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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이는 좋은 부모가 만든다(잠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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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973 2007.05.0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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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이는 좋은 부모가 만든다(잠 22:6)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쁜 것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모두가 보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타고난 나쁜 것이란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은 선악에 대해서 중립적입니다.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은 인간의 선택과 사용에 따라 선용될 수도 있고 악용될 수도 있습니다. 선악은 인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다만 인간은 완전하지 못한 피조물이고 선악 가운데 어느 것 하나가 결정될 확률이 50퍼센트나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객관적으로 볼 때, 다 나쁘다거나 다 선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보는 입장에 따라서 더 선하게 볼 수도 있고, 더 나쁘게 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집니다. 타고난 나쁜 아이는 없습니다. 다만 후천적으로 길들어질 뿐입니다. 우리 주변에 울며 떼쓰는 아이, 폭력적이고 욕하는 아이, 동생을 괴롭히는 아이 등, 부모조차 어쩌지 못해 발만 동동 굴러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런 아이들의 나쁜 습성이 타고난 것은 아니란 것입니다.
문제아이의 배후에는 문제 부모가 있게 마련입니다. SBS TV 프로그램 가운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란 인기프로를 보셨을 것입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도 그렇지만 시청자들의 한결같은 지적도 문제 아동의 배후에 거의 예외 없이 문제 부모가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 부모란 말이 나쁜 부모란 뜻은 아닙니다. 착한 부모일지라도 제대로 된 양육법을 몰라서 아이에게 끌러 다니는 부모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칭찬하는 법, 보상하는 법, 대응하는 법, 사회성을 길러주는 법, 몸에 좋은 먹을거리를 조리하는 법, 안전하게 키우기 위한 수칙 같은 일반적인 상식들을 모르는 부모를 뜻합니다.
부모의 잘못된 양육 태도가 아이에게 잘못된 습관을 갖게 합니다. 때로는 사랑과 관심이 부족해서, 때로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서, 때로는 올바른 훈육을 제때에 하지 못해서 아이들이 점점 말썽꾸러기가 되는 것인데도 많은 부모들이 이것을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축복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에는 원죄개념이란 것이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죄 없이 순결하게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원죄는 아담 타락이후 존재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이후에는 소멸되었습니다. 원죄가 있었다는 증거는 갓난아이들의 죽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죄란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는 갓난아이들이 죽는 이유를 물어보면 답이 나옵니다. 갓난아이들한테서는 도덕적이든 종교적이든 죄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죽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갓난아이들이 죽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죄의 삯이 죽음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범한 죄가 없는데도 갓난아이가 죽는 것은 원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인류의 대속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그 같은 원죄가 소멸되었다고 강하게 암시합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아담의 범죄의 결과보다도 월등하게 크다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인간의 죄의 삯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죽음의 원인이 되는 근원적인 문제, 곧 아담의 원죄를 이미 해결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단절은 지속되고 있고, 육체의 사망에 이르는 고통도 멈춰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는 인간이 아담의 원죄의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자기가 범한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죄를 아는 청소년과 성인들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둘째는 죄를 모른 채 죽음을 맛본 갓난아이들처럼 아담이후 원죄로 인해서 죽은 사람들과 믿음으로 구원은 받았지만 여전히 죽음을 맛본 성도들의 경우 예수님의 재림 때에 부활하도록 하나님께서 구원의 시간을 늦춰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죄의 은총을 받고 구원을 약속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과 죄를 모른 채 죽은 사람들이 모두 이 마지막 때에 영생에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죄를 모르는 아이들이 하는 잘못된 행위들은 본능에 따라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본능은 하나님이 주신 귀중한 선물입니다. 본능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본능도 자연법칙에 지배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버려두면 망가집니다. 그래서 좋은 교육이 필요합니다. 좋은 교육을 통해서 아이들은 해도 좋을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배우게 됩니다. 나쁜 교육은 아이들을 나쁘게 만들고, 좋은 교육은 아이들을 착하게 만듭니다. 기대한 행동을 했으면 관심을 보여주고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주어진 과제를 해냈으면 적절한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할 때에는 즉석에서 바로 잡아주고, 관심을 끌려는 행동을 할 때는 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진정시킬 때는 따로 냉각장소에 머무르게 한다든지 하는 적절한 교육방식을 쓰면 아이들은 착해진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나쁘게 만드는 것은 부모나 교사들입니다. 부모가 변해야 아이도 변합니다. 일관성 있는 자녀교육이 아이를 변화시킵니다. 화는 자녀교육의 최대의 적입니다. 관심과 무관심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부모나 교사의 기대를 아이에게 정확히 이해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명령만하고 부정적인 말만 하면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방법을 모르는 엄마나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곧바로 컴퓨터 삼매경에 빠지는 아빠와 같은 부모 밑에서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전혀 신경을 써주지 않는 부모 밑에서는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가 없습니다.
문학수첩에서 출판한 팀 루서트의 󰡔아버지의 지혜󰡕에 실린 글들을 몇 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아버지에게 면도하는 방법을 배우던 기억이 한 남성의 인생을 바꿔놓은 이야기입니다.
몇 년 전에 나는 칼을 마구 휘두르던 어떤 무지한 폭력배의 공경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바람에 목에 칼자국이 여러 개 나 있다. 물론 나는 그 공격을 받고도 살아남았고, 범인은 지금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그런데 그 뒤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이 충격적인 사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면도를 할 때마다 거울에 비친 그 상처를 보았고, 또 그때마다 분노로 이글거리던 범인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르면서 내 정신을 압박했다.
