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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에 이끌리는 삶(행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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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01 2005.03.2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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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에 이끌리는 삶(행 13:52)

우리 교회의 금년의 표어대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한걸음씩 다가서려 해도 사실 마음뿐이지 그다지 쉽지 않다는 것을 나름대로 느끼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물론 잘하고 계신 분도 계실 줄 압니다만, 믿음생활이란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 우리의 생각과 뜻대로 잘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찬송가 384장의 가사처럼,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도다.”는 마르틴 루터의 고백을 우리의 고백으로 인정하면서 ‘성령님이 이끄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님은 여러 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만, ‘기름’으로 상징되는 성령님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덩치 큰 차를 사람이 끌거나 밀어서는 약간은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동차로써의 구실을 전혀 해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힘으로 나를 이끌고 가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덩치 큰 차라도 기름만 넣어주면, 전혀 힘들이지 않고서도 잘 달리게 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안에 성령님으로 충만케 한다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힘으로 우리 자신을 힘차게 달려가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기름통이 바닥까지 비워지는 것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기름통의 절반 선을 아귀까지 차게 보충해야할 선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에 기름을 보충할 때도 그렇고, 보일러에 기름을 보충할 때도 열 번 가운데 여덟 번 정도는 이 원칙이 적용되곤 합니다. 신랑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열 처녀들 가운데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늘 기름을 준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이 원칙이 신앙생활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령 충만을 탱크에 가득담긴 기름으로 상징한다면, 저의 신앙생활은 언제나 성령으로 충만해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 신앙생활의 문제점입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우리 자신들의 인생살이를 자동차로 간주했을 때, 자동차를 가게 할 수 있는 힘은 기름을 통해서 얻게 되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앞에서 끌고 갈수도 없고, 뒤에서 밀고 갈수도 없고, 머리에 이고 갈수도 없고, 등에 업고 갈수도 없듯이, 우리 자신들의 인생살이 또한 마찬가집니다. 내 힘으로 밀고, 끌고, 이고, 업고 가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넘어지고 좌절되고 절망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이어야합니다.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들뿐만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들의 힘, 우리들의 지혜, 우리들의 능력만을 의지하게 될 때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의 역할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분에게 내 중심의 자리를 내어드려야 하고, 가장의 자리도 내어드려야 하고, 목사의 자리도 내어드려야 하고, 총장의 자리도 내어드려야 하고, 사장의 자리도 내어드려야 하고, 회장의 자리도 내어드려야 하고, 대통령의 자리도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님은 우리 가운데서 주인노릇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그분이 주인노릇을 해야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갑니다. 만사가 형통합니다.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이 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 가운데 성령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사람은 많을 것입니다. 독립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더 성령님의 역사를 제한하려 들 것입니다. 혼자 힘만으로도 문제될 것이 하등에 없다면, 굳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도우미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도우미를 활용하지 못하여 실패하고 만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입니다. 사는 것이 힘든 것도, 직장생활이 힘든 것도, 가정생활이 힘든 것도, 교회생활이 힘든 것도, 목회가 힘든 것도, 사업이 힘든 것도, 모두가 다 도우미의 도움을 얻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믿는 자들을 돕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이십니다.
그분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첫째,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할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여 뽑으신 자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는 교사의 일입니다. 성령님은 확실한 인생길의 안내자이십니다. 우리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내비게이션(Navigation/항해)이요, GPS(위성항법시스템 또는 위치추적 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실 수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하나님이 미리 정해서 뽑으신 자들을 부르시고, 옳은 길로 인도하시고, 가르치십니다. 진리의 성령께서 하나님이 미리 정하여 뽑으신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고(요 15:26),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요 16:13). 성령님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미리 정하시고 뽑으신 자들을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증거 하시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자동차 운행 중에 내비게이션을 의지하고 GPS을 의지하듯이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GPS가 단속지역과 위험지역 등을 알려줄 때 그 지시를 따라 속도를 줄이듯이, 또 자동차 운행 중에 GPS의 음성메시지에 귀를 기우리고 그 지시를 착실하게 따르듯이, 인생길의 항해에 있어서도 우리 믿는 이들 곧 하나님께 뽑힌 자들은 성령님의 지시를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GPS없이 운전할 때와 GPS을 장착하고 운전할 때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GPS을 장착했을 경우, 단속에 걸렸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씻어주고, 단속에 걸린 다음 물어야하는 과중한 경제적 손실을 막아줍니다. 무엇보다도 운행 중에 단속카메라의 위치를 알 수 없어서 불안에 떨며 운전할 필요가 없어서 피로감이 훨씬 덜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우리의 인생길을 항해할 때 성령님을 모시고 가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따라서 그 차이는 실로 크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은 우리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지름길입니다.
