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민족의식: 언약의 하나님(출 2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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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언약의 하나님(출 24:1-11)
이 세상 그 어떤 민족도 유대인만큼 철저하게 신(神)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유대인은 자기 민족의 뿌리, 이동, 사상, 사명에 대해서 명확하고 자세하게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유대인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유대민족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하나님인식은 언약의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성경을 ‘구약’과 ‘신약’, 곧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나눠 부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은 전체가 하나님의 언약에 관련된 말씀입니다. 구약성서는 대부분 유대민족의 흥망성쇠의 원인을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고 있습니다. 예언자들의 활동표준은 바로 이 언약에 대한 성실성에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예언서들의 내용은 언약에 대한 유대민족의 성실성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 민족이 이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되었는가를 묻고, 그 해답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켰는가에서 찾았던 것입니다.
이토록 언약이란 말이 성서이해에 중요한 열쇠가 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 ‘언약’이란 말을 잘못 알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언약은 ‘약속’이란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약은 쌍방이 합의한 ‘계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옛 언약인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말하고, 그 계약의 말씀이 바로 십계명과 율법입니다. 그래서 십계명과 율법은 일방적인 하나님의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합의한 계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그것은 결혼서약서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십계명 제1-2계명이 바로 그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6절의 말씀이 십계명 제1-2계명인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일러 가라사대,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선민’이란 천지대군이신 하나님께 간택 받은 왕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과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남편이신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신약 곧 새 언약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침례 혹은 세례 때에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행한 서약을 말합니다. 이때의 서약은 남편이신 성삼위 하나님과 맺은 부부서약입니다. 성만찬은 바로 이 계약체결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시는 행위는 계약체결 후에 그 계약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갖는 의식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구약을 메시아의 초림에 대한 예언으로, 신약을 메시아의 재림에 대한 예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서를 이루는 대부분의 말씀이 이 시내산 언약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말씀들이고, 신약성서를 이루는 말씀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침례서약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말씀들이기 때문에 성서를 구약성서 혹은 신약성서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언약체결의 이니시어티브가 항상 하나님께 있다고 믿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언약을 맺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나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오셔서 은혜로 언약을 맺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으로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셔서 언약을 맺어주시고 새 출발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아담과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를 놓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5-18)고 하신 말씀은 결코 일방적인 명령이 아닙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인류 최초의 범죄자가 된 것은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 합의한 계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무지개를 놓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1-13)고 하신 말씀도 일방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언약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에는 반드시 쌍방의 조건부 약속이란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름 속에 무지개를 두어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은 인간 쪽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킬 때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티끌과 모래와 하늘의 별들과 할례를 놓고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관련해서 하나님은 언약이란 표현을 자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주된 약속은 자손과 땅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창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9-10)고 하신 말씀도 결코 일방적인 약속이 아닙니다.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하신 말씀은 쌍방의 합의 내용을 염두에 두신 말씀입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과의 왕권지속의 언약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언약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왕국이 주전 722년에 앗수리아 제국에 망하고, 남왕국 유대인들조차도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패망하는 위기를 맞이해서 다윗왕권이 메시아 왕권으로 그 희망이 바뀌게 됩니다. 이후로도 유대인들은 다윗왕권회복을 기대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소망을 꺾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시아 왕권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고, 과거 2,000여 년 전 제1차, 제2차 유대전쟁이 모두 다윗의 깃발아래 다윗왕권회복을 위해서 싸운 투쟁이었지만, 그것도 역시 메시아 왕권의 회복을 의미하였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는 다윗왕권회복, 이제는 그것이 메시아 왕권을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다윗왕권회복을 믿고 몹시 기다리고 있지만, 왕은 없고 수상만 있습니다. 그것은 왕이 될 수 있는 자는 오로지 메시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율법을 놓고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만든 계약이 바로 시내산계약입니다. 이 시내산 계약은 구약성서 39권을 구성하는 핵심내용일 뿐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 메시아가 되게 하고, 기독교를 탄생시킨 밑거름되기도 합니다. 이 시내산 계약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고백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출애굽기 24장 1-11절은 시내산 계약이 체결되는 장면입니다. 1-3절은 예비단계로써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의 의사를 묻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이런 저런 내용으로 계약을 맺고자 하시는데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묻는 것입니다. 회중은 한 목소리로,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지키고 계약을 맺겠습니다.”고 응답합니다.
