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 믿음과 죄사함(마 9:1-8,18-31)
본문
예수님의 말씀: 믿음과 죄사함(마 9:1-8,18-31)
마태복음에는 기적이 20개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다섯 개가 8장에 있고, 또 다른 다섯 개가 9장에 있습니다. 특히 9장에 나오는 다섯 개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면서 “네 병이 나았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독특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은 그 점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에서 병 고침 받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믿음’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앓던 오랜 지병을 낫게 하고, 그들을 짓눌렸던 죄를 사함 받게 하고, 구원받게 한 이 믿음이 무엇이었을까요?
로버트 슐러 목사는 “열 가지 성공의 원리”란 설교에서 믿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힘센 능력이며, 긍정적인 사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부족한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더라도 이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죄인이란 말도 했습니다. 또 믿음이란 입증되지 않는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입증되지 않는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믿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9장에서 다섯 종류의 질병을 앓던 환자들이 입증되지 않는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믿음으로써 고침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첫 번째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고 있고, 두 번째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자가 고침을 받고 있으며, 세 번째는 한 공무원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나고 있고, 네 번째는 두 소경이 고침을 받고 있으며, 다섯 번째는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가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흑암 속에 헤매던 두 소경이 빛을 찾고 있고, 혼돈 속에서 12년을 허덕이던 여인과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가 안정을 찾고 있으며, 죽었던 공무원의 딸과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가 새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흑암이 빛이 되고 있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있으며, 죽음이 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고침 받은 다섯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무슨 병이 있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자신들의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며, 고침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고침을 받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으며, 고쳐달라는 간청이 있었고, 고침을 받기 위한 행동이 있었습니다. 이 여섯 가지, 곧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 간절한 소원, 끈질긴 기도, 불굴의 노력이 믿음의 요소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의 말대로 이러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 죄라면,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신뢰가 있었던 이들 다섯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점이 왜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면서 믿음 있는 자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들은 아주 오래 된 고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병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죄 사함까지도 받았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신뢰로 인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의롭다 하심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값없이 차별없이 죄 사함과 병 고침을 받아 구원을 이룬 다섯 병자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영혼문제뿐만 아니라, 육체문제까지 통전적인 치유를 가져다줍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해 드립니다.
둘째, 왜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에는 병 고침이나 죄 사함과 같은 개념이 아주 약합니다. 본문에서 병 고침은 육체구원의 상징이고, 죄 사함은 영혼구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으면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구원받는다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나타난 현상보다는 본질의 문제에 접근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를 엿보게 됩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만물의 영장입니다. 육체로 나타난 현상은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조직입니다. 만일 조직에 문제가 나타난다면, 나타난 현상보다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나타난 현상에 대한 본질을 보시고 근원적인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몸에 나타난 질병만을 보시지 않고, 그 질병의 근원인 죄 문제를 보신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그는 온전한 고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비판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지만, 갈릴리지방 가버나움에 거주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왔고,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를 낫게 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시지 않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으로 중풍병자의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때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참람하다고 했습니다. ‘참람하다’는 말은 ‘모독하다’는 뜻인데, ‘신성을 취하다,’ ‘신성을 모독하다,’ ‘신처럼 언행을 일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떤 신분인가를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한분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신성을 가진 자로 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 논쟁, 곧 예수님의 신성에 관련된 논쟁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빌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2절의 ”네 죄 사함을 받았다.”와 6절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선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언과 간구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2절과 6절은 간구가 아니라, 단언적인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낫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발생하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오직 신성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선언입니다. 특히 이천년 전 유대인들은 병을 앓거나 가난에 찌들어 사는 이유는 부모의 죄든, 자기 자신의 죄든, 아무튼 죄로 인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언은 곧바로 “네 병이 나았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며, 그와 같은 선언을 통해서 죄 사함을 얻게 하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오직 신성을 가진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와 치유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문자적인 혁명가로 정치군사적인 이스라엘 해방자로 보았고, 신성을 가진 자로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구원은 육체구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란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지 예배와 섬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한분만을 믿었기 때문에 더더욱 메시아를 신성을 가진 자로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란 다윗처럼 그들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란 구세주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삼위일체 신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다윗과 같은 영웅이자 제2의 출애굽 사건을 이끌 모세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란 말씀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메시아를 보게 하는 말씀이 됩니다. 여기서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예배와 섬김의 대상이란 것을 강력하게 말해줍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육체구원뿐만 아니라 영혼구원까지 포함합니다. 영혼구원은 죄 사함을 뜻합니다. 육체구원은 질병치유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로 값없이 육체구원을 받고, 질병으로부터 놓임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로 값없이 영혼구원을 받고 죄 사함까지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여 드립니다.
복음서에는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곳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보면, 어떤 죄 많은 여인이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어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등 뒤로 발 곁에 서서,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바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눈물로 회개하는 이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얻었다.”고 하셨고, 동시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육체의 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마음의 병이 컸습니다.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아무 말도 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이 여인에게, 사람들에게 죄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던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고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지는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여 드립니다.
마태복음에는 기적이 20개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다섯 개가 8장에 있고, 또 다른 다섯 개가 9장에 있습니다. 특히 9장에 나오는 다섯 개의 기적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면서 “네 병이 나았다.“라고 말씀하지 않고,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독특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오늘은 그 점을 가지고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먼저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에서 병 고침 받은 사람들에게 있었던 ‘믿음’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앓던 오랜 지병을 낫게 하고, 그들을 짓눌렸던 죄를 사함 받게 하고, 구원받게 한 이 믿음이 무엇이었을까요?
