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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창 4: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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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43 2007.06.09 10:14

본문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창 4:1-26)

창세기 4장은 가인과 아벨에 관한 내용입니다. 농부였던 가인은 농산물을 제물삼아 하나님께 드렸고, 목동이었던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제물삼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신들이 생산한 소산물로 제각기 하나님께 드렸으니까, 문제될게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로 가인이 심하게 분개했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벨에게 적개심을 품어 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인과 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7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을 보면,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 그러나 네가 올바르지 못한 일을 하였으니,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하니,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가인이 무언가 올바르지 못한 짓, 곧 하나님께 죄가 될 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인이 무슨 올바르지 못한 일을 했는지 알아볼 필요를 느낍니다. 그가 범했을 법한 일을 몇 가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마음에 정한 대로 하지 않고 인색함과 억지로 했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가인이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지 않고 마지못해서 인색함으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타종교들처럼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 뇌물의 성격으로 하지 않고, 이미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의무감이나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원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그 예배를 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을 속였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부부가 나옵니다. 이들 부부는 땅을 팔아 그 일부를 교회에 바쳤습니다. 그들은 아마 땅을 팔아 그 값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거나 일부만 바쳐놓고 모두를 바친 것처럼 속였을 것입니다. 마음에 정한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하지 않았고, 더 나빴던 것은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려고 마음에 없는 헌금을 했던 것입니다. 신명기 6장 18절을 보면, 모세가 백성에게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복을 얻고 약속받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생각과 지혜로 했을 것입니다. 자기 입장에서 편리하고 유리한대로 했을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종교란 뜻입니다. 타종교처럼 인간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좋게 생각되는 대로 신에게 찾아가고 예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지시하는 대로 시행하는 종교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제사보다도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첫째 달(니산) 16일에 이집트를 탈출한 지 45일 만인 셋째 달(시반) 초하루 날에 시내산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일 년을 머물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성막과그 안에 놓일 기구들을 만들게 되는데, 그 내용이 출애굽기에 담겨있습니다. 성막과 그 기구들이 다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다시 성막에서 수행될 예배의 종류와 방법들에 대해서 지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이 레위기에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기 39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말이 10번이나 반복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32절에는 다시 종합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고,”라고 하였고, 42-43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 실린 성막제작의 핵심사상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뤄지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행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생각과 지혜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순수하고, 아무리 깨끗하고,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또 그 동기와 목적이 아무리 순수하고 깨끗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양식대로 하지 않는 일은 결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성막예배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예배자들이 지켜야할 규례들에 대해서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고 뜻하신 방법대로 제사를 바치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예배자의 마음의 준비와 자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이 지시하신 방법대로, 하나님이 뜻하신 방법대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자주하면 경건성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주의 만찬을 매주일 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세례방식에 대해서도 재고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침례를 굳이 고집한다면 요단강에 가서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여행 중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고 돌아옵니다. 예수님과 초대교회가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침례가 구원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핑계로 굳이 세례를 침수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문제를 삼고 있는 아주 중요한 쟁점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신대로’ 행하였다는 점입니다. 매우 강하게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기왕에 하나님을 믿는 일인데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계의 문제점은 공리주의와 실용주의에 입각한 성공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고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일부 교회들이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일을 최우선순위에 두지 않는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성공이란 목적 때문에 좋은 수단, 올바른 수단, 정직한 수단, 순리와 상식조차 버린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비성서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실용주의와 공리주의에 빠진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고, 발전이 더디고, 먼 길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지시한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참복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기 25장 40절,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 때 참복을 받게 됩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에서 설명된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는 예배가 구약시대에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드린 예배였다면, 신약성서에서 사도들의 가르침대로 하는 예배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드려야할 참 예배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20절을 보면, 하나님의 권속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고 하였고, 사도행전 2장 42절에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예배의 특징은 예수님의 생애를 재현하는 데 있습니다. 제1부 예배는 말씀의 예배로써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하셨던 말씀사역을 재현하는 것이고, 제2부 예배는 다락방예배로써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던 주의 만찬을 말합니다. 주의 만찬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인류의 구속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물과 피를 흘리셨던 구속사역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재현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기도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벨의 제사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시와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생각한 예배, 넉넉한 마음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린 예배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배인 것입니다.

잘못된 가인의 예배와 하나님의 뜻대로 드린 아벨의 예배로 인해서 빚어진 결과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 결과는 창세기 4장 8절 이후에 나오는 가인의 족보와 셋의 족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셋은 죽은 아벨의 대를 잇고 있습니다.

가인의 가계에서는 가인과 그의 7대손까지 기록되었고, 이들은 ‘땅에 속한 자손’들로써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이 비극역사의 대를 잇고 있는 것이 하나님을 찾지 않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셋의 가계에서는 셋과 그의 아들, 에노스에 관해서 기록되었고, 이들은 ‘하늘에 속한 자손’들로써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이 구원역사의 대를 잇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고, 기독교인들입니다.

가인의 가계에는 불행하게도 살인자의 피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8절의 가인의 살인이 23절의 라멕의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역사 또는 땅에 속한 자들의 역사가 극단적인 생명파괴와 하나님을 대항하는 반역의 역사로 발전되어간 것입니다.

가인의 가계에서 나타난 또 다른 특징은 ‘땅에 속한 자들’의 문명이 진보한다는데 있습니다. 가인이 성을 쌓는 기술을 발전시켰고(17절), 야발이 목축기술을 발전시켰으며(20절), 유발이 음악을(21절), 두발가인은 금속가공기술을 발전시켰습니다(22절). 그러나 인간문명과 기술의 발전은 불행하게도 라멕의 ‘칼의 노래’ 곧 그의 살인행위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악용되어왔습니다.

반면에 아벨의 대를 잇는 셋의 가계에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는 신성한 피가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으로부터 시작하여 에노스에 이르는 셋의 가계는 ‘하늘에 속한 자손’ 곧 ‘하나님의 아들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셋의 가계가 가인의 가계와 다른 점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인의 가계와는 달리 셋의 후손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26절)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뜻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가인의 가계가 ‘땅에 속한 자손들’이 이룬 세속적인 발전사라고 한다면, 셋의 가계는 ‘하늘에 속한 자손’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룬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발전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 정직한 마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한 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배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고 그의 가계와 혈통에 신앙의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셋과 에노스로 이어지는 약속의 자녀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오셨고, 지금도 성령님의 활동을 통해서 성도들 가운데서 구원의 역사를 진행시켜가고 계십니다.

아벨, 셋, 에노스로 이어지는 약속의 자녀들이 걸었던 길은 생명의 길이었고, 가인과 그의 후손이 걸었던 길은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 걸었던 길은 땅의 지배원리 곧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따라 사는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벨, 셋, 에노스로 이어지는 약속의 자녀들이 걸었던 길은 하늘의 지배원리, 곧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의 법칙에 따라 믿음과 사랑으로 행하고 소망 중에 인내하면서 걸었던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바른 예배는 우리 모두를 이 생명의 길로 걷게 하는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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