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보는 신앙의 불행(창 19:30-38)
본문
뒤돌아보는 신앙의 불행(창 19:30-38)
오늘 본문말씀의 주인공은 롯이란 사람입니다. 롯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이 지금의 이라크 갈데아 우르를 떠나 팔레스타인 사해근처로 이주해올 때,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났던 신앙인이며, 진취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터키 하란이란 곳에 잠시 정착하여 살다가 팔레스타인에 아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되는데, 소돔 도성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박으려고 하였습니다.
롯에게 닥친 불행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그동안 아브라함과 롯은 향락과 우상으로 인하여 타락한 여러 도성들을 떠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을 떠났고, 이집트를 떠나왔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이들 도성들은 소돔 도성보다 더 큰 도성들이었고, 문화경제적인 면에서도 월등하게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무엇 때문에 떠나야만했던 도성을 되찾아 들어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했을까요? 여기에 롯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갈데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는 축복을 위한 명령이었습니다. 타락한 도심을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축복을 위한 명령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그러나 롯은 명령을 받들어 떠나기는 했으나 떠나온 세속 도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떠나온 세상을 향해서 뒤를 돌아다봤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떠나온 갈데아 우르나 하란이나 이집트보다도 월등하게 더 타락한 소돔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죽음의 동굴로 찾아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눅 9:62)고 했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고 하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19장 30절에 보면, 천사들의 배려로 소돔성을 빠져나온 롯은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약속의 땅을 향해서 떠나지 않고, 오히려 산속 동굴로 피신하였습니다. 이 역시 파멸의 굴이었습니다. 밝은 세상에로 동굴에서 나와야할 믿음의 사람이 오히려 어둠의 소굴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17절에 보면,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떠나온 파멸의 도성 안에 모아놓은 재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뒤를 돌아다봤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2절에서 예수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뒤돌아보는 신앙의 불행에 관해서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부터 자식을 낳아 후손을 퍼뜨리려했던 것도 떠나온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식을 원했던 것은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얻고 그것들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친간 결혼은 부도덕한 행위이기보다는 권력에의 욕망이 얼마나 강했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황실귀족들 사이에는 근친혼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권력에의 집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롯의 가족의 파국은 그들의 뒤돌아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떠나온 도시로의 회귀와 동굴 속으로의 피신은 롯의 가정에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보낸 후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맞아들여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나쁘게 된 사람(마 12:43-45)의 꼴이 롯의 형편이었습니다.
롯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입니다. 롯의 삶은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롯의 삶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롯의 삶에는 분명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롯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까지 롯처럼 살아왔더라도 빨리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재촉입니다.
소돔성의 멸망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예고하는 경고입니다. 소돔성의 멸망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장차 지옥의 불에서 받게 될 영벌에 대한 경고입니다. 소돔성의 멸망은 먼 과거에 일어난 단지 지나가버린 역사적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메시지요,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시적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보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警戒)로 기록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말세를 만난 우리들은 소돔성 멸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거울삼고, 교훈삼아야 할 것입니다. 소돔성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롯은 신앙인이었지만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삼촌 아브라함의 권유에 이끌려 죄악이 만연한 도성들을 떠나오긴 했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과 화려함을 동경해왔고, 아브라함의 장막을 벗어나 완전하게 독립하게 되자, 그동안 동경해마지않던 도시생활의 꿈을 이루려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요단 동편 작은 성읍 소알에서 도시생활의 꿈을 시작하였으나 더 크고 화려한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죄악의 도성 소돔으로 들어가 정착했던 것입니다. 세속도시를 등지고 천성을 향해서 걸어야할 신앙인이 오히려 그곳에서 사위들을 맞아들이고 가업을 키워 정착하려했습니다.
롯은 재물에도 눈이 어두웠던 사람입니다. 골육 간에 헤어지는 아픔을 삼키며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조카에게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주었을 때, 롯은 이집트시절을 회상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요단 동편의 성읍을 선택했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롯에게는 이미 삼촌에 대한 양보는 뒷전이었고, 메마른 땅 가나안보다도 물이 넉넉하고 비옥한 요단들판이 매혹적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롯이 요단 들판을 바라봤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여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장 10절)고 하였습니다.
