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빛의 일(창 1:2-3, 마 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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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빛의 일(창 1:2-3, 마 4:12-20)
본문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교훈들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리모델링하면서 음지에 있던 화단을 없애고 화초와 나무를 모두 옹벽 밑 양지로 옮겼습니다. 옮겨 심은 작년 첫해는 시들부들하던 화초와 나무들이 금년에는 싱싱해 졌고, 전년에 비해서 줄기와 새싹이 훨씬 왕성하게 돋아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향과 양지가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빛을 만드신 후에는 땅이 생명력을 얻게 되어 온 땅이 푸르게 되고, 물이 흐르게 되고,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에덴동산이 되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있던 땅을 하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발생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까 그 지역에 사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더니 그들이 변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9-10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빛을 보므로 실족치 않는 사람과 빛이 없는 고로 실족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빛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빛이 없으면 사람이 실족하고, 빛이 있으면 사람이 실족치 않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새삼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보듯이 동굴에 갇힌 사람, 수족이 족쇄에 묶여서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를 참으로 아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당장에 필요한 것은 족쇄에서 풀려나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빛을 보게 될 때에 비로소 자기의 생각과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그를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동굴에서 나와 태양이 작열하는 대자연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사람들을 끄집어내는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롯과 두 딸은 아브라함의 간구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서 음지마을인 소돔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안전한 양지마을인 소알성에 도착했지만, 그들에게는 엄습해 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을 막아낼 만한 빛이 약했습니다. 추분이 지나면 동지 때까지 밀려오는 어둠에 빛이 밀리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고도 스스로 흑암과 사망과 그늘의 동굴에로 들어갔고, 그곳에 갇혀 살았습니다. 강제로 그들을 누가 가둔 것이 아닙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빛을 보지 못함으로 인하여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두 딸이 아버지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여서 각자의 후손을 잉태했고, 결과적으로 어둠의 자식들을 낳아 두 민족의 시조로 키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는 중요한 교훈은 만약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을 동굴에서 끄집어냈더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었더라면,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더라면, 흑암과 사망과 그늘진 동굴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어둠의 일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도 스스로에게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못했고, 비극으로 끝났던 것입니다.
2007년 4월 중순에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쌍권총을 발사해 32명을 살해한 조승희도 23년의 대부분의 삶을 흑암과 사망과 그늘진 자기세계의 동굴에서 보냈던 청년이었습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단번에 꺾어버리고, 한국인의 가슴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 조승희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교훈은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끄집어내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음지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태초부터 하셨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처음부터 하셨습니다. 그것이 빛의 일이었고 살림의 일이었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조승희의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을 포함해서 33명이 비명에 쓰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 엄청나고 끔찍한 사건의 충격 속에서도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반성과 회개의 메시지를 조승희의 추모석 위에 말없이 놓고 갔습니다.
이름이 ‘바버라’인 여성은 이렇게 썼습니다. “네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얻지 못했다는 걸을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바버라.”
이름이 ‘데이비드’인 남성은 이렇게 썼습니다. "승희, 내가 너와 같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삶을 보다 나은 삶에로 바꿀 용기와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너 때문에 처한 이 궁지에서 너의 가족이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토록 많은 생명에 네가 가한 손상이 곧 치유되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리한 너를 향한 분노가 용서로 바꿔지기를 바란다. 너로 인한 33명의 희생자 모두의 지상의 고통이 아스라한 기억으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평화를, 데이비드.“
이름이 ‘로라’인 여성은 이렇게 썼습니다. “승희, 내가 네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네가 아무런 도움과 안식을 찾지 못한 게 너무 안됐고 가슴이 미어진다. 악령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또 그것이 너에게 얼마나 끔찍했을 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제는 평화와 사랑도 조금은 찾기를 빈다.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네가 그렇게 분노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나님께서 너를 받아주시기를 기도하겠다. 로라.”
