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 회개와 하나님의 나라(막 1:15)
본문
예수님의 말씀: 회개와 하나님의 나라(막 1:15)
마가복음 1장 15절,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는 말씀을 가지고 ‘회개와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동일한 말씀이 마태복음 4장 17절에도 있는데,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천국’이란 말과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란 말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뜻이지만,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이 더 좋은 표현입니다. ‘천국’이란 말은 한자어로써 ‘하늘의 왕국’이란 뜻입니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이란 말 대신에 ‘하늘’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마태복음이 유대인 공동체를 향해서 쓰인 글이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출애굽기 20장 7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한 제3계명 때문입니다. 이 계명에 따라서 유대인들은 ‘야훼’를 발음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주’란 뜻을 가진 ‘아도나이’로 발음했는데, 70인 역 헬라어성서에서는 ‘주님’이란 뜻의 ‘퀴리오스’로 표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쓰기보다는 ‘신’(神)이란 뜻의 보편적인 단어 ‘엘로힘’을 사용함으로써 헬라인들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전 250년경부터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히브리어 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야훼’ 대신에 다른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야훼’ 대신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대표적인 것이 ‘여호와’란 단어이고, 마태복음에 사용된 ‘하늘’이란 단어와 ‘하쉠’(HaShem)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하쉠’은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이미 2천 년 전부터 사용된 ‘이름’이란 뜻의 단어로써 유대인의 기도문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God'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신(神)이란 뜻인데도 불구하고, ’God'에서 ‘o’자를 빼고, ‘o’자 대신에 ‘-’를 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야훼는 히브리어 자음문자 네 개, 곧 영어로 ‘YHWH’로 표기됩니다. 그 뜻은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Yahweh Asher Yahweh)입니다. 6-10세기경에 히브리어 성서원본의 간행작업을 벌인 마소라 학자들은 모음이 없던 성서본문에 모음을 만들어 붙였는데, ‘야훼’란 자음 문자 ‘YHWH’에 ‘나의 주’란 뜻의 ‘아도나이’나 ‘지존의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의 모음 부호들을 사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에호와’(YeHoWaH), 곧 ‘여호와’(Jehovah)란 인위적인 이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학자들이 이 전통을 따라서 ‘야훼’대신에 ‘여호와’를 사용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다왕국이 2600여 년 전 바벨론 제국에 망해버리고 바벨론으로 유배되었을 때 예언자들은 패망의 원인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을 펼쳤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은 예언자들의 회복운동에 있던 내용입니다. 메시아의 등장과 그가 세울 메시아 왕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입니다. 왕국이 간혹 영토를 뜻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역동성을 지닌 하나님의 샬롬, 곧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현실, 하나님이 죽은 것 같은 현실에 하나님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현실, 그래서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고, 슬픔이 위로가 되고, 고통이 기쁨이 되고, 병듦이 건강이 되고, 갇힘이 놓임이 되고, 가난이 부요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매일 세 번씩 암송하는 쉐모네 에스레이에 따르면, 메시아의 등장과 함께 영토 회복, 흩어진 자들의 귀국, 종교적인 공의의 뜰 회복, 사악함과 죄와 이단의 종말,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예루살렘 재건, 다윗 왕 계보의 회복, 그리고 성전예배가 회복 될 것을 믿어왔습니다. 특히 교회시대가 시작된 1세기 유대인들은 메시아 왕국이 이뤄지면 로마지배가 무너지고 정치적 평화와 번영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이 메시아 시대를 ‘올람 하바’(Olam Ha-Ba)라 부릅니다. 올람 하바에서 전 세계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유대종교를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 인정하게 될 것이며(사 2:3; 11:10; 미가 4:2-3; 슥 14:9), 살인, 약탈, 경쟁과 질투는 사라질 것이고, 죄도 없어질 것이며(습 3:13), 감사예물로 희생제물이 성전에서 계속 바쳐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된 이스라엘 왕국으로 보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역동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로 보지를 못합니다.
