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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보물과 투자(마 1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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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70 2006.10.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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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보물과 투자(마 13:44-46)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천국의 비밀은 무한한 가능성을 말합니다. 그 가능성은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것이고,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드는 것이며, 작은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밭에 감춰진 보물은 천국의 비밀, 곧 천국복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말합니다. 그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은 신앙인입니다. 또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사람은 신앙인입니다.
신앙인은 누굽니까? 천국의 비밀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천국복음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어둠이 빛이 되게 하고, 혼돈이 질서가 되게 하고, 죽음이 생명이 되게 하고, 슬픔이 위로가 되게 하고, 고통이 기쁨이 되게 하고, 병듦이 건강이 되게 하고, 갇힘이 놓임이 되게 하고, 가난이 부요가 되게 하는 무한한 창조적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누굽니까? 영적으로 귀먹고 어눌한 자였는데, 예수님을 만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하게 된 사람입니다. ‘에바다’의 축복, 곧 ‘열림’의 축복을 받아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누굽니까? 영적으로 벳새다의 소경처럼 앞을 보지 못하던 자였는데, 예수님을 만나 눈이 뜨게 된 사람입니다. ‘에바다’의 축복, 곧 ‘열림’의 축복을 받아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된 사람입니다.
신앙인은 누굽니까? 마음이 둔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던 자였는데, 예수님을 만나 믿고 밭으로 묘사된 천국의 비밀, 곧 무한한 가능성의 보물을 발견하고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는 사람입니다. 또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사람입니다. 또 좋은 땅에 떨어진 씨처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사람이고, 겨자씨나 누룩처럼 영향력이 큰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의미는 눈이 열리는 것이고, 귀가 열리는 것이며, 혀가 풀리는 것이고, 천국이든, 기독교복음이든, 우리 자신이든, 그 속에 감춰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듣는 것이며,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가진 역량을 모두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밭에 감춰진 보물이나 극히 값진 진주는 천국이든, 기독교복음이든, 우리 자신이든, 그 속에 감춰진 무한한 가능성과 가치를 말하는 것이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처럼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는 것이며, 겨자씨나 누룩처럼 영향력이 큰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투자는 그것을 또는 그와 같은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시간을 바치고, 재능을 바치고, 재물을 바치고, 목숨을 바치는 헌신을 뜻합니다. 그 같은 일에 모든 것을 투입한 사람, 감춰진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고 그것에 생명을 바쳤던 사람, 천국복음의 무한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생명을 바쳤던 사람이 바울과 같은 신앙인들입니다. 그들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했던 사람들입니다. 의식주문제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긴 채, 복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 감춰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고 후원하고 개발시키는 일에도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코치가 되고, 멘토르가 되는 것을 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나바입니다. 천국복음 속에 감춰진 귀한 보물을 얻기 위해서 자기 몸을 헌신하기로 작정했던 바나바는 소유하고 있던 밭을 팔아 교회 앞에 내놓기까지 한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런 그가 바울이란 보물을 발견했을 때, 그것을 얻기 위해서 그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습니다. 그는 인물을 볼 줄 알았고, 인물을 키우고 후원하는 달란트까지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사도들이 바울의 과거만을 생각하며 그와의 대면을 꺼려 할 때 바울을 사도들에게 소개했고, 부흥하는 안디옥 교회에 협력자가 필요해지자 바울이 칩거하던 터키 남단에 위치한 다소에까지 가서 그를 찾아내 데려와서 중책을 맡겼습니다. 처음에 바나바는 바울을 그의 협력자로 불러왔지만, 그의 가능성의 보물이 밖으로 노출되자 바나바는 기꺼이 그를 자신의 자리에 세우고, 자신은 그를 돕는 조연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나바는 불세출의 인물, 바울을 키워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기꺼이 기득권을 버리고 자신보다 뛰어난 바울을 앞장 세웠으며, 함께 협력했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합심해서 일 년 동안 안디옥 교회를 섬겼고, 또 함께 선교여행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고유명사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행 11:25-26).
이처럼 바나바는 사도들이 보지 못했던 무한한 가능성을 바울에게서 보았고, 마치 땅 속에 묻힌 보물을 발견하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산 사람처럼, 또 매우 값진 진주를 발견한 후에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귀한 진주를 산 사람처럼 바울이 위대한 사도로 성장하는 일에 헌신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좋은 땅에 떨어진 씨처럼 선교열매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맺혔고, 겨자씨처럼 초대교회가 쑥쑥 성장했으며, 누룩처럼 기독교 복음이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또 바나바는 바울조차도 보지 못한 무한한 가능성을 마가한테서 발견했습니다. 바울은 제1차 선교여행 때 일행을 버리고 중도에서 귀향해 버린 마가를 용서하려 하지 않았고(행 13:13), 끝까지 바울은 제2차 여행에 마가를 대동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바울의 고집이 너무 완고하여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안 바나바는 한 젊은 일군을 위해서 기꺼이 사랑하는 동역자 바울과 갈라섰습니다. 사도들이 바울의 단점을 보았다면, 바나바가 바울의 장점을 보고 그를 픽업하여 위대한 이방인 사도가 되게 하였듯이, 바울이 마가의 단점을 보았다면, 바나바는 마가의 장점을 보고 그가 성장하는 것을 기꺼이 도왔던 것입니다. 나중에 마가는 바울과 베드로의 훌륭한 동역자로 사역하였으며,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저술하는 업적을 남겼습니다. 바울은 마가를 미숙한 자로 보았지만, 바나바는 그에게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의 보물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그 보물을 얻기 위해서 바울에게 했던 것처럼 마가에게도 똑같이 후견인의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나바는 한때의 실수로 평생 배신자의 멍에를 짊어지고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했을 마가를 극적으로 회생시킨 것입니다.
