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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을 흡수하는 하나님의 평강(창 19: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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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89 2006.02.1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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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을 흡수하는 하나님의 평강(창 19:30-38)

올 한해 우리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뇌신경세포 속에 있는 기억들을 정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원치 않는 일들을 겪게 될 때가 있는데, 이 때 우리는 충격적이고 해로운 기억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나쁜 기억들일수록 쉽지 잊히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으로 남아서 우리들을 괴롭힌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런 나쁜 기억들은 우리들의 삶을 좀먹게 할뿐 아니라, 본의 아니게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와 가장 가깝고 평화롭게 이웃해야할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는 것입니다.
뉴욕대 신경과학센터의 죠셉 르듀 교수의 말을 빌리면, 눈으로 본 영상과 귀로 들은 정보가 100억 개나 되는 뇌신경세포 어딘가에 저장되고, 뇌신경세포 말단에 있는 10조 내지 100조 개나 되는 시냅스를 통해서 서로 다른 뇌신경세포들이 연결되면서 기억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기억은 우리 마음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대부분은 학습에 의해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가장 잘 기억되는데, 특히 공포가 그렇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인데, 위험한 상황을 미리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뇌 속에는 편도체란 것이 있어서 해마에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니 반드시 기억하라고 강한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편도체가 활성화되지 않으면 뇌는 그것이 중요치 않다고 생각해서 저장하지 않습니다. 만일 뇌의 편도체나 뇌신경세포가 손상된다면, 기억장애를 겪게 됩니다.
고려대 심리학과 최준식 교수는 만일 뇌에 편도체가 없다면 위험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고, 위험상황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생존하는 데 가장 큰 위협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편도체가 때로는 대형 사고를 겪고 난 사람들에게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것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하는데, 악몽 같았던 상황이 이미 종료되었는데도 지속적으로 동일한 상황을 정신적으로 반복해서 겪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전전두엽의 명령을 편도체가 듣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합니다. 대구지하철사고를 겪었던 사람들, GOP총기난사사건 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월남전에 참전했던 사람들, 강제로 끌려갔던 종군위안부에 이르기까지 그들 가운데는 그 때 겪었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올해로 82세가 된 어떤 종군위안부 할머니는 지금도 교복을 착용한 고등학생들을 보면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난다고 합니다. 지난날의 나쁜 추억이 그들의 삶을 족쇄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버드대 정신과 로저 피트만 교수는 뇌 속의 해마가 상대적으로 작은 사람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잘 걸린다고 말했고, 프란신 사피르 박사는 빠른 안구운동요법이 불필요한 기억들을 정리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빠른 안구운동은 잠잘 때 꿈을 꾸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안구를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는 운동을 일정시간하면 자연스럽게 나쁜 기억이 사라지게 되고, 그 기억에 과민반응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뇌신경학이나 정신학계에서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과학에서 설명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고, 나타난 현상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입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동일한 현상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면, 학문적인 설명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아니한 현상들도 있고, 학문적인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도 일어납니다. 이런 경우 종교에서는 영적세계와 관련지어서 설명을 시도합니다. 영혼이나 사단 또는 성령과 같은 영적 존재에 의한 현상을 취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에서는 나타난 현상을 인과법칙으로만 보지 않고, 영적문제와 결부시켜서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롯과 두 딸의 불행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들이 소동성에서 겪었을 공포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들 가족을 찾아온 사람들을 겁탈하겠다고 폭군들이 난폭하게 집안을 습격했을 때 다른 누구보다도 롯의 두 딸들은 남성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이어서 그들은 유황불에 타는 도시를 숨 가쁘게 도망했어야 했고, 모든 재산과 롯은 부인을, 두 딸은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안전한 소알성을 버리고 산속 동굴로 피신해서 술에 의지해서 살았던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들이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들로 인해서 그들은 도시에 거주하는 것을 무서워했고, 롯의 두 딸들은 도시 사람들을 무서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대구지하철사고를 겪었던 한 여성이 그 일후로 지하철을 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는 방송내용과 같은 것입니다.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던 사람들한테서 나타나는 정신적 장애가 롯과 그의 두 딸에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 19장 30-38절은 있을법한 일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낍니다. 첫째는 롯과 두 딸이 소돔에서 겪었던 사건이후 나타난 정신적 장애와 그와 같은 비극이 세속문명을 동경했던 그들의 선택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낍니다. 둘째는 롯과 두 딸의 상황인식방법과 문제해결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밖에는 달리 선택할 수 없는 어떤 막다른 골목에 몰렸던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들을 그곳에서 끄집어내줄 어떤 외적인 힘이 그들에게 없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를 느낍니다.
