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민의 조건: 안식일 성수(출 20:8-11)
본문
선민의 조건: 안식일 성수(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만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부도수표나 다름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진심으로 창조주로 믿고, 또 그분을 진정으로 창조주 되게 하려면, 안식일에 우리 인간들이 모든 창조행위를 멈춰야한다 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 개념은 이렇습니다.
첫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기슭에서 체결한 계약의 내용이자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20장 8-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제4계명인데, 내용은 제칠일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데,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계명을 ‘직장에 출근하지 말라.’거나 ‘주중에 진행하던 모든 생업을 중단하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일이 아닌가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수천 년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문명이 바뀌면 생활양식도 바뀝니다. 이 바뀐 생활패턴에서 부딪치는 새로운 문제들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행위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혹은 해도 좋을 일인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일의 범주를 ‘창조행위’(Melacha)에 국한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셨고, 제칠일인 안식일에 쉬셨습니다(창 2:2). 안식일에 창조를 멈추신 것은 천지만물이 다 완성되었고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멈추셨던 것처럼 인간들도 안식일에 모든 창조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20:8-11). 안식일에 일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하다는 사실과 우주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멈춤으로써 창조주를 진정으로 하나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개념을 ‘완성’으로 생각합니다. 세계의 완성, 나의 완성, 하나 됨에로 가는 길(path) 곧 할라카(halacha)라고 말합니다.
유대교는 하나님과 인간과 우주에 관한 교리의 종교가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정과 실천들로 가득한 포괄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먹고 먹을 수 없는가? 무엇을 입을 수 있고 입을 수 없는가?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절과 안식일은 어떻게 지키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와 같이 살면서 필요한 실제적인 규정들로 가득한 합니다. 이런 규정들이 수백 수천가지가 됩니다. 유대교에서는 이것을 '할라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법'이라고 번역되지만, '걸어가다, 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길’이란 뜻입니다. 우리말에 ‘도’(道)에 해당됩니다.
셋째, 유대인들은 인간의 창조행위를 39가지의 범주로 규정합니다. 성경은 무엇이 “인간의 창조행위”인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광야시대에 성막(Mishkan)을 짓도록 한 출애굽기 31-35장의 명령을 통해서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막건축은 그 자체가 세계의 축소판이며, 창조행태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39가지 범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뿌리기, 밭 갈기, 추수하기(자르기), 거두기(묶기), 타작하기, 까부르기, 고르기, 빻기, 체질하기, 반죽하기, 굽기, 털깎기, 표백하기, 풀기(빗질하기), 물들이기, 실뽑기, 베틀에 실 걸기, 직조하기, 실 제거하기, 매듭매기, 매듭풀기, 바느질하기, 찢기, 가두기(덫 또는 올가미 설치), 죽이기, 가죽 벗기기, 소금치기(무두질하기), 선긋기(표시하기), 매끄럽게 하기 및 구김살 펴기, 재단하여 자르기, 알파벳 두 자 이상쓰기, 알파벳 두 자 이상 지우기, 건축하기, 허물기, 불끄기, 불 지피기, 마지막 망치질하기, 운반하기.
넷째, 유대인들은 성막건축에 필요한 상기한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의 범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던 39가지의 공정에 연관된 일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창조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39가지 범주란 말이 39가지 안식일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범주’라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39가지 범주에 들어가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은 수백 수천 가지에 이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나뭇가지와 잎을 뽑거나 자르기, 꽃 꺾기, 과일 따기, 채소 또는 나물채취하기, 잔디 깎기, 화초에 물주기를 할 수 없습니다.
2)밭 갈기, 씨뿌리기, 과일, 꽃, 나뭇가지 등을 모우기, 타작하기, 알곡 고르기, 과일을 짜서 주스내기, 상한 과일이나 음식, 더러운 그릇 등을 골라내는 것이 금지됩니다.
3)빻기나 찧기, 체질하기, 까불리기, 반죽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4)불 켜기와 끄기, 음식과 물질에 열을 가해 변화를 주는 것이 금지됩니다. 밤중에 불을 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미등을 켜놓거나 화장실 등의 전기스위치에 테이핑을 해둡니다.
5)손발톱 깎기, 털 자르기, 털 뽑기, 머리 빗질도 안 됩니다. 머리털이 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부드러운 털 빗은 허용됩니다. 손톱깎이나 빗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게 안식일 전에 미리 치워둡니다.
6)빨래와 사워도 안 됩니다. 뻗친 머리칼을 단정히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는 것만 허용됩니다. 화장도 안 되고 선탠도 안 됩니다. 입술에 아무것도 문질러 바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립스틱을 바를 수 없습니다.
