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빌립과 스데반(행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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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 빌립과 스데반(행 8:1-6)
빌립의 공헌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매몰될 번한 기독교를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며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져간 것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빌립이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스데반의 공헌은, 공헌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후에 불세출의 이방인 사도가 된 바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기독교복음의 불을 지핀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 일의 고귀한 희생자였습니다. 교회가 유능한 젊은 일군 한 사람을 얻는 일에 스데반이 목숨을 바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으며, 박해를 피해서 흩어져야 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에게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살아가게 한 좋은 의미의 족쇄가 되었을 것입니다.
빌립과 스데반의 등장은 예기치 아니한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곧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째가 되는 일요일에 성령이 불의 혀처럼 제자들 위에 강림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로 시작된 인류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체계와 질서가 채 서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고”(행 6:7), 문화와 언어가 다른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서로 갈등하게 되었습니다(6:1)
이 갈등은 사도행전 6장 1절의 말씀대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6:1)서 비롯되었습니다. “원망”의 근원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모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곱을 택하여”(6:3) 헬라파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삼았는데,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은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빌립과 스데반도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에 속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2-4절에 따르면, 본래 빌립과 스데반은 열두 사도들을 대신해서 구제를 받아야할 자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책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들이었고,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할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잘 모르긴 해도, 이들은 아마 일주일에 하루씩 책임을 맡아 구제업무를 관리했거나 자기 구역을 따로 맡아 관리했을 것입니다.
빌립과 스데반은 구제업무를 관리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성격상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사도들에게만 맡겨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사도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기독교복음이 편협한 배타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울타리를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빌립과 스데반이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선출되고,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아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는(행 6:6) 점에서 그들이 평신도 지도자(집사)였는지, 목회자(장로)였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후에 빌립은 “전도자 빌립”으로 불렸습니다(행 21:8).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기독교복음이 편협한 배타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넘어 이방세계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유대총독부가 있는, 그래서 이방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가이사랴에 살았습니다.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방인과의 접촉을 당연시하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성품 때문에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지방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에티오피아 사람 내시에게조차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푼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이 상종도 아니 하고, ‘개’ 취급했던 사마리아 사람과 에티오피아 사람인 흑인 내시에게까지 복음전하는 일을 전혀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왜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방인 선교의 그릇들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빌립은 복음전도, 특히 이방인 선교에 뜨거운 열정과 열린 마음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이었다는 점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경외자였던 에티오피아인 내시에게조차 기독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사마리아 교회와 이방인 교회들의 정통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승인권이 아람어를 쓰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었다할지라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사고의 한계 때문에 세계 선교의 그릇들은 빌립과 스데반,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감당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인들이었습니다. 앗수리아제국에 망하여 대부분 포로로 끌러갔고, 폐허 속에 내버려진 가난하고 못 배운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과 점령국 앗수르제국이 이주시킨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고, 종교적인 혼합도 막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솔로몬 왕이 죽은 해인 주전 930년에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면서 분열하였습니다. 북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였고, 사르곤은 이스라엘인 27,290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후 한 세기 동안 유다왕국의 히스기야왕 때(주전 715-686년, 대하 30:1이하)와 요시아왕 때(주전 640-609년, 왕하 23:15이하)에 종교적 통합과 화해를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유배이후에도 화해를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에 대항하여 자기들의 성산인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면서(요 4:20)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인종적 종교적 혼혈족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앗수르 침략이후 사마리아에는 혼족과 혼교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후 혼교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유대인들의 지역감정은 누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128년에 요한 힐카누스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분열의 원인이 되는 성전을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전 63년 이후 로마제국의 정복 아래서 사마리아는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지역감정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북 왕국 사람들보다 130여년 늦게 바벨론제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남왕국 유대인들은 다행히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게토를 이뤄 살았기 때문에 혈통과 유대교신앙의 혼합을 막을 수 있었고, 고국에 돌아올 때는 유대인 혈통은 물론이고, 더욱 발전된 유대교신앙까지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민족적 종교적 우월주의에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라 부르며 상종하기를 꺼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피가 섞인 동족이었으면서도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디아스포라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빌립은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도를 함에 있어서 특정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스데반은 빌립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선출된 일곱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도 역시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는 헬라파 유대인들만이 따로 모이는 회당이 두개 정도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후에 바울 사도가 된 사울과 스데반이 부딪힌 곳이 바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이었습니다. 