이들이 조승희에게 남긴 글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고통을 당하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그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빼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빛의 일이며, 살림의 일이며,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무관심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사랑의 감정의 반대는 무관심과 냉담이라고 언급한바 있습니다. 그래서 무관심은 사람의 심장을 조금씩 굳어지게 하는 독약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가족이든, 이웃이든, 소외된 사람이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우려주고, 그들을 묶는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끄집어내주는 일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데서 시작된다는 교훈을 준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신분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도움의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이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10명의 소년범죄자 가운데 6명의 아버지가 과음했고, 6명의 부모가 자주 다퉜으며, 8명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무관심하였습니다. 또 7.5명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 제멋대로 놀러 다녔고, 8명의 부모가 자녀들의 친구에 관심이 없었으며, 8명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냉담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비판적으로 살면, 자녀들이 단죄를 배우고, 적개심을 가지고 살면, 싸우는 것을 배우고, 연민을 가지고 살면, 신세타령을 배우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면, 자부심을 갖게 되고, 공평하게 살면, 정의를 배우고, 정직하게 살면, 진실을 배우고, 우정을 가지고 살면,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게 되고, 사랑을 가지고 살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망가지게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됩니다. 초봄부터 부지런히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비닐을 깔아 멀칭을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부지런한 손길이 닿은 곳이면 어느 곳이든 깔끔하고, 잡초가 없으며, 초록의 식물이 질서정연하고 예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리가 안 된 밭을 보십시오. 독초와 엉겅퀴가 뒤덮고 있어서 볼꼴사납고 지저분할 뿐 아니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리가 안 된 마음, 무관심 속에 버려진 마음의 밭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보십시오. V3같은 백신프로그램을 깔아놓고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악성 바이러스, 스파이웨어, 스팸메일 등이 침투해 가지고 컴퓨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맙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관심을 갖고 관리하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버려두면 망가집니다. 꽃밭도 논밭도 우정도 사랑도 자녀도 부부도 건강도 영혼도 교회도 사업도 관심을 갖고 돌보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무관심을 죄악입니다. 무관심은 독약입니다. 무관심은 독초입니다. 무관심은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돌보는 것, 사랑하는 것, 관심을 갖는 것은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을 합시다.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끄집어내는 일을 합시다.
본문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교훈들 가운데 한 가지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신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리모델링하면서 음지에 있던 화단을 없애고 화초와 나무를 모두 옹벽 밑 양지로 옮겼습니다. 옮겨 심은 작년 첫해는 시들부들하던 화초와 나무들이 금년에는 싱싱해 졌고, 전년에 비해서 줄기와 새싹이 훨씬 왕성하게 돋아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향과 양지가 식물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고,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는데, 하나님이 빛을 만드신 후에는 땅이 생명력을 얻게 되어 온 땅이 푸르게 되고, 물이 흐르게 되고,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에덴동산이 되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있던 땅을 하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발생한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까 그 지역에 사는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어부들을 제자로 삼았더니 그들이 변하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님이 빛의 세계로 끄집어냈더니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 음지에서 양지로 옮겨 심는 일, 그것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9-10절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빛을 보므로 실족치 않는 사람과 빛이 없는 고로 실족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빛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하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빛이 없으면 사람이 실족하고, 빛이 있으면 사람이 실족치 않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새삼 크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보듯이 동굴에 갇힌 사람, 수족이 족쇄에 묶여서 빛을 볼 수 없는 사람은 빛이 만들어 내는 그림자를 참으로 아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당장에 필요한 것은 족쇄에서 풀려나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빛을 보게 될 때에 비로소 자기의 생각과 지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그를 동굴 밖으로 끄집어내어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동굴에서 나와 태양이 작열하는 대자연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사람들을 끄집어내는 일이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롯과 두 딸은 아브라함의 간구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서 음지마을인 소돔성에서 벗어난 사람들입니다. 안전한 양지마을인 소알성에 도착했지만, 그들에게는 엄습해 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을 막아낼 만한 빛이 약했습니다. 추분이 지나면 동지 때까지 밀려오는 어둠에 빛이 밀리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구원을 받고도 스스로 흑암과 사망과 그늘의 동굴에로 들어갔고, 그곳에 갇혀 살았습니다. 강제로 그들을 누가 가둔 것이 아닙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빛을 보지 못함으로 인하여 실족하고 말았습니다. 두 딸이 아버지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여서 각자의 후손을 잉태했고, 결과적으로 어둠의 자식들을 낳아 두 민족의 시조로 키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는 중요한 교훈은 만약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을 동굴에서 끄집어냈더라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들에게 빛을 비춰주었더라면, 그들이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더라면, 흑암과 사망과 그늘진 동굴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어둠의 일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 곁에는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도 스스로에게 빛의 일과 살림의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못했고, 비극으로 끝났던 것입니다.
2007년 4월 중순에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쌍권총을 발사해 32명을 살해한 조승희도 23년의 대부분의 삶을 흑암과 사망과 그늘진 자기세계의 동굴에서 보냈던 청년이었습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을 단번에 꺾어버리고, 한국인의 가슴에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 조승희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교훈은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끄집어내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음지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빛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태초부터 하셨고, 예수님도 이 땅에서 처음부터 하셨습니다. 그것이 빛의 일이었고 살림의 일이었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었습니다.
