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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헌신(레 1:3-13,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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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78 2007.06.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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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헌신(레 1:3-13, 마 25:14-30)

레위기 1장의 내용은 번제에 관한 것입니다. 번제의 핵심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헌신에 있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제사방식입니다.

제물은 예배자의 생활형편에 따라서 수소, 숫염소, 숫양,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 가운데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흠이 없어야 했고, 1년 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여기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입니다. 제물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를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과 은사에 따라 소에 비유될 수 있고, 염소에 비유될 수 있고, 양에 비유될 수 있고, 비둘기에 비유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물의 크고 작음이나 가치의 크고 작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형편에 따라 동일하게 받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능력과 지혜와 은사의 많고 적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각자의 가진 능력과 지혜와 은사에 따라 동일하게 받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섯 달란트 가진 자는 다섯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시고, 두 달란트 가진 자는 두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시고, 한 달란트 가진 자는 한 달란트의 재능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재능의 많고 적음이나 결과의 좋고 나쁨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제물에 차별이 없다는 것은 인종차별, 신분차별, 학력차별, 남녀차별, 노소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롬 3:22, 10:12)고 한 말씀이나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한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달란트를 최대치로 활용했느냐, 최선을 다했느냐,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모두 태워 향기로운 냄새로 하늘로 올라가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거기서 이뤄집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느냐, 두 달란트를 받은 자가 두 달란트를 더 남겼느냐, 한 달란트를 받은 자가 본전치기밖에 못했느냐 라는 어떤 결과에 따라 평가하지 않습니다. 평가의 잣대는 자신의 능력을 모두 불태울 만큼 최선을 다했느냐, 충성을 다했느냐 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 제물은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헌물입니다.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입니다. 몸을 바치는 헌신을 대신하는 것이 제물입니다. 또 제물을 대신하는 것이 헌금입니다. 하나님은 헌금액수의 많고 적음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생활형편에 따라 평가하십니다. 따라서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치 않고, 하나님이 받으시고 복 주실만한 향기로운 예물인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성전 여인의 뜰에서 한 가난한 과부가 헌금통에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눅 21:3-4).

번제에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려져야할 우리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제물이 되어야하는가 라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디모데전서 3장의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선한 일을 사모하고,’ ‘책망할 것이 없고,’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로 그릇을 깨끗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을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금그릇이라서 귀히 쓰고, 은그릇이라서 귀히 쓰고, 나무그릇이라서 천히 쓰고, 질그릇이라서 천히 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고, 주인이 쓰기에 합당하고, 거룩하고 선한 일에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될 것이란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를 흠 없이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귀하게 받으시고 쓰십니다.

둘째, 1년 된 새끼여야 합니다. 처음처럼 늘 순수하고 순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새끼들의 앙증맞고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들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음란하고 악한 세대에 물들지 아니한 작지만 순수한 하나님의 제물이 되어 처음처럼 깨끗하게 하나님의 일에 자신을 불태우는 온전한 헌신이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신령과 진정한 제물이 되고, 아벨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성서는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드린 예수님을 어린양이나 속죄염소에 비교하셨습니다. 어린양은 순전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마 10:16)고 하셨습니다. 또 온순한 양은 부드러운 마음씨를 상징하며, 이웃사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 병들고 옥에 갇힌 자들, 나그네 된 자들을 돌보고 구해준 선한 사람들을 양의 무리로 분류하셨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고,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을 어린양으로 묘사했습니다.

송아지는 어질고 착한 마음씨를 상징합니다. 소는 밭을 갈거나 짐을 나르는 일에 쓰이지만, 불평이나 잔소리 없이 주인의 일을 묵묵히 수행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기 위해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묵묵히 골고다 언덕에 오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염소는 험한 바위산이나 높은 곳을 좋아합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험한 곳도 마다않고 달려 나가는 참 신앙인을 상징합니다.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할 뿐 아니라, 오랫동안 메시지 전달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평강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또 제물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입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인가 라는 점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진실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사람을 속이고 하나님께 거짓말하면 가인의 제사처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한다고 하면서도 아벨의 제사처럼 하나님이 받으신 체험을 갖지 못했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흠은 없는지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1년 된 새끼여야 합니다. 1년 된 새끼이어야 한다는 뜻은 처음처럼 늘 순수하고 순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무 계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 앞에 보이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많은 복을 받을 욕심으로 해서도 안 됩니다. 이미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만큼 먹고 입고 쓰고 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뇌물이 아니라, 감사예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많든 적든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향기로운 예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번제의 특징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자의 몫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을 불로 태웁니다. 불로 태우기 때문에 번제를 화제라고 부릅니다. 번제는 가죽을 제외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몫이 되고, 제사장은 가죽을 취하지만, 예배자의 몫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배자의 온전한 헌신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헌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계시의 종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는 종교란 뜻입니다. 타종교처럼 인간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좋게 생각되는 대로 신에게 찾아가고 예배하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지시하는 대로 시행하는 종교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보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제사보다도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첫째 달(니산) 16일에 이집트를 탈출한 지 45일 만인 셋째 달(시반) 초하루 날에 시내산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일 년을 머물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성막과 그 안에 놓일 기구들을 만들게 되는데, 그 내용이 출애굽기에 담겨있습니다. 성막과 그 기구들이 다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하나님은 다시 성막에서 수행될 예배의 종류와 방법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지시를 내렸는데 그 내용이 레위기에 담겨 있습니다.

출애굽기 39장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는 말이 10번이나 반복해서 쓰이고 있습니다. 32절에는 다시 종합적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성막 곧 회막의 모든 역사를 준공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고,”라고 하였고, 42-43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이 모든 역사를 필하매, 모세가 그 필한 모든 것을 본즉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로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축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에 실린 성막제작의 핵심사상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이뤄져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이뤄지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행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생각과 지혜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순수하고, 아무리 깨끗하고, 하나님만을 위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고, 또 그 동기와 목적이 아무리 순수하고 깨끗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양식대로 하지 않는 일은 결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계의 문제점은 공리주의와 실용주의에 입각한 성공주의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계명을 왜곡하고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성공이란 목적 때문에 좋은 수단, 올바른 수단, 정직한 수단, 순리와 상식을 버리면 안 됩니다. 비성서적이고, 반기독교적인 실용주의와 공리주의에 빠지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합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하고, 발전이 더디고, 먼 길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지시한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5장 40절을 보면,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행한 후에 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신 후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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