이곳에 출입했던 스데반이 회당예배 때, 정확히 말하면, 그 주간에 읽는 성서낭독 후에 주어진 설교시간에(당시 회당에서는 성서낭독 후에 지목된 자나 자원자가 나서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하였고, 설교를 듣고 난 사울은 스데반을 이단자로 간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언약서인 모세오경에는 이단자를 돌로 쳐 죽이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앞장을 서서 헬라파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돌로 치게 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 기독교에 개종한 자들을 색출하여 말살시키기 위해서 이웃나라에까지 갔다가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졌고, 후에는 바울로 이름을 바꾸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스데반의 순교이후 사울의 박해를 피해 외국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다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을 보면,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스데반의 순교는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을 온 세계로 흩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빌립과 스데반처럼 이방인 선교에 열정을 품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기독교복음을 전하고, 이방인 지역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세웠으니, 교회를 흩어지게 한 사울의 박해가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데반의 설교와 거룩한 죽음은 후에 불세출의 이방인 사도가 된 바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기독교복음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유능한 젊은 일군 한 사람을 얻는 일에 스데반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로 하여금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쉬지 않고 달리게 한 채찍이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1-6절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박해받기 시작하여, 사도들 이외에는 모두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를 생각하여 몹시 통곡하였다. 그런데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다. 그러나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무리는 빌립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가 하는 기적을 보기도 하는 가운데서, 한 마음으로 빌립이 하는 말을 좇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그리스말을 사용할 줄 알고, 또 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깔보는 절반쯤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내려가 복음을 전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박해자 사울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하여 바울이 되고, 이방인 선교사로 자처하면서 목숨을 내걸고 해외에서 선교할 때에 동족인 헬라파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들을 피하여 다른 도시로 피신할 때마다 그곳 도시들에 새로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빌립과 스데반의 활동범위에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해외선교에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빌립은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커버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주제일 뿐 아니라, 누가는 실제로 사도행전을 기독교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더듬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보다 완고한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던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에 머물렀고, 야고보보다는 훨씬 더 헬라파 유대인들의 사고에 다가서려고 했던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까지 그의 활동범위를 넓혔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님 경외자였던 고넬료 가정에 세워진 가이사랴 교회를 창립하였고, 빌립과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 전도자들의 활동에 힘입어 사마리아와 안디옥과 로마에까지 그의 활동범위를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비록 그가 해외에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보다 앞서서 유대지방과 사마리아로 그의 활동범위를 넓힌 전도자였습니다. 스데반은 아쉽게 예루살렘에서 전도활동을 펼치다가 기독교인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도 못했고 세계화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들의 동족에게 기독교복음의 발판을 놓는 일에 공헌하였으나 이방민족에게까지 기독교복음을 확장하는 선교의 주도권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주후 70년 유대전쟁의 패배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후 1878년간 해외에서의 유배생활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유대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재앙이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실질적인 주도권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 이후 교회의 주도권은 점차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시대를 ‘올람 하바’라고 했습니다. 이 세계가 다가올 종말세계인데, 이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인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첫 설교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이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다.”(눅 5:38)고 하신 것은 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죄를 뉘우치라는 말씀도 되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 곧 ‘새 부대’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 등을 말하는 것이며, ‘새 포도주’란 ‘올람하바’ 곧 메시아시대 혹은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실현된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메시아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답게 열린 생각과 창조적인 활동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그릇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을 줄 알아야겠고, 새 시대를 맞이할 기름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빌립의 공헌은 유대인들에 의해서 매몰될 번한 기독교를 유대인들이 개 취급하며 상종도 하지 않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가져간 것입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빌립이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스데반의 공헌은, 공헌이라고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후에 불세출의 이방인 사도가 된 바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기독교복음의 불을 지핀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 일의 고귀한 희생자였습니다. 교회가 유능한 젊은 일군 한 사람을 얻는 일에 스데반이 목숨을 바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으며, 박해를 피해서 흩어져야 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에게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살아가게 한 좋은 의미의 족쇄가 되었을 것입니다.
