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선민의 조건: 기도생활(골 4:2)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5,572 2006.04.22 23:48

본문

선민의 조건: 기도생활(골 4:2)

유대인들의 ‘선민의 조건: 말씀 사랑’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유대인들의 핵심 기도들 가운데는 ‘쉐마’(Shema)가 있습니다. 이 쉐마는 유대교에서 가장 오래고 고정된 매일 드리는 기도입니다. 내용은 신명기 6장 4-9절, 11장 13-21절 그리고 민수기 15장 37-41절로 이뤄집니다. 유대인들은 고대 때부터 이 기도를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에 낭송해왔습니다.
유대인들은 ‘쉐모네 에스레이’(Shemoneh Esrei)라는 기도를 아침과 오후와 저녁에 하루 세 번 드립니다. 신약성경에는 아침 9시와 정오 그리고 저녁 3시에 행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쉐모네 에스레이’는 19개의 기도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를 하루 세 번씩하게 되면 57번의 기도가 되는 셈입니다.
이 기도문은 2,600여 년 전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제국에 유배되어 갔을 때에 시작된 것입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행해졌던 희생제사를 바칠 수 없었기 때문에 희생제물 대신에 기도를 바쳤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하루 세 번씩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희생제사를 하나님께 바쳤는데, 유배상태에서는 행할 수 없었으므로 대신에 하루 세 번씩 기도를 바쳤던 것입니다.
예배와 안식이 있는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이어지는 안식일에는 매일 드리는 기도이외에 추가로 기도회가 있었고, 특정한 축일들에도 있었는데, 그 축일들에 바쳐졌던 희생 제사들을 대신하는 추가 기도회들이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이런 관행이 바벨론 제국에 유배되어가기 이전에도 경건한 자들 사이에서 이미 실천되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기도에 대한 이 좋은 사례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희생제사일 수 있다는 점을 교훈합니다. 그러니까 기도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번제일 수 있고, 하나님과의 사귐과 교제를 상징하는 화목제일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허물을 대신하는 속죄제일 수 있고,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허물을 대신하는 속건제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원래 제사는 제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헌신입니다. 그러나 제 몸을 드려 제단에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제물로 대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단에 오른 제물에 안수를 하고 예배자의 허물을 대신해서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속의 개념입니다. 허물의 사죄를 위한 것이든 감사와 화목을 위한 것이든 제물을 바친다는 개념은 제 몸을 바친다는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제사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유대인들이 과거 2,500여 년간 회당에서 기도회로 모였던 것입니다. 회당의 예배는 기독교 예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모여 드리는 기도를 통한 예배 또한 제사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히브리어로 ‘테필라’(tefilah)라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을 성찰한다는 뜻을 갖습니다. 이 말은 기도의 목적을 분명하게 파악하게 해줍니다. 어떤 기도든, 그것이 간구든, 감사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든, 혹은 고백이든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세상 속에서의 우리 자신의 역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기도란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카바나’(kavanah)라 합니다. 카바나는 일반적으로 “집중” 혹은 “의도”란 말로 번역됩니다. 카바나의 최소 단계는 기도자가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는 의식과 기도할 의무를 이행하려는 의도라고 말합니다. 이 카바나의 이 최소 단위를 갖추지 못한다면,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유대인의 카바나는 다른 잡생각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고, 기도하고 있는 내용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며, 기도의 의미에 대해서 숙고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의 상당수는 시편 35편 10절, “나의 전 존재(내 모든 뼈)가 외치리라.”는 말씀에 근거해서 노래로 기도하거나 몸을 전후로 흔들면서 하는데, 이렇게 하면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국어인 히브리어를 2,600여 년 전 바벨론에 유배되었을 때에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를 되살리기 위한 유대인들의 노력 또한 눈물겨운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은 유대인들의 대다수가 제 나라가 아닌 외국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기도만이라도 히브리어로 하기를 권장합니다. 