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번민을 치료하는 평강(살전 5: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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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번민을 치료하는 평강(살전 5:16-18)
뇌는 생존에 관련된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해뒀다가 위험을 감지하면 즉각 지시한다고 합니다. 전두엽이 상황판단을 내려 위험하다싶으면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시상이 신장 위쪽 끝에 있는 부신에 명령해서 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을 분비케 합니다. 이 호르몬분비 때문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에 공급되는 혈액도 빨라집니다. 이 때 근육에 힘이 생기는데, 이것을 “싸우기 아니면 도망가기 반응”이라고 합니다. 위급할 때 보통이상의 힘이 솟아나는 것이 바로 이 생존반응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꿔서 말씀드리면,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을 하게 되면 몸이 굳어집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출산직전에 있는 산모의 몸입니다. 출산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근육이 경직되니까 출산이 힘들어지고, 따라서 심한 산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은 위기상황에서 느끼는 신체변화와 같다고 합니다. 출산도 위급상황에 해당되기 때문에 생존반응에 의해서 자궁이 수축되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산모의 자궁이 수축되고 굳어있는 상황에서 아기가 자궁 밖으로 나오려고 하니까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트레스와 불안초조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담 타락이후 후천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징계들 가운데 한 가지가 산통이었다고 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산통이 후천적인 것이란 점에 착안한 것이 최면출산입니다. 출산을 앞둔 산모들에게 근육을 이완시켜 주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 훈련을 쌓게 하면, 출산 때에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자궁을 이완시킬 수 있어서 별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분만이면서도 무통출산의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수중출산을 접목한 최면출산이란 것입니다. 적당한 온도의 물에 몸을 담고, 호흡을 가다듬게 하고, 마음을 챙기게 함으로써 불안과 걱정을 잊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면,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성 호르몬인 ‘코티졸’의 분비를 막고, 온 몸을 이완시킬 수 있어서 별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방법을 수술환자에 적용하면, 마취하지 않고도 별 고통 없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최면수술이라 하는데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은 회복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실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면은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산모나 수술환자가 편한 마음을 갖게 하고, 수술이나 출산의 상황을 잊고, 다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음악이나 미리 작성한 글을 읽어줌으로써 분만이나 수술이 끝날 때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멋진 해변을 거닐게 한다든지, 열기구나 행글라이더를 타고 창공을 날게 한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몸이 완전히 이완되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우리의 육체는 통증에 둔감해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통증을 없애기 위한 마취제와 같은 보조수단이 필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최면출산의 창시자인 메리 몽간은 말하기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기대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완 반응(The Relaxation Response)이란 책을 쓴 하버드의대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교수는 말하기를, 인간은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힘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완이란 것을 통해서 스트레스의 해악에 대항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완반응이라고 합니다. 허버트 벤슨 교수는 연구를 통해서 하루 20분씩의 명상만으로도 혈압과 스트레스처리능력, 면역반응, 행복감 등에 심오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불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 한 가지가 우울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인 엘리스 도마 박사는 말하기를, 마음을 치료하면 불임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우울한 여성은 불임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런 여성에게 전신이완훈련이나 마음치료기술을 가르쳐주면 임신할 확률이 세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평강이란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평강이 갖는 놀라운 치유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강은 고통과 번민을 치료할 수 있는 명약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 평강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누가복음 1장 7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강의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셔야할(살후 3:16)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최면이란 것이 일종의 명상을 말하는 것인데, 희망이 치료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듯이, 명상이 치료와 학습에 효과가 크다는 것 또한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대 감성신경과학연구소의 리처드 데이비슨 교수는 말하기를, 명상을 하면 우뇌활동이 줄고 좌뇌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명상을 하면 긍정적인 생각과 행복감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면 뇌와 면역체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이란 호흡,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을 느껴보고 감각을 일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면역력을 강화시킵니다. 명상을 하면 외부자극에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전두엽의 활동이 중지되고 이완효과를 가져다주는 알파파가 증가합니다. 명상을 하면 어느 순간 통찰력이 생깁니다. 현대병의 70퍼센트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명상은 온갖 질병과 스트레스를 막을 수 있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구라고 합니다.
