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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구원의 하나님(레 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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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492 2006.08.0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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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구원의 하나님(레 25:38)

이 세상 그 어떤 민족도 유대인만큼 철저하게 신(神)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대인은 자기 민족의 뿌리, 이동, 사상, 사명에 대해서 명확하고 자세하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유대인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 민족의 정체성에 관련된 내용들이 ‘토라’라 일컫는 구약성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고, 그 율법이 613개의 조문(條文)으로 세분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부칙 또는 세칙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법들까지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와 같은 율법들을 억지나 강제로 지키지 아니하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일 년에 한 차례씩 완독할 뿐 아니라, 심히 사랑하여 안식일 예배 때에 그 말씀에 입을 맞출 뿐 아니라, ‘메주자’라 불리는 칼집형태의 작은 말씀상자를 만들어 집안 문설주 옆에 부착해 놓고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마다 세 번씩 입을 맞춥니다. 아무리 금실이 좋은 부부라도 이보다 더 자주 입을 맞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혹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말씀을 더 사랑하며, ‘트필린’이라 불리는 작은 말씀상자를 만들어 끈으로 그들의 손이나 이마에 붙이며, 또 ‘찌찌트’라 불리는 옷술을 겉옷과 ‘탈릿’이라 부르는 기도보에 달아 계명을 기억하며, 율법의 말씀에 따라 예배와 기도와 명절을 지키는데, 그 말씀이 하나님의 명령이어서보다는 자기 민족을 특별한 은총으로 선택하신 하나님과 선민의 조건으로 체결한 언약 또는 계약이란 인식하에서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율법은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식 때 행한 서약과 같은 것이며, 부부가 의무로써 그 서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 서약을 지키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내리 사랑으로 선택하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의 말씀을 기쁨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켜 왔던 것입니다. 율법은 유대인들이 이집트 대탈출 후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글이기 때문에 그 같은 인식을 공유하기 어려운 타민족의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맥락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율법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려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표(豫表)와 모형(模型)의 말씀으로 이해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문자적이든 영적이든 유대민족의식 속에 있는 하나님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이시기에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유대민족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버트란트 러셀과 같은 불신자들은 ‘종교의 기반을 두려움’이라고 말하지만, 민족의 뿌리와 이동과 사상과 사명을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명하는 유대인에게 하나님은 두려움 때문에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찾게 되는 신(神)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고 자발적으로 먼저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택하거나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택하시고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아담이 하와와 더불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에덴동산의 나무 사이로 숨었을 때 찾아오셔서 부르셨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9).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가인에게 표를 주시고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셨습니다(창 4:15). 하나님은 에녹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와 동행하셨습니다(창 5:24). 하나님은 노아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와 동행하셨습니다(창 6:8-9).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복을 주어 창대케 하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1-2). 이스라엘의 뿌리와 이동사가 여기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찾아오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동행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약속하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찾아오심, 동행(同行)하심, 약속하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오랜 유대민족의식이요 집단무의식입니다. 자기 민족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진 민족이요, 하나님의 자발적인 약속에 따른 민족이란 것입니다. 이런 믿음, 이런 은혜, 이런 선택, 이런 고백, 이런 집단무의식이 성도님들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꺼이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값없이 차별 없이 구원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그 누구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먼저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희생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헌신적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고 했습니다.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을 사랑한다”(요 4:19)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요 4:10).
둘째, 유대민족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그 후손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이동시키시고, 나라와 언약의 말씀인 율법과 명절과 사명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레위기 25장 38절과 민수기 15장 41절의 말씀을 보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또는 가나안 땅으로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 하여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 속에는 중요한 고백이 들어 있는데,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신 우리 영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란 것입니다. 말씀 자체로 보면,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직접 하신 말씀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유대인들의 민족의식이 담겨있습니다.
크고 작은 나라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건재하던 다 건국신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흔한 건국신화가 유대인들에게는 없습니다. 여신도 없고, 우상도 없고, 여사제도 없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주시기 위해서 갈데아 우르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가나안 땅으로 이동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후손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셨고, 이삭은 야곱을, 야곱은 열두 아들을 낳아 이집트로 들어가 거기서 큰 민족을 이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로 살던 민족을 이끌어내시고 나라와 언약의 말씀인 율법과 명절과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언약을 맺고 유대인들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런 신앙고백을 적어봤으면 합니다. 비록 각자의 살아온 삶과 환경이 다르지만, 내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성찰한다면, 반드시 유대인들의 신앙고백과 동일한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셋째, 유대민족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은 자발적으로 노예로 살고 있던 유대인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입니다. 레위기 25장 38절과 민수기 15장 41절을 비롯한 수많은 성구들이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신앙고백을 보면, 유대인의 하나님은 ‘독수리 날개로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출 19:4), ‘홍해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시 66:6, 78:13, 106:9)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사 가운데 두 번째 포도주 잔을 마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이적과 기사를 찬양하며 '다예누'라는 노래를 합창합니다. 어린이들은 신나는 곡조와 간단한 가사 때문에 특별히 이 노래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가 우리를 애급에서 불러내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충족한가!“라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넷째, 유대민족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은 이집트 대탈출 후 사막에서 머문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의 샘물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시고 길을 안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29장 5절에 따르면,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광야 40년 동안 몸의 옷이 낡지 않게 하시고,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않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 유대민족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곳 거주민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땅은 하나님이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그곳이 아무리 척박하고 메마른 사막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삶의 터전이기 때문에 젖과 꿀이 흐를 땅인 것입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은 그들의 땅을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1948년 건국이전에 유대인과 아랍인이 이미 소유하고 있던 사유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국가 소유입니다. 국유지는 사용목적에 따라 49년간 사용권을 허용하고 별 문제가 없을 때는 자동으로 사용권이 연장됩니다.
이스라엘의 농촌은 4가지 형태가 있는데, 함께 살고, 함께 일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키부츠가 270여개,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협동농업체인 모샤브가 360여개,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노동기업체인 모샤브 쉬투피가 70여개, 농촌의 소도읍인 모샤바가 100여개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부족한 나라입니다. 사막지역에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을 끌어다 쓰거나 지하 2,000m에서 물을 끌어올려 농업용수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기술혁신을 통해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적은 자본을 투자해서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는 노하우도 갖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막이나 다름없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고서도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고,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이야말로 세계의 그 어떤 아름답고 비옥한 땅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땅으로 간직하고 있고, 그들의 노력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적인 수준인 땅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막이나 다름없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하나님으로부터 선물 받고서도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었고, 하나님이 주신 그 땅이야말로 세계의 그 어떤 아름답고 비옥한 땅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땅으로 간직하고 있고, 그들의 노력으로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세계적인 수준인 땅으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얼마만큼 소중히 여기며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있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얼마만큼 받았고, 그것에 감사하고 있으며,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의 생애에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 역사하셨습니까? 유대인들은 그들의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어떤 모양으로 개입하시고 역사하셨습니까? 인간이 살아가는 곳에는 고금을 막론하고 가난과 폭력과 독재와 같은 다양한 형태의 노예속박이 있어왔습니다. 그러한 노예속박으로부터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구원활동을 멈추지 않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음은 하나님의 이 구원활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찾아오심, 동행(同行)하심, 약속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진 민족이요, 하나님의 자발적인 약속에 따른 민족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믿음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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