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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복음의 영향력(마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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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247 2006.03.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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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복음의 영향력(마 13:33)

<로마인 이야기>를 14권째 쓴 시오노 나나미는 서기 212년 카라칼라 황제가 발표한 ‘안토니아스 칙령’(Constitutio Antoniana)을 로마제국의 붕괴의 원인으로 보았습니다. 제대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사건을 못내 아쉬워했습니다. 로마제국이 영원히 지속됐기를 바란 시오노는 제국을 위기로 몰아간 이 ‘안토니누스 칙령’을 심하게 폄하했습니다.

카라칼라 황제의 ‘안토니누스 칙령’이란 로마시민과 속주민과의 차별을 없애고, 제국내의 모든 자유민에게 동등하게 로마시민권을 준다는 공포입니다. 이 칙령은 로마제국이 주전 753년에 건국된 지 일천년이 다되어가던 서기 212년에 공포되었습니다. 건국 일천주년을 35년 남겨둔 상태에서 나온 엄청난 변화였습니다.

이 칙령으로 인해서 로마시민권은 더 이상 특권이 되질 못했습니다. 이 칙령의 공포로 인해서 노예를 제외한 제국내의 모든 자유인이 동등한 특권을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유대인들만을 선민으로 여기던 옛 시대의 특권을 새천년을 바라보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릴 것 없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민의 특권을 준다는 사도 바울의 복음과도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시민권취득개념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방인이 유대인이 되려고 하면, 남자의 경우 할례를 받아야 하고, 남녀 모두 개종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조건은 토라라 불리는 오경의 말씀과 ‘미츠보트’(Mitzvot)라 불리는 613개의 율법과 ‘멜라코트’(Melachot)라 불리는 39가지 범주의 안식일 법을 모두 지킬 것을 서약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자가 되는 조건은 종족이나 언어나 혈통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오직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기독교복음입니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부모가 둘 다 아테네 시민이 아니면 아테네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같은 그리스 민족이라도 아테네가 아닌 다른 도시국가 출생이면, 아테네 시민이 될 수 있는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하물며 부모가 둘 다 그리스 북부 태생이거나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도시 출신이면, 그 사람이 아무리 아테네를 위해서 봉사를 많이 해도 그의 신분은 여전히 외국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아테네 시민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이란 이름으로 후세에까지 알려진 고등학교를 창설하는 등 아테네의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려고 애썼지만, 도시국가 아테네는 이 위대한 철학자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테네인의 생각 속에는 외국인에게 시민권을 준다는 생각이 들어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테네인이 생각하는 시민권개념이 혈통에 뿌리를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로마에서는 건국해인 서기전 753년부터 시민권에 대한 사고방식이 아테네인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건국 직후부터 로마는 전쟁에 이겨도 패자를 노예로 삼지 않았습니다. 도시국가 스파르타처럼 패자를 농노로 삼아 호되게 부려먹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유력자들에게는 로마 시민권을 주고, 심지어 원로원 의석까지 주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 그리고 클라우디우스 황제도 다 이들 패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로마인들이 생각한 시민권개념은 혈통이 아니라, 뜻이나 정신을 공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분이나 민족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노력만 하면 취득할 수 있는 것이 로마시민권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카라칼라 황제 때에 와서는 시민권이 특권이 아니라 누구나 받을 수 있는 평범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때쯤 되면, 제국 내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불법단체이기는 했지만, 새천년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빠르게 번져가는 누룩과 같은 힘을 가지고 민중들 틈에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이 복음의 누룩을 적극적으로 제거하고, 그들이 새천년시대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온 몸으로 막으려고 했던 황제가 바로 데키우스인데 그는 로마제국이 맞이한 새천년시대의 첫 번째 황제였습니다. 그는 로마건국 일천년 주년이 2년 지난 250년에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명기한 ‘리벨루스’라 불리는 증명서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는데, 대상은 모든 로마시민권자들이었습니다. 이때 제국내의 모든 사람이 시민권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도시와 마을마다 증명서 발급을 담당하는 특별위원회가 설취되었습니다. 이곳에 불려나간 시민은 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로마의 전통적인 신들의 형상에 참배하고, 그 앞에서 향을 피우고, 자기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면 위원회는 확인조사도 하지 않고 증명서를 발급하였습니다. 그러나 데키우스 황제는 그 다음해에 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습지대에 갇혀 혼전을 벌이다가 아들과 함께 전사했고, 시신은 수렁에 깊이 가라앉아버려 찾지도 못했습니다. 그의 둘째 아들도 같은 해에 전염병으로 병사했습니다. 박해자의 불행한 최후를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입니다.

