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효(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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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사랑과 자녀의 효(엡 6:1-3)
모 생명보험회사에서 이색적인 광고를 실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일이 있습니다. 광고의 내용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물아홉....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일곱....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예순하나.....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질문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집니까?” 답변은 이랬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때이고,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이고, 셋째는 아버지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다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춰 보실 때였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는 가정의 분위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머니의 광고는 이렇습니다.
●스물하나...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적이 없는 김씨댁의 큰 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시집온 지 오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신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작품『구십삼 년(Ninety-three, 1840)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1789)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군인부대가 이동하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배고픔에 지친 한 어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쌍하게 여긴 상사가 빵 한 덩어리를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 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눠서 세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부성애를 그린 소설 가시고기의 저자 조창인 씨가 쓴 등대지기란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재우는 어려서부터 막내라는 이유로 형과는 너무나 다른 차별대우를 받으며 자랍니다. 그 차별을 참지 못해 집을 나와 등대원이 되고, 8년을 등대에서 보내다가 가족들을 만나지만, 그렇게 어머니가 정성을 들었던 큰 형은 IMF와 함께 회사를 떠나게 돼 이민을 결심하고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동생인 자신에게 남겨두고 떠나버립니다. 그렇게도 미워했던 어머니인데다가 치매까지 앓는 어머니를 외딴 섬 등대지기인 재우가 모시게 됩니다. 어머니를 미워해서 집을 나왔던 재우로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한없이 짐스럽기만 합니다. 날마다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소리치지, 대소변 못 가리지, 여간 고통스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밤 등대에 정전이 되어서 불을 밝히려고 나가는데, 치매로 정신이 없는 어머니가 자꾸만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그것을 뿌리치고, 등대에 올라가서 끊어진 퓨즈를 갈아 끼우고, 전기를 다시 연결시키는 순간 재우는 감전되어 쓰러지고 맙니다. 의식을 찾았을 때 내장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몸은 점점 오그라들었습니다. 순간 “이제 죽는구나.”고 생각하는데,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수많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올라오면 감전되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더러 내려가라고 외쳐보지만 힘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다가와서 하는 말이 “너 왜 밥 안주고 여기 있어. 밥 줘!” 그러면서 “너 힘드니, 내가 너를 살려줄게.” 무릎에 아들을 눕히고는 빗물을 떠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더라는 겁니다. 타던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세요! 여기 있으면 죽어요. 어머니, 돌아가세요.” “아니야,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모성본능이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속옷을 벗어서 빗물에 적셔 아들 입에 넣어줍니다. 나흘 뒤에야 구조대가 왔는데,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을 살리고 어머니는 죽었던 것입니다. 재우는 비록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말았지만, 그제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정신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땅의 부모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계명과 모든 율법의 근본정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5-40).
사랑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천사의 말, 모든 지식, 모든 능력, 모든 행위조차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생각해야할 일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가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겠습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효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의 실천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진리를 따라 살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육신의 부모와 아버지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신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안위를 염려하셨고, 요한에게 잘 보살피도록 부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요 19:27).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몇 가지 효의 종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순종의 효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순종은 부모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잠언 6장 20-22절은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공경의 효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공경이란 말은 모시어 받들고 정성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효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로부터 공경을 받을 때 가장 기뻐하시며,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면 오래 산다는 성경의 기록은 부모님을 모시어 잘 받들어 정성으로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도 기뻐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반대로 불효는 마태복음 15장 4절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되는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효자를 하나님이 몹시 싫어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셋째, 경외의 효가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경외란 말은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부모님을 업신여기거나 그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님들을 예절로써 받들고,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존경심으로 섬기는 것이 경외의 효입니다.
