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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만들기(롬 3: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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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09 2005.05.01 08:15

본문

행복한 가정 만들기(롬 3:21-26)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부모와 자녀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고, 행복한 가정의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율법의 방법과는 매우 다른 하나님의 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의’란 본래 ‘정의’ 혹은 ‘공의’를 뜻하는 단어이므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공의’ 혹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는 이런 본래의 어휘적 의미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역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가운데, “창피해서 얼굴을 못 들겠다.”거나 혹은 “이제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가 있습니다. 여기서 ‘얼굴을 들다’는 창피를 모면했다거나 자존심이 회복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의’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말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약간 풀어서 설명하자면, 인간들의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자녀들의 잘못들로 인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몹시 창피했다는 말입니다. 인간들도 그들의 잘못된 행위들로 인해서 얼굴을 들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창피를 면하고 얼굴을 들 수 있게 된 사정, 또 그분의 자녀들이 더 이상 창피를 당하지 않고 떳떳하게 얼굴을 들 수 있게 된 사정이 본문말씀의 내용입니다.
분문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죄를 범한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그로 인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얼굴을 들 수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불편한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한 의로운 방법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이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친히 인간들의 부끄러움을 제거할 화목제물이 되시고, 오래 참으시고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얼굴을 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는 아버지 하나님이 친히 마련한 방법을 믿고 따름으로써 인간들도 얼굴을 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6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 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다.”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죄 범한 자녀들을 대신해서 저주받으실 뿐 아니라, 또 그것을 근거로 그들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방법을 통해서 얼굴을 들 수 있게 되고, 또 그 사실을 믿고 따르는 자들도 얼굴을 들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2절은 이 과정에서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 곧 남녀노소, 신분, 혈통, 색깔, 민족에 관계없이 전혀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자녀들을 대신해서 저주를 받고 용서와 영생복락을 주시는 것은 인간의 잘못을 하나님께서 친히 “내 탓이오”하고 자책하고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먼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는 자녀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낯을 들 수 없을 때, 아버지가 책임을 지고 스스로 벌을 자청해서 받는 자책문화가 있었습니다. 자식들의 인간 형성에 있어서 잘잘못을 맺고 끊는 것이 아버지 몫의 책임인데, 이 책임을 못다 한 잘못을 자식으로 하여금 핏발이 서도록 채찍질하게 함으로써 자책하고, 그 자책을 통해서 자녀를 변화시키는 교육방법이 조상매란 것이었습니다.
조상(祖上)매란 자녀들이 법도에 어긋난 일을 하거나 못된 짓을 하면 야밤에 그를 데리고 조상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무덤 앞에 엎드려 “불초한 소치로 자식을 못 가르치고 못 보살펴 이런저런 잘못을 저질렀으니 조상 앞에서 매를 맞겠습니다.”고 말하고는 자식에게 매를 베어오도록 시킵니다. 그리고는 상돌 위에 올라 종아리를 걷고 서서 잘못을 저지른 자녀에게 힘껏 치도록 시킵니다. 조상매는 그 죄과의 정도에 따라 다리가 부러지도록 치게 하는 것이 관례였고, 피가 낭자하여 걷지 못하여 업혀오기가 일쑤였다고 합니다.
삼권(三權)을 쥐고 고을을 다스렸던 현감이나 목사와 같은 원님은 그가 관할하는 백성의 아버지였습니다. 관할지역에 윤리도덕을 해치는 사태가 일어나거나 혹심한 가뭄이 있거나 하면 교화의 소홀과 실정의 탓으로 알고 자책의식을 갖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집무를 보는 동헌의 가장 복판 기둥을 하늘기둥이라 부르며 천심이 오르내리는 매체로 여겨 신성시했는데,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아 피가 흥건히 옷에 적도록 머리를 찧어댐으로써 자책했다고 합니다. 또는 동헌 뜰 앞에 단檀)을 만들어 놓고 웃옷을 벗은 채 올라앉아 가죽 끈으로 핏발이 서도록 등을 쳐 자책했다고 합니다.
사화를 일으켜 민심의 지탄을 받는 제자가 있거나 대역사건에 연루된 제자가 있으면 그를 가르쳤던 옛 스승은 스스로를 연루시켜 손가락을 으깨는 작지(斫指)를 하거나 자결한 사례까지 있었다고 합니다(이규태, 󰡔조선일보󰡕 91/6/6).