7)바느질도 안 됩니다. 접착제나 압침 사용도 안 됩니다. 종이우유팩을 여는 것도 안 됩니다. 절이기, 소금뿌리기 등의 방부처리도 안 됩니다.
8)알파벳 두 자 이상 쓰기, 선긋기도 안 됩니다. 심지어 글쓰기를 하게 할 어떤 행위도 금지됩니다. 반대로 알파벳 두 자 이상을 지워서도 안 됩니다. 연필이나 펜 종류는 안식일 전에 눈에 띄지 않게 미리 치워놓아야 합니다.
9)절취선이 있는 티슈박스의 개봉이 안 되고, 두루마리휴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 쓸 휴지를 미리 떼어놓거나 또는 이미 절취되어 있는 티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쇼핑을 할 수 없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 전에 플러그를 미리 빼놓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11)땅에다 대고 무엇을 짓거나 수리를 해서도 안 되고, 부수는 것도 안 됩니다.
12)불을 피우거나 끌 수 없고, 전기스위치를 켜고 끌 수 없습니다. 자동차의 시동도 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13)구두나 운동화에 새로 끈을 끼우는 것도 안 됩니다.
14)악기연주가 금지됩니다. 랍비들은 우발적인 조율을 막기 위해서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하기와 휘파람 부는 것은 허용됩니다<주: 이 부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최한구 저, {유대인은 EQ로 시작하여 IQ로 승리한다} 도서출판 한글, 1998, "회당에서의 악기사용 문제"를 보시기 바랍니다.>.
15)율법은 안식일에 개인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물건 옮기기, 운반하기, 던지기, 밀기 등을 금지합니다. 공공영역에서는 대략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습니다. 단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목숨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도 할 수 있고, 전화도 쓸 수 있고, 그밖에 행동들도 필요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안식일 법을 어떻게 이해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에 관한 기사가 많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마 12:1-8, 막 2:23-28, 눅 6:1-5),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사건(마 12:9-13, 막 3:1-6, 눅 6:6-11), 안식일에 18년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친 사건(눅 13:10-17), 안식일에 고창병에 걸린 사람을 고친 사건(눅 14:1-6),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요 5:2-18), 성전에서 안식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한 사건(요 7:14-24), 그리고 안식일에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친 사건(요 9:1-41)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벌어진 안식일 논쟁은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의 ‘일’을 유대인들이 ‘창조행위’로 본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창조행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행위에는 세 가지 범주의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둠이 빛이 되게 하는 것, 둘째는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는 것, 셋째는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과연 이 세 가지 범주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살림의 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막건축과 관련된 39가지의 일을 창조행위의 39가지 범주로 보고, 이것들을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의 범주로 확대 해석한 것을 비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서의 ‘일’은 하나님의 일, 곧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의 일, 곧 죽임의 일을 말한다고 봅니다. 빛의 일보다는 어둠의 일, 질서의 일보다는 혼돈의 일, 생명의 일보다는 죽임의 일들을 일삼는 것이 인간들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의 살림의 일을 묵상하고 본받으라는 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참 뜻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암시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마태복음 12장 9-13절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을 때, 거기 말라버린 한 쪽 손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에게 양이 한 마리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구해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가복음 3장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는 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창조행위, 곧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한 주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병자를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그러나 이 한 마디는 안식일에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고, 2,000큐빗(900미터 정도)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창조행위라면 그 창조행위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림의 일을 비난하고 질타하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본받고,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21절에 의하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아들 예수님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제칠일안식일 개념이 기독교에 와서는 제팔일 일요일 곧 주일로 바꿨지만, 안식의 개념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한 주간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일, 죽임의 일들을 많이 합니다. 일주일 가운데 단 하루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일, 복음의 일, 살림의 일을 행하기도 하고 묵상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 것이 참 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일, 생명의 일, 복음의 일은 적극적으로 행하고, 어둠의 일, 죽임의 일, 세상의 일은 멈추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인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과 관련해서 유대인들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만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부도수표나 다름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진심으로 창조주로 믿고, 또 그분을 진정으로 창조주 되게 하려면, 안식일에 우리 인간들이 모든 창조행위를 멈춰야한다 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안식일 개념은 이렇습니다.
