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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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있는 우상들(출 20:1-6)
우리 교회 금년의 표어가 ‘하나님께 날마다 한걸음씩 다가서는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고 또 할 수 없게 하는 경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들이 왜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걸림돌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죄라고 말을 합니다. 대표적인 성구가 이사야 59장 2절로써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다.”고 하였습니다.
죄에는 수만 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제일 큰 죄가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계명 중의 계명이 십계명일 테고요, 십계명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계명이 제1계명일 것입니다. 그 계명의 내용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이고, 우상숭배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내는 가장 큰 원인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걸음씩 다가서려 하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상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보고, 그 후에 우리 안에 있고 또 우리가 숭배하는 우상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상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첫째, 본문에 잘 기술된 대로 성경은 우상을 하나님 이외의 신(神) 곧 사람이 만들거나 자연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신격화시킨 가짜 신들을 말합니다. 그와 같은 것들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둘째, 우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모습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 이념이나 가치들, 또는 유한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는 것이 우상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어야 할 자리에 목사가 앉는다든지, 성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든지, 혹은 이념과 어떤 특정 가치와 명예와 권세가 차지한다면, 그것들은 우상입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병수 교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란 글에서 우상은 정말로 교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와 달, 사람과 동물, 금은목석(金銀木石)을 이성적으로는 신(神)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묘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을 세뇌시켜 애써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병수 교수는 “우상은 인간의 욕심이 형상화된 것이다(=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우상은 인간의 욕심의 거울이다(=욕심을 들어내 보이는 거울이다) .... 우상숭배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투영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숭배에서는 타인은 없고 자신만 있다.”고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김제 옮김, 두풍, 77쪽)에서 “우상이란 우린 자신이 만들고 우리 자신의 힘을 투영시켜서 우리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하나의 ‘사물’이다.”고 했습니다. 또 “우상은 하나의 사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내가 그것에 복종함으로써 그것은 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고 하면서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을 부정하는 하나님,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신(神)을 (그런 값싼 신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손에 넣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상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오,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짜 신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우상을 금하는 십계명을 매우 엄격한 의미로 해석하여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제1계명의 경우를 보면, 앤소니 줄리어스는 미술과 우상: 우상숭배, 우상파괴, 유태인미술이란 책에서 마르크 샤갈이 살아 숨 쉬는 생물과 사물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이유로 샤갈의 삼촌은 평생 샤갈과 악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태인 출신의 유대교 신자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우상을 창조하고 우상숭배를 유도하는 죄악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2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에서는 유대인들이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고, 그 대신 ‘주님’과 ‘여호와’와 같은 우회적인 이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셋째, 신학자 하비 콕스는 우상을 자연을 숭배대상으로 삼는 것, 통치자의 권력을 신성시하는 것, 유한한 가치를 절대시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을 자연으로부터 구별시키고, 인간을 자연의 마력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며, 만인을 하나님 앞에 평등하게 하는 것이고, 인간을 정치권력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우상이란 말은 비종교적(非宗敎的) 언어로도 많이 쓰입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변화를 거부하는 교만 곧 일시적인 우월성이나 한시적인 창조성을 항구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교만을 자기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착각이나 교만에는 반드시 업보가 따르게 돼 있는데, 토인비는 그것을 ‘네메시스’라 하였습니다.
다섯째, 한신대 김항섭 교수는 “한국의 경제 위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란 글에서 수익성의 논리로 이뤄지는 시장개방과 시장경제 그리고 구조조정이 오늘날에는 경제전문가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장경제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 주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맹신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유냐, 삶이냐(김제 옮김, 두풍, 212쪽)라는 책을 보면, 에리히 프롬은 이런 것을 일컬어서 ‘산업종교’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고, “산업종교에서의 신성함이란 노동, 재산, 이익, 권력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노동과 재산과 이익과 권력 등이 현대인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존재와 소유개념으로 볼 때, “인간적인 능력을 발휘케 하여 인간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종교”(198쪽)는 존재중심의 순교자적 종교로써 나눠주고 나눠 갖는(206쪽) 참 신(神)을 섬기는 종교인 반면, “인간의 성장을 마비시키는 종교”(198쪽)는 소유중심의 영웅적 종교로써 약탈하고 강요하는(206쪽) 거짓종교 즉 우상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존재중심이냐, 소유중심이냐에 따라서 참과 우상이 구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적인 삶의 방식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권력이나 재산을 숭배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우상숭배라는 것이 에리히 프롬의 주장입니다(박찬국,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 철학과현실사, 231-232쪽).
