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살후 2: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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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살후 2:16-17)
금년의 우리 교회표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해’입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가정,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시와 국가를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기도해야할 제목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의 말씀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는데,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길 위해서 기도하고, 성도님들의 가정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더욱 강건하여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와 국가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경제와 산업이 더욱 발전하여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서 성도님들에게 목회자로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주를 경외함으로 살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고, 주님의 은총을 입어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주를 경외함으로 살자”는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표준새번역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17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분,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령님의 위로인가? 흑암상황에서 빛을 보게 하는 것, 죽음상황에서 생명을 보게 하는 것, 혼돈상황에서 질서를 보게 하는 것이 성령님의 위로입니다. 성도님들이 삶 속에서 만나는 캄캄한 어둠의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보게 하시고, 절망과 좌절의 상황, 살아 있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희망과 용기로 일어설 수 있는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고, 엉킨 실타래처럼 혼돈한 삶의 상황에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고,” 또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는” 분은 위로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첫째,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시인 구상이 지적한 것처럼, 세상의 사람들은 까마귀의 울음을 불길하게 생각하지만, 영통한 심안이 열린 사람은 까마귀가 고목 가지에 앉아 까옥 까옥 우는 소리를 “눈 뒤집힌 세상살이를 굽어보며, 저 요르단 강변 세례자 요한의 그 예지와 진노를 빌어서 우짖노니, ― 이 독사의 무리들아 회개하라! 하느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외침의 소리로 듣게 되고, 까마귀의 까옥 소리가 우리 인간들의 불의가 빚어내는 재앙을 미리 알리고 일깨워주는 울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시인 김남조가 노래한 것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면돗날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며 추한 몰골로 선 겨울나무들 속에서 생명을 위한 충전 부싯돌을 봅니다. 그래서 생명은 추운 몸, 곧 시련을 통해서 온다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600만 유대인이 히틀러에 의해서 학살당하던 제2차 대전 때에 나치의 학살을 피하여 성당지하실에 숨어살던 무명의 어느 유대인이 죽음이란 절망 앞에서 성당 벽에 남긴 글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나는 밤이 아무리 캄캄해도 아침 동녘이 밝을 것을 믿노라. 나는 하나님이 아무리 잠잠해도 그가 살아 계심을 믿노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선지자 에스겔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골짜기에 뒤덮인 해골들이 살과 힘줄과 가죽을 얻고, 생기를 부여받아 소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활동하던 당시는 유다왕국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유배당하여 힘겹게 목숨을 부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백성들은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겔 37:11)고 한탄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위로의 말씀을 주셨는데,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다”(겔 37:13-14)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선지자 이사야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게 되며(사 6:13), 그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하는 것을(사 11:1)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루터기는 망해버린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고, 거기서 자란 한 싹은 메시아를 말합니다.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이사야도 멸망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아가 나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위로는 시련과 고통을 지속적으로 이기게 하는 양약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달게 지게 하는 보약입니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으나 나중 상태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마약이 주는 환각의 위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주시는 영원한 위로이며, 선한 소망을 주는 위로이며, 우리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든든하게 세워가게 하는 위로입니다.