4-8절은 본 단계로써 엄숙한 계약식의 장면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언약, 곧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기록하고, 계약식 당일 이른 아침에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지파 수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청년들로 하여금 번제를 드리게 하였고, 소들을 잡아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게 하였습니다. 번제는 제물을 모두 태워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인 내장이나 털을 상징적으로 태우고, 살코기는 예배자의 몫으로써 공동체 식사에 사용됩니다. 본문에서 화목제에 쓰인 쇠고기들은 계약식 마지막 단계인 언약의 식사 때에 사용됩니다.
계약식의 중요한 단계 가운데 하나는 제물의 피를 뿌리는 의식입니다. 모세가 소들의 피를 받아 반은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린 다음 기록한 언약서, 곧 율법서를 회중에게 읽어줍니다. 회중은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겠습니다.”고 응답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양푼에 담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11절은 언약의 식사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9-10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그리고 11절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대표들 간에 나눈 언약의 식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고 했습니다. 고대근동에서는 계약체결 후 그 계약이 체결되었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단을 쌓은 후에 계약 당사자들이 함께 식사를 나눴습니다.
이 시내산 계약을 구약 혹은 옛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이 계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회중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제사장의 나라가 되었으며,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출 19:5-6). 우리는 이것을 ‘선민’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회중이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조건이 바로 이 시내산 계약이고, 이 시내산 계약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계약의 내용인 십계명과 율법을 언약한대로 잘 지켜야 합니다.
이 언약의 내용에는 이스라엘 회중의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무, 곧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6절을 보면, “...너희가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였고, 신명기 29장 9절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흥망성쇠가 조상들이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지키는가에 달려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불행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기”(사 24:5)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불행이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렘 22:9)라고 했고,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 열조와 맺은 언약을 파하였기”(렘 11:10)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시내산 계약과 같지 아니한 새 언약을 이스라엘과 맺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렘 31:31-33).
이 새 언약을 히브리서 저자는 “더 좋은 언약”이라 했고, 예수님이 바로 “더 좋은 언약의 보증”(히 7:22) 또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히 8:6)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옛 것보다 “더 좋은 언약”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을 말합니다. 마가복음 14장 24절은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니라.”고 했고, 고린도전서 11장 25절은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를 통해서 성삼위 하나님과 언약식을 맺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새 언약 공동체가 되었으므로, 성만찬 식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다른 어떤 민족보다도 더 뚜렷하고 바위에 깊이 파 새긴 글처럼 지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시내산 계약 때문입니다. 이 계약으로 인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 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또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심히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 지킬 뿐 아니라, 그 하나님이 언약으로 땅을 주셨기에 비록 그 땅이 메마르고 척박한 사막일지라도 그 어떤 비옥하고 살기 좋은 나라와도 바꾸기를 원치 않으며, 그 땅을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며, 민족의 뿌리와 이동과 사상과 사명을 이 언약의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기 때문에 자기 민족이 떠돌이였었다는 것, 자기 민족이 노예였었다는 것을 숨기지 아니할 뿐 아니라, 야훼가 자기 민족의 하나님이 되시려고 노예였던 자들을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독수리 날개로 업어 홍해를 건너게 하셨고, 홍해를 육지처럼 지나가게 하셨고, 떠돌이였던 자들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그 어떤 악조건의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인도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입니까? 짐승의 피로 맺은 옛 언약공동체와 같지 아니하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 공동체가 아닙니까? 옛 언약공동체인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생활이 그러하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은 한번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에게 개선행진에로 인도하십니다. 이 하나님이 성도님들의 삶을 지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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