안타깝게도 오늘날에는 이런 자책문화가 없습니다. “내 탓이오”라고 반성하는 이들은 없고 너나없이 모든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 오늘의 인심입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 행복한 직장, 행복한 사회가 어디서 옵니까? 어떻게 행복한 가정이 만들어지고, 행복한 교회가 만들어지고, 행복한 직장,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집니까?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그 방법을 명확하게 밝혀줍니다. 하나님은 자책을 통해서 스스로 얼굴을 들 수 있게 하셨고, 당신의 자녀들도 얼굴을 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얼굴을 들고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나님처럼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합니다. 이 자책문화야말로 부성애(父性愛)란 것이 무엇인가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 부성애가 없는 가정 배후에 문제아가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한 소년범죄자들의 비율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10명의 소년범죄자 가운데 6명의 아버지가 술을 과음하였고, 6명의 부모가 자주 다퉜으며, 8명의 아버지가 자녀에게 무관심하였습니다. 또 7.5명이 부모의 허락을 받아 제멋대로 놀러 다녔고, 8명의 부모가 자녀들의 친구에 관심이 없었으며, 8명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냉담하였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에서 신앙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모들이 비판적으로 살면, 자녀들이 단죄를 배우고, 적개심을 가지고 살면, 싸우는 것을 배우고, 연민을 가지고 살면, 신세타령을 배우고,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면, 자부심을 갖게 되고, 공평하게 살면, 정의를 배우고, 정직하게 살면, 진실을 배우고, 우정을 가지고 살면, 친구 사귀는 것을 배우게 되고, 사랑을 가지고 살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고 합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뉴햄프셔라는 인구 3만 5천 명가량의 유명한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작은 오두막 한 채입니다. 이 오두막 앞에 세워진 작은 팻말에 이런 안내문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집이 비록 작지만, 이 집은 미국의 역사를 새로 만든 위대한 집입니다".
이 오두막의 주인공이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1703-1758)와 아내 사라 피에르 폰트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8세기에 영적 대각성운동(1730-1740)을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이 한 가정으로부터 5대에 이르는 150년 동안, 자료마다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부통령이 한 명, 대학 총장이 13명, 주지사 3명, 시장 3명, 변호사 100명, 판사 33명, 교수 66명, 목회자, 선교사, 신학자로 일한 주의 종 100여명, 차관급 공무원 80명이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악명 높은 쥬크(Jukes) 집안의 내력도 있습니다. 쥬크 집안에 관한 글들이 대단히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조나단 에드워즈에 관한 글도 대단히 많습니다. 제자 가운데 한 목사는 조나단에 관한 글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리처드 더그데일(Richard L. Dugdale)이란 사회학자가 있었습니다. 더그데일은 1874년 뉴욕교도소협의회의 자원조사관으로 울스터 군(Ulster County) 교도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수용된 6명이 동일한 가문의 네 개의 가정에서 잡혀온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그데일은 이 가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확인해본 결과 이들 6명과 직접적인 혈연관계가 있는 29명의 남자 중 무려 17명이 체포됐었고, 그 가운데 15명이 범죄자였습니다.
이 가문이 바로 쥬크(Jukes) 집안입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더그데일은 7대에 걸친 쥬크 집안 후손 1000명의 소재를 파악하여 범죄성여부를 조사했더니, 280명이 걸인, 60명이 절도범, 7명이 살인범, 140명이 잡범, 50명이 매춘부, 40명이 성병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더그데일은 이 연구결과를 3년 후인 1877년에 󰡔쥬크 가문의 범죄, 극빈, 질병과 유전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습니다.
더그데일의 연구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 소개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과 쥬크 가문은 가정의 달을 맞이한 우리들에게 가정교육 특히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하게 심어줍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잃는 게 됩니다.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얻고, 권세를 가졌다 해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결코 다 얻은 게 아닙니다. 타인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도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불행입니다. 가족의 사랑은 재물로도, 명예로도, 권세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또 무엇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의 수고는 다 허무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하나님 아버지의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통한 자책, 조상들의 조상매를 통한 자책이 다 무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 마음을 얻으려면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고 합니다.
첫째, 남편과 아내는 서로 동등합니다. 구별은 있어도 우열은 없습니다. 열린 가정은 높고 낮음의 지위보다 애정과 사랑의 요소에 관심이 높습니다.
둘째, 잘못했음을 발견했을 때 언제라도 “내 탓이오”라고 잘못을 시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실수 없는 가정이 온전한 가정이 아니라 실수에도 불구하고 용서가 있는 가정이 온전한 가정입니다.
셋째, 힘보다는 사랑이 지배해야합니다. 가정을 묶어주는 끈은 율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권위가 있어야합니다.
넷째, 항상 '눈높이'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상대방을 위해 속도를 늦추고, 높이를 낮추며, 기다리기 위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 보다 더 훌륭한 자녀 교육이 없습니다.
여섯째,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가르치려고만 하지 말고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일곱째,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대화는 오해와 불신을 몰아내며 이해와 사랑을 증가시킵니다.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부정적인 언어를 줄여야 합니다. 가급적 경어법을 쓰도록 해야 합니다. 가족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비교는 정치마당이요, 사단적인 것입니다. 비교보다는 격려가 필요합니다.
여덟째, 위기를 피하기보다 위기에 도전해야 합니다. 위기와 갈등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갈등과 위기를 극복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아홉째, 여가를 함께 즐겨야 합니다. 함께 산책한다든지, 함께 차를 마신다든지, 함께 운동을 한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가족들과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열째, 하나님을 가정의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가정의 중심은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닙니다. 자녀들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열하나째,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엡 6:1∼4). 자녀들을 노엽게 만들면, 대화가 단절되고, 마음 문이 닫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열둘째, 가족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건강한 가정은 머리가 아니라 무릎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로 키운 자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아버지 하나님의 부성애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만한 부모가 없고, 하나님보다 더 크고 완벽한 사랑을 실천한 부모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은 본문에 표명된 말씀처럼, 자기희생의 방법을 통해서 자기 낯을 들 수 있고, 남도 얼굴을 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승리의 월계관을 쓰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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