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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창조행위(출 20:8-11, 마 1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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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946 2005.12.02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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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과 창조행위(출 20:8-11, 마 12:9-13)

전 세계에 유대인이 대략 1천3-4백만 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서 5백만 명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고, 5백만 명이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50퍼센트 미만의 사람들이 회당에 나가고 있고,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성서시대에는 부계혈통이 유대인 여부를 결정했지만, 지금은 모계혈통만이 유대인 여부를 결정합니다. 이방인이 유대교에 개종하여 할례 받고 침례 받으면 유대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이 유대인교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에 관한 기사가 많습니다. 예수님과 유대교인들 사이에 안식일 논쟁이 뜨거웠고, 기독교 안에서조차 이 논쟁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유대교 또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개념은 무엇일까요?
첫째, 안식일은 하나님의 명령이란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11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제4계명인데, 내용은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데,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계명을 ‘직장에 출근하지 말라.’거나 ‘주중에 진행하던 모든 생업을 중단하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일이 아닌가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수천 년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문명이 바뀌면 생활양식도 바뀝니다. 이 바뀐 생활패턴에서 부딪치는 새로운 문제들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행위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혹은 해도 좋을 일인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일의 범주를 ‘창조행위’(Melacha)에 국한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제7일인 안식일에 쉬셨습니다(창 2:2). 안식일에 창조를 멈추신 것은 천지만물이 다 완성되었고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멈추셨던 것처럼 인간들도 안식일에 모든 창조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20:8-11). 안식일에 일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하다는 사실과 세계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멈춤으로써 창조주를 진정으로 하나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개념은 ‘완성’입니다. 세계의 완성, 나의 완성, 하나 됨에로 가는 길(path) 곧 할라카(halacha)라고 말합니다.
셋째, 유대인들은 인간의 창조행위를 39가지의 범주로 규정합니다.
성경은 무엇이 “인간의 창조행위”인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성막(Mishkan)을 짓도록 한 출애굽기 31-35장의 명령을 통해서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막건축은 그 자체가 세계의 축소판이며, 창조행태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넷째, 유대인들은 성막건축에 필요한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의 범주로 간주합니다.
 유대인들의 구전인 미쉬나(Mishnah, Shabbat 7:2)에는 성막을 건축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39가지 창조행위의 범주를 열거해 놓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39가지 일의 범주에 들어가는 행위들을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들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막을 만드는 39개의 과정에 연관된 일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창조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39가지 안식일 법이란 것이 39가지에 국한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사용하는 범주라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은 수백 수천 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9가지 범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유대인들이 말하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철저하게 지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다음과 같은 내용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입니다.
나뭇가지와 잎을 뽑거나 자르기, 꽃 꺾기, 과일 따기, 채소 또는 나물채취하기, 잔디 깎기, 화초에 물주기를 할 수 없습니다.
밭 갈기, 씨뿌리기, 과일, 꽃, 나뭇가지 등을 모우기, 타작하기, 알곡 고르기, 과일을 짜서 주스내기, 상한 과일이나 음식, 더러운 그릇 등을 골라내는 것이 금지됩니다.
빻기나 찧기, 체질하기, 까불리기, 반죽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불 켜기와 끄기, 음식과 물질에 열을 가해 변화를 주는 것이 금지됩니다.
손발톱 깎기, 털 자르기, 털 뽑기, 머리 빗질도 안 됩니다. 머리털이 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부드러운 털 빗은 허용됩니다.
빨래와 사워도 안 됩니다. 뻗친 머리칼을 단정히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는 것만 허용됩니다. 화장도 안 되고 선탠도 안 됩니다. 입술에 아무것도 문질러 바를 수 없습니다.
바느질도 안 됩니다. 접착제나 압침 사용도 안 됩니다. 종이우유팩을 여는 것도 안 됩니다. 절이기, 소금뿌리기 등의 방부처리도 안 됩니다.
알파벳 두 자 이상 쓰기, 선긋기도 안 됩니다. 심지어 글쓰기를 하게 할 어떤 행위도 금지됩니다. 반대로 알파벳 두 자 이상을 지워서도 안 됩니다.