지금까지 우리는 우상이 될 만한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첫째는 예배의 문제인데요, 하나님이외의 것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예배를 받으실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이외의 것은 영이든 육이든 물질이든 다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둘째는 가치의 문제인데요, 하나님이외의 것에 신적인 가치를 두거나 절대적 가치를 두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절대적 가치를 지닌 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소유의 문제인데요, 물욕, 명예욕, 권세욕은 모두가 다 우상숭배입니다. 모든 명예와 권세는 하나님이 받으셔야할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물질 또한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듯이 소유욕에 사로잡히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됩니다.
아브라함이 후사에 대한 약속을 수차례나 받고서도 하갈이란 여종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생산한 것은 아들이 우상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처음 후사에 대한 약속을 받은 지 25년이 지나서야 이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우상으로써의 아들이 제거되는데 걸린 시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은 더 이상 이삭을 우상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려가 제단에 올려놓고 하나님께 바치려했던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공직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시험은 물질욕, 명예욕, 권세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시험을 이김으로써 메시아의 공직을 끝까지 수행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마귀를 물리치신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었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것이었으며,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금년도에 표어대로 날마다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려고 한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모든 일에 최우선에 두고 찬양하고 경배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2월 한 달의 축복은 물론이요, 2005년 한 해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라 믿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숭배하는 우상의 모습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 형태와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와 같은 모든 종류의 우상들을 우리 안에서 제거하도록 합시다. 오로지 주님만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하십시다.
우리 교회 금년의 표어가 ‘하나님께 날마다 한걸음씩 다가서는 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경우들이 있고 또 할 수 없게 하는 경우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경우들이 왜 생기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걸림돌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놓인 죄라고 말을 합니다. 대표적인 성구가 이사야 59장 2절로써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다.”고 하였습니다.
죄에는 수만 가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제일 큰 죄가 있다면 어떤 것이겠습니까? 계명 중의 계명이 십계명일 테고요, 십계명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계명이 제1계명일 것입니다. 그 계명의 내용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따라서 우상숭배는 가장 큰 죄이고, 우상숭배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내는 가장 큰 원인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한 걸음씩 다가서려 하는 것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상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보고, 그 후에 우리 안에 있고 또 우리가 숭배하는 우상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설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상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첫째, 본문에 잘 기술된 대로 성경은 우상을 하나님 이외의 신(神) 곧 사람이 만들거나 자연이나 동식물의 형상을 신격화시킨 가짜 신들을 말합니다. 그와 같은 것들에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입니다.
둘째, 우상이라고 해서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모습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들, 이념이나 가치들, 또는 유한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것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는 것이 우상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어야 할 자리에 목사가 앉는다든지, 성도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든지, 혹은 이념과 어떤 특정 가치와 명예와 권세가 차지한다면, 그것들은 우상입니다.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병수 교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란 글에서 우상은 정말로 교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해와 달, 사람과 동물, 금은목석(金銀木石)을 이성적으로는 신(神)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묘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을 세뇌시켜 애써 그렇게 믿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조병수 교수는 “우상은 인간의 욕심이 형상화된 것이다(=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우상은 인간의 욕심의 거울이다(=욕심을 들어내 보이는 거울이다) .... 우상숭배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투영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는 욕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숭배에서는 타인은 없고 자신만 있다.”고 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삶이냐(김제 옮김, 두풍, 77쪽)에서 “우상이란 우린 자신이 만들고 우리 자신의 힘을 투영시켜서 우리 자신을 메마르게 하는 하나의 ‘사물’이다.”고 했습니다. 또 “우상은 하나의 사물이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소유’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내가 그것에 복종함으로써 그것은 나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고 하면서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을 부정하는 하나님,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고 소유할 수 있는 신(神)을 (그런 값싼 신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이 손에 넣어서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상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시오, 손에 넣을 수 있는 가짜 신을 부정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우상을 금하는 십계명을 매우 엄격한 의미로 해석하여 지켰습니다. 예를 들어 제1계명의 경우를 보면, 앤소니 줄리어스는 미술과 우상: 우상숭배, 우상파괴, 유태인미술이란 책에서 마르크 샤갈이 살아 숨 쉬는 생물과 사물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이유로 샤갈의 삼촌은 평생 샤갈과 악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태인 출신의 유대교 신자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우상을 창조하고 우상숭배를 유도하는 죄악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2계명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에서는 유대인들이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아예 입에 올리지도 않고, 그 대신 ‘주님’과 ‘여호와’와 같은 우회적인 이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셋째, 신학자 하비 콕스는 우상을 자연을 숭배대상으로 삼는 것, 통치자의 권력을 신성시하는 것, 유한한 가치를 절대시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십계명의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라.”는 계명은 하나님을 자연으로부터 구별시키고, 인간을 자연의 마력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며, 만인을 하나님 앞에 평등하게 하는 것이고, 인간을 정치권력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우상이란 말은 비종교적(非宗敎的) 언어로도 많이 쓰입니다.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는 변화를 거부하는 교만 곧 일시적인 우월성이나 한시적인 창조성을 항구적인 것으로 착각하는 교만을 자기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착각이나 교만에는 반드시 업보가 따르게 돼 있는데, 토인비는 그것을 ‘네메시스’라 하였습니다.
