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의 자료와 게시판을 분류별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빛과생명교회 주일설교 KCCS Digital Archive

유대민족의식: 우리는 노예들이었네(신 26:1-11)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조동호
댓글 0 조회 12,656 2006.08.04 12:53

본문

유대민족의식: 우리는 노예들이었네(신 26:1-11)

8월은 광복의 달입니다. 광복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와 비슷한 경험을 겪었던 유대민족의 의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최근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라는 영화가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이 영화에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미묘한 감정을 영화 속에서 표현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미반일정신을 어느 정도 담고 있는 이 영화의 내용은 고종이 진짜 국새를 숨겨 놓았다는 설정아래 한국과 일본이 과거 100여 년 전에 맺었던 불평등 조약을 백지화한다는 것이고, 일본 외상이 한국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하는 등 일본 입장에서는 껄끄러울 만한 장면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이 영화의 흥행여부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유월절은 우리 민족의 8.15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스라엘 민족의 경우 자기 나라가 아닌 이집트에서 해방을 맞았고, 해방을 맞이할 당시 자기 나라가 없었으며, 그 때가 부활의 희망을 상징하는 봄철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처음부터 대한제국이란 나라가 있었고, 우리나라에서 해방을 맞았기 때문에 해방과 동시에 주권을 회복하였습니다. 그 후 이념차이로 남북이 갈라지고, 전쟁의 상흔과 가족이 흩어지는 이산의 아픔을 겪게 되었고, 그 아픔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은 해방을 맞고도 나라가 한 동안 없었고, 가나안 땅을 차지한 후에도 아주 오랜 기간 유배생활을 했으며, 주후 70년 이후에는 1878년간이나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기독교와 모슬렘의 통치하에서 숫한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기독교는 유대인을 메시아를 죽인 대가를 치러야 할 죄인으로 여겼고, 모슬렘은 무하마드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기지도 않고 코란도 인정하지 않는 이교도로 여겼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이후에는 유대인들을 열등한 민족으로 취급하는 사회적 지위법이 공포되었고, 종교개혁시대이후에는 추방과 격리를 당하기도 하면서 히틀러 때까지 무려 1200만 명이 살해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나라도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살고는 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 산재한 반유대인 기류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3천년이 넘도록 지켜온 유월절은 아직도 유대인들에게는, 특히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는 단순히 해방을 기념하는 명절이 아니고, 희망을 노래하는 명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 이집트에서 해방되었던 때의 사건을 기념하면서 현재의 유배생활이 머지않은 장래에 끝나고 자기 나라에서 유월절을 먹게 되는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을 희망하였고, 지금까지도 희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매년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뜨는 유월절 밤이면,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이렇게 희망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비록 여기 타향에 살아도 내년에는 이스라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지금은 노예이지만 내년에는 자유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유월절 식사는 “La shana Ha ba-ah birushalayim” 곧 “내년에 예루살렘에서!”라는 인사로 끝을 맺습니다. 그들은 남의 나라에 살지만 언제나 그들의 눈을 동쪽 끝자락 시온에로 향하게 하고, 시온과 예루살렘 땅에서, 유대인들 자신의 땅에서 자유민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보다 축복받는 민족입니다. 비록 우리가 해방이후 남북으로 갈라졌고, 마음대로 서로 왕래조차 할 수 없는 이산의 아픔을 겪고는 있지만, 중동에서와 같은 전쟁과 민족 간 혹은 종교 간의 갈등을 겪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뿐 아니라, 신구약성서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입니다. 성서는 흑암과 혼돈과 죽음에서 시작되듯이 그 흑암이 빛이 되고, 그 혼돈이 질서가 되고, 그 죽음이 생명이 되는 이야기로 66권 전체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옛 선민인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연관된 사건 가운데 출애굽 사건이 가장 큰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 사건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국가를 이룬 사건이고,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는 사건입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구약성서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는 사건입니다. 또 이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예수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을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건입니다. 유월절 사건에 대한 이해 없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8월 광복의 달 한 달 동안은 유월절 명절에 뿌리를 둔 유대민족의식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해방과 신앙의 의미를 마음에 새겨보려고 합니다. 그 첫 번째 내용으로 오늘은 ‘아바딤 하이누’(우리는 노예들이었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해방절인 유월절 명절 식사 때에 ‘아바딤 하이누’ 곧 ‘우리는 노예들이었네’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노예들이었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 자유롭다네.
우리는 노예들이었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
우리는 노예들이었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다네. 자유롭다네.

이 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은 수치스런 과거사를 잊지 않고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우리 민족은 과거에 이집트인들의 노예였단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26장 5-9절의 말씀을 보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노예였을 뿐 아니라, 떠돌이 민족이었다는 고백을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5]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6]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7]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8]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왜 유대인들은 수치스러운 과거역사를 잊지 않고 자자손손 전승시키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답은 이렇습니다.
첫째, 하나님과의 연관성을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가기 위해서 입니다. 이스라엘의 시작과 진행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은 나라가 없던 떠돌이요, 나라가 세워진 후에도 유배생활과 노예상태를 벗지 못하던 민족이었는데, 하나님이 정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시고 언약을 맺어 선민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유대민족의 뿌리가 있고, 정신이 있고, 정체성이 있고, 행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여하히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번영하기도 하고, 쇠퇴하여 망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의 운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6장 20-25절을 보면, ‘왜 우리가 율법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하는가’라고 자녀들이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20]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21]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22]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23]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24]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25]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유대인들이 인식하는 율법은 지키기 어렵고 힘들고 고달픈, 그래서 정말 하기 싫은 뭐 그런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떠돌이였을 때 우리에게 안식할 나라를 주시고, 우리가 노예였을 때 우리에게 해방의 기쁨을 주신 분은 우리를 아내로 맞아주신 남편이신 하나님, 혹은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우리를 억압하기 위한 강제적인 법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과 약속한 언약의 내용이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우리가 그분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얼마나 성실하게 지키는가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언약의 말씀을 주셨고, 만일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면 기꺼이 그분과 약속한 언약의 내용을 충실하게 지킬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 대한 감사생활을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신명기 26장 2-11절을 보면, ‘왜 우리가 모든 소산의 맏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습니다.

[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5]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6]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7]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8]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소산의 맏물을 가져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이제까지의 말씀들에서 혹은 유대인들의 모든 기도와 고백들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자기들을 노예로 삼았던 나라들, 자기들을 침략하여 먼 다른 나라로 끌고 갔던 민족들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보복하라는 말이 없다는 점입니다. 유대인들이 어둡고 수치스러웠던 과거사를 들춰내서 자자손손 대대로 가르치는 이유는 오늘의 우리가 있음은 그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인도하셨고, 예전에는 눈물로 맛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을 급히 먹어야 했고, 사막에서 방황하며 천막에 거주했어야 했지만, 지금은 우리 땅에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젖과 꿀을 먹고 마시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겸손히 예물로써 감사드릴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자기 부족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만이나 오만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어떻습니까? 해마다 광복절이면 우리 민족의 부족에 대한 반성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보다는 오히려 부끄러웠던 과거를 감추기에 급급하고, 일본의 침략적 도발을 원망하고 지탄하고 그들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결코 부끄러운 역사가 아닙니다.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세계 10대 무역국으로 발전한 우리 민족은, 세계인들이 우리를 어떤 눈으로 보든지 간에 또 어떻게 말하든지 간에, 결코 부끄러운 민족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유대인 못지않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지난날의 역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뒷거름질치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들이 수치스런 과거사를 들춰내어 가르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은 흑암을 빛으로, 혼돈을 질서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기 위함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