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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날마다 한 걸음씩 다가서는 해(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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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141 2005.03.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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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날마다 한 걸음씩 다가서는 해(눅 19:1-10)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서야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날마다 한 걸음씩 하나님께 다가서야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8절에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다가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합니다. 유명인들은 열성팬들이 다가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보디가드를 고용합니다. 사람 다가오는 것이 가장 피하고 싶은 일 중의 한 가지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반대입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당신께 다가오는 자들을 대환영하십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인물도 보지 않습니다. 재능도 보지 않습니다. 재력도 보지 않습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나 환영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히브리서 4장 16절의 말씀대로,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다가서야 합니다.
누가복음 19장 1-10절을 보면, 삭개오란 사람이 등장합니다. 삭개오는 인물이 없었던 데다가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세리장이란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피했습니다. 오히려 그를 조롱하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삭개오는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려는 열망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동리에 오셨을 때, 사람들의 조롱과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께 다가서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키 큰 군중에 막혀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달려가 길가 뽕나무에 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열정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과 삭개오의 만남은 상식과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세리장을 만나주셨다는 것이 그랬고, 세리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뉘우치고 회개하였다는 점에서 그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서야할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상식과 예상을 뒤엎는 기적이 창출됩니다. 긍정적인 변화가 일게 되고, 회개의 눈물이 솟구치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날마다 한 걸음씩 다가서야할 두 번째 큰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일본사람 타고 아키라는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란 책에서 말하기를, 상대방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고, 자신의 실패담을 재미있게 이야기할 줄 아는 사람은 남의 마음을 빼앗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져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우리 자신의 실패담을 하나님께 털어놓을 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삭개오가 바로 이 점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빼앗았던 사람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갈 정도로 주님께 다가서려는 열정이 있었을 뿐 아니라, 손가락질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이나 자신을 욕하고 기피하는 대중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실까 라는 입장에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자기와 같은 죄인을 과연 예수님이 만나주실까 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힌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지 아니하고, 회개하는 죄인을 용납하시고 용서하시며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잘못 살아온 자신의 실패한 삶을 담담하게 예수님 앞에서 떨어놓고 회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이 삭개오가 예수님의 마음을 사로잡게 한 점입니다.
삭개오는 자기 집에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일 뉘 것을 토색하였다면 4배나 갚겠습니다.” 민수기 5장 7절을 보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 것이요.”라고 되어 있고, 출애굽기 22장 1절 이하를 보면, 도적질한 물건이 살아 그 손에 있으면, 갑절로 갚도록 하고 있습니다. 삭개오의 경우 토색한 것을 소유로 갖고 있으므로 갑절의 배상이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그 갑절의 갑절인 4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예수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빼앗기에 족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 마음을 빼앗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잃는 게 됩니다. 다른 것을 다 얻었다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결코 다 얻은 게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께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이름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또 무엇을 했든지 간에 하나님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우리의 수고는 다 허무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한 걸음 다가서려고 하는 가장 큰 목적과 이유는 그분의 마음을 얻고 그분의 사랑을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로 우리의 관심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서 무엇인가를 결심하고 행동할 때, 사단은 강하게 훼방합니다.