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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창 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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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48 2007.06.30 11:48

본문

원죄(창 8:20-22) ‘원죄’라는 말은 기독교적인 용어일 뿐 아니라, 일반 문학에서도 자주 쓰이는 용어입니다. ‘원죄’란 말은 오리지널한 죄, 근원적인 죄, 원초적인 죄, 인류 최초의 죄, 혹은 아담에게 물려받은 죄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원죄’하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죄를 머리에 떠올립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가 인류 최초의 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죄보다 더 오래된 죄, 더 근원적인 죄는 없을까요? 있다고 봅니다. 있을 뿐 아니라, 이 죄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어긴 것보다 더 무섭고 더 근원적인 것입니다. 이 죄가 ‘자기 우상숭배’란 죄입니다. 이 죄는 ‘하나님과 비기려 한 죄,’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죄,’ ‘계급장 떼고 하나님과 맞장 뜨려한 죄’를 말합니다. 아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가 이것일 것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첫째 계명이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숭배하는 죄’도 첫째 계명의 범주에 위배되는 것이기는 합니다만, ‘하나님과 비기려한 죄,’ ‘하나님처럼 되려고 한 죄,’ ‘계급장 떼고 하나님과 맞장 뜨려하는 죄’는 우상숭배 죄들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죄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이 ‘자기 우상숭배’가 바로 ‘원초적인 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중대범죄들에는 반드시 자기 숭상 죄가 선행되기 때문입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이 ‘원초적인 죄’를 최초로 범한 자가 대천사장 루시퍼였습니다. 이사야 14장 12-14을 보면,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하늘에서 떨어졌는데, 내용적으로는 바벨론 왕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영적으로는 사단이 된 대천사장 루시퍼를 말합니다. 그가 하늘에서 떨어진 이유는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기보좌를 높이고,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또 에스겔 28장을 14절을 보면,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는데, 내용적으로는 두로 왕을 상징합니다. 그렇지만, 영적으로는 사단이 된 대천사장 루시퍼를 말합니다. 그가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이유는 신이 아닌 자가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2,9절)고 하였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2,6절)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된 루시퍼는 자기가 범한 죄를 인간에게도 동일하게 범하도록 올무를 놓습니다. 그 일은 가장 마귀성이 강하고, 가장 쉽게 인간을 무너뜨리고, 가장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일입니다. 그 올무가 바로 창세기 3장 5절에 의하면,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오만’이었고, 창세기 11장 4절에 의하면, 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여 이름을 내려 했던 교만이었습니다. 심층심리학의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은 인간의 의식 중에는 인류가 공통으로 지닌 '집단 무의식'이란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집단 무의식이란 한 민족 또는 전체 인류가 공통으로 지닌 일종의 ‘오래 된 기억'과 조상대대로 쌓아온 축적된 의식을 말합니다. 또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정신과 경향을 말합니다. 인류가 가진 오래된 기억과 축적된 의식에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 욕망은 대천사장 루시퍼에서 비롯된 것이고,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욕망이 원죄라면 원죄이고, 원죄가 아니라면, 원죄의 근원이 될 것입니다. 이 욕망이 모든 죄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창세기 8장 21절,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는 말씀에서 어떤 사람들은 ‘성악설’을 취하고, 인간은 아담의 죄를 전가 받았기 때문에 그 본래성이 부패하고 타락하였다고 말합니다. 열매가 악한 것은 그 씨가 악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이런 견해를 가진 사람은 아담의 죄 때문에 누구나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은 열매가 악하다고 해서 씨까지 악하다고 할 수 있느냐, 천진난만하고 순진무구한 신생아가 성인이 된 후에 타락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해서 그 아이를 타락한 사람으로 볼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은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 되는 것이지,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합니다. 