명상은 스트레스의 저항력을 키워주고 몸을 가볍게 해주며, 머리를 맑게 해줍니다. 이런 원리를 적용해서 오늘날에는 다수의 학교들이 명상시간을 커리큘럼에 넣어 시행하는데, 학업성적과 인성발달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존 카밧진 박사는 명상이란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을 챙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호흡명상이란 것이 있는데, 호흡에 몰두하여 호흡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호흡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또 걷기명상이란 것이 있는데, 걷기에 몰두하면서 발밑에 닿는 것들을 느껴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먹고 싶은 것만 먹기 때문에 병이 된다고 합니다. 느끼면서 호흡하고, 느끼면서 보고, 느끼면서 듣고, 느끼면서 만지고, 느끼면서 냄새 맡고, 느끼면서 맛보고 하는 것이 명상의 일종입니다.
심신의학에서는 치유(cure)와 치료(heal)를 구분하는데, 치료를 다루는 분야가 심신의학입니다. 치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암환자가 자신의 몸에 암이 있다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챙김을 키우면 암을 특정한 방법으로 감싸않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의 생리는 무엇인가가 변했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암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센터에서는 암 치료에 명상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조방법으로 명상을 활용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명상이란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명상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기도생활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명상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듯이 기도생활이 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또 하나님의 평강에는 인간의 고통과 번민을 치료해줄 놀라운 치유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와 같은 평강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통해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평강은 최면을 통해서 얻는 것과 크게 다릅니다. 기독교인의 평강은 하나님의 평강, 그리스도의 평강, 또는 성령의 위로를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에는 사죄의 은총에 기반을 두어 넘치는 희열과 기쁨이 따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붙드심과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에 여기에는 자신감이 동반됩니다. 그러나 최면은 단지 일순간 의식을 비우게 하거나 무의식을 표출시켜 문제의 근원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진정한 마음의 평강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되면, 평상심을 찾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희열과 기쁨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기도는 명상과도 다릅니다. 기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빈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므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지만, 명상은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 안에서 또는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정리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순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과 기도는 상호보완적입니다. 명상을 손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오른손이요 명상은 왼손입니다. 왼손을 쓸 때면, 오른손이 없는 듯 하고, 오른손을 쓸 때면 왼손이 없는 듯하지만, 본래 오른손과 왼손은 한 몸에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큰 효과가 있습니다. 명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정화된 맑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가 더욱 순수해지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명상과 기도의 차이점을 하나 더 살펴본다면, 명상은 자기 혼자서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정신수양에 불과하지만,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 받게 해줍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연구된 사례를 보면,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 중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비종교인은 독실한 종교인에 비해 평균 입원기간이 3배가 길었다고 하며, 또 심장병 수술을 받은 뒤의 사망률을 비교한 자료에서도 종교가 없는 환자가 종교를 가진 환자에 비해 14배나 사망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또 신앙이 없는 노인들이 신앙 활동을 하는 노인들에 비해 뇌졸중 발생이 2배나 높게 나타났는가 하면, 신앙인일수록 우울증이 적으며, 우울증에 걸려도 회복 속도가 빨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30여 년 동안 기도의 치유능력을 연구한 하버드대 그레그 제이컵스 교수는 뇌파검사를 토대로 기도를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도 후에는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감정상태가 편안해지는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는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의 활동이 극도로 억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스트레스성 호르몬인 ‘코티졸’이 감소하고, 불안감과 우울증의 감소, 에이즈나 암 등 만성통증의 완화, 혈압과 맥박과 콜레스테롤 수치의 감소, 약물중독의 완화 등과 같은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기도는 고통과 번민을 치료하는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통해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성인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내 생명을 구했습니다. 나는 사적으로, 공적으로 비통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절망의 늪에 빠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기도가 없었다면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고통 속을 헤맬 때 나는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기원, 숭배, 기도는 결코 미신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먹는 행위, 앉는 행위, 걷는 행위보다 더 현실적인 행위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다른 것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뇌는 생존에 관련된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해뒀다가 위험을 감지하면 즉각 지시한다고 합니다. 전두엽이 상황판단을 내려 위험하다싶으면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시상이 신장 위쪽 끝에 있는 부신에 명령해서 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을 분비케 합니다. 이 호르몬분비 때문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근육에 공급되는 혈액도 빨라집니다. 이 때 근육에 힘이 생기는데, 이것을 “싸우기 아니면 도망가기 반응”이라고 합니다. 위급할 때 보통이상의 힘이 솟아나는 것이 바로 이 생존반응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꿔서 말씀드리면,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을 하게 되면 몸이 굳어집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출산직전에 있는 산모의 몸입니다. 출산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근육이 경직되니까 출산이 힘들어지고, 따라서 심한 산통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산모가 느끼는 고통은 위기상황에서 느끼는 신체변화와 같다고 합니다. 출산도 위급상황에 해당되기 때문에 생존반응에 의해서 자궁이 수축되고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산모의 자궁이 수축되고 굳어있는 상황에서 아기가 자궁 밖으로 나오려고 하니까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스트레스와 불안초조는 인간의 근원적인 죄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담 타락이후 후천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징계들 가운데 한 가지가 산통이었다고 보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습니다.