소돔성은 타락한 세속도시요, 파멸이 예정된 도시요, 눈먼 도시요, 지옥의 상징이었습니다. 롯이 그곳에 들어간 것은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빨리 그곳에서 나왔어야 했으나 오히려 뿌리를 내리고 안주하려고 했습니다. 계시록 18장 4절은 경고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성경말씀은 소돔성에 들어간 것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빨리 나와야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가까스로 소돔성을 피신한 롯은 안전한 소알성에 머물지 아니하고 산속 동굴로 피신하였습니다. 어둔 영에 이끌렸던 롯의 삶은 성령에 이끌렸던 아브라함의 삶과 대조적입니다. 아브라함은 넓게 트인 마므레 수풀에 거주하였으나 롯은 파멸의 도시, 눈먼 도시, 소돔성에 거주하였고, 이제는 산속 동굴에 자신의 몸을 숨겼습니다. 동굴은 롯의 심령의 상태가 얼마나 암울했나를 대변합니다. 그의 마음이 캄캄한 지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은 그곳에 들어가지 말았어야했습니다. 소알성이 무섭고 두려웠다면,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를 찾아갔어야했습니다. 이것이 또 한 번의 롯의 큰 실수입니다.
동굴이라는 자폐적 공간에서 인식되는 모든 것들은 잡은 듯싶지만 잡히지 않는 그림자요, 허상입니다. 참이 아닌 그림자를 좇는 인생입니다. 눈뜨고 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눈먼 자의 허상입니다. 참인 줄 알지만 허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빛의 세계에 머물러야 했으나 롯은 어두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창세기 19장 30-38절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파멸과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롯과 두 딸의 비극적인 삶이 실린 글입니다.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가 롯과 두 딸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 19장 30-38절의 말씀은 있을법한 일들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생활을 동경했던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망하자 도시생활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에게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베푸시고, 죽음을 면하게 하신 후에 인근의 소알성에 머물게 하셨지만, 롯은 도시를 떠나 산으로 피신하여 그곳 굴속에서 두 딸과 생활합니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 굴속에서 개방적인 미래를 펼치지 못한 두 딸들이 도달한 결론은 과히 정신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과 두 딸은 지금 엄청난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지 못한 불신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롯과 두 딸들로서는 전혀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을 만치 극도의 정신적인 장애를 앓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롯과 두 딸에게서 나타난 이런 일련의 정신적인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부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에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를 말합니다. 심각한 외상적인 사건이란 전쟁, 자동차 사고, 폭행, 강간, 테러, 폭동,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등을 말하는데, 주된 임상양상으로 첫째는 그 외상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경험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꿈에 계속 나타난다거나, 반복적으로 그 사건이 생각난다거나, 마치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거나 느끼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외상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회피하거나, 그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회상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또 그 반대로 전과는 다르게 반응이 둔화되는 경우로써 활동이나 흥미가 감퇴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거나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항우울제와 같은 적절한 약물이나 정신치료를 실시하여 고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던 롯과 두 딸은 공황에 시달려야했을 것입니다. 소돔성의 파멸로 인한 충격이 롯으로 하여금 두 딸들을 산 굴속으로 데려가게 했고, 두 딸들은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는 폐쇄적인 사고에 머물게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도리‘란 혼인관습을 말한 것입니다.
동굴은 죽음, 무덤, 음부, 지옥, 자기감옥, 정신적 감옥, 폐쇄적 자폐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동굴에 갇히는 현상을 코쿤(cocoon)이라고 하는데, 코쿤이란 누에고치란 뜻입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보호받을 목적으로 타인과의 접촉이나 교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거부하며 외부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을 ‘히키코모리’라 부르는데, 그 수가 일본인 전체인구 가운데 1퍼센트에 해당되는 13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20~30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롯과 두 딸에게서 이런 비극적인 증상을 봅니다. 롯과 그의 두 딸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은, 첫째, 들어가지 말아야할 곳에 들어갔고, 신속히 빠져나와야할 곳에서 오히려 뿌리를 내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소돔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 머뭇거렸고, 그 바람에 더 멀리 피신하지를 못했습니다.
