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낳는 감사생활(요 6:1-13)
본문
기적을 낳는 감사생활(요 6:1-13)
한 양반이 고깃간에 가서 말하였습니다. “돌쇠야, 고기 한 근만 주거라.” 이에 돌쇠가 고기를 썩썩 잘라 주고 돈을 받았습니다. 그때 다른 양반이 와서 말했습니다.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 돌쇠가 다시 고기를 썩썩 잘라 주었는데, 그 양이 전번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걸 보고 먼저 온 양반이 화를 내었습니다. “이놈! 왜 고기 한 근이 이리 다르냐?” 돌쇠가 얼굴을 씰룩거리며 대답하였습니다. “네에, 그것은 입쇼, 나리 것은 ‘돌쇠’가 자른 것이옵고, 이분 것은 ‘돌쇠네’가 자른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네!”(김정빈,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제11장 「언어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돌쇠와 돌쇠네”).
한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기적을 낳는 말은 ‘감사’에서 출발합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양반이 상놈을 향해서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라고 한 양반은 이 친절한 말 한마디로 고기 반근이 덤으로 붙어 돌아오는 기적을 낳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사나운 개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가시 돋친 혀로써는 결코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업주가 있었습니다. 술맛이 일품이었고, 고객에게도 무척 친절하였지만, 술이 팔리지 않아 만들어 놓은 술은 모두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업주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웃에 사는 양청(楊靑)이란 사람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네 집에 사나운 개(猛犬)가 있지 않는가? 술을 사러간 고객에게 으르렁대고 사정없이 물려고 덤비니, 누가 자네 집으로 술을 사러 가겠는가?”고 했다고 합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이든, 교회든, 직장이든, 국가든, 어느 크고 작은 집단이든 간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으면 사람의 발걸음은 끊기게 되어있습니다. 마음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어서 겸손하지 못하다면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없지요. 그러나 항상 남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을 뺀 13세 이상의 남자만 무려 오천 명이 먹고,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써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다 실린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데는 단지 두 번의 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던 한 소년이 자신의 음식을 예수님께 드린 정성이 담긴 감사이고, 두 번째는 이 음식을 받아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축사를 올린 감사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쓰인 ‘축사’란 말은 헬라어 ‘유카리스테오’(εὐχαριστέω)를 번역한 말로써 ‘감사하다.’란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장 유명한 기적이 한 소년의 정성어린 감사의 드림과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이 기적을 통해서 ‘감사합니다.’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기적을 낳는가, 또 얼마나 큰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기적을 낳는 감사생활’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늘 감사해야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입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인간사회란 서로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도움을 줄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고, 도움을 받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실망하지 않도록 감사표시를 해야 합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 감사방법이고, 두 번째는 돈이 조금 들어가는 감사방법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감사방법은 말로써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 다음 단계의 감사방법은 선물로써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감사는 말로써 하든지, 혹은 선물로써 하든지 간에 기적을 낳습니다. 어린 소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또 예수님께서 말로써 하나님께 고마움을 표시했을 때 한 사람이 먹어도 부족할 음식이 수천 명이 먹고도 남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많은 고생 끝에 백화점 사업으로 미국의 10대 재벌에 들고, 재무부장관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워나메이커가 1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 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해서 빈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워서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레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잠버드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단독으로 1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을 하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 워나메이커의 감사를 통해서 일어난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잊지 않았던 어린 소년 존 워나메이커는 추수감사절 날 벽돌 한 수레를 교회에 가져갔고, 그것을 받은 잠버드 담임 목사는 그에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축복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존 워나메이커에게 복을 주셨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수천 명의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딸린 식구들이 빵과 고기를 먹게 됨으로써 의식주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감사는 오늘날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습니다. 성도님들의 삶에 이런 기적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마움을 말로 표시해서 소득을 본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기근으로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비교적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어느 날 동네 공터에서 놀고 있는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바싹 마른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곧 집에서 빵을 여러 개 구운 뒤 그것을 공터로 가지고 나와 배고픈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이 바구니에는 너희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모두 한 개씩만 가져가거라. 