빌립과 스데반의 등장은 예기치 아니한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곧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50일째가 되는 일요일에 성령이 불의 혀처럼 제자들 위에 강림함으로써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의 설교로 시작된 인류 최초의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는 체계와 질서가 채 서지 못한 상태에서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졌고”(행 6:7), 문화와 언어가 다른 히브리파 유대인들과 헬라파 유대인들이 서로 갈등하게 되었습니다(6:1)
이 갈등은 사도행전 6장 1절의 말씀대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6:1)서 비롯되었습니다. “원망”의 근원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은 모두 히브리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곱을 택하여”(6:3) 헬라파 유대인들의 지도자로 삼았는데,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은 모두가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빌립과 스데반도 이 때 뽑힌 일곱 사람에 속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2-4절에 따르면, 본래 빌립과 스데반은 열두 사도들을 대신해서 구제를 받아야할 자들에게 식량을 배급하거나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책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들이었고, 사도들이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할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이었습니다. 잘 모르긴 해도, 이들은 아마 일주일에 하루씩 책임을 맡아 구제업무를 관리했거나 자기 구역을 따로 맡아 관리했을 것입니다.
빌립과 스데반은 구제업무를 관리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의 성격상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사도들에게만 맡겨두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사도들이 관심을 갖지 못하는 소외계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여유 시간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서 기독교복음이 편협한 배타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울타리를 서서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빌립과 스데반이 교회로부터 정식으로 선출되고,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아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다는(행 6:6) 점에서 그들이 평신도 지도자(집사)였는지, 목회자(장로)였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후에 빌립은 “전도자 빌립”으로 불렸습니다(행 21:8). 중요한 것은 그들과 같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곧 헬라파 유대인들에 의해서 기독교복음이 편협한 배타주의와 율법주의에 사로잡힌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손과 팔레스타인의 국경을 넘어 이방세계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립은 유대총독부가 있는, 그래서 이방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가이사랴에 살았습니다.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이방인과의 접촉을 당연시하는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런 성품 때문에 예루살렘 이외의 지역에 복음을 전한 최초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지방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고, 유대인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에티오피아 사람 내시에게조차 복음을 전하고 침례를 베푼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이 상종도 아니 하고, ‘개’ 취급했던 사마리아 사람과 에티오피아 사람인 흑인 내시에게까지 복음전하는 일을 전혀 꺼려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이었다는 점은 왜 헬라파 유대인들이 이방인 선교의 그릇들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빌립은 복음전도, 특히 이방인 선교에 뜨거운 열정과 열린 마음을 가진 헬라파 유대인이었다는 점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고, 헬라어를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경외자였던 에티오피아인 내시에게조차 기독교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사마리아 교회와 이방인 교회들의 정통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승인권이 아람어를 쓰는 베드로와 요한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있었다할지라도,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사고의 한계 때문에 세계 선교의 그릇들은 빌립과 스데반,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들이 감당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혼혈인들이었습니다. 앗수리아제국에 망하여 대부분 포로로 끌러갔고, 폐허 속에 내버려진 가난하고 못 배운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과 점령국 앗수르제국이 이주시킨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이고, 종교적인 혼합도 막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는 솔로몬 왕이 죽은 해인 주전 930년에 왕국이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지면서 분열하였습니다. 북 왕국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였고, 사르곤은 이스라엘인 27,290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 후 한 세기 동안 유다왕국의 히스기야왕 때(주전 715-686년, 대하 30:1이하)와 요시아왕 때(주전 640-609년, 왕하 23:15이하)에 종교적 통합과 화해를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유배이후에도 화해를 위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이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에 대항하여 자기들의 성산인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면서(요 4:20) 대립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인종적 종교적 혼혈족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앗수르 침략이후 사마리아에는 혼족과 혼교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후 혼교의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유대인들의 지역감정은 누그러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128년에 요한 힐카누스가 사마리아를 정복하고 분열의 원인이 되는 성전을 파괴시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주전 63년 이후 로마제국의 정복 아래서 사마리아는 유다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지역감정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북 왕국 사람들보다 130여년 늦게 바벨론제국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남왕국 유대인들은 다행히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게토를 이뤄 살았기 때문에 혈통과 유대교신앙의 혼합을 막을 수 있었고, 고국에 돌아올 때는 유대인 혈통은 물론이고, 더욱 발전된 유대교신앙까지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민족적 종교적 우월주의에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라 부르며 상종하기를 꺼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피가 섞인 동족이었으면서도 감정의 골이 깊었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디아스포라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마리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전도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빌립은 사마리아인들의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전도를 함에 있어서 특정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스데반은 빌립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선출된 일곱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도 역시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는 헬라파 유대인들만이 따로 모이는 회당이 두개 정도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측하고 있습니다. 