동굴과 같은 폐쇄적인 사고나 자폐적 공간에 갇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성도들과 친교를 나누는 한 적어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롯의 실수는 개방적인 자연과 공간을 버리고, 동굴을 찾아들어간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산속 동굴을 택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둘째,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롯과 그의 처와 두 딸들에게서 나타난 일련의 행위들은 전혀 신앙적이지를 못했습니다. 롯은 들어가지 말아야할 곳을 들어갔고, 딸들을 우상숭배하는 이방인에게 시집보내려했으며, 소돔심판에 대한 깊은 뜻과 자비를 헤아려 알려고하기보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마지못해 소돔성을 탈출하던 부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고, 두 딸들은 동굴에서 나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어야 했지만, 친정아버지를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겠다는 비도덕적인 생각까지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정황들로 봐서 롯은 가족들에게 신앙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큰 비극이었나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롯은 일생일대에 큰 실수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을 버리고 도시문명을 동경한 나머지 소돔성을 선택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소돔성은 죄악의 도성이었으며, 파멸을 맞이할 운명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죽음의 소굴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소돔성을 빠져나와 소알성에 거하게 된 롯이 이번에는 산속 동굴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을 두 번 죽이는 행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도성에 거하지도 않았고, 동굴 속에 갇히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거주한 곳은 태양이 내리쬐는 광활한 광야였습니다. 그가 동무로 삼은 것은 죄악을 먹고 마시는 도성의 사람들이 아니라, 저 높고 푸른 하늘에 계신 야훼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동경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고 날마다 꿈꾸는 것이 무엇입니까? 롯과 같은 실수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가 겪었던 불행이 성도님들의 삶에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삶에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누렸던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의 주인공은 롯이란 사람입니다. 롯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조카입니다. 아브라함이 지금의 이라크 갈데아 우르를 떠나 팔레스타인 사해근처로 이주해올 때, 아브라함과 함께 고향을 떠났던 신앙인이며, 진취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터키 하란이란 곳에 잠시 정착하여 살다가 팔레스타인에 아주 정착하는 과정에서 롯은 아브라함을 떠나 독립을 하게 되는데, 소돔 도성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뿌리를 박으려고 하였습니다.
롯에게 닥친 불행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그동안 아브라함과 롯은 향락과 우상으로 인하여 타락한 여러 도성들을 떠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났고, 하란을 떠났고, 이집트를 떠나왔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이들 도성들은 소돔 도성보다 더 큰 도성들이었고, 문화경제적인 면에서도 월등하게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롯은 무엇 때문에 떠나야만했던 도성을 되찾아 들어가 그곳에 뿌리를 내리려고 했을까요? 여기에 롯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창세기 12장 1-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갈데아 우르와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라는 하나님의 지시는 축복을 위한 명령이었습니다. 타락한 도심을 떠나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축복을 위한 명령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명령에 충실하게 따랐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는 큰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그러나 롯은 명령을 받들어 떠나기는 했으나 떠나온 세속 도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떠나온 세상을 향해서 뒤를 돌아다봤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떠나온 갈데아 우르나 하란이나 이집트보다도 월등하게 더 타락한 소돔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죽음의 동굴로 찾아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다”(눅 9:62)고 했고,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고 하셨습니다.
본문 창세기 19장 30절에 보면, 천사들의 배려로 소돔성을 빠져나온 롯은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약속의 땅을 향해서 떠나지 않고, 오히려 산속 동굴로 피신하였습니다. 이 역시 파멸의 굴이었습니다. 밝은 세상에로 동굴에서 나와야할 믿음의 사람이 오히려 어둠의 소굴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창세기 19장 17절에 보면, 롯의 처는 뒤를 돌아다보지 말라는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떠나온 파멸의 도성 안에 모아놓은 재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뒤를 돌아다봤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 17장 32절에서 예수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뒤돌아보는 신앙의 불행에 관해서 경고하신 말씀입니다.
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부터 자식을 낳아 후손을 퍼뜨리려했던 것도 떠나온 세상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식을 원했던 것은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얻고 그것들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대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친간 결혼은 부도덕한 행위이기보다는 권력에의 욕망이 얼마나 강했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황실귀족들 사이에는 근친혼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권력에의 집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롯의 가족의 파국은 그들의 뒤돌아본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떠나온 도시로의 회귀와 동굴 속으로의 피신은 롯의 가정에 파멸을 가져왔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내보낸 후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맞아들여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나쁘게 된 사람(마 12:43-45)의 꼴이 롯의 형편이었습니다.