첫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시내산기슭에서 체결한 계약의 내용이자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기 20장 8-11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십계명 가운데 제4계명인데, 내용은 제칠일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데,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4시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유대인들은 이 안식일 계명을 ‘직장에 출근하지 말라.’거나 ‘주중에 진행하던 모든 생업을 중단하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이 일이고, 무엇이 일이 아닌가라는 문제에 부딪치게 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가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놓고 수천 년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입니다. 환경이 바뀌고 문명이 바뀌면 생활양식도 바뀝니다. 이 바뀐 생활패턴에서 부딪치는 새로운 문제들 때문에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그들의 행위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인지, 혹은 해도 좋을 일인지를 놓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일의 범주를 ‘창조행위’(Melacha)에 국한 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셨고, 제칠일인 안식일에 쉬셨습니다(창 2:2). 안식일에 창조를 멈추신 것은 천지만물이 다 완성되었고 전혀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멈추셨던 것처럼 인간들도 안식일에 모든 창조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출 20:8-11). 안식일에 일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완벽하다는 사실과 우주가 인간의 개입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에 일을 멈춤으로써 창조주를 진정으로 하나님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개념을 ‘완성’으로 생각합니다. 세계의 완성, 나의 완성, 하나 됨에로 가는 길(path) 곧 할라카(halacha)라고 말합니다.
유대교는 하나님과 인간과 우주에 관한 교리의 종교가 아니라,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규정과 실천들로 가득한 포괄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먹고 먹을 수 없는가? 무엇을 입을 수 있고 입을 수 없는가? 사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명절과 안식일은 어떻게 지키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인간과 동물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와 같이 살면서 필요한 실제적인 규정들로 가득한 합니다. 이런 규정들이 수백 수천가지가 됩니다. 유대교에서는 이것을 '할라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의 법'이라고 번역되지만, '걸어가다, 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길’이란 뜻입니다. 우리말에 ‘도’(道)에 해당됩니다.
셋째, 유대인들은 인간의 창조행위를 39가지의 범주로 규정합니다. 성경은 무엇이 “인간의 창조행위”인가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광야시대에 성막(Mishkan)을 짓도록 한 출애굽기 31-35장의 명령을 통해서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막건축은 그 자체가 세계의 축소판이며, 창조행태의 모든 것을 대표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 39가지 범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씨뿌리기, 밭 갈기, 추수하기(자르기), 거두기(묶기), 타작하기, 까부르기, 고르기, 빻기, 체질하기, 반죽하기, 굽기, 털깎기, 표백하기, 풀기(빗질하기), 물들이기, 실뽑기, 베틀에 실 걸기, 직조하기, 실 제거하기, 매듭매기, 매듭풀기, 바느질하기, 찢기, 가두기(덫 또는 올가미 설치), 죽이기, 가죽 벗기기, 소금치기(무두질하기), 선긋기(표시하기), 매끄럽게 하기 및 구김살 펴기, 재단하여 자르기, 알파벳 두 자 이상쓰기, 알파벳 두 자 이상 지우기, 건축하기, 허물기, 불끄기, 불 지피기, 마지막 망치질하기, 운반하기.
넷째, 유대인들은 성막건축에 필요한 상기한 39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의 범주로 간주합니다. 그러니까 광야에서 성막을 만들었던 39가지의 공정에 연관된 일들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창조활동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혼동하지 말아야할 것은 39가지 범주란 말이 39가지 안식일 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범주’라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39가지 범주에 들어가는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은 수백 수천 가지에 이릅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1)나뭇가지와 잎을 뽑거나 자르기, 꽃 꺾기, 과일 따기, 채소 또는 나물채취하기, 잔디 깎기, 화초에 물주기를 할 수 없습니다.
2)밭 갈기, 씨뿌리기, 과일, 꽃, 나뭇가지 등을 모우기, 타작하기, 알곡 고르기, 과일을 짜서 주스내기, 상한 과일이나 음식, 더러운 그릇 등을 골라내는 것이 금지됩니다.
3)빻기나 찧기, 체질하기, 까불리기, 반죽하는 것이 금지됩니다.
4)불 켜기와 끄기, 음식과 물질에 열을 가해 변화를 주는 것이 금지됩니다. 밤중에 불을 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미리 미등을 켜놓거나 화장실 등의 전기스위치에 테이핑을 해둡니다.
5)손발톱 깎기, 털 자르기, 털 뽑기, 머리 빗질도 안 됩니다. 머리털이 뽑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부드러운 털 빗은 허용됩니다. 손톱깎이나 빗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게 안식일 전에 미리 치워둡니다.
6)빨래와 사워도 안 됩니다. 뻗친 머리칼을 단정히 하기 위해서 물을 뿌리는 것만 허용됩니다. 화장도 안 되고 선탠도 안 됩니다. 입술에 아무것도 문질러 바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립스틱을 바를 수 없습니다.
