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바울(엡 2:19-3:13)
본문
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바울(엡 2:19-3:13)
수천 년 동안 자손대대로 조상의 하나님을 고백했던 엄청난 신앙의 유산을 가진 유대인들이 신생 기독교에 추월을 당하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옛 언약공동체로 무시해버린 기독교신앙과 복음에 뒤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 묶어버리고, 소수 유대민족의 신으로 제한해 버린 때문이 아닐까요? ‘조상들의 하나님 신앙’이 유대민족의 결속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민족신(民族神)으로 묶어버리는 단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 조상에게 계시하셨던 하나님은 결코 소수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될 수 없는 이 우주에 한분밖에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점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패배한 것입니다.
오랜 역사와 완고한 전통 속에 있던 유대교를 뛰어넘어 기독교시대를 연 인물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부름을 통해서 유대인의 하나님을 만인의 하나님으로 유대인의 구원의 하나님을 만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지평을 넓힌 사람입니다. 그는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2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6절에서는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을 받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일찍이 유대인들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이런 파격적인 선언이 계시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말한 내용이라고 했고,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다른 세대의 사람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이 자기 민족만의 하나님이란 편협한 사고에 빠진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 유대인도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과 동등한 자격을 얻는다는 것,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등하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된다는 것, 이것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8절)이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였던 비밀의 경륜”(9절)이며,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11절)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유대인들이 누구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전에는 바울의 이러한 선언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런 파격적인 대 선언 때문에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의 말씀대로 바울은 수없이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고, 날마다 교회들을 위하여 염려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방인 구원에 대해서 유대인과 한 점 차별도 두지 않고, 언약의 하나님과 조상의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일신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과 언약서인 토라를 자랑하는 유대인과 동등하게 취급한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문화가 다른 이방 나라에 하나님을 소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외국에서 출생해서 헬라어를 쓰고, 헬라어 성경을 읽으며, 외국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영내를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 스데반과 빌립과 같은 사람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과부를 구제하는 일로 불평이 생겨서 사도들을 대신할 일군들로 뽑힌 일곱 사람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흔히 일곱 집사라는 말을 쓰지만, 그들은 집사이기보다는 오히려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같은 이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사고가 민족주의에 묶여 있고,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배타주의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방인 선교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헬라파 유대인 회당에는 네로의 부인 포페아를 비롯해서 유대인 수에 못지않은 많은 수의 헬라인들이 유대교에 입교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에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 회당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기독교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첫째는 초기 기독교 박해가 헬라파 유대인들한테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역시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이었던 스데반을 살해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을 죽일 것을 공모하고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런 극심한 견제와 배척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레코로만 세계에 뿌리를 내려 급속히 성장할 수 있게 한 것도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편협한 사고 때문에 유대교에 매몰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기독교 복음을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가져가고, 키프로스로 가져가고, 터키로 가져가고, 그리스로 가져가고, 로마로 가져가고, 북아프리카로 가져간 사람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이었고, 대부분의 선교교회들이 이들 헬라파 유대인 회당을 출입했던 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 교회를 세우는 데는 열두 제자들과 같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들어 쓰셨지만, 안디옥과 해외에 이방인 교회를 세울 때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외국태생의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들어 쓰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들어 쓰셨지만, 사마리아지방에서는 빌립을 들어 쓰셨고, 해외선교는 바울과 바나바 등의 인물을 들어 쓰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은 베드로나 요한 또는 야고보 등을 보내어 해외선교를 하지 않고 박해자였던 바울이 필요했을까요? 왜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그리스말을 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필요했을까요?