내일 오면 또 빵을 주마.”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차지하려고 달려들었고, 크다 생각되는 빵을 집어 들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늘 모두가 빵을 다 가져간 뒤에야 마지막 남은 작은 빵을 집어 드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크레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언제나 가장 작은 빵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감사합니다.”란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노부부가 나눠준 빵을 감사히 받아들고 돌아온 크레첸은 동생과 함께 먹기 위해 빵을 쪼개다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크레첸은 깜짝 놀라 얼른 은화를 가지고 노부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크레첸을 향해 빙긋이 웃으시며 말했습니다.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기 위해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 할아버지는 크레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고마움을 선물로 표시해서 소득을 본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가 어느 해에 무를 밭에 심었더니, 농사가 잘 되어서 거의 사람 몸뚱이만 한 무를 수확했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잘된 무를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 농부는, 농사가 잘된 것이 그 고을을 잘 다스려준 원님 덕분이라 생각하고, 그 무를 잘 포장해서 원님께 갖고 갔습니다. 원님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칭찬한 뒤에, 하인을 불러 요즘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큰 황소 한 마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그 황소를 끌어다가 이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농부는 무 한 개를 바치고, 그 대신에 크고 좋은 황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심보가 고약한 농부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무 한 개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으니, 내가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면, 이번에는 땅이라도 몇 마지기 얻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고 있는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습니다. "원님,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황소를 길러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것이 다 원님께서 백성을 잘 다스려 주신 덕분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원님은 이 말을 듣고,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한 다음에, 하인을 불러 요즈음 관가에 들어온 것 중에서 귀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하는 말이, 며칠 전에 들어 온 크고 잘 생긴 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님은 그 무를 이 농부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농부는 별 수 없이 무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행한 것처럼 진실한 고마움의 표시는 소득을 낳고, 때로는 큰 기적을 낳기도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15절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몫인 저주와 죽음을 취하시고, 그 대신 하나님의 몫인 축복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은 다 주셨습니다. 숨겨놓고 주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하나님께 바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합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학비, 책값, 교통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 부모에게 자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자녀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한가지뿐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일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녀라면, 아마 효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모의 뜻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일도 감사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 것입니다.
감사는 마치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과 같은 것입니다. 수십 년 전에는 마을에 공동우물이 있어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긴 것이 펌프입니다. 또 펌프를 대신한 것이 상수도입니다. 공동펌프의 경우,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펌프의 고무파킹이 쉽게 닳아져 펌프에 물이 고여 있지 못하고 밑으로 빠져버리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대개는 다음 펌프질을 위해서 큰 플라스틱 물통을 놓아두고 물을 담아둡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을 쓰려는 사람이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담아 와서 물 빠진 펌프에 물을 부어가며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에 펌프에 부어줄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물이 샘에 고여 있다할지라도 물을 길러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는 바로 한 바가지의 물과 같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되돌려 줄 때, 얼마든지 물을 길러 먹고 쓸 수 있듯이 하나님께 받은 것의 지극히 작은 일부를 감사함으로 되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감사는 그것이 말을 통해서이든지, 혹은 선물을 통해서이든지, 언제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고마움의 표시를 통해서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양반이 고깃간에 가서 말하였습니다. “돌쇠야, 고기 한 근만 주거라.” 이에 돌쇠가 고기를 썩썩 잘라 주고 돈을 받았습니다. 그때 다른 양반이 와서 말했습니다.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 돌쇠가 다시 고기를 썩썩 잘라 주었는데, 그 양이 전번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걸 보고 먼저 온 양반이 화를 내었습니다. “이놈! 왜 고기 한 근이 이리 다르냐?” 돌쇠가 얼굴을 씰룩거리며 대답하였습니다. “네에, 그것은 입쇼, 나리 것은 ‘돌쇠’가 자른 것이옵고, 이분 것은 ‘돌쇠네’가 자른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네!”(김정빈, 리더의 아침을 여는 책 제11장 「언어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돌쇠와 돌쇠네”).