절취선을 따라 티슈박스를 개봉하는 것도 안 되고, 두루마리휴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쇼핑을 할 수 없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땅에다 대고 무엇을 짓거나 수리를 해서도 안 되고, 해체도 안 됩니다.
불을 피우거나 끌 수 없고, 전기스위치를 켜고 끌 수 없습니다. 자동차의 시동도 걸 수 없습니다.
구두나 운동화에 새로 끈을 끼우는 것도 안 됩니다.
악기연주가 금지 됩니다. 랍비들은 우발적으로 조율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하기와 휘파람 부는 것은 허용됩니다.
율법은 안식일에 개인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물건 옮기기, 운반하기, 던지기, 밀기 등을 금지합니다. 공공영역에서는 대략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습니다.
단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목숨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도 할 수 있고, 전화도 쓸 수 있고, 그밖에 행동들도 필요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예수님은 이 안식일 법을 어떻게 이해하셨는가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의 의미는 단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안식일의 의미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하는가라는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그것이 바로 살림의 일입니다. 유대인들의 39가지 범주의 안식일 법에 따르면, 안식일에는 어떤 창조행위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안식일의 의미를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두셨습니다. 그것 또한 살림의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의 의미를 창조행위 금지에 두고 이것저것 하지 말 것을 구체적으로 규정했다면, 예수님은 안식일의 의미를 창조행위에 두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질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위급상황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구덩이에 양이 빠지면 구해내는 것이 허용됩니다(마 12:11). 사람은 양보다 훨씬 더 귀한 존재입니다. 수년씩 혹은 수십 년씩 고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안식일에 고친 것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고, 이 논쟁은 결국 감정싸움으로 발전하였으며, 결국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질타와 비난 속에서 십자가형을 언도 받으셨습니다.
최근에 일고 있는 난자 윤리 논쟁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엄격한 생명윤리규정을 준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윤리학자들이 있는가하면, 난치병치료를 앞당기기 위해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법의 잣대로 강제하려고 하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예를 들면, 강원용 목사님과 같은 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덩어리의 생명을 존중하는 일”보다는 “난치병으로 골수에 사무치는 슬픔과 고통을 겪고 절망 상태에 빠져 있는 수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을 치유하고 돕는 일”이 더 윤리적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제 이 논쟁은 MBC가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연구 성과 자체를 문제 삼고 있어서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양상입니다.
일곱째, 유대인들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의 ‘일’을 유대인들이 ‘창조행위’로 본 것이 문제입니다. 창조행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행위에는 세 가지 범주의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둠이 빛이 되게 하는 것, 둘째는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는 것, 셋째는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과연 이 세 가지 범주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살림의 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막건축과 관련된 39가지의 일을 창조행위의 39가지 범주로 보고, 이것들을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의 범주로 확대 해석한 것을 비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서의 ‘일’은 하나님의 일, 곧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의 일, 곧 죽임의 일을 말합니다. 빛의 일보다는 어둠의 일, 질서의 일보다는 혼돈의 일, 생명의 일보다는 죽임의 일들을 일삼는 것이 인간들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의 살림의 일을 묵상하고 본받으라는 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의 참 뜻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암시하고 계십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마태복음 12장 9-13절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을 때, 거기 말라버린 한 쪽 손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에게 양이 한 마리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구해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가복음 4장 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는 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창조행위, 곧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한 주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 병자를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그러나 이 한 마디는 안식일에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고, 1킬러미터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창조행위라면 그 창조행위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림의 일을 비난하고 질타하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본받고,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21절에 의하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아들 예수님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제칠일 안식일 개념이 기독교에 와서는 제팔일 일요일 곧 주일로 바꿨습니다만, 안식의 개념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한 주간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일, 죽임의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일주일 가운데 단 하루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일, 복음의 일, 살림의 일을 행하기도 하고 묵상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 것이 참 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일, 생명의 일, 복음의 일은 적극적으로 행하고, 어둠의 일, 죽임의 일, 세상의 일은 멈추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본받고, 살림의 일,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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