로마제국은 서서히 붕괴되고, 기독교복음의 누룩이 제국의 새천년시대를 장악하는 것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251년 데키우스와 그의 두 아들이 다 죽자, 252년 한 해 동안에 황제가 세 사람이나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253년에 발레리아누스가 황제에 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데키우스의 기독교정책을 이어받아 또 다시 제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리벨루스’ 증명서를 받아 항상 소지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은 사형에 처하고 재산은 몰수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260년에 7만 대군을 이끌고 페르시아 왕 샤푸르1세와 맞붙어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로마제국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황제로 남게 되었습니다. 박해자의 불행한 최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박해자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누룩처럼 번져가게 되고, 303년에 가면, 또 한명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기독교인 탄압을 위한 칙령을 공포하고 사악한 박해자의 칼을 치켜들지만, 밤이 깊으면 여명이 멀지 않듯이, 그의 박해를 끝으로 313년 6월에 드디어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밀라노 칙령’이 공포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그의 아들 황제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인해서 기독교는 명실상부한 제국의 종교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393년에 가면,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언합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다.”고 한 360여 년 전 한 무명의 떠돌이 교사와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전도가 그를 십자가에 처형했던 거대한 로마제국을 송두리째 접수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복음의 영향력이자 전파력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누룩과 같습니다. 활기차게 세파를 헤쳐 가는 용기 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복음으로 시작한 새천년 시대가 끝나갈 무렵 중세기의 기독교는 초심을 잃고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동서방교회도 완전히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문예부흥운동, 곧 르네상스(Renaissance, 14-16세기)가 서서히 개혁의 횃불을 붙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5백여 년 전에 일어난 종교개혁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8절의 말씀대로 괴악하고 악독한 묵은 누룩을 버리는 작업이었던 것입니다.

창세기와 출애굽기의 내용을 보면, 창세기는 족장중심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고, 출애굽기는 선민중심, 또는 민족중심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족장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진 족장중심의 구원의 역사가 창세기의 핵심이라면, 야곱의 열두 아들들로 시작된 열 두 부족들의 형성과 또 이들 부족들의 연합으로 형성된 이스라엘 민족중심의 구원의 역사가 출애굽기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 개인에서 출발하여 가족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민족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장차 온 인류에로 확대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개인의 야훼신앙이 가족과 부족의 신앙으로 발전되고, 더 나아가서는 유대교라는 독특한 민족 또는 국가의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점차 확대되고 발전되어 기독교라는 전 인류의 신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4세기말부터는 전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게 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우리의 신앙은 누룩처럼 미미하지만, 나중은 창대하게 될 것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비전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겠습니다.

출애굽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이 급격히 발전하게 됩니다. 이를 두려워한 애급의 바로가 이를 적극적으로 막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이스라엘 민족을 견딜 수 없을 만큼 혹사시키는 것과 출산을 제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의 정책은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바로 왕보다는 하나님을 더 두려워한 산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옳은 판단과 용기 있는 행동이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남녀의 구별을 떠나서, 지식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 외모를 보시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동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누룩과 같이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밀가루반죽에 누룩이 들어가면 전체에 퍼지고 말듯이 천국복음이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들게 되면 반드시 그 사람의 온 몸과 마음과 영으로 퍼지게 되어있습니다. 복음의 효력은 시간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또 누룩의 특징은 내적으로 은밀하게 작용하는데 있습니다. 겨자씨비유가 천국복음의 외적인 성장을 말했다면 누룩비유는 천국복음의 내적인 성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복음은 마치 비밀지하조직처럼 사람의 마음속에 은밀스럽게 침투하여 점조직처럼 퍼져나가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지만, 눈에 띄게 달라지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숙성된 술이 값비싸고 맛좋은 것처럼, 베이킹파우더보다는 이스트로 부풀려야 맛좋은 빵을 만들 수 있듯이, 고품위의 기독교인도 오랜 시간 은밀하게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누룩비유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비록 매우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나중에는 크게 발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또 누룩비유는 그리스도인이 비록 이 사회에서는 아주 작고 또 매우 미약한 존재일지라도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누룩 그 자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작은 빛이 어둠을 물리치고, 적은 양의 소금이 음식 맛을 내고, 적은 양의 누룩이 온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처신을 잘못하면 잘못하는 대로 나쁜 영향력을 끼칠 것이고, 처신을 잘하면 잘 하는 대로 좋은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살아야할 누룩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룩이 아주 은밀하고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 변화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누룩 같은 영향력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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