첫째, 해외선교는 무엇보다도 선교지역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 스데반, 바나바, 바울, 실라 등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방문화에 익숙하였고, 무엇보다도 국제어인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처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무엇보다도 헬라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준비된 그릇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에 개종한 자들을 ‘의의 개종자’와 ‘문의 개종자’로 나누어 구분하였는데, ‘의의 개종자’는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의식을 준수하는 완전개종자를 말하고, ‘문의 개종자’는 율법과 유대교 의식에 제재 당하지 않고, 유대교 회당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방인들이 외국에 많았습니다. 터키에 있는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에서 1977년에 발굴된 2세기경 회당건립 후원자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에는 유대인이 69명인데 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무려 54명이나 되었고, 완전개종자도 3명이나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기념비는 초대교회 당시 회당을 출입하면서 유대교 신앙을 받아 드린 이방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알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입니다. 이들이 바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드릴 준비된 축복의 그릇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불러 축복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처음에 하나님을 아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서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곧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완전 불신자들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세계로 뻗어가는 징검다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위한 그릇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신 베드로와 그 밖의 사도들을 택하지 않고, 헬라파 유대인 바울을 택한 이유는 이방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들의 구원에 뜨거운 열정과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열린 사고와, 하나님의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세계화된 사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선민의식과 언약서에 대한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기 민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과 활동범위가 그들 민족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인 영토주의 그리고 율법주의의 소유자들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가야 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대표격인 베드로와 야고보는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인 영토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으며, 친지들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세계 선교에 기여할 능력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이었던 헬라파 사람들의 포용적이고 열린 복음적 사고와 익숙한 언어와 문화수준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쓰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면서도 열방민족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그 비밀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서 맞춤 그리스도를 바라고 원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믿으면서 제2의 출애굽사건을 이끌 그리스도의 등장을 기다렸고, 그 그리스도가 세울 ‘올람 하바’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하게 할 유대인 국가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간직했던 비밀을 그들은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깨닫고, 이것을 온 세계에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간직하셨던 당신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구속하시고, 죄 사함을 얻게 하시며(골 1:14, 엡 1:7),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는 것입니다(엡 2:1). 또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시고(골 1:18-20),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자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자녀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엡 1:3-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이방인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일찍부터 약속을 누렸던 유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외국인도 아니요, 문안의 객, 곧 손님 혹은 문의 개종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이며(엡 2:19),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을 물려받을 상속자들이란 것입니다(엡 1:11). 이 놀라운 소식을 온 세계에 전할 일군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뽑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나님을 믿되,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그래서 빗장을 안으로 걸고, 자기 울타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열방을 품은 크고 넓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바울처럼 세계로 뻗어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수천 년 동안 자손대대로 조상의 하나님을 고백했던 엄청난 신앙의 유산을 가진 유대인들이 신생 기독교에 추월을 당하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옛 언약공동체로 무시해버린 기독교신앙과 복음에 뒤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 묶어버리고, 소수 유대민족의 신으로 제한해 버린 때문이 아닐까요? ‘조상들의 하나님 신앙’이 유대민족의 결속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민족신(民族神)으로 묶어버리는 단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 조상에게 계시하셨던 하나님은 결코 소수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될 수 없는 이 우주에 한분밖에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점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패배한 것입니다.
오랜 역사와 완고한 전통 속에 있던 유대교를 뛰어넘어 기독교시대를 연 인물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부름을 통해서 유대인의 하나님을 만인의 하나님으로 유대인의 구원의 하나님을 만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지평을 넓힌 사람입니다. 그는 에베소서 2장 19절에서, 이방인 기독교인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와 같은 시민이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2절에서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에베소서 3장 6절에서는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을 받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일찍이 유대인들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이런 파격적인 선언이 계시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말한 내용이라고 했고,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다른 세대의 사람의 아들들이란 하나님이 자기 민족만의 하나님이란 편협한 사고에 빠진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 유대인도 예수님을 믿어야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과 동등한 자격을 얻는다는 것,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하심을 받는 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동등하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된다는 것, 이것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8절)이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였던 비밀의 경륜”(9절)이며,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11절)이라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유대인들이 누구며,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알기 전에는 바울의 이러한 선언들이 얼마나 파격적인 것인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이런 파격적인 대 선언 때문에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이하의 말씀대로 바울은 수없이 옥에 갇히고, 수없이 매를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고, 유대인들에게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고, 날마다 교회들을 위하여 염려 속에서 살았던 것입니다.
이방인 구원에 대해서 유대인과 한 점 차별도 두지 않고, 언약의 하나님과 조상의 하나님을 자랑하며 유일신 하나님의 선민이 된 것과 언약서인 토라를 자랑하는 유대인과 동등하게 취급한 바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 나라와 이스라엘의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헬라파 유대인들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높은 벽을 뛰어넘어 문화가 다른 이방 나라에 하나님을 소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은 외국에서 출생해서 헬라어를 쓰고, 헬라어 성경을 읽으며, 외국에 거주하면서 이스라엘 영내를 출입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 스데반과 빌립과 같은 사람들이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과부를 구제하는 일로 불평이 생겨서 사도들을 대신할 일군들로 뽑힌 일곱 사람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입니다. 흔히 일곱 집사라는 말을 쓰지만, 그들은 집사이기보다는 오히려 전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과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와 같은 이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출생해서 아람어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며, 이스라엘 영내에서 거주하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사고가 민족주의에 묶여 있고,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배타주의에 묶여 있기 때문에 이방인 선교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반면에,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인 선교에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헬라파 유대인 회당에는 네로의 부인 포페아를 비롯해서 유대인 수에 못지않은 많은 수의 헬라인들이 유대교에 입교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준에 있었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 회당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현상이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기독교는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첫째는 초기 기독교 박해가 헬라파 유대인들한테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역시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이었던 스데반을 살해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었던 바울을 죽일 것을 공모하고 39대의 매를 다섯 번이나 때리고 감옥에 가두고, 돌로 쳐서 거의 죽게 만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런 극심한 견제와 배척과 핍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그레코로만 세계에 뿌리를 내려 급속히 성장할 수 있게 한 것도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셋째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편협한 사고 때문에 유대교에 매몰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기독교 복음을 팔레스타인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가져가고, 키프로스로 가져가고, 터키로 가져가고, 그리스로 가져가고, 로마로 가져가고, 북아프리카로 가져간 사람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이었고, 대부분의 선교교회들이 이들 헬라파 유대인 회당을 출입했던 자들에 의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 교회를 세우는 데는 열두 제자들과 같이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들어 쓰셨지만, 안디옥과 해외에 이방인 교회를 세울 때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외국태생의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을 들어 쓰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들어 쓰셨지만, 사마리아지방에서는 빌립을 들어 쓰셨고, 해외선교는 바울과 바나바 등의 인물을 들어 쓰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하나님은 베드로나 요한 또는 야고보 등을 보내어 해외선교를 하지 않고 박해자였던 바울이 필요했을까요? 왜 하나님은 기독교를 세우는데 그리스말을 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 필요했을까요?