후에 바울 사도가 된 사울과 스데반이 부딪힌 곳이 바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이었습니다. 이곳에 출입했던 스데반이 회당예배 때, 정확히 말하면, 그 주간에 읽는 성서낭독 후에 주어진 설교시간에(당시 회당에서는 성서낭독 후에 지목된 자나 자원자가 나서서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하였고, 설교를 듣고 난 사울은 스데반을 이단자로 간주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의 언약서인 모세오경에는 이단자를 돌로 쳐 죽이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앞장을 서서 헬라파 유대인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돌로 치게 하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들 가운데 기독교에 개종한 자들을 색출하여 말살시키기 위해서 이웃나라에까지 갔다가 다메섹(다마스쿠스)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졌고, 후에는 바울로 이름을 바꾸어 기독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스데반의 순교이후 사울의 박해를 피해 외국에 흩어진 기독교인들은 모두가 다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을 보면,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스데반의 순교는 디아스포라 출신의 헬라파 유대인들을 온 세계로 흩어지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빌립과 스데반처럼 이방인 선교에 열정을 품었던 헬라파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기독교복음을 전하고, 이방인 지역에 그리스도의 교회들을 세웠으니, 교회를 흩어지게 한 사울의 박해가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데반의 설교와 거룩한 죽음은 후에 불세출의 이방인 사도가 된 바울의 마음에 꺼지지 않는 기독교복음의 횃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유능한 젊은 일군 한 사람을 얻는 일에 스데반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바울로 하여금 한평생 복음에 빚진 자로서(롬 1:14, 8:12) 쉬지 않고 달리게 한 채찍이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1-6절을 보면,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가 크게 박해받기 시작하여, 사도들 이외에는 모두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를 생각하여 몹시 통곡하였다. 그런데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다. 그러나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무리는 빌립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가 하는 기적을 보기도 하는 가운데서, 한 마음으로 빌립이 하는 말을 좇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그리스말을 사용할 줄 알고, 또 외국에서 태어난 유대인들이 흩어지면서 복음을 전하게 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 유대인들이 멸시하고 깔보는 절반쯤 유대인의 피가 흐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내려가 복음을 전하니 위기가 변하여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후일담이긴 하지만, 박해자 사울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변하여 바울이 되고, 이방인 선교사로 자처하면서 목숨을 내걸고 해외에서 선교할 때에 동족인 헬라파 유대인들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고, 그들을 피하여 다른 도시로 피신할 때마다 그곳 도시들에 새로운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경륜입니까?
빌립과 스데반의 활동범위에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처럼 해외선교에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는 못했습니다. 빌립은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커버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의 주제일 뿐 아니라, 누가는 실제로 사도행전을 기독교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더듬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보다 완고한 히브리파 유대인이었던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에 머물렀고, 야고보보다는 훨씬 더 헬라파 유대인들의 사고에 다가서려고 했던 베드로는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에까지 그의 활동범위를 넓혔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님 경외자였던 고넬료 가정에 세워진 가이사랴 교회를 창립하였고, 빌립과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헬라파 유대인 전도자들의 활동에 힘입어 사마리아와 안디옥과 로마에까지 그의 활동범위를 넓혀갔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비록 그가 해외에까지 활동범위를 확장시키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보다 앞서서 유대지방과 사마리아로 그의 활동범위를 넓힌 전도자였습니다. 스데반은 아쉽게 예루살렘에서 전도활동을 펼치다가 기독교인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을 읽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편협한 배타적 선민주의와 율법주의에 젖어 있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헬레니즘 문명권에 동화되지도 못했고 세계화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헬라문화와 언어 및 지리에 익숙하지 못하였고, 해외에서 자랐거나 공부한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그들의 동족에게 기독교복음의 발판을 놓는 일에 공헌하였으나 이방민족에게까지 기독교복음을 확장하는 선교의 주도권은 헬라파 유대인들에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주후 70년 유대전쟁의 패배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후 1878년간 해외에서의 유배생활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유대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재앙이었습니다. 따라서 히브리파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실질적인 주도권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0년 이후 교회의 주도권은 점차 제국의 수도인 로마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시대를 ‘올람 하바’라고 했습니다. 이 세계가 다가올 종말세계인데, 이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인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첫 설교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이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다.”(눅 5:38)고 하신 것은 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죄를 뉘우치라는 말씀도 되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패러다임, 곧 ‘새 부대’로 상징되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 등을 말하는 것이며, ‘새 포도주’란 ‘올람하바’ 곧 메시아시대 혹은 교회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실현된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메시아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답게 열린 생각과 창조적인 활동으로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그릇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을 줄 알아야겠고, 새 시대를 맞이할 기름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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