롯은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자화상입니다. 롯의 삶은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입니다. 롯의 삶은 우리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롯의 삶에는 분명 우리에게 말해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롯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까지 롯처럼 살아왔더라도 빨리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재촉입니다.
소돔성의 멸망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예고하는 경고입니다. 소돔성의 멸망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장차 지옥의 불에서 받게 될 영벌에 대한 경고입니다. 소돔성의 멸망은 먼 과거에 일어난 단지 지나가버린 역사적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주는 경고메시지요,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시적 사건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1절에 보면,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警戒)로 기록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말세를 만난 우리들은 소돔성 멸망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거울삼고, 교훈삼아야 할 것입니다. 소돔성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롯은 신앙인이었지만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삼촌 아브라함의 권유에 이끌려 죄악이 만연한 도성들을 떠나오긴 했지만, 도시생활의 안락함과 화려함을 동경해왔고, 아브라함의 장막을 벗어나 완전하게 독립하게 되자, 그동안 동경해마지않던 도시생활의 꿈을 이루려하였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요단 동편 작은 성읍 소알에서 도시생활의 꿈을 시작하였으나 더 크고 화려한 여러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죄악의 도성 소돔으로 들어가 정착했던 것입니다. 세속도시를 등지고 천성을 향해서 걸어야할 신앙인이 오히려 그곳에서 사위들을 맞아들이고 가업을 키워 정착하려했습니다.
롯은 재물에도 눈이 어두웠던 사람입니다. 골육 간에 헤어지는 아픔을 삼키며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조카에게 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먼저 주었을 때, 롯은 이집트시절을 회상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을 버리고 요단 동편의 성읍을 선택했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진 롯에게는 이미 삼촌에 대한 양보는 뒷전이었고, 메마른 땅 가나안보다도 물이 넉넉하고 비옥한 요단들판이 매혹적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롯이 요단 들판을 바라봤을 때의 심정을 표현하여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장 10절)고 하였습니다.
소돔성은 타락한 세속도시요, 파멸이 예정된 도시요, 눈먼 도시요, 지옥의 상징이었습니다. 롯이 그곳에 들어간 것은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빨리 그곳에서 나왔어야 했으나 오히려 뿌리를 내리고 안주하려고 했습니다. 계시록 18장 4절은 경고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성경말씀은 소돔성에 들어간 것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빨리 나와야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로 가까스로 소돔성을 피신한 롯은 안전한 소알성에 머물지 아니하고 산속 동굴로 피신하였습니다. 어둔 영에 이끌렸던 롯의 삶은 성령에 이끌렸던 아브라함의 삶과 대조적입니다. 아브라함은 넓게 트인 마므레 수풀에 거주하였으나 롯은 파멸의 도시, 눈먼 도시, 소돔성에 거주하였고, 이제는 산속 동굴에 자신의 몸을 숨겼습니다. 동굴은 롯의 심령의 상태가 얼마나 암울했나를 대변합니다. 그의 마음이 캄캄한 지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롯은 그곳에 들어가지 말았어야했습니다. 소알성이 무섭고 두려웠다면, 아브라함이 거주하는 가나안 땅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를 찾아갔어야했습니다. 이것이 또 한 번의 롯의 큰 실수입니다.
