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슈퍼스타(계 19:11-21)
본문
하나님의 슈퍼스타(계 19:11-21)
하나님에게는 마지막 시대를 위한 비밀병기와 슈퍼스타가 있다는 것이 계시록의 가르침입니다.
성도들과 사단과의 영적전쟁을 끝내줄 숨겨진 무기, 성도들에게 악의 무리와의 싸움을 승리로 장식시켜줄 감춰진 무기, 지고 있던 싸움을 역전시켜줄, 그래서 성도들을 역전의 용사로 만들어줄 비밀무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병기는 마지막 때를 위한 것이고, 사단의 무리를 파멸시키기 위한 것인데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감춰졌던 것이고, 천사도 사단도 몰랐던 하나님만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슈퍼스타는 사단과의 영적 게임을 영원히 끝내기 위한 특급비밀로 감춰뒀던 자인데, 게임에 이기고 있을 때는 게임장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이길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일 때 그 게임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예비 된 슈퍼스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병기는 기독교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슈퍼스타는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과 그리스도 때문에 성도들의 승리는 보장된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이긴 싸움을 하는 것이며, 승리가 보장된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슴을 쥐어뜯지 말아야합니다.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눈을 들어 전개될 역전의 상황을 볼 수만 있다면, 인내할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을 입증해 보일 수 있습니다.
본문 계시록 19장 11-21절을 한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백마를 탄자는 그리스도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백전백승의 장군을 상징합니다. 하늘이 열리자 그가 보인 것은 연극무대처럼 무대휘장 뒤에 감춰져 있던 슈퍼스타를 휘장이 열리고 관객이 비로소 그의 위용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인 것은 ‘신실하고 참되다’는 뜻인데, 그가 하늘로 올리어 가실 때, ‘속히 다시 오마’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신실하고 참되다’고 한 것입니다.
[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눈이 불꽃같고 머리에 월계관이 많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판단하시는 심판주요, 백전백승하는 불패신화를 가진 장군이란 뜻입니다. 또 이름 쓴 것이 있는데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비밀병기를 소유한 자란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리스도께서 피 묻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만 인류의 구세주이자 심판주이심을 말하는 것이고,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은 마치 암행어사가 임금의 말씀을 따라 고을에 이르러 그곳의 사람들에게 상벌을 내리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상벌을 내리실 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자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백마를 탔다는 것은 최후의 승리자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이한 검은 날카로운 양날 검을 말하고, 철장은 권세를 상징하는 철 막대기 홀을 말합니다. 검은 포도송이를 추수하듯 악한 자들을 추수하겠다는 뜻이고, 철봉으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악한 자들을 부수겠다는 뜻이며, 추수한 포도송이를 포도주 틀에 놓고 밟아 즙을 짜듯이 그들을 심판하겠다는 뜻입니다.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은 사단의 무리를 말합니다.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성도를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은 영적인 전쟁을 말합니다. 이런 영적인 전쟁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영적인 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20-21절은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그들을 추종하던 악한 무리들이 사로잡혀 산 채로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짐을 받게 되고 모든 영적인 싸움은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승리로 끝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35-39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유대인이 대단한 민족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3천년이 넘도록 매년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뜨는 유월절 밤이면,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이렇게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그들은 멀리 남의 나라에 살지만 언제나 그들의 눈을 동쪽 끝자락 시온에로 향하게 하고,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 유대인들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될 것이라는 하티크바 곧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루하고 긴 고난의 역사 속에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아무리 대단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우리 기독교인들과 무엇이 다른지 아십니까?