셋째, ‘때가 찼고’에서 때란 무슨 때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말하는 ‘때’란 하나님의 경륜의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구원의 때를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나타난 때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 하는”(사 61:1-2) 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입니다. 여기서 ‘해’와 ‘날’은 희년을 가리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메시아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때가 찼고”란 말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메시아 시대, 곧 올람 하바, 하나님의 왕국 시대인데, 이미 그 때가 차서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메시아 시대의 출범을 알리는 선포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회개하라’에서 회개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라,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라, 기름을 준비하라,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준비하라, 고정관념을 바꾸라, 패러다임을 바꾸라,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묵은 가치관가 세계관을 바꾸라, 역사관을 바르게 정립하라는 등의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의해서 세워질 세계를 ‘올람 하바’라고 했습니다. 이 세계는 종말세계인데, 이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인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첫 설교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다.”(눅 5:38)고 하신 것은 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죄를 뉘우치라는 말씀도 되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라는 말씀도 됩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헌 부대’를 ‘새 부대’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부대’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믿음을 말하는 것이며, 총체적으로는 복음적 사고, 복음적 가치관, 복음적 세계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신랑으로 묘사된 메시아를 맞으려갈 때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던” 지혜로운 자들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메시아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는데, 슬기로운 다섯 사람은 새 시대를 맞이할 충분한 준비를 갖췄던 것입니다. 이런 지혜로운 행동을 하라는 것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회개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입니다. 이 말은 ‘마음을 바꾸다’는 뜻인데, 이미 이뤄진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 ‘슈브’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슈브’는 ‘돌이키다,’ 또는 ‘돌아오다’는 뜻인데,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회중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로 돌이키라고 말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대개는 우상숭배에서 돌이키라는 뜻인데, 단순히 머리로만 계획을 바꾸거나 감정적으로 후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와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전인격적인 참회를 뜻하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메시아를 영접하고, 마음과 행위가 모두 전환된 철두철미한 변화를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시작된 종말 또는 실현된 종말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살펴본바와 같이 종말이란 말은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 주신 모든 좋은 약속들이 성취되고 완성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시작이란 말은 완성이나 성취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작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완성과 성취를 앞당겨서 미리 맛보고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완성과 성취를 마음껏 맛보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이 공생애 최초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그로부터 3년 7개월쯤 후인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성령님의 임재로 교회가 세워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새 포도주’로 비유하셨습니다. 성서에서 포도주와 포도열매는 부활의 상징입니다. 긍정적인 변화의 상징입니다. 이 긍정의 변화가 특징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사람 안에서 이뤄집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샬롬의 평강과 임마누엘의 내주동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역동적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현실로, 하나님이 죽고 없는 것 같은 현실이 하나님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현실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고, 슬픔이 위로가 되고, 고통이 기쁨이 되고, 병듦이 건강이 되고, 갇힘이 놓임이 되고, 가난이 부요가 됩니다. 이런 축복이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는 말씀을 가지고 ‘회개와 천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동일한 말씀이 마태복음 4장 17절에도 있는데,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천국’이란 말과 마가복음의 ‘하나님의 나라’란 말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뜻이지만, ‘하나님의 나라’ 혹은 ‘하나님의 왕국’(Kingdom of God)이 더 좋은 표현입니다. ‘천국’이란 말은 한자어로써 ‘하늘의 왕국’이란 뜻입니다. 마태복음에서 ‘하나님’이란 말 대신에 ‘하늘’이란 말을 사용한 것은 마태복음이 유대인 공동체를 향해서 쓰인 글이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출애굽기 20장 7절,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한 제3계명 때문입니다. 이 계명에 따라서 유대인들은 ‘야훼’를 발음하지 않기 위해서 ‘나의 주’란 뜻을 가진 ‘아도나이’로 발음했는데, 70인 역 헬라어성서에서는 ‘주님’이란 뜻의 ‘퀴리오스’로 표기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는 두 번째 이유는 ‘야훼’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쓰기보다는 ‘신’(神)이란 뜻의 보편적인 단어 ‘엘로힘’을 사용함으로써 헬라인들과의 마찰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전 250년경부터 유대인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위해서 히브리어 성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야훼’ 대신에 다른 이름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야훼’ 대신에 사용된 단어들을 보면, 대표적인 것이 ‘여호와’란 단어이고, 마태복음에 사용된 ‘하늘’이란 단어와 ‘하쉠’(HaShem)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하쉠’은 성서에서 발견되지 않지만 이미 2천 년 전부터 사용된 ‘이름’이란 뜻의 단어로써 유대인의 기도문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쓰는 유대인들은 ‘God'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신(神)이란 뜻인데도 불구하고, ’God'에서 ‘o’자를 빼고, ‘o’자 대신에 ‘-’를 씁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야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야훼는 히브리어 자음문자 네 개, 곧 영어로 ‘YHWH’로 표기됩니다. 그 뜻은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Yahweh Asher Yahweh)입니다. 6-10세기경에 히브리어 성서원본의 간행작업을 벌인 마소라 학자들은 모음이 없던 성서본문에 모음을 만들어 붙였는데, ‘야훼’란 자음 문자 ‘YHWH’에 ‘나의 주’란 뜻의 ‘아도나이’나 ‘지존의 하나님’을 뜻하는 ‘엘로힘’의 모음 부호들을 사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에호와’(YeHoWaH), 곧 ‘여호와’(Jehovah)란 인위적인 이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학자들이 이 전통을 따라서 ‘야훼’대신에 ‘여호와’를 사용함으로써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다왕국이 2600여 년 전 바벨론 제국에 망해버리고 바벨론으로 유배되었을 때 예언자들은 패망의 원인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회개운동과 회복운동을 펼쳤습니다.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은 예언자들의 회복운동에 있던 내용입니다. 메시아의 등장과 그가 세울 메시아 왕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마누엘,’ 곧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입니다. 왕국이 간혹 영토를 뜻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 역동성을 지닌 하나님의 샬롬, 곧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현실, 하나님이 죽은 것 같은 현실에 하나님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현실, 그래서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고, 슬픔이 위로가 되고, 고통이 기쁨이 되고, 병듦이 건강이 되고, 갇힘이 놓임이 되고, 가난이 부요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왕국을, 매일 세 번씩 암송하는 쉐모네 에스레이에 따르면, 메시아의 등장과 함께 영토 회복, 흩어진 자들의 귀국, 종교적인 공의의 뜰 회복, 사악함과 죄와 이단의 종말, 의인들에게 주어지는 보상, 예루살렘 재건, 다윗 왕 계보의 회복, 그리고 성전예배가 회복 될 것을 믿어왔습니다. 특히 교회시대가 시작된 1세기 유대인들은 메시아 왕국이 이뤄지면 로마지배가 무너지고 정치적 평화와 번영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이 메시아 시대를 ‘올람 하바’(Olam Ha-Ba)라 부릅니다. 올람 하바에서 전 세계는 유대인의 하나님을 유일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으로, 유대종교를 유일하고 참된 종교로 인정하게 될 것이며(사 2:3; 11:10; 미가 4:2-3; 슥 14:9), 살인, 약탈, 경쟁과 질투는 사라질 것이고, 죄도 없어질 것이며(습 3:13), 감사예물로 희생제물이 성전에서 계속 바쳐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왕국을 회복된 이스라엘 왕국으로 보기 때문에 임마누엘의 역동적인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로 보지를 못합니다.
