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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행 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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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245 2005.12.31 18:09

본문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행 9:31)

금년 교회표어를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교회’로 정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한 말씀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이 성구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가 “그리하여”란 말입니다. 이 말은 그 뒤에 나오는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된 이유를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된 것은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선” 결과입니다.
본문에서 가장 먼저 나온 “그리하여”란 말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이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에로 향하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개종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박해가 그치면서 교회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2004년 12월에 적지 아니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일이 정리되고 난 이후에는 평온한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과 성령님의 위로 가운데서 한걸음 더 전진하는 해가 될 수 있었습니다.
eden121이란 아이디를 가진 분이 블로그에 “3등은 아름답다”는 글을 타이틀 글로 싣고 있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3등은 아름답다.
세상에는 늘 1등과 3등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1등이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3등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3등은 1등처럼 집착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는다.
딛고 선 자리에서 열심히 즐기며 사는 것, 그것이 3등의 정신이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빨리 가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진짜 꼴찌는 누구인가? 바로 중간에서 포기하는 이들이다.
길고 긴 경주에서 주목받지 못해도 바르게 끝까지 달리는 3등,
세상은 이들의 힘으로 움직인다.

이 글의 주인공은 “3등은 아름답다”고 외칩니다. 3등은 집착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 딛고 선 자리에서 열심히 즐기며 사는 ‘3등의 정신’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빨리 가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가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길고 긴 경주에서 주목받지 못해도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고 바르게 끝까지 달리는 3등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우리 교회는 이 3등의 정신에 충실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월간지도 있고, 홈페이지도 있는데요, 그 홈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좋아서 받아 적어봤습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른 아침 길가에 피워있는 제비꽃, 그것으로 충분하지. 작은 것이 아름답지.
정다운 이와 더불어 나누는 작은 밥상, 그것으로 충분하지. 작은 것이 아름답지.
작은 것을 사랑할 때 그만큼 소중하고,
작은 것에 기뻐할 때 그만큼 풍요해지지.
작은 꽃, 작은 밥상, 작은 모래, 작은 사랑, 그것으로 충분하지. 작은 것이 아름답지.

기타 하나 들고서 부르는 작은 노래, 그것으로 충분하지. 작은 것이 아름답지.
흥겨운 이에게 남몰래 내미는 작은 손, 그것으로 충분하지. 작은 것이 아름답지.
작은 것을 사랑할 때 그만큼 소중하고,
작은 것에 기뻐할 때 그만큼 풍요해지지.
작은 꽃, 작은 밥상, 작은 모래, 작은 사랑, 그것으로 충분하지. 작은 것이 아름답지.