동굴이라는 자폐적 공간에서 인식되는 모든 것들은 잡은 듯싶지만 잡히지 않는 그림자요, 허상입니다. 참이 아닌 그림자를 좇는 인생입니다. 눈뜨고 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눈먼 자의 허상입니다. 참인 줄 알지만 허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빛의 세계에 머물러야 했으나 롯은 어두운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창세기 19장 30-38절은 소돔과 고모라성의 파멸과 그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롯과 두 딸의 비극적인 삶이 실린 글입니다.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가 롯과 두 딸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 19장 30-38절의 말씀은 있을법한 일들에 대한 사실적 기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시생활을 동경했던 롯은 소돔과 고모라성이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망하자 도시생활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에게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베푸시고, 죽음을 면하게 하신 후에 인근의 소알성에 머물게 하셨지만, 롯은 도시를 떠나 산으로 피신하여 그곳 굴속에서 두 딸과 생활합니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 굴속에서 개방적인 미래를 펼치지 못한 두 딸들이 도달한 결론은 과히 정신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과 두 딸은 지금 엄청난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지 못한 불신행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어쩌면 롯과 두 딸들로서는 전혀 다른 대안을 생각할 수 없을 만치 극도의 정신적인 장애를 앓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롯과 두 딸에게서 나타난 이런 일련의 정신적인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 부릅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에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를 말합니다. 심각한 외상적인 사건이란 전쟁, 자동차 사고, 폭행, 강간, 테러, 폭동,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등을 말하는데, 주된 임상양상으로 첫째는 그 외상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경험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꿈에 계속 나타난다거나, 반복적으로 그 사건이 생각난다거나, 마치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거나 느끼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외상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회피하거나, 그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회상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또 그 반대로 전과는 다르게 반응이 둔화되는 경우로써 활동이나 흥미가 감퇴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거나 과민반응을 보이는 경우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항우울제와 같은 적절한 약물이나 정신치료를 실시하여 고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했던 롯과 두 딸은 공황에 시달려야했을 것입니다. 소돔성의 파멸로 인한 충격이 롯으로 하여금 두 딸들을 산 굴속으로 데려가게 했고, 두 딸들은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는 폐쇄적인 사고에 머물게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세상의 도리‘란 혼인관습을 말한 것입니다.
동굴은 죽음, 무덤, 음부, 지옥, 자기감옥, 정신적 감옥, 폐쇄적 자폐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동굴에 갇히는 현상을 코쿤(cocoon)이라고 하는데, 코쿤이란 누에고치란 뜻입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보호받을 목적으로 타인과의 접촉이나 교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거부하며 외부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을 ‘히키코모리’라 부르는데, 그 수가 일본인 전체인구 가운데 1퍼센트에 해당되는 13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20~30대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늘 롯과 두 딸에게서 이런 비극적인 증상을 봅니다. 롯과 그의 두 딸에게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은, 첫째, 들어가지 말아야할 곳에 들어갔고, 신속히 빠져나와야할 곳에서 오히려 뿌리를 내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소돔성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 머뭇거렸고, 그 바람에 더 멀리 피신하지를 못했습니다.
동굴과 같은 폐쇄적인 사고나 자폐적 공간에 갇히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성도들과 친교를 나누는 한 적어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롯의 실수는 개방적인 자연과 공간을 버리고, 동굴을 찾아들어간데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찾아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산속 동굴을 택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둘째,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롯과 그의 처와 두 딸들에게서 나타난 일련의 행위들은 전혀 신앙적이지를 못했습니다. 롯은 들어가지 말아야할 곳을 들어갔고, 딸들을 우상숭배하는 이방인에게 시집보내려했으며, 소돔심판에 대한 깊은 뜻과 자비를 헤아려 알려고하기보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마지못해 소돔성을 탈출하던 부인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천사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고, 두 딸들은 동굴에서 나와 아브라함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어야 했지만, 친정아버지를 통해서 후손을 이어가겠다는 비도덕적인 생각까지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정황들로 봐서 롯은 가족들에게 신앙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큰 비극이었나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롯은 일생일대에 큰 실수를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가 약속의 땅을 버리고 도시문명을 동경한 나머지 소돔성을 선택한 것은 큰 실수였습니다. 소돔성은 죄악의 도성이었으며, 파멸을 맞이할 운명의 도시였던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결정으로 죽음의 소굴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소돔성을 빠져나와 소알성에 거하게 된 롯이 이번에는 산속 동굴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와 그의 가족을 두 번 죽이는 행위였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도성에 거하지도 않았고, 동굴 속에 갇히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거주한 곳은 태양이 내리쬐는 광활한 광야였습니다. 그가 동무로 삼은 것은 죄악을 먹고 마시는 도성의 사람들이 아니라, 저 높고 푸른 하늘에 계신 야훼 하나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동경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되기를 바라고 날마다 꿈꾸는 것이 무엇입니까? 롯과 같은 실수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가 겪었던 불행이 성도님들의 삶에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여러분의 삶에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누렸던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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