세속문명을 동경했던 롯은 소돔성이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멸망당하자 도시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에게 특별한 배려와 관심을 베푸시고, 죽음을 면하게 하신 후에 인근의 소알성에 머물게 하셨지만, 롯은 도시를 떠나 산으로 피신하여 그곳 굴속에서 두 딸과 생활합니다. 그리고 폐쇄된 공간인 굴속에서 개방적인 미래를 펼치지 못한 두 딸들이 도달한 결론은 과히 정신병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롯과 두 딸은 엄청난 외부적 충격으로 인해서 정상적인 생각이나 생활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롯과 그의 두 딸들에게 나타난 일련의 과민현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란,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를 말합니다. 전쟁, 자동차 사고, 폭행, 강간, 테러, 폭동, 지진, 홍수, 화산 폭발 등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삼풍백화점붕괴 때 살아남은 사람들, 대구지하철사고 때 살아남은 사람들, GOP총기난사사건 때 살아남은 사람들, 월남전에 참전해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 강제로 끌려갔던 종군위안부 등에서 그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주된 임상양상으로, 첫째는 그 외상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경험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꿈에 계속 나타난다거나, 반복적으로 그 사건이 생각난다거나, 마치 그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이 행동하거나 느끼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외상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것들을 회피하거나, 그 사건의 중요한 부분을 회상하지 못하는 경우이며, 또 그 반대로 전과는 다르게 반응이 둔화되는 경우로써 활동이나 흥미가 감퇴되고, 정서적으로 위축되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불면증, 분노폭발, 집중력감퇴, 놀람반응과 같은 과민현상이 지속되는 경우입니다. 이런 상태와 더불어 우울, 불안, 일상생활에 대한 집중곤란, 흥미상실, 대인관계에서 무관심하고 멍청한 태도를 보이면서 짜증, 놀람, 수면장애 등을 보입니다. 정신적인 무감각과 부정, 피로, 두통, 근육통 같은 신체증상 등이 나타나고, 흔히 기억장애나 공황발작, 미칠 것 같은 과잉행동, 위축도 나타납니다.
넷째는 착각, 환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고 집중하는데 어려움을 보이거나 사고경험과 비슷한 위험 상황을 회피하며 그런 비슷한 자극으로도 증세가 악화되기도 합니다.
다섯째는 술이나 약물중독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롯과 그의 두 딸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나타났었다는 증거는 그들이 도시에 거주하기를 무서워했고, 산속 동굴에 들어가 살았으며, 롯이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다는 점, 그리고 두 딸들은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는 폐쇄적 사고에 있습니다. 여기서 ’세상의 도리‘란 혼인관습을 말한 것입니다.
산속 동굴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갖습니다. 죽음, 무덤, 음부, 지옥, 자기감옥, 정신적 감옥, 폐쇄적 자폐적 공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굴에 갇히는 현상을 코쿤(cocoon)이라고 하는데, 코쿤이란 누에고치란 뜻입니다. 불확실한 사회에서 보호받을 목적으로 타인과의 접촉이나 교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거부하며 외부와의 단절을 선언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은둔형 외톨이들을 ‘히키코모리’라 부르는데, 그 수가 일본인 전체인구 가운데 1퍼센트에 해당되는 130만 명에 이르며, 이 가운데 60퍼센트 이상이 20~30대라고 합니다.
히키코모리의 공통점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가정에서는 불화와 폭력에 시달린 끝에 부모와 대화가 단절됐으며, 인터넷 게임에 중독됐다는 점입니다. 경기침체와 청년실업률 증가도 이런 은둔형 외톨이를 양산시키는 원인 가운데 한 가지입니다.
우리는 롯과 두 딸에게서 이런 비극적인 증상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롯과 그의 두 딸들은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왜 그들에게 이런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세속문명을 동경했으며, 그들이 거주한 도시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기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왜 롯과 그의 두 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서도 그들이 겪었어야했던 힘든 상황들을 극복하지를 못했을까요? 왜 그들은 이 비극적인 기억들을 그들의 머리에서 지워버리지를 못했을까요?
첫째, 그들은 이름뿐인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롯의 가정은 매우 세속적이었습니다. 롯은 스스로 타락의 성 소돔을 선택했고, 그곳에 뿌리를 박으려고 했으며, 두 딸들을 그곳의 이방신 숭배자들에게 시집보내어 사위를 맞으려고 했습니다. 신앙의 끈을 놓은 지가 오래된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서도 많은 시간 머뭇거렸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서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했고, 제단을 쌓고 예배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둘째, 롯의 가정에는 신앙교육이란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죽음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했더라면 회개와 감사와 기쁨이 충만했을 것이지만, 오히려 불평과 원망으로 그들의 처지를 비관했기 때문에 그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그로 인해서 그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서 그들을 도왔고, 또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도와줄 채비를 갖춰놓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던”(창 19:29)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하물며 당신의 품을 떠났던 자녀들이 돌아오겠다는데 하나님이 돕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도 얼마든지 그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적군에게 포로로 끌려간 롯과 그의 재산을 찾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켰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창 14장). 조카가 도움을 청하는데 아브라함이 돕지 않겠습니까?
 셋째, 롯과 그의 두 딸들의 무의식세계가 맑지를 못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공포에 휩싸인 채 폐쇄적 공간에 갇혀 살았던 것을 보면 의식이 그들을 일깨워 세우기가 힘들었을 것이고, 억압된 무의식이라도 의식의 표면으로 치고 나와 줘야 하는데, 그들의 무의식조차 맑지 못하니까 전혀 도움이 못됐던 것 같습니다. 무의식세계가 맑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꾸준하게 한 사람들의 무의식세계는 매우 맑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막가는 법이 없고, 숨겨졌던 속 것들이 무의식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와도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의식은 억압되어있긴 하지만 박제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의식의 표면으로 나타나 자기도 모르는 행동을 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격적인 사건을 만나게 되면, 롯과 그의 두 딸들처럼 동굴과 같은 폐쇄적인 사고나 자폐적 공간에 갇히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불행한 일이 롯과 두 딸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러한 고통을 이겨낼 힘이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생애를 비롯해서 박해시대를 살았던 순교자들의 삶을 보면, 그들은 감당할 수 없는 육체적 충격을 수차례씩 받고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평강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들과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님의 위로를 꾸준히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님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고 또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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