둘째,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야곱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급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46:3).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모세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여호수아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이스라엘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셋째,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왜 저에게만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십자가는 작고 가벼워 보입니다.”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십자가를 바꿔 줄테니, 다른 십자가를 골라 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십자가가 쌓인 창고에서 가장 편하고 가벼워 보이는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벼워 보여서 들어보면 무겁고 불편해서 쉽게 맘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십자가를 고르다가 저녁나절에 마음에 드는 십자가를 고른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습니다.” 가벼운 십자가로 바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천천히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 십자가는 네가 본시 지녔던 십자가란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메리 스티븐슨의 ‘모래위에 난 발자국’이란 성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나는 주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 걷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이 하늘 저편에 불꽃처럼 수놓아졌습니다. 매 순간 나는 모래위에 난 발자국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때에는 두 줄의 발자국들이 있었고, 다른 때에는 한 줄의 발자국들이 있었습니다. 이 점이 나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고뇌와 비애와 좌절로 몸부림쳤던 내 삶의 최악의 순간들에서 나는 한 줄의 발자국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주님을 따른다면, 주님은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요. 그러나 저는 제 삶의 최악의 순간들에서 단지 한 줄의 발자국만이 모래위에 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제가 주님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때에 주님은 저를 위해 그곳에 계시지 않았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단지 한 줄의 발자국만을 보았던 순간들은 내가 너를 안고 걸었던 때란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인생을 봄날처럼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기름을 가득 채운 자동차처럼 힘들이지 않고 달려가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값진 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끌고 갈수 없고, 밀고 갈수 없고, 머리에 이고 갈수 없고, 등에 업고 갈수도 없듯이, 우리 자신들의 인생살이 또한 마찬가집니다. 인생을 내 힘만으로 밀고, 끌고, 이고, 업고 가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넘어지고 좌절되고 절망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성령님의 위로로 사는 삶이어야합니다. 그래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인생의 길을 바르게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복잡한 길들을 모르는 운전자가 혼자 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려고 한다면 헤맬 수밖에 없지만,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길을 안내받으면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처럼,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자동차 운행 중에 내비게이션을 의지하고 GPS을 의지하듯이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형통하며 강건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성도님들을 돌보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주치의(主治醫)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변호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상담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교사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동행자이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동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아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산소 없이 살 수 없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생수 없이 살 수 없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기름이 끊어지면 기계가 멈추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불꽃이 사그라지면 싸늘해지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불이 꺼지면 암흑이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고, 성도님들의 가정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더욱 강건하여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금년의 우리 교회표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해’입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가정,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시와 국가를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기도해야할 제목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의 말씀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고 했는데,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길 위해서 기도하고, 성도님들의 가정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더욱 강건하여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와 국가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경제와 산업이 더욱 발전하여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서 성도님들에게 목회자로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주를 경외함으로 살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고, 주님의 은총을 입어 평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주를 경외함으로 살자”는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표준새번역 데살로니가후서 2장 16-17절을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분,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령님의 위로인가? 흑암상황에서 빛을 보게 하는 것, 죽음상황에서 생명을 보게 하는 것, 혼돈상황에서 질서를 보게 하는 것이 성령님의 위로입니다. 성도님들이 삶 속에서 만나는 캄캄한 어둠의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보게 하시고, 절망과 좌절의 상황, 살아 있지만 실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희망과 용기로 일어설 수 있는 생명의 길을 보여 주시고, 엉킨 실타래처럼 혼돈한 삶의 상황에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고,” 또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하시는” 분은 위로의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첫째,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시인 구상이 지적한 것처럼, 세상의 사람들은 까마귀의 울음을 불길하게 생각하지만, 영통한 심안이 열린 사람은 까마귀가 고목 가지에 앉아 까옥 까옥 우는 소리를 “눈 뒤집힌 세상살이를 굽어보며, 저 요르단 강변 세례자 요한의 그 예지와 진노를 빌어서 우짖노니, ― 이 독사의 무리들아 회개하라! 하느님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외침의 소리로 듣게 되고, 까마귀의 까옥 소리가 우리 인간들의 불의가 빚어내는 재앙을 미리 알리고 일깨워주는 울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시인 김남조가 노래한 것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면돗날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며 추한 몰골로 선 겨울나무들 속에서 생명을 위한 충전 부싯돌을 봅니다. 그래서 생명은 추운 몸, 곧 시련을 통해서 온다고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600만 유대인이 히틀러에 의해서 학살당하던 제2차 대전 때에 나치의 학살을 피하여 성당지하실에 숨어살던 무명의 어느 유대인이 죽음이란 절망 앞에서 성당 벽에 남긴 글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나는 밤이 아무리 캄캄해도 아침 동녘이 밝을 것을 믿노라. 나는 하나님이 아무리 잠잠해도 그가 살아 계심을 믿노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선지자 에스겔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골짜기에 뒤덮인 해골들이 살과 힘줄과 가죽을 얻고, 생기를 부여받아 소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활동하던 당시는 유다왕국의 백성들이 바벨론에 유배당하여 힘겹게 목숨을 부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백성들은 “우리의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도 사라졌으니, 우리는 망했다”(겔 37:11)고 한탄했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위로의 말씀을 주셨는데,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무덤 속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고, 너희를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내가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서 너희가 살 수 있게 하고, 너희를 너희의 땅에 데려다가 놓겠다”(겔 37:13-14)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통한 심안이 열립니다. 선지자 이사야처럼, 심안이 열린 사람은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루터기는 남게 되며(사 6:13), 그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하는 것을(사 11:1)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루터기는 망해버린 이스라엘 나라를 말하고, 거기서 자란 한 싹은 메시아를 말합니다. 에스겔과 마찬가지로 이사야도 멸망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아가 나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위로는 시련과 고통을 지속적으로 이기게 하는 양약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달게 지게 하는 보약입니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으나 나중 상태를 더욱 나쁘게 만드는 마약이 주는 환각의 위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 가운데서 주시는 영원한 위로이며, 선한 소망을 주는 위로이며, 우리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우리의 말과 행동을 든든하게 세워가게 하는 위로입니다.