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 힘겨운 싸움을 하지만, 승리를 얻기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아래서 보장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장된 최우수상을 받아오기 위해서 시합에 나가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겨놓은 싸움에 나가 잔당처리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절망할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얻기 힘든 싸움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복음아래서 보장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싸우는 우리가 잠시 힘들고 고달프고 어렵고 힘들다고, 잠시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낙심하고 있을 것입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계시록에서 말하는 슈퍼스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 밝혀지고 영적구원이 시작되는 것을 말하고, 계시록에서의 승리자 그리스도는 구원의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다 측량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에 포함된 것으로써 사도들을 통해서 알게 하신 내용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 숨겨놓았던 비밀병기가, 하나님이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 감춰놓았던 하나님의 슈퍼스타가 세상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골리앗과 같은 대장군이 아니라, 여리고 어린 소년 다윗과 같은 자란 것입니다. 큰칼과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골리앗이 아니라, 아무런 무장도 없이 시냇가에서 주운 반질반질한 자갈 몇 개를 손에 쥔 어린 다윗과 같은 자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골리앗 앞에 선 어린 다윗처럼 말도 되지 않고, 논리성도 없고, 상식에도 어긋나고, 뭐 그저 그런 어리석은 짓이고,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이 있고, 진리가 있고, 교훈이 있고, 살림이 있고,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 13절에서 그리스도가 피 묻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도 달랐고,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도 달랐고, 세상 사람들이 듣는 것과 달랐고,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도 달랐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 곧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비밀병기요 하나님의 슈퍼스타로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 드러난 것처럼, 연한 순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고, 간고를 많이 겪었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던 그가 역설적으로 우리의 질고를 졌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을 당한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고, 그가 상함을 당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고, 그가 징계를 받은 것은 우리가 평화를 누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가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가 나음을 입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양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그의 죽음을 마땅히 형벌 받아 죽을 우리의 허물 때문인 것을 알았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양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그의 죽음을 마땅히 형벌 받아 죽을 우리의 허물 때문인 것을 알았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혹은 유대인들이 기대했고 예상했던 골리앗 같은 혹은 알렉산더 대왕 같은 대장군을 들어 쓰시지 않고, 여리고 어린 다윗을 통해서 골리앗과 블레셋을 무찌르신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들어 하나님의 슈퍼스타와 비밀병기가 되게 하셨고, 존귀한 자로 높이셨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지혜 없는 자를 지혜 있게 하십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섭리가 있고, 경륜이 있고, 역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담대함과 인내로써 신실한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가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들어 높이실 그날이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마지막 시대를 위한 비밀병기와 슈퍼스타가 있다는 것이 계시록의 가르침입니다.
성도들과 사단과의 영적전쟁을 끝내줄 숨겨진 무기, 성도들에게 악의 무리와의 싸움을 승리로 장식시켜줄 감춰진 무기, 지고 있던 싸움을 역전시켜줄, 그래서 성도들을 역전의 용사로 만들어줄 비밀무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병기는 마지막 때를 위한 것이고, 사단의 무리를 파멸시키기 위한 것인데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감춰졌던 것이고, 천사도 사단도 몰랐던 하나님만의 계획 속에 있었던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슈퍼스타는 사단과의 영적 게임을 영원히 끝내기 위한 특급비밀로 감춰뒀던 자인데, 게임에 이기고 있을 때는 게임장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게임에서 이길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일 때 그 게임을 역전시키기 위해서 예비 된 슈퍼스타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비밀병기는 기독교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슈퍼스타는 기독교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과 그리스도 때문에 성도들의 승리는 보장된 것이고,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이미 이긴 싸움을 하는 것이며, 승리가 보장된 게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슴을 쥐어뜯지 말아야합니다.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눈을 들어 전개될 역전의 상황을 볼 수만 있다면, 인내할 수 있고, 믿음을 지킬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을 입증해 보일 수 있습니다.
본문 계시록 19장 11-21절을 한절씩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백마를 탄자는 그리스도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백전백승의 장군을 상징합니다. 하늘이 열리자 그가 보인 것은 연극무대처럼 무대휘장 뒤에 감춰져 있던 슈퍼스타를 휘장이 열리고 관객이 비로소 그의 위용을 보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인 것은 ‘신실하고 참되다’는 뜻인데, 그가 하늘로 올리어 가실 때, ‘속히 다시 오마’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신실하고 참되다’고 한 것입니다.
