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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공경(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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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973 2007.05.12 09:39

본문

부모 공경(출 20:12)

정채봉 잠언집,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는 책에 ‘어머니와 딸’이란 제목의 칼릴지브란 우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다 몽유병환자였습니다. 어느 날 모두가 잠든 밤에 두 사람은 잠이 든 채로 걸어 다니다가 안개가 드리운 뜨락에서 마주쳤습니다. 어머니가 딸을 향해 말했습니다. “드디어 만났구나. 이 원수야. 너 때문에 내 귀한 젊음이 다 소모되고 말았어. 넌 내 인생의 파멸을 딛고 서서 네 인생을 가꾸었다구. 널 죽여 버렸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그러자 딸 또한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천하의 이기적이고 몹쓸 늙은이 같으니라구! 당신은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을 방해하였어. 날 공부시켜 자기 허영을 채우려 하고, 날 시집보내 자기 소망을 이루려 하고 있어. 당신이나 죽어 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인자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애야, 거기 있는 게 너야?” 딸이 상냥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엄마. 엄마의 딸이에요.”
이 글은 어머니와 딸의 묘한 관계를 잘 표현한 글입니다. 남편으로서 혹은 아버지로서, 한 남자에 대한 어머니와 딸의 신경전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가정에 있습니다. 생활이 어렵던 시절 어머니는 딸이 시집가면 남의 식구가 된다는 피해의식 때문에 딸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았습니다. 그래서 딸들에게는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앙금으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딸들이 어머니의 구박덩이였다는 아픈 기억들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면 어머니는 아들을 며느리에게 빼앗기게 되고, 결국 딸에게 의지하게 됩니다. 한편 딸은 한 때 자신을 구박했던 어머니에게 같은 여자로서 또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갖게 됩니다. 또 딸은 평생 어머니를 스승으로 알고 실생활에 필요한 지혜와 지식들을 배웁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딸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청년은 외출에서 돌아오다가 뜻하지 않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란 어머니가 가슴 졸이며 병원에 달려갔지만, 불행히도 청년은 이미 두 눈을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멀쩡하던 두 눈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청년은 깊은 절망에 빠져 자신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마음의 문을 철저하게 닫은 채 우울하게 지냈습니다. 바로 곁에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는 어머니의 가슴은 말할 수 없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청년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누군가가 그에게 한쪽 눈을 기증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청년은 그 사실조차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쪽 눈 이식 수술을 마친 청년은 한동안 붕대로 눈을 가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때도 청년은 자신을 간호하는 어머니에게 '앞으로 어떻게 애꾸눈으로 살아가느냐'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청년의 말을 묵묵히 듣기만 하였습니다. 꽤 시간이 지나 드디어 청년은 붕대를 풀게 되었는데, 붕대를 모두 풀고 앞을 본 순간 청년의 눈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앞에는 한쪽 눈만을 가진 어머니가 애틋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한쪽 눈을 아들에게 빼어준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눈을 다 주고 싶었지만, 그러면 네게 나의 장님이 된 몸뚱이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어머니는 끝내 말을 다 잇지 못했습니다.
이 글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특별한 애정을 나타낸 글입니다. 어머니는 대부분 자신보다는 아들을 더 사랑합니다. 특히 큰 아들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어머니는 큰 아들이 자신의 고충과 어려움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으며, 믿음직한 존재로서 어머니의 심적인 지지자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여간해서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들에 대한 애정은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을 때 그 서운함을 보상받으려는 심리 때문에 더욱 강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들들은 어머니에 대해 무조건적인 애착보다는 독립적이고 싶어 하며, 어머니의 기대에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 어머니한테서보다는 부인한테서 위안을 찾고자 합니다. 따라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는 모래성처럼 무너지기가 쉽습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처럼 많은 수의 여성들이 남편에게 버림받고 나중에는 아들에게조차 버림을 받습니다.
요즘에는 아들과 딸에 대한 선호도가 옛날에 비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모에게는 아들보다는 딸이 낫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습니다. 그만큼 현대인들이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딸들이 받았던 차별도 이젠 다 지난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공경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7장 6-14절을 보면 ‘고르반’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유대인들만큼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는 신앙인들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유대교 랍비들은 613개 계명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계명 하나하나에 수많은 울타리 법(게자이라)들을 만들어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이 울타리 법들을 신약성서에서는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기서 장로들은 랍비들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만들어 지키게 하는 울타리 법들에는 인간의 상식과 순리를 뛰어 넘는 터무니없는 법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고르반’ 법입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고르반’이란 법을 만들어 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는 뜻으로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바쳐진 선물을 의미합니다. 장로들의 유전은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가 없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부모 공경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로 장로들의 유전을 이용했습니다. ‘고르반’을 선언하게 되면 어떤 것에 대한 소유권을 부모를 위시한 모든 타인으로부터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르반’이 선언된 것을 반드시 성전에 바쳐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맹세한 사람은 ‘고르반’된 물건을 일부만 성전에 헌납하거나 아예 헌납치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용해도 무방했던 것입니다. 