아담이 죄인이었다고 그 후손들까지 죄인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24장 16절에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29-30절에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 성구들로만 보면 ‘원죄’란 개념이 결코 연좌 죄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원죄’의 개념도 ‘죄의 시작’ 곧 ‘죄의 창조’를 말한 것이고, 인간들은 그 시작된 죄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성경에서는 죽음의 원인을 죄로 보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느끼기도 못하고, 죄를 알지도 못하고, 죄를 범한 일도 없는 신생아들이 죽는 것에 대해서와 자연생태계의 죽음의 현상에 대해서는 아담의 죄와 무관하게 생각할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간이든 자연이든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범한 죄의 영향을 받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성서가 문제 삼는 죽음은 유한한 이 지구상에서의 육체적인 죽음보다는 영원한 세계에서의 영원한 죽음과 형벌이기 때문에 아담과 이브의 죄가 그의 후손들에게까지 전가되었느냐, 안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뤄진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결과로 인해서 모두 덮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것은 창조주 하나님과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성서는 믿음의 기록이고,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명백한 분리와 상벌에 관한 반복된 글입니다. 따라서 성서는 셋, 에노스,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신앙인들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창 4:26), 하나님과 동행하면서(창 5:24, 6:9) 하나님의 계명대로 준행한 자들(창 6:22)이 받은 은총과 가인과 라멕처럼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받은 저주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제는 대천사장 루시퍼와 아담에서 보듯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오만’이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신들을 향한 경건한 믿음과 감사로 인해서 돌이 변하여 사람이 되게 한 피그말리온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신을 향한 오만과 자만이 오히려 사람을 돌이 되게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대천사장의 오만과 최초의 인간이 마음에 품었던 오만이 악마를 만들어내고 인류에게 죽음과 갖가지 고통을 가져다주었듯이, 그리스 신화에서도 오만의 결과를 무섭게 다루고 있습니다. 테바이 왕국에 니오베라는 왕비가 있었습니다. 니오베는 오만했습니다. 오만했기 때문에 신들을 가볍게 여기면 무서운 벌을 받는다는 교훈을 본받으려 하지 않았고, 감사예물을 바치지도 않았습니다. 니오베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남편 암피온이 어찌나 수금을 잘 탔던지 수금 소리만으로 돌을 들어 성벽을 쌓았던 왕이었고, 다스리고 있던 왕국도 자랑거리였고, 무엇보다도 아들 일곱, 딸 일곱, 도합 14명이나 되는 자녀들이 자랑거리였습니다. 그 즈음에 예언자 만토가 예언의 권능을 받아 테바이 여자들에게 레토 신과 아폴론 신과 아르테미스 신에게 분향하고 예배하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에 테바이 여자들은 모두 신전으로 나와서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렸지만, 니오베만큼은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나타나 예배하는 여자들을 신전에서 내쫓으며 하는 말이, “어찌 내가 레토 신만 못하단 말인가?”고 하였습니다.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인간은 절대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니오베는 오만이 지나쳐 자신을 여신으로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니오베는 ‘신이 혐오하는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피그말리온은 신들을 믿고 감사예배를 바침으로써 ‘신이 사랑하는 인간’이 되었지만, 니오베는 신들을 모욕함으로써 스스로 화를 자초하였습니다. 레토의 아들이자, 활의 신인 아폴론이 쏜 화살들에 14명의 자녀들이 모두 비참하게 세상을 하직하였고, 남편은 자살하였으며, 참기 어려운 슬픔은 니오베의 몸을 돌로 바꿔놓고 말았습니다. 슬픔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화살을 쏘는 아폴론을 향한 채, 제발 마지막 남은 딸만은 살려달라며 간청하면서, 몸뚱이로는 하나 남은 딸을 치마폭에 숨기고 있는 모습으로 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역사가 토인비는 지구상에서 한 때 찬란한 꽃을 피웠지만, 시들고 멸망해 버린 21개의 문명들을 연구한 끝에 결론내리기를, 21개의 문명들 가운데 19개 문명이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적, 곧 내적인 문제로 말미암아 멸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내부의 적’이 바로 ‘오만’입니다. 