둘째,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야곱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급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창 46:3).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모세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신 31:6).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여호수아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이스라엘처럼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또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셋째,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던 한 사람이 하나님께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왜 저에게만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까? 다른 사람의 십자가는 작고 가벼워 보입니다.” 하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십자가를 바꿔 줄테니, 다른 십자가를 골라 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십자가가 쌓인 창고에서 가장 편하고 가벼워 보이는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벼워 보여서 들어보면 무겁고 불편해서 쉽게 맘에 드는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루 종일 십자가를 고르다가 저녁나절에 마음에 드는 십자가를 고른 그 사람은 하나님에게 나아갔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습니다.” 가벼운 십자가로 바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하나님은 천천히 입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 십자가는 네가 본시 지녔던 십자가란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어찌될까요? 성령님의 위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는 것입니다.
메리 스티븐슨의 ‘모래위에 난 발자국’이란 성시가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날 밤 나는 주님과 함께 해변을 따라 걷고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이 하늘 저편에 불꽃처럼 수놓아졌습니다. 매 순간 나는 모래위에 난 발자국들을 보았습니다. 어느 때에는 두 줄의 발자국들이 있었고, 다른 때에는 한 줄의 발자국들이 있었습니다. 이 점이 나를 괴롭게 하였습니다. 고뇌와 비애와 좌절로 몸부림쳤던 내 삶의 최악의 순간들에서 나는 한 줄의 발자국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약속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주님을 따른다면, 주님은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요. 그러나 저는 제 삶의 최악의 순간들에서 단지 한 줄의 발자국만이 모래위에 나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왜, 제가 주님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했던 때에 주님은 저를 위해 그곳에 계시지 않았나요?“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단지 한 줄의 발자국만을 보았던 순간들은 내가 너를 안고 걸었던 때란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인생을 봄날처럼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기름을 가득 채운 자동차처럼 힘들이지 않고 달려가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값진 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끌고 갈수 없고, 밀고 갈수 없고, 머리에 이고 갈수 없고, 등에 업고 갈수도 없듯이, 우리 자신들의 인생살이 또한 마찬가집니다. 인생을 내 힘만으로 밀고, 끌고, 이고, 업고 가려고 하면 쉽게 지치고 넘어지고 좌절되고 절망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성령님의 위로로 사는 삶이어야합니다. 그래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인생의 길을 바르게 안내 받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복잡한 길들을 모르는 운전자가 혼자 힘으로 목적지를 찾아가려고 한다면 헤맬 수밖에 없지만,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길을 안내받으면 바르게 갈 수 있는 것처럼,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자동차 운행 중에 내비게이션을 의지하고 GPS을 의지하듯이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형통하며 강건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성도님들을 돌보시는 보혜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주치의(主治醫)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변호사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 영혼의 상담자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교사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동행자이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동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아야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산소 없이 살 수 없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생수 없이 살 수 없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기름이 끊어지면 기계가 멈추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불꽃이 사그라지면 싸늘해지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불이 꺼지면 암흑이듯이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고, 성도님들의 가정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더욱 강건하여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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