산통이 후천적인 것이란 점에 착안한 것이 최면출산입니다. 출산을 앞둔 산모들에게 근육을 이완시켜 주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 훈련을 쌓게 하면, 출산 때에 훨씬 편안한 마음으로 자궁을 이완시킬 수 있어서 별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분만이면서도 무통출산의 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수중출산을 접목한 최면출산이란 것입니다. 적당한 온도의 물에 몸을 담고, 호흡을 가다듬게 하고, 마음을 챙기게 함으로써 불안과 걱정을 잊고,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주면,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성 호르몬인 ‘코티졸’의 분비를 막고, 온 몸을 이완시킬 수 있어서 별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동일한 방법을 수술환자에 적용하면, 마취하지 않고도 별 고통 없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최면수술이라 하는데 이 수술을 받은 사람은 회복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입원실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면은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산모나 수술환자가 편한 마음을 갖게 하고, 수술이나 출산의 상황을 잊고, 다른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일 뿐입니다. 음악이나 미리 작성한 글을 읽어줌으로써 분만이나 수술이 끝날 때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멋진 해변을 거닐게 한다든지, 열기구나 행글라이더를 타고 창공을 날게 한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몸이 완전히 이완되고 편안한 상태가 되면, 우리의 육체는 통증에 둔감해진다고 합니다. 따라서 통증을 없애기 위한 마취제와 같은 보조수단이 필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최면출산의 창시자인 메리 몽간은 말하기를,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기대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완 반응(The Relaxation Response)이란 책을 쓴 하버드의대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 교수는 말하기를, 인간은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힘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선천적으로 이완이란 것을 통해서 스트레스의 해악에 대항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완반응이라고 합니다. 허버트 벤슨 교수는 연구를 통해서 하루 20분씩의 명상만으로도 혈압과 스트레스처리능력, 면역반응, 행복감 등에 심오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불임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그중에 한 가지가 우울이라고 합니다. 심리학자인 엘리스 도마 박사는 말하기를, 마음을 치료하면 불임도 고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우울한 여성은 불임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이런 여성에게 전신이완훈련이나 마음치료기술을 가르쳐주면 임신할 확률이 세배나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평강이란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평강이 갖는 놀라운 치유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평강은 고통과 번민을 치료할 수 있는 명약입니다. 골로새서 3장 15절을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 평강을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누가복음 1장 7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도,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강의 주님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우리에게 평강을 주셔야할(살후 3:16)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최면이란 것이 일종의 명상을 말하는 것인데, 희망이 치료에 효과가 크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듯이, 명상이 치료와 학습에 효과가 크다는 것 또한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대 감성신경과학연구소의 리처드 데이비슨 교수는 말하기를, 명상을 하면 우뇌활동이 줄고 좌뇌가 활성화된다고 합니다. 명상을 하면 긍정적인 생각과 행복감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면 뇌와 면역체계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마음챙김 명상이란 호흡,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을 느껴보고 감각을 일깨우는 것을 말합니다.
명상은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면역력을 강화시킵니다. 명상을 하면 외부자극에 크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전두엽의 활동이 중지되고 이완효과를 가져다주는 알파파가 증가합니다. 명상을 하면 어느 순간 통찰력이 생깁니다. 현대병의 70퍼센트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명상은 온갖 질병과 스트레스를 막을 수 있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도구라고 합니다.