셋째, ‘때가 찼고’에서 때란 무슨 때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말하는 ‘때’란 하나님의 경륜의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구원의 때를 말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나타난 때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때,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 하는”(사 61:1-2) 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할 것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입니다. 여기서 ‘해’와 ‘날’은 희년을 가리키는 것이면서 동시에 메시아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때가 찼고”란 말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메시아 시대, 곧 올람 하바, 하나님의 왕국 시대인데, 이미 그 때가 차서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메시아 시대의 출범을 알리는 선포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넷째, ‘회개하라’에서 회개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하라,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라, 기름을 준비하라, 새 술을 담을 새 부대를 준비하라, 고정관념을 바꾸라, 패러다임을 바꾸라,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묵은 가치관가 세계관을 바꾸라, 역사관을 바르게 정립하라는 등의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에 의해서 세워질 세계를 ‘올람 하바’라고 했습니다. 이 세계는 종말세계인데, 이 새로운 세계에 적합한 인물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침례를 받으시고, 첫 설교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하신 것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다.”(눅 5:38)고 하신 것은 새 시대에 적합한 인물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죄를 뉘우치라는 말씀도 되지만, 새 시대에 걸맞은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라는 말씀도 됩니다. 따라서 ‘회개하라’는 ‘헌 부대’를 ‘새 부대’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새 부대’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믿음을 말하는 것이며, 총체적으로는 복음적 사고, 복음적 가치관, 복음적 세계관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에서 신랑으로 묘사된 메시아를 맞으려갈 때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던” 지혜로운 자들의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은 메시아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갖추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는데, 슬기로운 다섯 사람은 새 시대를 맞이할 충분한 준비를 갖췄던 것입니다. 이런 지혜로운 행동을 하라는 것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입니다.
‘회개하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입니다. 이 말은 ‘마음을 바꾸다’는 뜻인데, 이미 이뤄진 행동에 대해서 ‘후회하다,’ ‘유감으로 생각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는 히브리어 동사 ‘슈브’에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슈브’는 ‘돌이키다,’ 또는 ‘돌아오다’는 뜻인데,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회중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로 돌이키라고 말할 때 쓰이는 말입니다. 대개는 우상숭배에서 돌이키라는 뜻인데, 단순히 머리로만 계획을 바꾸거나 감정적으로 후회하는 정도가 아니라, 죄와 죄책으로부터 완전히 돌아서는 전인격적인 참회를 뜻하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메시아를 영접하고, 마음과 행위가 모두 전환된 철두철미한 변화를 가리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시작된 종말 또는 실현된 종말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살펴본바와 같이 종말이란 말은 하나님이 언약백성에게 주신 모든 좋은 약속들이 성취되고 완성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시작이란 말은 완성이나 성취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작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완성과 성취를 앞당겨서 미리 맛보고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완성과 성취를 마음껏 맛보고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이 공생애 최초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그로부터 3년 7개월쯤 후인 주후 30년 5월 28일 오순절 날 성령님의 임재로 교회가 세워짐으로써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를 ‘새 포도주’로 비유하셨습니다. 성서에서 포도주와 포도열매는 부활의 상징입니다. 긍정적인 변화의 상징입니다. 이 긍정의 변화가 특징인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사람 안에서 이뤄집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샬롬의 평강과 임마누엘의 내주동거가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역동적입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현실로, 하나님이 죽고 없는 것 같은 현실이 하나님이 살아서 우리 가운데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현실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흑암이 빛이 되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죽음이 생명이 되고, 슬픔이 위로가 되고, 고통이 기쁨이 되고, 병듦이 건강이 되고, 갇힘이 놓임이 되고, 가난이 부요가 됩니다. 이런 축복이 성도님들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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