한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기적을 낳는 말은 ‘감사’에서 출발합니다. 말은 마음의 거울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는 양반이 상놈을 향해서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돌쇠네, 고기 한 근만 주시게.”라고 한 양반은 이 친절한 말 한마디로 고기 반근이 덤으로 붙어 돌아오는 기적을 낳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사나운 개를 키워서는 안 됩니다. 가시 돋친 혀로써는 결코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중국 전국시대 송(宋)나라에 술을 만들어 파는 업주가 있었습니다. 술맛이 일품이었고, 고객에게도 무척 친절하였지만, 술이 팔리지 않아 만들어 놓은 술은 모두 변질되어버렸습니다. 업주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이웃에 사는 양청(楊靑)이란 사람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자네 집에 사나운 개(猛犬)가 있지 않는가? 술을 사러간 고객에게 으르렁대고 사정없이 물려고 덤비니, 누가 자네 집으로 술을 사러 가겠는가?”고 했다고 합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이든, 교회든, 직장이든, 국가든, 어느 크고 작은 집단이든 간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으면 사람의 발걸음은 끊기게 되어있습니다. 마음에 사나운 개가 버티고 있어서 겸손하지 못하다면 하는 일이 잘될 리가 없지요. 그러나 항상 남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여자와 아이들을 뺀 13세 이상의 남자만 무려 오천 명이 먹고, 남은 음식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으로써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다 실린 유일한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난 데는 단지 두 번의 감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은혜를 받았던 한 소년이 자신의 음식을 예수님께 드린 정성이 담긴 감사이고, 두 번째는 이 음식을 받아든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축사를 올린 감사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쓰인 ‘축사’란 말은 헬라어 ‘유카리스테오’(εὐχαριστέω)를 번역한 말로써 ‘감사하다.’란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장 유명한 기적이 한 소년의 정성어린 감사의 드림과 예수님의 감사의 기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이 기적을 통해서 ‘감사합니다.’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기적을 낳는가, 또 얼마나 큰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기적을 낳는 감사생활’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 우리는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늘 감사해야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은혜를 입지 않고 살수는 없습니다. 인간사회란 서로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도움을 줄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신중해야 하고, 도움을 받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실망하지 않도록 감사표시를 해야 합니다.
감사는 기적을 낳습니다. 감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이 전혀 들지 않는 감사방법이고, 두 번째는 돈이 조금 들어가는 감사방법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감사방법은 말로써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그 다음 단계의 감사방법은 선물로써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는 약간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감사는 말로써 하든지, 혹은 선물로써 하든지 간에 기적을 낳습니다. 어린 소년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고마움의 표시로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렸을 때, 또 예수님께서 말로써 하나님께 고마움을 표시했을 때 한 사람이 먹어도 부족할 음식이 수천 명이 먹고도 남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많은 고생 끝에 백화점 사업으로 미국의 10대 재벌에 들고, 재무부장관이 되고, YMCA 창설자가 된 존 워나메이커가 1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 애들이 줄을 서서 추수감사 예물을 제단에 바치는데, 나는 너무 가난해서 빈손으로 온 것이 너무 괴로워서 주일학교 시간이 끝나자마자, 벽돌을 굽는 아버지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하면서 벽돌이라도 한 수레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목사관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잠버드 목사는 내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단독으로 10억 원 상당의 예배당을 짓고 낙성식을 하게 되니 이 큰 은혜를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존 워나메이커의 감사를 통해서 일어난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잊지 않았던 어린 소년 존 워나메이커는 추수감사절 날 벽돌 한 수레를 교회에 가져갔고, 그것을 받은 잠버드 담임 목사는 그에게 손을 얹고 축복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축복기도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존 워나메이커에게 복을 주셨고,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수천 명의 종업원들이 일자리를 얻게 되었으며, 그들에게 딸린 식구들이 빵과 고기를 먹게 됨으로써 의식주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감사는 오늘날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낳습니다. 성도님들의 삶에 이런 기적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마움을 말로 표시해서 소득을 본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해 독일 전역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기근으로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비교적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노부부는 어느 날 동네 공터에서 놀고 있는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바싹 마른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곧 집에서 빵을 여러 개 구운 뒤 그것을 공터로 가지고 나와 배고픈 아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이 바구니에는 너희들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모두 한 개씩만 가져가거라. 