한 유대인이 히브리로 기도를 하고는 싶었지만 히브리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는 히브리어 알파벳만을 낭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그의 기도를 듣고 있던 랍비가 수상하게 여겨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그 사람이 랍비에게 대답했습니다. “거룩하신 분, 복 받으시는 그분이 내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아십니다. 내가 그분에게 알파벳문자들을 드리면, 그분은 그것들을 조합해서 단어들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중심을 보십니다. 미사려구의 아름다운 기도문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알아듣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히브리어를 모르는 유대인이 하나님께 바친 이 무식한 기도를 학식이 많았던 랍비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은 알아들으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모아 정성껏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그 기도를 받으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룹기도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기도들은 “나”란 말 대신에 “우리”란 일인칭 복수로 되어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단체기도는 서로를 위한 책임과 운명을 함께하는 공동체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개인 활동이기보다는 단체 활동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도회로 모일 수 있는 최소인원은 유대인 성인 남성 10명입니다. 유대인들은 13세 이상의 유대인 남성들이 기도문을 외우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행할 의무를 가진 자로 봅니다. 그래서 10명의 정족수를 채우지 않고서는 기도회로 모이지 않습니다. 이 기도의 정족수를 '민얀'(minyan)이라고 하는데, 이 민얀이 충족되지 않으면 기도회나 신앙 활동들이 수행될 수 없습니다. 이런 민얀의 요구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무리 먼 곳에 흩어져 있더라도 기도회를 위해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2,600여 년간 외국에 살면서 갖가지 핍박과 탄압 속에서도 유대인들이 흩어지지 않고 공동체를 이뤄 민족성을 지켜갈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모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과거 2,600여 년간의 유대인들의 삶은 회당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베라코트'(berakhot)라 불리는 기도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는 대부분의 기도가 베라코트에 속합니다. 베라코트는 '베라카'의 복수명사입니다. 그런데 베라카는 ‘축복’이란 뜻입니다. 이 말의 히브리어 어근은 ‘무릎’이란 뜻의 벹-레쉬-카프(Bet-Resh-Kaf)에서 유래하며, 무릎을 굽혀 절함으로써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베라코트를 낭송할 때 무릎을 굽히면서 절을 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들이 하는 대부분의 기도를 베라코트라 부르는 것에서 우리는 매우 깊은 뜻을 발견합니다. 물론 유대인의 베라카는 “복 받으시옵소서. 당신 주 우리 하나님, 우주의 왕이시여.”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문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기도를 ‘축복’이라 부른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모든 기도들은 축복이란 점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는 반드시 축복이 되어 여러분에게로 돌아올 것입니다. 밭에 뿌려진 씨가 반드시 열매를 맺듯이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입으로 나간 기도는 반드시 축복의 열매가 되어 돌아올 것을 믿습니다.
유대전통에 따르면, 유대인은 매일 100개의 베라코트를 낭송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앞에서 언급한 하루 세 번하는 19개의 쉐모네 에스레이가 포함됩니다. 그것만으로도 57개의 베라코트를 낭송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기도를 요구하는 베라코트가 수십 개씩 있어서 100개의 베라코트를 낭송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기도습관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반성을 촉구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과연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루에 몇 번 정도나 기도를 드리는지요?
유대인들의 베라코트에는 기본적으로 세 종류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쾌락을 즐기기 전에 낭송되는 것들, 미츠바 곧 계명을 이행하기 전에 낭송되는 것들, 특별한 때나 행사들 때에 낭송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먹고 마시고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은 물질적인 쾌락을 즐기기 전에 베라코트를 낭송합니다. 이것은 사용하려고 하는 물질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빵을 위한 베라카는 “땅에서 빵을 생산하게 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새 옷을 입기위한 베라카는 “벌거벗은 자들에게 옷을 입히시는”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들 베라코트를 낭송함으로써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심과 먼저 그분의 승낙을 구함이 없이는 물질들을 사용할 어떤 권리도 없음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베라카는 본질적으로 물질을 사용할 승낙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모든 행동에 앞서서 먼저 기도를 드려 하나님의 승낙을 구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겸손한 자세요, 얼마나 경건한 신앙입니까?