넷째, 열친의 효가 있습니다. 잠언 23장 25절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열친이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효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말씀에 순종하는 것, 공경하는 것, 경외하는 것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님을 잘 섬기는 자녀들에게 만사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엡 6:1-3). 예수님처럼 부모님을 잘 섬기시고 만사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뿐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도 잘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았고, 그분을 인정하는 삶을 사셨습니다(눅 10:22).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마 11:25), 영광을 돌리는 삶(마 5:16, 6:13)을 사셨으며,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요 12:28, 17:1,4).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였으며(요 4:23). 공경하였고(요 5:23),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 사셨습니다(요 5:43). 따라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되(요 10:37), 자기의 뜻을 이루려 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였고(마 7:21, 12:50, 18:14),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요 5:19).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예수님도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요 5:21)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하는 자세를 갖고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 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눅 6:36).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달아 알았고(눅 22:29),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셨으며(요 5:17), 상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마 6:1). 또 아버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였고(눅 2:49), 주신 사명을 인식하고(요 6:27),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씀하셨으며(요 8:28),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본 것을 말하였고(요 8:38), 아버지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자 하셨습니다(요 10:30).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셨습니다(요 10:17). 하나님 우편에 앉는 영광을 받으셨으며, 성도들로부터 주님이란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분의 뜻을 잘 받들며, 그분의 하시는 살림의 일을 본받아 빛과 생명의 일을 하시며, 큰 상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3절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효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사람의 본분입니다. 또 효는 축복을 위한 보증수표입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효도를 생각하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만사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모 생명보험회사에서 이색적인 광고를 실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일이 있습니다. 광고의 내용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물아홉....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일곱....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예순하나.....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어느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아 놓고 질문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아버지가 어느 때 가장 불쌍하다고 느껴집니까?” 답변은 이랬습니다. 첫째는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때이고, 둘째는 아버지가 밤늦게 회사에서 돌아와 가방을 힘없이 내던지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흐느껴 우실 때이고, 셋째는 아버지가 라디오나 텔레비전을 보다말고 갑자기 나가셔서 혼자 복권을 맞춰 보실 때였답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자녀들 앞에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는 가정의 분위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머니의 광고는 이렇습니다.
●스물하나...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적이 없는 김씨댁의 큰 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시집온 지 오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신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문호 빅토르 위고의 마지막 작품『구십삼 년(Ninety-three, 1840)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불란서 혁명(1789)이후에 불란서는 큰 혼란에 빠졌고 모든 백성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군인부대가 이동하면서 숲 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배고픔에 지친 한 어머니가 세 아이를 데리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불쌍하게 여긴 상사가 빵 한 덩어리를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지체 없이 이 빵을 세 조각으로 나눠서 세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받아먹으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젊은 병사가 물었습니다.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 모양이죠?” 상사는 대답했습니다. “그게 아니야. 어머니이기 때문이야.”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자기는 굶으면서도 자식에게는 줍니다. 자기 입에 들어간 것은 없지마는 아이들이 빵조각을 먹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더 만족해합니다. 그것이 어머니입니다.
부성애를 그린 소설 가시고기의 저자 조창인 씨가 쓴 등대지기란 소설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주인공 재우는 어려서부터 막내라는 이유로 형과는 너무나 다른 차별대우를 받으며 자랍니다. 그 차별을 참지 못해 집을 나와 등대원이 되고, 8년을 등대에서 보내다가 가족들을 만나지만, 그렇게 어머니가 정성을 들었던 큰 형은 IMF와 함께 회사를 떠나게 돼 이민을 결심하고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동생인 자신에게 남겨두고 떠나버립니다. 그렇게도 미워했던 어머니인데다가 치매까지 앓는 어머니를 외딴 섬 등대지기인 재우가 모시게 됩니다. 어머니를 미워해서 집을 나왔던 재우로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한없이 짐스럽기만 합니다. 날마다 먹을 것을 내놓으라고 소리치지, 대소변 못 가리지, 여간 고통스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밤 등대에 정전이 되어서 불을 밝히려고 나가는데, 치매로 정신이 없는 어머니가 자꾸만 가지 말라고 말립니다. 그것을 뿌리치고, 등대에 올라가서 끊어진 퓨즈를 갈아 끼우고, 전기를 다시 연결시키는 순간 재우는 감전되어 쓰러지고 맙니다. 의식을 찾았을 때 내장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몸은 점점 오그라들었습니다. 순간 “이제 죽는구나.”고 생각하는데, 치매를 앓는 어머니가 수많은 계단을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올라오면 감전되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머니더러 내려가라고 외쳐보지만 힘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다가와서 하는 말이 “너 왜 밥 안주고 여기 있어. 밥 줘!” 그러면서 “너 힘드니, 내가 너를 살려줄게.” 무릎에 아들을 눕히고는 빗물을 떠서 아들의 입에 넣어주더라는 겁니다. 타던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세요! 여기 있으면 죽어요. 어머니, 돌아가세요.” “아니야, 나는 네 곁에 있을 거야.”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모성본능이 어머니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속옷을 벗어서 빗물에 적셔 아들 입에 넣어줍니다. 나흘 뒤에야 구조대가 왔는데,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을 살리고 어머니는 죽었던 것입니다. 재우는 비록 하반신 마비가 되고 말았지만, 그제야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정신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땅의 부모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십계명과 모든 율법의 근본정신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2:35-40).