면도를 하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점차 그 끔찍했던 상황이 더욱더 생생하게 떠오르면서 나를 압도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아버지하고는 사이가 좋았습니까?” 심리치료사가 나에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그럼요. 아주 좋았죠.” 그러자 심리치료사는 아버지가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더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하는 순간, 아주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저절로 미소가 나왔다. “선생님, 정말 멋진 추억이 있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면도를 하시면 곁에서 그 모습을 얼이 빠진 모습으로 바라보곤 했습니다. 아침에 아버지가 면도를 하실 때마다 나는 늘 곁에 서 있었죠. 그런데 한번은 아버지가 장난감 면도기를 사다 주셨습니다. 손잡이 아랫부분을 돌리면 윗부분이 열리는 장난감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쓰시던 면도기와 모양이 똑같은 것이었지요. 물론 면도날도 들어 있었습니다. 마분지로 만든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얼굴에 면도 크림을 듬뿍 바른 뒤에 그 장난감 면도기로 면도를 하곤 했습니다.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그러자 심리치료사는 면도를 할 때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폭행당하던 순간의 기억을 밀어내 보라고 했습니다.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어릴 때의 그 기분 좋은 추억이 끔찍한 폭행의 기억을 밀어낸 것이다. 지금은 면도를 할 때마다 아버지가 나에게 베푸셨던 사랑을 느낀다. 또 천진난만한 시절의 그 순수했던 느낌도 느낀다. 이렇게 해서 면도와 관련된 어릴 때의 내 기억이 폭행사건으로 생긴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중한 기억은 어느 한순간에 생겨 영원히 지속된다. 어릴 때 아버지가, 귀찮을 법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면도기를 사다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신 것이 정말 고맙다. 이 기억은 아버지와 나 사이의 유대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 행복했던 그 기억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마크 브렌나먼(오클라호마, 금연지도자)>
두 번째 이야기는 아버지가 사춘기의 아들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는 행위는 아들이 겪는 사춘기의 아픔을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좋은 약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는 우유 배달원이셨다. 1주일에 닷새를 새벽 세 시에 일어나셔야 했다. 아버지는 우리가 살고 있던 브룩클린에서 브롱크스에 있는 공장까지 운전을 하셨고 이어서 다시 우유를 배달하러 맨해튼의 어퍼이스트사이드까지 운전하셨다.
새벽에 일어나셔야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보통 여덟 시면 잠자리에 드셨다. 월요일 밤이면 어머니는 ‘여자들끼리’ 카드를 치려고 나가시곤 했다. 어머니가 나가시면 나는 아버지에게 가서 이야기를 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늘 된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는 아버지와 나란히 누워서 가슴속에 있는 것들을 쏟아놓곤 했다. 때로는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일도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편이셨다. 그리고 청소년기에 느끼는 온갖 괴롭고 나쁜 생각들은 곧 사라질 것이며 좋은 생각들이 들 테니까 분노하는 마음에 따라서 행동하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좋은 도움말이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아버지는 잠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기꺼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가 여전히 잠들지 않고 계신 것을 보고는 화를 내곤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는 늘 그렇게 내 곁에 계셨다. 도움말을 주시고 격려를 하시고 또 억센 손으로 내 손을 꽉 잡아 주셨다. <아이라 M. 가빈(뉴욕, 퇴직교사)>
세 번째 이야기는 아버지의 기도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가장 멋진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된다는 이야기입니다.
.... 우리 집에는 TV가 한 대밖에 없었고, 이 TV는 부엌에 있었는데 TV 가까운 곳에 아버지의 흔들의자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이 흔들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하셨고, 우리에게 그날 학교에서 혹시 특별하게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묻기도 하셨으며, 또 저녁을 먹은 뒤에는 설핏 잠에 빠지기도 하셨다(하지만 아버지는 늘, 잠을 잔 게 아니라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하던 중이었다고 하셨다.) 병상 곁을 지키면서 아버지에게, 어릴 때 아버지가 한 밤에 그 흔들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하신 뒤에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드시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봄과 가을에는 창문에 방충망 대신 유리가 끼워져 있어, 거기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기도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비쳤던 것이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볼 때 그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내 얘기가 끝나자 남동생 하나는 어쩐지 금방 잠이 오지 않고 눈이 말똥말똥하기만 하던 날 밤에는 남자 형제 네 명이 함께 쓰던 방의 복층 침대 아래 칸에 누워서 아버지를 보았다고 했다. 이 동생도 역시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시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남매는 모두 아버지가 흔들의자 옆에서 기도를 하시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화장실에 가다가 그런 모습을 본 사람도 있고, 복층 침대 위 칸에 누워서 본 사람도 있었고, 심야영화를 보면서 냉장고를 뒤져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왔다가 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기억하는 장면은 똑같았다. 아버지가 흔들의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올리던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우리 남매는 모두 자기만 유일하게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우리는 모두, 아마도 우리들의 행복을 빌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머리를 숙였던 아버지의 모습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무튼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우리 자식들에게 신앙심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여 주셨던 셈이다. 자기 자신보다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하셨던 아버지의 육신은 우리 곁을 떠났지만, 우리 가슴에 영원한 자국을 남기셨다. 그것은 아름답게 죽는 방법이었다. <줄리 밀러(미시간, 물리치료사)>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소개해 드린 이야기들이 이것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좋은 부모가 좋은 아이를 만듭니다. 오늘은 이 한 가지를 가슴에 깊이 새기도록 합시다.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내일의 주인공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창조적인 기독교신앙을 심어주고, 재능과 개성을 찾아주고, 꿈과 비전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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