첫째, 해외선교는 무엇보다도 선교지역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한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빌립, 스데반, 바나바, 바울, 실라 등은 그 당시 상황으로 보면, 이미 세계화가 이루어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교육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이방문화에 익숙하였고, 무엇보다도 국제어인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야고보처럼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아람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본토출생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유대인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무엇보다도 헬라어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는 준비된 그릇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 유대교에 개종한 자들을 ‘의의 개종자’와 ‘문의 개종자’로 나누어 구분하였는데, ‘의의 개종자’는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의식을 준수하는 완전개종자를 말하고, ‘문의 개종자’는 율법과 유대교 의식에 제재 당하지 않고, 유대교 회당에 참석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방인들이 외국에 많았습니다. 터키에 있는 아프로디시아스(Aphrodisias)에서 1977년에 발굴된 2세기경 회당건립 후원자 명단이 새겨진 기념비에는 유대인이 69명인데 비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무려 54명이나 되었고, 완전개종자도 3명이나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기념비는 초대교회 당시 회당을 출입하면서 유대교 신앙을 받아 드린 이방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알게 해주는 아주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입니다. 이들이 바로 기독교 복음을 받아드릴 준비된 축복의 그릇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불러 축복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기독교 복음은 처음에 하나님을 아는 히브리파 유대인들에서 시작하여 디아스포라 곧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 의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에 의해서 완전 불신자들인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 세계로 뻗어가는 징검다리였습니다.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위한 그릇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본토출신 베드로와 그 밖의 사도들을 택하지 않고, 헬라파 유대인 바울을 택한 이유는 이방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그들의 구원에 뜨거운 열정과 하나님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열린 사고와, 하나님의 구원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는 세계화된 사고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선민의식과 언약서에 대한 자기도취에 빠져서 자기 민족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갇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역할과 활동범위가 그들 민족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인 영토주의 그리고 율법주의의 소유자들인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가야 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대표격인 베드로와 야고보는 편협한 배타적 선민의식과 독점적인 영토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으며, 친지들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세계 선교에 기여할 능력이 많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준비된 그릇이었던 헬라파 사람들의 포용적이고 열린 복음적 사고와 익숙한 언어와 문화수준을 세계 선교를 위해서 쓰셨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선민이었으면서도 열방민족들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그 비밀에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위해서 맞춤 그리스도를 바라고 원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약속을 문자적으로 믿으면서 제2의 출애굽사건을 이끌 그리스도의 등장을 기다렸고, 그 그리스도가 세울 ‘올람 하바’가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계를 지배하게 할 유대인 국가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세전부터 간직했던 비밀을 그들은 제대로 알 수 없었고, 지금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깨닫고, 이것을 온 세계에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세전부터 간직하셨던 당신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온 인류를 구속하시고, 죄 사함을 얻게 하시며(골 1:14, 엡 1:7),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을 살리시는 것입니다(엡 2:1). 또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시고(골 1:18-20),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을 주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자를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자녀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엡 1:3-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비록 그들이 약속을 받지 못한 이방인일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일찍부터 약속을 누렸던 유대인들과 비교했을 때, 외국인도 아니요, 문안의 객, 곧 손님 혹은 문의 개종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요, 하나님의 진정한 가족이며(엡 2:19),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축복을 물려받을 상속자들이란 것입니다(엡 1:11). 이 놀라운 소식을 온 세계에 전할 일군으로, 이방인의 사도로 바울이 뽑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장 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하나님을 믿되, 히브리파 유대인들처럼 편협하고 배타적이고, 그래서 빗장을 안으로 걸고, 자기 울타리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열방을 품은 크고 넓은 활짝 열린 마음으로 바울처럼 세계로 뻗어가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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