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관심을 기우리지 아니할 때, 사단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냥 내버려둡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을 하려고 할 때, 사단의 방해공작은 강하게 나타납니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입증하듯이 또 경험을 통해서 아는 일이지만, 새 출발을 방해하는 힘은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2002년 예배당을 건축하려고 했을 때에 닥친 어려움도 그랬고, 2004년의 표어가 ‘마음을 같이하는 해’였는데, 오히려 분열로 마무리를 짓게 한 사단의 강력한 방해공작도 그랬고, ‘하나님께 한걸음 다가서는 해’로 새 출발하려고 했을 때 나타난 사단의 방해공작 또한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께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삭개오의 경우를 통해서 살펴보았듯이, 첫째, 철저한 반성과 회개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보려는 열망이 아무리 강했더라도, 삭개오에게 이 회개의 마음이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새해맞이를 태양력으로 9-10월경에 갖습니다. 우리 음력으로 8월 17일에 초막절 축제를 갖게 되는데, 초막절보다 5일 전에 속죄일 행사를 갖게 되고, 초막절보다 두 주전에 새해맞이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추석 두 주전이 이스라엘 민족의 설날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설날이 열흘 지나면 속죄일이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속죄일에 금식을 통해서 회개를 하게 되며, 대제사장은 연중 이날 한 차례만 민중을 대신해서 하나님을 만나보기 위해서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지성소에 들어갈 때 대제사장은 먼저 물로 자신의 몸을 깨끗이 씻고, 세마포 성의(聖衣)를 입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과 자기 자신을 위해 속죄제물과 번제물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은 바로 이 회개입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회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파스칼은 명상록 󰡔팡세󰡕에서 말하기를, “인간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야말로 겸손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60~70년 전 미국에서 신약성서교회운동을 펼쳤던 알렉산더 캠벨은 말하기를,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다가오지 않으면 안 된다. 말하는 거리 혹은 듣는 거리라고 불리어질 수 있는 거리가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도 있고, 귀로들을 수 없는 거리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면 소리가 충분히 전달되는 원안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알렉산더 캠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거리를 벗어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의 거리, 곧 들을 수 있는 거리의 중심원에 계시며, 겸손만이 이해의 거리로 다가서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내리 쬐는 태양빛을 즐기려면 건강한 눈을 가져야 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영적인 눈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말합니다. 알렉산더 캠벨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만큼은 외눈박이가 되어야 하며, 짝사랑에 눈이 어두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캠벨은 또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건강한 도덕심과 건강한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속적인 말씀의 묵상이 없이는 또 아이와 같은 겸손과 온유한 명상이 없이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가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구상 시인이 ‘무료와 은총’이란 글에서 테레사 수녀의 자서전 󰡔작은 꽃󰡕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하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오묘함을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자녀를 기르는 아버지 가운데에는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한 분은 뜰에서 자기 아이가 놀다가 돌에 부딪쳐 상처가 났을 때, 이를 얼른 안아다가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서 치료해 주는 타입이고, 또 한 분은 어린애가 다칠까봐 먼저 뜰이나 길을 살펴서 돌 같은 것을 앞질러 치워 그 어린애가 다치지 않게끔 미리 예방해 주는 타입이라고 했습니다. 이 두 아버지 가운데 누가 더 현명하고 고마운 분이겠습니까? 두말할 필요 없이 돌을 미리 치워 놓아 아이가 다치지 않게 한 아버지가 더 고마운 분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은혜를 모르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낫게 한 얕은 은혜에만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방은총이나 미리 감싸서 보호하는 은총에 눈이 어둡고 그저 당장에 국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는 호박덩이 같은 복을 달라고 졸라대고 또 바란다는 것입니다. 갑신년 한 해 동안 아무런 횡재도 없고, 변고도 없이 어쩌면 무료하다싶을 정도로 심심하고 재미가 없으셨습니까? 그와 같은 일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를 모르는 것은 지혜로운 아버지가 어린애가 다칠까봐 뜰이나 길을 살펴서 돌 같은 것을 앞질러 치워준 고마움을 모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시편 73편 28절은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고 하였고, 145편 18절은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요?
첫째,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일입니다. 특히 성만찬 참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께 다가서야 합니다. 뜻을 품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힘써 교제하는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짝하기보다는 믿음의 사람들과 친교를 나눔으로써 하나님께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넷째, 지성을 활용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양질의 신앙서적들을 읽음으로써 하나님께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다섯째, 봉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다가설 수 있습니다. 불쌍한 이들을 돕는 일, 전도하는 일, 교회를 섬기는 일, 이런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여섯째, 감성을 활용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자주 만들어야 합니다.
일곱째, 정의와 평화를 위한 일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막힌 담도 헐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성도님들, 금년 한 해를 영성을 키우는 해로 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다. 날마다 한 걸음씩 하나님께로 다가서십시다. 반성과 겸손과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얻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의 마음을 얻는 것 이상의 큰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사로잡는 성도님들이 되실 것을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2005년이 성도님들 모두에게 복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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