내일 오면 또 빵을 주마.” 할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들은 서로 큰 빵을 차지하려고 달려들었고, 크다 생각되는 빵을 집어 들고는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늘 모두가 빵을 다 가져간 뒤에야 마지막 남은 작은 빵을 집어 드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크레첸이라는 이름의 그 소녀는 언제나 가장 작은 빵이 자신의 차지가 되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감사합니다.”란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노부부는 그런 크레첸을 매우 기특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노부부가 나눠준 빵을 감사히 받아들고 돌아온 크레첸은 동생과 함께 먹기 위해 빵을 쪼개다가 그 안에서 반짝이는 은화 여섯 닢을 발견했습니다. 크레첸은 깜짝 놀라 얼른 은화를 가지고 노부부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크레첸을 향해 빙긋이 웃으시며 말했습니다. “이 은화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기 위해 제일 작은 빵을 만들 때 넣은 거란다. 크레첸, 네게 주는 선물이다.” 할아버지는 크레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고마움을 선물로 표시해서 소득을 본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마음씨가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가 어느 해에 무를 밭에 심었더니, 농사가 잘 되어서 거의 사람 몸뚱이만 한 무를 수확했습니다. 농부는 이렇게 잘된 무를 혼자 먹기가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 농부는, 농사가 잘된 것이 그 고을을 잘 다스려준 원님 덕분이라 생각하고, 그 무를 잘 포장해서 원님께 갖고 갔습니다. 원님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칭찬한 뒤에, 하인을 불러 요즘 관가에 들어 온 것 중에서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큰 황소 한 마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그 황소를 끌어다가 이 농부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마음씨 착한 농부는 무 한 개를 바치고, 그 대신에 크고 좋은 황소 한 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이 온 동리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에 심보가 고약한 농부 한 사람이 생각하기를, "무 한 개를 바치고 황소 한 마리를 얻었으니, 내가 황소 한 마리를 바치면, 이번에는 땅이라도 몇 마지기 얻을 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집에서 키우고 있는 황소를 끌고 원님에게 갔습니다. "원님, 저는 오랫동안 집에서 황소를 길러 왔습니다만, 이렇게 크고 좋은 황소는 처음입니다. 이것이 다 원님께서 백성을 잘 다스려 주신 덕분인 줄 알고, 이 황소를 바치려고 가져왔습니다." 원님은 이 말을 듣고, 농부의 마음씨가 착하다고 칭찬한 다음에, 하인을 불러 요즈음 관가에 들어온 것 중에서 귀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하는 말이, 며칠 전에 들어 온 크고 잘 생긴 무가 있다고 했습니다. 원님은 그 무를 이 농부에게 갖다 주라고 했습니다. 농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농부는 별 수 없이 무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음씨 착하고 부지런한 농부가 행한 것처럼 진실한 고마움의 표시는 소득을 낳고, 때로는 큰 기적을 낳기도 합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15절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몫인 저주와 죽음을 취하시고, 그 대신 하나님의 몫인 축복과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은 다 주셨습니다. 숨겨놓고 주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하나님께 바랄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다 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혹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사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부모는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그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합니다. 먹을 것, 입을 것, 학비, 책값, 교통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 부모에게 자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자녀가 부모에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단 한가지뿐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하는 일입니다.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아는 자녀라면, 아마 효성을 다할 것입니다. 부모의 뜻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해야 할 일도 감사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할 것입니다.
감사는 마치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의 물과 같은 것입니다. 수십 년 전에는 마을에 공동우물이 있어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러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긴 것이 펌프입니다. 또 펌프를 대신한 것이 상수도입니다. 공동펌프의 경우,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펌프의 고무파킹이 쉽게 닳아져 펌프에 물이 고여 있지 못하고 밑으로 빠져버리는 일이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대개는 다음 펌프질을 위해서 큰 플라스틱 물통을 놓아두고 물을 담아둡니다. 그렇지 않으면, 물을 쓰려는 사람이 한 바가지 정도의 물을 담아 와서 물 빠진 펌프에 물을 부어가며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에 펌프에 부어줄 물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물이 샘에 고여 있다할지라도 물을 길러 먹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는 바로 한 바가지의 물과 같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을 되돌려 줄 때, 얼마든지 물을 길러 먹고 쓸 수 있듯이 하나님께 받은 것의 지극히 작은 일부를 감사함으로 되돌려 드림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감사는 그것이 말을 통해서이든지, 혹은 선물을 통해서이든지, 언제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고마움의 표시를 통해서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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