조승희의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 자신을 포함해서 33명이 비명에 쓰러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 엄청나고 끔찍한 사건의 충격 속에서도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일부 지각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반성과 회개의 메시지를 조승희의 추모석 위에 말없이 놓고 갔습니다.
이름이 ‘바버라’인 여성은 이렇게 썼습니다. “네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필요로 했던 도움을 얻지 못했다는 걸을 알고 가슴이 아팠단다. 머지않아 너의 가족이 평온을 찾아 치유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복주시기를, 바버라.”
이름이 ‘데이비드’인 남성은 이렇게 썼습니다. "승희, 내가 너와 같은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의 삶을 보다 나은 삶에로 바꿀 용기와 힘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너 때문에 처한 이 궁지에서 너의 가족이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토록 많은 생명에 네가 가한 손상이 곧 치유되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리한 너를 향한 분노가 용서로 바꿔지기를 바란다. 너로 인한 33명의 희생자 모두의 지상의 고통이 아스라한 기억으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평화를, 데이비드.“
이름이 ‘로라’인 여성은 이렇게 썼습니다. “승희, 내가 네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네가 아무런 도움과 안식을 찾지 못한 게 너무 안됐고 가슴이 미어진다. 악령에 사로잡히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고, 또 그것이 너에게 얼마나 끔찍했을 지를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제는 평화와 사랑도 조금은 찾기를 빈다.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어서 네가 그렇게 분노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나님께서 너를 받아주시기를 기도하겠다. 로라.”
이들이 조승희에게 남긴 글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고통을 당하는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그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빼내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빛의 일이며, 살림의 일이며, 기적을 창조하는 일이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무관심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도 사랑의 감정의 반대는 무관심과 냉담이라고 언급한바 있습니다. 그래서 무관심은 사람의 심장을 조금씩 굳어지게 하는 독약이라고 말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구든지 간에, 가족이든, 이웃이든, 소외된 사람이든, 그들에게 관심을 기우려주고, 그들을 묶는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끄집어내주는 일이 바로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데서 시작된다는 교훈을 준 말씀이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신분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종교도 아닙니다. 도움의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고, 위로의 말을 건네주는 것이고, 친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입니다.
10명의 소년범죄자 가운데 6명의 아버지가 과음했고, 6명의 부모가 자주 다퉜으며, 8명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무관심하였습니다. 또 7.5명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 제멋대로 놀러 다녔고, 8명의 부모가 자녀들의 친구에 관심이 없었으며, 8명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냉담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부모들이 비판적으로 살면, 자녀들이 단죄를 배우고, 적개심을 가지고 살면, 싸우는 것을 배우고, 연민을 가지고 살면, 신세타령을 배우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면, 자부심을 갖게 되고, 공평하게 살면, 정의를 배우고, 정직하게 살면, 진실을 배우고, 우정을 가지고 살면, 친구 사귀는 법을 배우게 되고, 사랑을 가지고 살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망가지게 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됩니다. 초봄부터 부지런히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고 비닐을 깔아 멀칭을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부지런한 손길이 닿은 곳이면 어느 곳이든 깔끔하고, 잡초가 없으며, 초록의 식물이 질서정연하고 예쁘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리가 안 된 밭을 보십시오. 독초와 엉겅퀴가 뒤덮고 있어서 볼꼴사납고 지저분할 뿐 아니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리가 안 된 마음, 무관심 속에 버려진 마음의 밭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보십시오. V3같은 백신프로그램을 깔아놓고 관리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악성 바이러스, 스파이웨어, 스팸메일 등이 침투해 가지고 컴퓨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맙니다.
사람도 마찬가집니다. 관심을 갖고 관리하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버려두면 망가집니다. 꽃밭도 논밭도 우정도 사랑도 자녀도 부부도 건강도 영혼도 교회도 사업도 관심을 갖고 돌보지 않으면 망가집니다. 무관심을 죄악입니다. 무관심은 독약입니다. 무관심은 독초입니다. 무관심은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버려두면 망가지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돌보는 것, 사랑하는 것, 관심을 갖는 것은 빛의 일이고, 살림의 일이고, 기적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내는 일을 합시다. 족쇄를 풀어주고, 흑암과 사망과 그늘에서 끄집어내는 일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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