우리 교회는 11가정이 모이는 아주 작은 공동체입니다. 비록 작지만, 아름다움을 지향합니다. 작은 행복, 작은 기쁨에 만족하는 순수성을 지향합니다. 복음교회의 창시자 󰡔최태용 목사의 생애와 사상󰡕이란 책을 보면, 최태용 목사는 작지만 순수한 교회를 지향하였습니다. 10대 후반 수원농림학교 재학시절 기숙사에서 처음 기독교신앙을 접한 최태용(1897-1950)은 어느 날 침상에 누우려 할 때에 홀연히 광명한 빛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복음을 위하야 네 몸을 바치라”는 가슴에 울리는 소리를 듣게 되고, 20대에 “그리스도는 생명이다!”는 묵시를 얻게 됩니다. 27살에 박동완, 전영택, 송창근, 강명석, 최상현, 채필근 등이 동인지처럼 펴내던 ꡔ신생명ꡕ(新生命)에 글을 발표하다가 28살에는 스스로 ꡔ천래지성ꡕ(天來之聲)을 펴냈습니다. 그는 이 신앙지에서 “사람은 다만 그리스챤이란 일흠 외에 무삼 딴 일흠으로써 신자를 부르기 십허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리스챤 이외의 일흠으로써 여배(余輩)를 부르랴거든 여배(余輩) 또한 한 일흠을 제공하리라.... 여배(余輩)는 교회주의라는 것이 비진리오 악마의 오묘(奧妙)임을 주창한다.”(“비교회주의자”, ꡔ天來之聲)ꡕ 17호, 1926. 10)고 하여 ‘오직 그리스도인!' 운동을 펼쳤습니다. 36살이던 1933년 9월 어느 날에는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살이 센 큰 강을 건너는 꿈을 꾸고서 “소(小)하고 순(純)한 교회”를 세우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여 1935년 12월 22일 ‘기독교 조선 복음교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이 때 그가 제창한 표어가 “1)신앙은 복음적이고 생명적이어라. 2)신학은 충분히 학문적이어라. 3)교회는 조선인 자신의 교회이어라.”(“우리의 표어”, ꡔ영과 진리ꡕ 81호, 1935. 12)였습니다. 우리 빛과 생명 교회가 지향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분수처럼 시원하며 백합처럼 순수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을 전파하려는 것이 우리 교회의 정신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대로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기서 교회는 일차적으로 성도님들의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이차 삼차적으로는 가정과 직장과 국가사회를 다 망라한 공동체를 말합니다. 가정이든, 교회든, 직장이든, 국가사회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것이 ‘가화만사성’이란 말 그대로 평안해야 합니다. 평안해야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신앙적인 알파가 더해지면 금상첨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과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병술(丙戌)년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 성도님들과 우리 교회가 올 한 해 동안 괄목할만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성찰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년이 되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통회하는 일을 열흘간 행합니다.
유대인들은 신년을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라 부르는데, ‘연두’(年頭) 또는 ‘연초’(年初)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을 심판의 날, 회상의 날, 양각나팔 부는 날로 삼습니다. 우리나라 추석과 동일한 초막절 15일전에 시작되는 티쉬리(Tishri)월 1일이 설날입니다. 탈무드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 날에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는 인류창조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로쉬 하샤나는 10일 후에 닿는 욤 키푸르(Yom Kippur), 곧 대 속죄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이 열흘 기간에 회개하여 죄를 씻고, 용서받고 새 출발합니다.
설날축제의 중요한 상징적 행위는 생명책의 주위를 맴도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한 해를 복되게 보내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지난해의 잘못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년에는 동일한 잘못들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인봉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유대인들은 신년인사를 건넵니다.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년에 자신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10일 후에 있을 대 속죄일 때 그 책이 인봉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10일간은 두려움의 날들로 간주됩니다.
또 유대인들은 신년에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에게 희생될 번한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그들은 이 사건이 티쉬리월 1일에 발생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믿음과 순종입니다. 연초에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마음에 굳게 새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이삭 대신에 제단에 바칠 수양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은 이 날에 양각나팔을 붑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한 보상으로 이삭의 생명을 보존하신 것, 이삭을 대신해서 수양이 희생된 것, 하나님이 인류의 통치자이신 것,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할 것 등을 사람들의 마음에 일깨기 위한 것입니다.
신년을 맞이해서 회개와 새로운 다짐으로 근신하며 9일간을 보낸 유대인들은 10일째 날이 시작되는 해질 때에 다시 양각나팔을 불어 24시간 금식을 엄숙히 선포하고 금식이 끝나는 다음날 해질 때에도 나팔을 불어 선포합니다. 이 날은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이 일 년간 인봉되는 날이자 그들의 일 년간의 운명이 좌우되는 대 속죄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일 후인 음력 15일 보름날 해질 때부터 8일간 감사절인 초막절 축제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연두(年頭) 혹은 연초(年初)에 지난해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굳게 다짐하며, 속죄선언을 받고, 8일간의 추수감사축제로 새해 첫 달인 티쉬리월을 시작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인생의 목표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목표도 요한복음 20장 31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하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에 관해서 가장 깊게 설명한 글이 톨스토이가 쓴 「대자」라는 제목의 민화입니다. 여기서 ‘대자’란 하나님을 믿는 신자를 말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구도의 길을 걷는 수도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이 대자가 부여받은 일생의 사명은 불에 절반쯤 타죽은 세 개의 사과나무가지를 산등성에 심고 물을 주어 이 나뭇가지들을 살려내는 일입니다.
이 세 개의 나뭇가지는 살아날 가망이 전무한 불에 타죽은 나뭇가지들입니다. 과학적 이론이나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헛된 일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톨스토이는 구도자가 세 가지 요건만 갖추면, 이 죽은 나뭇가지에 싹을 내고 뿌리를 내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 세 가지 요건 중에 한 가지가 깨끗한 걸레를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깨끗한 걸레란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그치고 생명을 사랑하는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을 말합니다. 더러운 걸레로 유리탁자를 닦으면 더러운 얼룩이 더 많이 남듯이, 자기 걸레가 더러운 사람은 남을 깨끗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일을 근심하고 걱정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으로써 산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일로 근심과 걱정이 많은 사람은 걸레가 더러운 사람이며,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두 번째 요건은 탄탄한 버팀목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탄탄한 버팀목이란 생사를 하나님께 탄탄하게 고정시킨 곧고 강직한 마음을 말합니다. 철근을 다루는 일군이 버팀목을 탄탄하게 고정하지 않으면 철근을 휠 수 없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그치고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 안에 단단히 고정하지 않고서는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하면 강철을 휠 수 없듯이 생사를 하나님께 고정시키지 않고서는 불에 타 죽은 강퍅한 영혼을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세 번째 요건은 강한 밑불을 갖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밑불이란 뜨겁게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말합니다. 밑불이 강해야 생나무를 태울 수 있듯이 사랑이 뜨겁지 않고서는 생명을 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뜨거운 사랑을 갖지 않고서는 미움과 증오와 유혹과 시험과 공격과 비방과 험담과 소외와 갈등과 같은 생나무를 태울 수가 없습니다. 자기 불이 뜨겁게 달아올라야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 있습니다. 미움보다 사랑이 강할 때 미움을 태울 수 있습니다. 유혹보다 믿음이 강할 때 그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대자가 이 세 가지 요건을 다 갖추는데 걸린 시간이 30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30년에 대자는 타다 죽은 세 개의 사과나무가지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가 산등성에 심고 계곡의 물을 입에 머금어 담아와 뿜어주며 30년 키웠던 타다 죽은 세 개의 사과나무는 다름 아닌 그를 시험하고 괴롭히던 잔인무도한 살인강도였습니다. 결국 이 살인강도는 대자의 깨끗한 걸레에 닦이고, 탄탄한 버팀목에 걸려 휘어졌으며, 강한 밑불에 녹아졌습니다. 결국 이 살인강도는 예수님을 영접하였고, 죽은 대자를 이어 구도자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대자가 일평생 수도를 통해서 도달했던 깨끗한 걸레와 탄탄한 버팀목 그리고 강한 밑불은 소생될 것 같지 않았던 한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요 지혜였습니다. 올 한 해 동안 이런 능력과 지혜로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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