[12]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눈이 불꽃같고 머리에 월계관이 많은 것은 그리스도께서 불꽃같은 눈으로 판단하시는 심판주요, 백전백승하는 불패신화를 가진 장군이란 뜻입니다. 또 이름 쓴 것이 있는데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비밀병기를 소유한 자란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그리스도께서 피 묻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그가 만 인류의 구세주이자 심판주이심을 말하는 것이고, 그분의 이름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은 마치 암행어사가 임금의 말씀을 따라 고을에 이르러 그곳의 사람들에게 상벌을 내리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상벌을 내리실 자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탄자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들이 백마를 탔다는 것은 최후의 승리자들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이한 검은 날카로운 양날 검을 말하고, 철장은 권세를 상징하는 철 막대기 홀을 말합니다. 검은 포도송이를 추수하듯 악한 자들을 추수하겠다는 뜻이고, 철봉으로 질그릇을 부수듯이 악한 자들을 부수겠다는 뜻이며, 추수한 포도송이를 포도주 틀에 놓고 밟아 즙을 짜듯이 그들을 심판하겠다는 뜻입니다.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은 사단의 무리를 말합니다. 성도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성도를 대항하여 일으킨 전쟁은 영적인 전쟁을 말합니다. 이런 영적인 전쟁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가 가까워질수록 영적인 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20-21절은 사단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와 그들을 추종하던 악한 무리들이 사로잡혀 산 채로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타는 불 못에 던짐을 받게 되고 모든 영적인 싸움은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승리로 끝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성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10장 35-39절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유대인이 대단한 민족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희망의 끈을 결코 놓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은 3천년이 넘도록 매년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뜨는 유월절 밤이면,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이렇게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그들은 멀리 남의 나라에 살지만 언제나 그들의 눈을 동쪽 끝자락 시온에로 향하게 하고, 시온과 예루살렘의 땅에서 유대인들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될 것이라는 하티크바 곧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루하고 긴 고난의 역사 속에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아무리 대단한 민족이라 할지라도 우리 기독교인들과 무엇이 다른지 아십니까? 유대인들이 율법아래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 힘겨운 싸움을 하지만, 승리를 얻기가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아래서 보장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장된 최우수상을 받아오기 위해서 시합에 나가는 것이고,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겨놓은 싸움에 나가 잔당처리를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절망할 것입니까? 유대인들은 율법아래서 얻기 힘든 싸움을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데, 복음아래서 보장된 승리를 가져오기 위해서 싸우는 우리가 잠시 힘들고 고달프고 어렵고 힘들다고, 잠시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다고 낙심하고 있을 것입니까?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계시록에서 말하는 슈퍼스타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십자가의 못 박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비밀이 밝혀지고 영적구원이 시작되는 것을 말하고, 계시록에서의 승리자 그리스도는 구원의 완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둘이 다 측량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계획과 경륜에 포함된 것으로써 사도들을 통해서 알게 하신 내용들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이 숨겨놓았던 비밀병기가, 하나님이 이전 세대의 사람들에게 감춰놓았던 하나님의 슈퍼스타가 세상 사람들이 예상하고 기대했던 골리앗과 같은 대장군이 아니라, 여리고 어린 소년 다윗과 같은 자란 것입니다. 큰칼과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골리앗이 아니라, 아무런 무장도 없이 시냇가에서 주운 반질반질한 자갈 몇 개를 손에 쥔 어린 다윗과 같은 자란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골리앗 앞에 선 어린 다윗처럼 말도 되지 않고, 논리성도 없고, 상식에도 어긋나고, 뭐 그저 그런 어리석은 짓이고, 하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이 있고, 진리가 있고, 교훈이 있고, 살림이 있고, 영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 13절에서 그리스도가 피 묻은 옷을 입었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오셨던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도 달랐고, 세상 사람들이 보는 것과도 달랐고, 세상 사람들이 듣는 것과 달랐고, 세상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도 달랐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 곧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이제는 하나님의 비밀병기요 하나님의 슈퍼스타로서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가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에 드러난 것처럼, 연한 순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고,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고, 간고를 많이 겪었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던 그가 역설적으로 우리의 질고를 졌고, 우리의 슬픔을 대신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찔림을 당한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었고, 그가 상함을 당한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었고, 그가 징계를 받은 것은 우리가 평화를 누리기 위한 것이었고, 그가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가 나음을 입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양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그의 죽음을 마땅히 형벌 받아 죽을 우리의 허물 때문인 것을 알았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간 양 같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과연 그의 죽음을 마땅히 형벌 받아 죽을 우리의 허물 때문인 것을 알았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하나님의 비밀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혹은 유대인들이 기대했고 예상했던 골리앗 같은 혹은 알렉산더 대왕 같은 대장군을 들어 쓰시지 않고, 여리고 어린 다윗을 통해서 골리앗과 블레셋을 무찌르신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들어 하나님의 슈퍼스타와 비밀병기가 되게 하셨고, 존귀한 자로 높이셨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은 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지혜 없는 자를 지혜 있게 하십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고, 섭리가 있고, 경륜이 있고, 역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지금은 지고 있고, 밀리고 있고, 얻어맞고 있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담대함과 인내로써 신실한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적인 승리가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들어 높이실 그날이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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