다섯째, 한신대 김항섭 교수는 “한국의 경제 위기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란 글에서 수익성의 논리로 이뤄지는 시장개방과 시장경제 그리고 구조조정이 오늘날에는 경제전문가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시장경제는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 주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맹신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유냐, 삶이냐(김제 옮김, 두풍, 212쪽)라는 책을 보면, 에리히 프롬은 이런 것을 일컬어서 ‘산업종교’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고, “산업종교에서의 신성함이란 노동, 재산, 이익, 권력일 뿐이다.”고 했습니다. 노동과 재산과 이익과 권력 등이 현대인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에리히 프롬의 존재와 소유개념으로 볼 때, “인간적인 능력을 발휘케 하여 인간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종교”(198쪽)는 존재중심의 순교자적 종교로써 나눠주고 나눠 갖는(206쪽) 참 신(神)을 섬기는 종교인 반면, “인간의 성장을 마비시키는 종교”(198쪽)는 소유중심의 영웅적 종교로써 약탈하고 강요하는(206쪽) 거짓종교 즉 우상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존재중심이냐, 소유중심이냐에 따라서 참과 우상이 구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제적인 삶의 방식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권력이나 재산을 숭배한다면 그것은 명백한 우상숭배라는 것이 에리히 프롬의 주장입니다(박찬국, 에리히 프롬과의 대화 철학과현실사, 231-232쪽).
지금까지 우리는 우상이 될 만한 것들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정리를 하자면, 첫째는 예배의 문제인데요, 하나님이외의 것을 섬기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예배를 받으실 분은 창조주 하나님 한분뿐이십니다. 하나님이외의 것은 영이든 육이든 물질이든 다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둘째는 가치의 문제인데요, 하나님이외의 것에 신적인 가치를 두거나 절대적 가치를 두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 한분만이 절대적 가치를 지닌 분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소유의 문제인데요, 물욕, 명예욕, 권세욕은 모두가 다 우상숭배입니다. 모든 명예와 권세는 하나님이 받으셔야할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물질 또한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입니다. “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고 했듯이 소유욕에 사로잡히는 것은 우상숭배에 해당됩니다.
아브라함이 후사에 대한 약속을 수차례나 받고서도 하갈이란 여종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생산한 것은 아들이 우상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처음 후사에 대한 약속을 받은 지 25년이 지나서야 이삭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서 우상으로써의 아들이 제거되는데 걸린 시간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은 더 이상 이삭을 우상시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려가 제단에 올려놓고 하나님께 바치려했던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의 공직을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로부터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시험은 물질욕, 명예욕, 권세욕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시험을 이김으로써 메시아의 공직을 끝까지 수행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을 때, 마귀를 물리치신 말씀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었고,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것이었으며,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금년도에 표어대로 날마다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려고 한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을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모든 일에 최우선에 두고 찬양하고 경배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2월 한 달의 축복은 물론이요, 2005년 한 해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라 믿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가 숭배하는 우상의 모습은 어떤 것들입니까? 그 형태와 모습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와 같은 모든 종류의 우상들을 우리 안에서 제거하도록 합시다. 오로지 주님만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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