신한 후에도 다시 산속 동굴에 몸을 숨긴 채 술에 의지해서 살아갔습니다. 폭군들에 집안을 습격당했을 뿐 아니라, 유황불에 타는 도시를 숨 가쁘게 도망쳐 나오긴 했지만, 모든 재산과 함께 롯은 부인을, 두 딸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롯과 두 딸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동굴 무덤에 가두는 코쿤(cocoon)현상이라 불리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롯과 두 딸의 상황인식방법과 문제해결방법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어떤 막다른 골목에 몰렸지만, 그들을 그곳에서 끄집어내줄 어떤 외적인 힘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인 굴속에서 개방적인 미래를 펼치지 못한 두 딸이 아버지를 통해서 후손을 남기는 일은 과히 정신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과 두 딸에게 있었던 문제점은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이름뿐인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부활의 믿음이 없었습니다. 롯의 가정은 매우 세속적이었습니다. 롯은 스스로 타락의 성 소돔을 선택했고, 그곳에 뿌리를 박으려고 했으며, 두 딸들을 그곳의 이방신 숭배자들에게 시집보내어 사위를 맞으려고 했습니다. 신앙의 끈을 놓아버린 지가 오래된 가정이었습니다. 둘째, 롯의 가정에는 신앙교육이 없었습니다.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더라면 회개와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을 것이지만, 오히려 불평과 원망으로 그들의 처지를 비관했기 때문에 그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그로 인해서 그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셋째, 롯과 두 딸은 무의식세계가 맑지를 못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무의식입니다. 공포에 휩싸인 채 폐쇄적 공간에 갇혀 살았던 것을 보면 의식이 그들을 일깨워 세우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억압된 무의식이라도 의식의 표면으로 치고 나와 줘야 하는데, 무의식이 맑지 못하니까 전혀 도움이 못됐던 것입니다. 무의식세계가 맑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꾸준하게 믿음생활을 한 사람들의 무의식세계는 맑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막가는 법이 없고, 숨겨졌던 속 것들이 무의식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도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의식은 억압되어있긴 하지만 박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의식의 표면으로 나타나 자기도 모르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람이 충격적인 사건을 만나게 되면, 롯과 두 딸처럼 동굴 무덤과 같은 폐쇄적인 생각이나 자폐적 공간에 갇히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고통을 이겨낼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생애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들의 삶을 살펴보면, 그토록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겪고서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는 부활신앙과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주이십니다. 어둠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에로 바꾸시는 변화의 주체이시면서 정작 자신은 변치 않는 로고스이십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면,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 건설적인 변화, 유익한 변화, 살림의 변화가 찾아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의 능력이 샘솟게 됩니다. 절망이 희망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고, 부족이 채움이 되고, 닫힘이 열림이 됩니다. 이런 변화가 성도님들의 삶 속에서 힘차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을 지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부활을 마음껏 축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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