사랑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천사의 말, 모든 지식, 모든 능력, 모든 행위조차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생각해야할 일이 바로 이 사랑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가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자녀가 부모를 잘 모시는 것이겠습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효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랑의 실천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않고, 진리를 따라 살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와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긴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도 육신의 부모와 아버지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은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하신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운명하시는 순간에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안위를 염려하셨고, 요한에게 잘 보살피도록 부탁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요 19:27).
성경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몇 가지 효의 종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순종의 효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순종은 부모를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잠언 6장 20-22절은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 그것이 너의 다닐 때에 너를 인도하며, 잘 때에 너를 보호하며, 너의 깰 때에 너로 더불어 말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둘째, 공경의 효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였습니다. 공경이란 말은 모시어 받들고 정성으로 섬긴다는 뜻입니다. 효는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으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녀로부터 공경을 받을 때 가장 기뻐하시며,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하면 오래 산다는 성경의 기록은 부모님을 모시어 잘 받들어 정성으로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도 기뻐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 반대로 불효는 마태복음 15장 4절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되는 큰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효자를 하나님이 몹시 싫어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셋째, 경외의 효가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경외란 말은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뜻으로 부모님을 업신여기거나 그 말씀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님들을 예절로써 받들고, 그림자도 밟지 않는 존경심으로 섬기는 것이 경외의 효입니다.
넷째, 열친의 효가 있습니다. 잠언 23장 25절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열친이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입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효입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말씀에 순종하는 것, 공경하는 것, 경외하는 것뿐 아니라,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행복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부모님을 잘 섬기는 자녀들에게 만사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엡 6:1-3). 예수님처럼 부모님을 잘 섬기시고 만사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어머니뿐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 하나님도 잘 섬겼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누군가를 알았고, 그분을 인정하는 삶을 사셨습니다(눅 10:22).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마 11:25), 영광을 돌리는 삶(마 5:16, 6:13)을 사셨으며,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요 12:28, 17:1,4).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였으며(요 4:23). 공경하였고(요 5:23), 그분의 이름을 위해서 사셨습니다(요 5:43). 따라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일을 행하시되(요 10:37), 자기의 뜻을 이루려 하지 않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 하였고(마 7:21, 12:50, 18:14),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요 5:19). 무엇보다도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예수님도 살리는 일을 하셨습니다(요 5:21)
예수님은 언제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하는 자세를 갖고 사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려 할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계시하셨습니다(눅 6:36). 아버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깨달아 알았고(눅 22:29),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셨으며(요 5:17), 상을 얻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마 6:1). 또 아버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였고(눅 2:49), 주신 사명을 인식하고(요 6:27),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씀하셨으며(요 8:28), 아버지 하나님에게서 본 것을 말하였고(요 8:38), 아버지 하나님과 일체가 되고자 하셨습니다(요 10:30). 그러므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셨습니다(요 10:17). 하나님 우편에 앉는 영광을 받으셨으며, 성도들로부터 주님이란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잘 섬기고, 그분의 뜻을 잘 받들며, 그분의 하시는 살림의 일을 본받아 빛과 생명의 일을 하시며, 큰 상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3절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효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사람의 본분입니다. 또 효는 축복을 위한 보증수표입입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효도를 생각하는 우리 성도님들에게 만사형통의 복과 장수의 복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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