7)바느질도 안 됩니다. 접착제나 압침 사용도 안 됩니다. 종이우유팩을 여는 것도 안 됩니다. 절이기, 소금뿌리기 등의 방부처리도 안 됩니다.
8)알파벳 두 자 이상 쓰기, 선긋기도 안 됩니다. 심지어 글쓰기를 하게 할 어떤 행위도 금지됩니다. 반대로 알파벳 두 자 이상을 지워서도 안 됩니다. 연필이나 펜 종류는 안식일 전에 눈에 띄지 않게 미리 치워놓아야 합니다.
9)절취선이 있는 티슈박스의 개봉이 안 되고, 두루마리휴지를 떼어낼 수 없습니다. 안식일에 쓸 휴지를 미리 떼어놓거나 또는 이미 절취되어 있는 티슈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10)쇼핑을 할 수 없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안식일 전에 플러그를 미리 빼놓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11)땅에다 대고 무엇을 짓거나 수리를 해서도 안 되고, 부수는 것도 안 됩니다.
12)불을 피우거나 끌 수 없고, 전기스위치를 켜고 끌 수 없습니다. 자동차의 시동도 걸 수 없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운전을 할 수 없습니다.
13)구두나 운동화에 새로 끈을 끼우는 것도 안 됩니다.
14)악기연주가 금지됩니다. 랍비들은 우발적인 조율을 막기 위해서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래하기와 휘파람 부는 것은 허용됩니다<주: 이 부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최한구 저, {유대인은 EQ로 시작하여 IQ로 승리한다} 도서출판 한글, 1998, "회당에서의 악기사용 문제"를 보시기 바랍니다.>.
15)율법은 안식일에 개인영역에서 공공영역으로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물건 옮기기, 운반하기, 던지기, 밀기 등을 금지합니다. 공공영역에서는 대략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습니다. 단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목숨을 구하는 일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운전도 할 수 있고, 전화도 쓸 수 있고, 그밖에 행동들도 필요에 따라 할 수 있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보다 우선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안식일 법을 어떻게 이해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안식일 논쟁에 관한 기사가 많습니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사건(마 12:1-8, 막 2:23-28, 눅 6:1-5),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친 사건(마 12:9-13, 막 3:1-6, 눅 6:6-11), 안식일에 18년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인을 고친 사건(눅 13:10-17), 안식일에 고창병에 걸린 사람을 고친 사건(눅 14:1-6),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친 사건(요 5:2-18), 성전에서 안식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한 사건(요 7:14-24), 그리고 안식일에 날 때부터 소경된 자를 고친 사건(요 9:1-41)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벌어진 안식일 논쟁은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서의 ‘일’을 유대인들이 ‘창조행위’로 본 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창조행위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창세기 1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행위에는 세 가지 범주의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어둠이 빛이 되게 하는 것, 둘째는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는 것, 셋째는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과연 이 세 가지 범주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를 안식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할 살림의 일로 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성막건축과 관련된 39가지의 일을 창조행위의 39가지 범주로 보고, 이것들을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들의 범주로 확대 해석한 것을 비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서의 ‘일’은 하나님의 일, 곧 세 가지 범주의 창조행위가 아니라, 인간들의 일, 곧 죽임의 일을 말한다고 봅니다. 빛의 일보다는 어둠의 일, 질서의 일보다는 혼돈의 일, 생명의 일보다는 죽임의 일들을 일삼는 것이 인간들의 일입니다. 이런 일들을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멈추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분의 살림의 일을 묵상하고 본받으라는 것이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의 참 뜻이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암시하셨습니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이 마태복음 12장 9-13절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을 때, 거기 말라버린 한 쪽 손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에게 양이 한 마리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구해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마가복음 3장 4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그리고는 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하신 말씀은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창조행위, 곧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한 주장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병자를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 그러나 이 한 마디는 안식일에 2미터 이상 물건을 운반할 수 없고, 2,000큐빗(900미터 정도) 이상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창조행위라면 그 창조행위는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살림의 일을 비난하고 질타하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왜곡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본받고, 살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5장 19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21절에 의하면,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아들 예수님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 배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교의 제칠일안식일 개념이 기독교에 와서는 제팔일 일요일 곧 주일로 바꿨지만, 안식의 개념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한 주간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일, 죽임의 일들을 많이 합니다. 일주일 가운데 단 하루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일, 복음의 일, 살림의 일을 행하기도 하고 묵상하고 반성하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는 것이 참 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빛의 일, 생명의 일, 복음의 일은 적극적으로 행하고, 어둠의 일, 죽임의 일, 세상의 일은 멈추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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