유대인들은 손을 씻거나 촛불을 밝히라는 등의 일상의 계명을 이행하기 전에도 베라코트를 낭송합니다. 그 베라코트는 “그분의 계명들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우리들에게 명령하신” 분, 곧 우리가 행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도록 명령하신 분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물론이고 랍비들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겸손한 자세요, 얼마나 경건한 신앙입니까?
유대인들은 기쁜 소식이나 나쁜 소식을 접할 때와 같은 특별한 때나 행사들 때에도 베라코트를 낭송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발생되는 모든 선악의 궁극적인 원천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같은 베라코트는 좋은 일들이든 혹은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든 모두를 위해서 낭송됩니다. 우리가 어떤 나쁜 것을 보거나 들을 때, 나쁘게 드러나는 일들은 궁극적으로 의로운 이유 때문에, 심지어 우리가 한정된 이해 속에서 그 이유를 항상 알 수 없다할지라도, 궁극적으로 의로운 이유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참된 재판관’으로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만사에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인도하심이 있다는 신앙이 반영된 기도입니다. 얼마나 겸손한 자세요, 얼마나 경건한 신앙입니까?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도 기도하지만, 식사 후에도 기도합니다. 이 기도를 ‘비르카트 하마존’(Birkat Ha-Mazon)이라 부릅니다. 신명기 8장 10절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비르카트 하마존(음식의 축복)이란 말 또한 이디시(Yiddish)어로 ‘축복하다’는 뜻입니다.
비르카트 하마존은 네 가지 축복으로 구성됩니다. 첫째는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축복으로써 세상에 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땅에 대한 축복으로써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시고, 언약을 맺으시며, 유산으로 이스라엘 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셋째는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으로써 예루살렘의 재건과 모쉬아크(메시아)의 도래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선한 것과 선한 행동에 대한 축복으로써 선하신 하나님의 선한 일들을 찬양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예배 때에는 물론이고, 일상에서 하루에도 100개 이상의 기도문을 낭송합니다. 역사 속에서 수없이 많은 나라들이 세워지고 사라졌지만, 이스라엘이란 나라만큼 고난이 많았던 나라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건재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솔로몬 사후에 북쪽 이스라엘왕국과 남쪽 유다왕국으로 갈라지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제국에 망해서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 땅이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란 나라가 망한 후에 그 땅에 남았던 가난하고 못 배운 이스라엘 천민들이 그 땅에 이주해온 이방인들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혼혈인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남쪽 유다왕국도 주전 586년에 바벨론제국에 완전히 망해서 모두 다 바벨론에 유배되어갔습니다. 그 때부터 유대인들의 극도의 시련이 시작됩니다. 유배당한 후, 짧게는 70년, 길게는 173년 만에 페르시아제국의 허용아래 일부 유대인들이 본토에 돌아와 나라를 재건했지만, 또 다시 알렉산더가 세운 헬라제국에 넘어가게 되고, 이후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66년에 시작된 독립투쟁의 실패로 주후 70년에 철저하게 망해버렸고, 132년부터 시작된 또 한 번의 독립전쟁의 실패로 135년에는 모든 유대인들이 본토에서 쫓겨나게 되어 과거 2,000여 년 동안 1,200만 명이 학살되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1948년 5월 14일,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했던 기도의 응답을 받아 결국에는 이스라엘 국가를 조상들의 땅에 세우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강국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힘이란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는 산 증거입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라고 해봐야 고작 1,300여만 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민족이지만, 세계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그들의 영향력은 가공할 정도로 큽니다. 이 모든 기적이 그들의 끊임없는 기도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바울 사도의 권면을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