바나바가 바울과 마가를 발굴하여 키운 후견자였다면, 바울은 디모데와 디도와 실라와 누가와 마가와 오네시모 등의 젊은이들을 주의 일군으로 키운 훌륭한 코치였습니다. 이 가운데서 특히 오네시모는 노예로서 자칫 영영 쓸모없는 인간이 될 번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습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인 빌레몬에게 상당한 손해를 입히고 로마로 도망쳤습니다. 당시 노예가 도망치는 일은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도망자는 붙잡히면 도망자(fugitivus)란 단어의 첫 자인 F자를 불에 달군 쇠로 이마에 찍힌 후에 십자가에 처형당했습니다. 당시에 노예는 말이나 노새와 동일하게 취급되었기 때문에 주인은 노예를 채찍질하거나 투옥시키거나 불구로 만들거나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사람이 아니고 동물이었습니다. 따라서 동물처럼 매매 되고 있었습니다.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노예를 물건처럼 진열해 놓고 있었고,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벌거벗은 노예를 찔러 보기도 하고, 입을 벌려 보기도 하고, 주위를 걸어 보게 한 후에 값을 흥정해서 구매했습니다. 바울 당시의 사람들이 노예를 어떤 식으로 취급했는가를 알면 알수록 바울이 오네시모에게 취한 태도는 진흙 속에 묻힌 값비싼 진주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법대로 하자면, 오네시모는 불에 달군 쇠로 이마에 F자를 새기고 채찍을 맞은 후에 십자가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도망자 노예 오네시모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했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참 자유와 해방은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피조물에 걸맞은 새롭고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노예 신분의 변화 없이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주인이라 할지라도 노예처럼 비참한 삶이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노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주인도 노예가 되며, 노예도 형제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여기에 첨가해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친아들처럼 사랑했습니다.
오네시모는 ‘쓸모 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아무 쓸모없던 오네시모가 바울을 만나고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진정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이름값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흑암 같은 감옥에서 빛을 잃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던 오네시모에게 참 빛을 찾아 주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혼돈한 삶 속에서 방황하던 오네시모에게 안정된 삶의 목표를 주었습니다. 후에 오네시모는 에베소교회의 위대한 감독이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나 격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다소에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바울이 있었고, 예루살렘에는 홀로 소외되어버린 마가가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그들을 찾아내어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그들이 큰 인물이 될 수 있도록 코치하였습니다. 로마에는 터키 브루기아 지방에서 탈출한 노예 오네시모가 있었고, 터키 루스드라에는 어린 혼혈인 디모데가 있었고, 안디옥에는 누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영원히 흙 속에 묻힐 뻔했던 이들을 발굴하여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그들이 주를 위한 큰 일군이 될 수 있도록 코치하였습니다.
앤 설리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어린 헬렌 켈러 속에 감춰진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가엾은 소녀 속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설린반은 평생을 그 보물을 얻는데 헌신했습니다.
헬렌은 불행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기쁨의 감정을 혼자 낄낄거림으로써 표현했고, 그 반대의 감정은 발로 차거나 할퀴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때로는 주위를 감싼 고요함으로 인해서 질식할 듯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거칠게 그리고 제멋대로 살고 있었다." 이런 절망상태에 놓인 헬렌을 변화시켜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낸 사람이 앤 설리반입니다. 그녀 자신도 눈병으로 인해서 반쯤 실명한 상태에 있던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설리반은 하나님을 믿는 창조적 신앙을 가지고 끊임없는 사랑과 헌신으로 일곱 살의 헬렌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설리반은 헬렌의 손에 사물을 느끼게 하고는 그녀의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그 사물의 이름을 적어 주는 방식으로 헬렌에게 단어부터 한 가지씩 가르쳤습니다. 설리반 선생의 불굴의 신앙과 용기 그리고 헌신적인 지도의 결과로 헬렌은 삼 년 안에 점자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때에는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을 만큼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04년에는 미국의 하버드 대학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우등으로 졸업하였습니다. 삼중의 장애를 가진 헬렌이 세계에서 가장 좋다는 하버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평생을 눈멀고 귀먹은 사람들을 돕는데 바침으로써 사람들로부터 '빛의 천사'라는 칭호까지 얻었습니다.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 평생 5-10% 정도만 사용하다고 죽는다고 합니다.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류 역사상 뇌를 가장 많이 사용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아인슈타인도 10%를 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평생에 걸쳐서 5-10%의 능력이 사용되고 나머지 90% 이상은 잠재능력으로 감춰져 있다가 발견되지 못하면 사장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 중에서 빙산의 일각만을 사용한 체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이제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능력의 한계점까지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잠재능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춰져 있는 보물인 것입니다. 이런 보물을 발견하는 일과 그 보물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코치하는 일은 부모들의 몫이고, 우리 성도들의 몫입니다. 미국에서는 성도들이 젊은 보물들을 발굴하여 적극적으로 목사가 될 것을 권하고 후원합니다. 제가 부모도 돈도 없이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이런 정신을 가진 교회들과 성도들의 후원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밭에 감춰진 보물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값진 진주를 찾다가 그것을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그 보물을 내 것으로 만들고 못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 자신이 얼마큼의 의지를 가지고 그 일에 헌신하느냐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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