로버트 슐러 목사는 “열 가지 성공의 원리”란 설교에서 믿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힘센 능력이며, 긍정적인 사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 부족한 것을 죄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선한 삶을 살더라도 이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죄인이란 말도 했습니다. 또 믿음이란 입증되지 않는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이었고, 입증되지 않는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믿었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태복음 9장에서 다섯 종류의 질병을 앓던 환자들이 입증되지 않는 불가능한 무엇인가를 믿음으로써 고침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첫 번째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고 있고, 두 번째는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자가 고침을 받고 있으며, 세 번째는 한 공무원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나고 있고, 네 번째는 두 소경이 고침을 받고 있으며, 다섯 번째는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가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흑암 속에 헤매던 두 소경이 빛을 찾고 있고, 혼돈 속에서 12년을 허덕이던 여인과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가 안정을 찾고 있으며, 죽었던 공무원의 딸과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가 새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흑암이 빛이 되고 있고, 혼돈이 질서가 되고 있으며, 죽음이 생명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고침 받은 다섯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무슨 병이 있는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예수님이 자신들의 병을 고쳐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며, 고침을 받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고, 고침을 받겠다는 간절함이 있었으며, 고쳐달라는 간청이 있었고, 고침을 받기 위한 행동이 있었습니다. 이 여섯 가지, 곧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 원하는 것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 간절한 소원, 끈질긴 기도, 불굴의 노력이 믿음의 요소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버트 슐러의 말대로 이러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 죄라면,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신뢰가 있었던 이들 다섯 사람들에게는 죄 사함을 받을 자격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점이 왜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면서 믿음 있는 자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앓고 있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뢰가 있었기에 그들은 아주 오래 된 고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병의 원인이었을지도 모를 죄 사함까지도 받았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확고한 신뢰로 인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의롭다 하심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값없이 차별없이 죄 사함과 병 고침을 받아 구원을 이룬 다섯 병자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에게 영혼문제뿐만 아니라, 육체문제까지 통전적인 치유를 가져다줍니다. 이런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해 드립니다.
둘째, 왜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에는 병 고침이나 죄 사함과 같은 개념이 아주 약합니다. 본문에서 병 고침은 육체구원의 상징이고, 죄 사함은 영혼구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으면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까지 구원받는다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우리는 나타난 현상보다는 본질의 문제에 접근하신 예수님의 능력과 지혜를 엿보게 됩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만물의 영장입니다. 육체로 나타난 현상은 육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의 문제로 인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도 조직입니다. 만일 조직에 문제가 나타난다면, 나타난 현상보다는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나타난 현상에 대한 본질을 보시고 근원적인 문제를 제거하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몸에 나타난 질병만을 보시지 않고, 그 질병의 근원인 죄 문제를 보신 것입니다. 근원적인 문제가 해결될 때, 비로소 그는 온전한 고침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비판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출신이지만, 갈릴리지방 가버나움에 거주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에 가셨을 때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려왔고, 예수님은 그 중풍병자를 낫게 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하시지 않고,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으로 중풍병자의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때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참람하다고 했습니다. ‘참람하다’는 말은 ‘모독하다’는 뜻인데, ‘신성을 취하다,’ ‘신성을 모독하다,’ ‘신처럼 언행을 일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생각을 아시고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으며, 어떤 신분인가를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으로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한분 하나님만을 믿었기 때문에 메시아를 신성을 가진 자로 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 논쟁, 곧 예수님의 신성에 관련된 논쟁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빌미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2절의 ”네 죄 사함을 받았다.”와 6절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선언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언과 간구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2절과 6절은 간구가 아니라, 단언적인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낫기를 간구한 것이 아니라 발생하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선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오직 신성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선언입니다. 특히 이천년 전 유대인들은 병을 앓거나 가난에 찌들어 사는 이유는 부모의 죄든, 자기 자신의 죄든, 아무튼 죄로 인해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선언은 곧바로 “네 병이 나았다.”는 선언과 같은 것이며, 그와 같은 선언을 통해서 죄 사함을 얻게 하고,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오직 신성을 가진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와 치유능력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은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문자적인 혁명가로 정치군사적인 이스라엘 해방자로 보았고, 신성을 가진 자로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이 바라던 구원은 육체구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란 따름과 실천의 대상이지 예배와 섬김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유일신 한분만을 믿었기 때문에 더더욱 메시아를 신성을 가진 자로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란 다윗처럼 그들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란 구세주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삼위일체 신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 다윗과 같은 영웅이자 제2의 출애굽 사건을 이끌 모세와 같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란 말씀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메시아를 보게 하는 말씀이 됩니다. 여기서 믿음은 예수님에 대한 확고한 신뢰를 뜻합니다. 예수님이 예배와 섬김의 대상이란 것을 강력하게 말해줍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육체구원뿐만 아니라 영혼구원까지 포함합니다. 영혼구원은 죄 사함을 뜻합니다. 육체구원은 질병치유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로 값없이 육체구원을 받고, 질병으로부터 놓임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또 예수님을 믿으면 은혜로 값없이 영혼구원을 받고 죄 사함까지 받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여 드립니다.
복음서에는 ”네 죄 사함을 받았다.”는 말씀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이 복합적으로 사용된 곳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 36-50절에 보면, 어떤 죄 많은 여인이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어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등 뒤로 발 곁에 서서, 울면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바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눈물로 회개하는 이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얻었다.”고 하셨고, 동시에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육체의 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겐 마음의 병이 컸습니다.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아무 말도 없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이 여인에게, 사람들에게 죄인이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멸시와 천대를 당하던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예수님은 육체의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고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육체가 강건하여지는 축복이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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