둘째,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할은 영적인 중병에 걸린 우리들을 치유하시며 살리시는 의사의 일입니다. 성령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의 영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이의 영이 우리 죽을 몸을 살리십니다(롬 8:11). 이 일이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할과 성령님의 역할을 구분지어 말할 때에 흔히 하나님을 재판장에, 그리고 성령님을 의사에 비교합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인간의 법적 문제와 관련해서 믿는 자에게 무죄를 선포하십니다. 이를 신학에서는 ‘칭의’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의사이신 성령님은 인간의 본질문제와 관련해서 병들고 썩은 곳을 도려내고 수술하십니다. 이를 ‘성화’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칭의 곧 ‘의인 또는 무죄선포’는 믿는 자의 죄 문제를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영구적으로 해결해 버립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성화는 죽음에 이르게 하던 죄인의 병을 수술로 치유하십니다. 이를 우리는 ‘중생’ 또는 ‘거듭남’이라고 부릅니다. 중생 또는 거듭남의 사역이 바로 성령님께서 죄인 가운데서 행하시는 회심중의 구원사역입니다.
성령님의 회심중의 구원사역에 관해서 디도서 3장 5-7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또 고린도전서 6장 11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두 곳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중생의 씻음’과 ‘거룩케 하심’과 ‘새롭게 하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받은 구원이 매우 특별한 분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특별한 대접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의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을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 세 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어 주셨고, 무죄를 선언해 주셨고, 물로 씻고 수술해서 거듭나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할렐루야!
병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의사입니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줄 수 있는 의사야말로 중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에게는 가장 시급하고 가장 절실한 것입니다. 그런 의사를 찾지 못한다면 그는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육신만 가지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육신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건강은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들의 정신적인 건강, 심적인 건강, 영적인 건강을 튼튼하게 챙겨주실 수 있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의 진단과 처방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가장 건강하게 살아가는 길이요,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은 우리 모두가 영육간에 건강하게 살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셋째, 성령님께서 하시는 역할은 거듭난 자들을 돌보는 보혜사의 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주치의(主治醫)이십니다.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는 로마서 8장 30절의 말씀과 “우리로 저(성령님)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한 디도서 3장 7절의 말씀처럼,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를 죄로 인한 중병에서 살려내는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죄로 인한 중병에서 살려낸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 과정을 신학에서는 ‘점진성화’라고 부릅니다. 이 점진성화의 과정은 마치 죽을병을 수술로 고친 의사가 환자가 완치되어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돌보듯 성령님께서 거듭난 자들을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책임지고 끝까지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령님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주치의(family doctor)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변호사이십니다. 검사에 해당되는 고소자 마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쉼 없이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상담자이십니다. 우리가 인생살이에 지치고 힘들어할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그 때 우리를 곁에서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하신다”한 로마서 8장 16절의 말씀처럼 성령님의 역할은 변호사처럼 우리를 사탄의 고소로부터 보호하시며, 또 “이와 같이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로마서 8장 26절의 말씀처럼, 성령님의 역할은 상담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일입니다(롬 8:27).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라는 복음성가가 있듯이 우리들을 위해서 남모르게 기도하며 돕고 계신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은 우리 모두가 성공적인 삶을 사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도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사셨습니다(마 4:1). 예수님의 제자들도 바울 사도도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사셨습니다(행 21:4). 그들의 삶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성령님에 이끌려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다.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은 무거운 짐을 지게에 지고 가던 것을 자동차에 싣고 가벼운 몸으로 운전하여 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성령님께 맡기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면 됩니다. 그분은 우리의 교사요, 의사요, 변호사요, 상담자이십니다. 성령님에 이끌리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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