명상은 스트레스의 저항력을 키워주고 몸을 가볍게 해주며, 머리를 맑게 해줍니다. 이런 원리를 적용해서 오늘날에는 다수의 학교들이 명상시간을 커리큘럼에 넣어 시행하는데, 학업성적과 인성발달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존 카밧진 박사는 명상이란 감각을 일깨우고, 마음을 챙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호흡명상이란 것이 있는데, 호흡에 몰두하여 호흡의 감각을 느껴보는 것입니다. 호흡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또 걷기명상이란 것이 있는데, 걷기에 몰두하면서 발밑에 닿는 것들을 느껴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먹고 싶은 것만 먹기 때문에 병이 된다고 합니다. 느끼면서 호흡하고, 느끼면서 보고, 느끼면서 듣고, 느끼면서 만지고, 느끼면서 냄새 맡고, 느끼면서 맛보고 하는 것이 명상의 일종입니다.
심신의학에서는 치유(cure)와 치료(heal)를 구분하는데, 치료를 다루는 분야가 심신의학입니다. 치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편안한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편안한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암환자가 자신의 몸에 암이 있다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챙김을 키우면 암을 특정한 방법으로 감싸않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의 생리는 무엇인가가 변했다는 것을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암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암센터에서는 암 치료에 명상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조방법으로 명상을 활용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명상이란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그런데 명상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기도생활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명상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듯이 기도생활이 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또 하나님의 평강에는 인간의 고통과 번민을 치료해줄 놀라운 치유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그와 같은 평강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통해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의 평강은 최면을 통해서 얻는 것과 크게 다릅니다. 기독교인의 평강은 하나님의 평강, 그리스도의 평강, 또는 성령의 위로를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에는 사죄의 은총에 기반을 두어 넘치는 희열과 기쁨이 따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붙드심과 인도하심을 믿기 때문에 여기에는 자신감이 동반됩니다. 그러나 최면은 단지 일순간 의식을 비우게 하거나 무의식을 표출시켜 문제의 근원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진정한 마음의 평강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로 인해서 어떤 문제가 해결이 되면, 평상심을 찾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희열과 기쁨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인의 기도는 명상과도 다릅니다. 기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빈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맡기는 것이므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질 수 있지만, 명상은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음 안에서 또는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정리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순간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상과 기도는 상호보완적입니다. 명상을 손에 비유한다면, 기도는 오른손이요 명상은 왼손입니다. 왼손을 쓸 때면, 오른손이 없는 듯 하고, 오른손을 쓸 때면 왼손이 없는 듯하지만, 본래 오른손과 왼손은 한 몸에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큰 효과가 있습니다. 명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하고, 정화된 맑은 몸과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그 기도가 더욱 순수해지고 깊어질 수 있습니다.
명상과 기도의 차이점을 하나 더 살펴본다면, 명상은 자기 혼자서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정신수양에 불과하지만,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인 죄의 문제를 해결 받게 해줍니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연구된 사례를 보면,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 중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비종교인은 독실한 종교인에 비해 평균 입원기간이 3배가 길었다고 하며, 또 심장병 수술을 받은 뒤의 사망률을 비교한 자료에서도 종교가 없는 환자가 종교를 가진 환자에 비해 14배나 사망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또 신앙이 없는 노인들이 신앙 활동을 하는 노인들에 비해 뇌졸중 발생이 2배나 높게 나타났는가 하면, 신앙인일수록 우울증이 적으며, 우울증에 걸려도 회복 속도가 빨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30여 년 동안 기도의 치유능력을 연구한 하버드대 그레그 제이컵스 교수는 뇌파검사를 토대로 기도를 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도 후에는 몸의 긴장이 풀어지고 감정상태가 편안해지는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는 뇌의 전두엽과 두정엽의 활동이 극도로 억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도 스트레스성 호르몬인 ‘코티졸’이 감소하고, 불안감과 우울증의 감소, 에이즈나 암 등 만성통증의 완화, 혈압과 맥박과 콜레스테롤 수치의 감소, 약물중독의 완화 등과 같은 효과가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기도는 우리 마음과 생각에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기도는 고통과 번민을 치료하는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본문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평강을 통해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인도의 성인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내 생명을 구했습니다. 나는 사적으로, 공적으로 비통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절망의 늪에 빠지기도 했지요. 하지만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기도 때문이었습니다. 기도가 없었다면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 고통 속을 헤맬 때 나는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기원, 숭배, 기도는 결코 미신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먹는 행위, 앉는 행위, 걷는 행위보다 더 현실적인 행위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다른 것이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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