결국 장로들의 유전은 많은 재물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모를 공양하지 않으려는 불효자들의 기만적인 행위를 정당화시켜주는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문제의 본질과 핵심에 접근하셨던 예수님은 ‘고르반’을 악용하여 하나님의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키지 않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더 이상 부모에게 드릴 수 없다는 이기적인 태도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한다는 거짓 이유로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악습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본문 출애굽기 20장 12절 말씀은 현세적인 보상이 있는 유일한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 이 계명을 풀어쓰고 있는 다른 구절들은 보다 구체적으로 부모를 공경하면 형통의 축복과 장수의 축복을 이 땅에서 받게 될 것을 약속합니다. 신명기 5장 16절은 부모를 공경하면 인생이 잘 될 거라고 했고, 에베소서 6장 2-3절은 “너로 하여금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식에 대해서는 엄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5절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고, 17절에서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7장 16절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업신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고, 잠언 30장 17절은 “자기 아버지를 조롱하며 자기 어머니에게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들이 쪼아내고 독수리새끼들이 먹는다.”는 끔찍한 말씀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부모를 공경해야 할까요? 가나안농군학교 교장인 김평일 선생은 직접 쓴 ‘가나안 효도실천 십계명’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 신앙을 갖도록 해드려라.
둘째, 대답을 잘하고 말씀을 잘 들어드려라.
셋째, 표정을 밝게 하고 웃음을 잃지 말라.
넷째, 궁금증을 풀어드려라.
다섯째, 자유롭게 쓰실 수 있도록 정기적인 용돈을 드려라.
여섯째, 향토적인 음식을 해 드려라.
일곱째, 외모를 아름답게 꾸며 드려라.
여덟째, 일거리를 찾아 드려라.
아홉째, 친구를 자주 만나게 해드려라.
열째, 등을 긁어드리고 손발톱을 자주 깎아드려라.
이 열 가지 효도실천 십계명은 부모공경이 부모에게 무엇을 어떻게 해드려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핵심을 짚어주고 있습니다. 이대로만 해드린다면 분명 부모님들은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늙어서 자식에게 효도를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식들 앞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모범을 실천해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보다 더 큰 효도교육이 없다고 합니다. 자식들은 항상 부모의 행동을 본받기 때문에 자신이 불효하면 반드시 불효자식을 두게 됩니다. 자신이 효도하지 않고 효도하는 자식을 바란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지극한 정성과 많은 돈을 들여 자식을 교육시키고 큰 재산을 물려준다 해도 결국은 부모를 기만하고 부모를 힘들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사회에서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으로, 효도하는 귀한 자식으로 키우고자 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는 효행을 실천해보여 줘야 합니다. ‘부모가 효도하는 모습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더 훌륭하게 자녀를 키우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정채봉 선생의 동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집에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손자인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간혹 다투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년이 들을세라, 할머니가 들을 세라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토닥거렸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부부싸움 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습니다. 소년도 듣게 되고, 할머니도 듣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싸움 소리가 담을 넘어 이웃에게도 들리게 되었습니다. “당신 어머닌 비위생적이어서 함께 못살겠어요.” “오늘 신경정신과에 다녀왔어요. 내 병명이 무엇인지 아세요?” “당신 어머니가 남한테 망신 사는 일만 저지르니 내가 노이로제에 걸릴 수 밖 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의 어머니는 할머니를 보면 고개를 돌렸습니다. 얼마 가지 않아서 소년의 아버지도 할머니 방 앞을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또 죽는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시퍼렇게 되어서 외쳤습니다. “나를 택하든지, 당신에 어머니를 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세요!” 마침내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합의를 하였습니다. 할머니가 묵을 방을 얻어서 내보내기로 한 것입니다. 낙엽이 우수수 지는 날, 온 식구가 매달려서 할머니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 물고 상자를 묶었고, 어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거들었습니다. 소년은 종이와 연필을 꺼내 와서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헌 옷장 1, 전기장판 1, 담요 1, 밥통 1....“ 어머니가 물었습니다. “너, 왜 그런 것을 적니?” 소년이 대답하였습니다. “다음에 어머니를 내 보낼 때 내가 챙겨드릴 품목이에요.”
브라질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의 수도가 아닌 다른 곳임)에 가면 자식에게 매를 맞고 사는 부모들이 모이는 클럽이 있다고 합니다. 자식들에게 매 맞고 그 서러움을 감당하기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가 위로도 받고, 힘을 얻으려고 모인다는 것입니다. 어느 대학의 심리학 교수가 이 모임을 지도하고 있는데, 그가 매우 뼈아픈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자식들한테 매 맞고 모이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젊었을 때 자기 부모에게 잘 못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그런 행동을 보고서 자란 자녀들이 자기에게 똑같이 갚아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모공경은 가정천국을 만들고 지상천국을 만드는 최상의 방법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낳은 자들이 때문에 은혜를 입은 게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기를 낳아 주신 분들이기 때문에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은혜를 입지 않은 자녀에게는 끔찍한 사랑을 쏟아 부으면서 은혜를 입은 부모에게는 나몰라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행할 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이 땅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심을 다해서 부모를 공경하시고 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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