토인비는 ‘오만’을 ‘자기우상’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인간의 문명이 쇠퇴되고 해체되는 것을 토인비는 ‘네메시스’ 곧 ‘응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 27장 5절에 보면, 지금의 터키 땅 남쪽 해안에 루기아 도가 나옵니다. 옛날, 이곳 왕국에서는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키마이라’라는 괴물이 있었는데, 왕은 그 괴물을 퇴치할 용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키마이라는 머리가 사자와 산양을 합친 듯했고, 꼬리는 용과 비슷했는데, 입으로는 불을 뿜어내기 때문에 이 괴물을 물리치고 살아 돌아온 용사가 없었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있으면 그것을 무너뜨리는 영웅이 나타나듯이, 이 키마이라를 물리친 용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벨레로폰입니다. 벨레로폰이 괴물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벨레로폰은 괴물을 퇴치하러 가기 전에 제일 먼저 예언자(폴뤼이도스)를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예언자는 키마이라를 죽이려면 하늘을 나는 페가소스를 잡아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페가소스는 하늘을 나는 천마입니다. 천마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황금고삐에만 복종합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신에게 간절하게 간구하면 뜻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둘째, 벨레로폰은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길을 떠난 벨레로폰이 한 도시에 이르러보니, 동쪽에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신전이 있고, 서쪽에는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있었습니다. 두 신전 중 한 곳에서 하룻밤을 묵어가야하는데, 벨레로폰은 지혜의 신 아테나 신전을 택했습니다. 애욕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의 여사제들은 나그네들에게 웃음을 파는 성창들이었기 때문에 벨레로폰으로써도 여간 마음이 쓰이고 끌리는 것이 아니었지만, 예언자의 충고를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밤에 아테나 여신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저 애욕의 신전에 들지 않고 이 지혜의 신전에 든 너의 선택이 기특하다. 너에게 황금고삐를 내릴 것인즉, 페가소스를 붙잡아 뜻하던 바를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벨레로폰이 꿈을 깨어보니, 과연 황금고삐가 옆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벨레로폰은 예정대로 천마 페가소스를 붙잡아 타고 키마이라를 죽이는데 성공합니다. 한낱 인간에 불과한 벨레로폰이 그의 작은 믿음 때문에 날개 달린 천마 페가소스를 얻어 탈수 있었고, 천마 페가소스의 날개 덕분에 괴물을 물리치고 영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벨레로폰의 마음에 ‘오만’(Hybris)이란 이름의 ‘죽음에 이르는 병’이 도지고 말았습니다. 오만은 사람의 마음속에 만들어지기 쉬운 ‘자기우상’입니다. 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 여기에 상응하는 네메시스, 곧 업보를 받게 됩니다. 벨레로폰도 이 업보로 인해서 지상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벨레로폰은 천마 페가소스를 타고 신들의 보좌에까지 오르고 싶어졌습니다. 벨레로폰은 페가소스를 타고 하늘궁전을 향해서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제우스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려니까, 벨레로폰이 하는 짓이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자랑스러운 무기인 날벼락을 던져 태워버릴까 하다가 생각을 바꿔서 말의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강력한 ‘등에’ 한 마리를 만들어 페가소스의 꼬리 밑에 붙여 피를 빨게 하였습니다. 페가소스가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벨레로폰은 천마의 등에서 튕겨 나와 지상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날개 달린 페가소스가 몸을 날려 벨레로폰을 받아 줄만도 했지만, 그는 이미 신의 노여움을 받은 터라 페가소스로서도 그런 너그러운 자비를 벨레로폰에게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벨레로폰은 ‘방황의 들’이라고 불리는 ‘알레이온 벌판’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갈대숲덕분에 목숨만은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절름발이에 장님까지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길만 골라 세상을 ‘방황‘하다가 쓸쓸하게 죽어야 했습니다. 대천사장 루시퍼와 인간에게 재앙이 되었던 ‘원죄,’ 곧 근원적인 죄, 원초적인 죄가 ‘오만’(Hybris)이었고, 오만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이란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겸손의 본을 친히 보이시고 하나님의 우편보좌에 앉게 되신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11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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