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 회개하라(막 1:15)
본문
예수님의 말씀: 회개하라(막 1:15)
로마인들은 “시작이 좋으면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릴 것이다.”는 생각에서 정월(正月)을 ‘야누아리우스’(Januarius)라는 이름으로 진지하게 새해 첫 달을 맞았습니다. 1월을 뜻하는 영어 ‘January’가 여기서 유래 된 것입니다.
정월이란 말이 본래는 음력 첫 달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태양력을 쓰는 오늘날에는 양력 첫 달을 두고도 정월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새해 첫 달인 1월을 정월(正月)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월의 ‘정’자는 ‘바를 정’(正)입니다. 그러니까 정월은 ‘바른 달,’ 곧 ‘바르게 시작해야할 달’이란 뜻입니다. 한 해 동안의 일이 형통하기 위해서는 시작이 좋아야 되고, 또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바를 정’(正)자를 써서 ‘정월’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단추인 1월이 바르게 끼워질 때, 나머지 11달의 단추들도 바르게 끼워질 것이라는 뜻에서 1월을 정월(正月)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금년이 개신교로써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회개운동과 각성운동이 일어나 대부흥으로 이어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한국 개신교회들에서는 교회별, 교단별, 초교파적 기도회와 집회들을 잇달아 열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써 장로교 통합측에서는 교단 차원에서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소속 교회들에서 3주간 계속해서 새벽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3주 동안 1주일씩 세 주제로 나눠서 첫 주는 ‘회개와 갱신’, 둘째 주는 ‘화해와 일치, 회복과 연합’, 셋째 주는 ‘성숙과 성장, 그리고 부흥’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첫 주의 주제가 ‘회개와 갱신’이라는 점입니다. 100년 전 평양 대부흥 때 참석자들이 각자의 비리와 죄악을 눈물로써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기적적인 대부흥이 일어난 점을 감안해서 ‘회개와 갱신’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던 것입니다.
1903년 8월 30일 주일 함남 원산감리교회에서 로버트 하디(1865-1949년) 선교사가 이날 낮 예배시간에 성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시인했습니다. 무능했던 것, 조선인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며 교만했던 것, 사랑과 영적 능력이 부족했던 것 등을 낱낱이 꺼내놓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도들도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교회 안은 성령의 열기로 달아올랐습니다. 하디 선교사의 진솔한 회개가 성도들의 회개와 성령체험과 윤리갱신의 촉매제가 된 것입니다. 이 날의 영적 각성은 ‘원산 대부흥’으로 일컬어지는 성령부흥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한반도에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란 기념비적인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버트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토론토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캐나다 기독청년회의 후원으로 25살 때인 1890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서울 부산 원산 등에서 의료선교사역을 벌이던 그는 1896년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로 소속을 옮겨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열매가 없자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하디 선교사는 1903년 8월 24일부터 1주일간 원산에서 선교사 연합기도회를 인도하며 성령의 임재가 없는 사역은 무의미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때의 체험이 원산 부흥운동을 이끄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이어 개성 서울 인천 등에서 순회 집회를 열고 1906년 8월 평양에서 감리교 장로교 선교사 연합기도회 등을 인도했습니다. 이것이 평양 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1935년 한국에서의 45년간 선교활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 생애를 마쳤지만, 양화진 외인묘지에는 그의 두 딸의 묘비가 남아 있습니다. 1893년 큰딸 마리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숨을 거뒀고, 작은딸 마거릿은 1909년 일곱 살 때 하나님의 품에 안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인묘지에 세워진 하디 선교사의 기념비에는 아버지가 어린 두 딸을 품에 안고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하디는 1903년 원산 대부흥운동의 위대한 불씨로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회의 영적 대각성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평양 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시 영적 대각성의 불길을 사모하고 그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사랑하는 두 딸의 흔적을 기억하며 이 비를 세워 역사에 뜻을 기리고자 한다.
한국교회에 기복만 있고, 회개가 사라진지 오래라는 비판이 있어왔습니다.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계기로 회개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년을 진솔한 회개로 시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때가 찼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메시아로서의 공직을 시작하셨습니다. 공직을 수행하기 전에 40일간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한 해가 다 찼다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말은 새 출발의 시대가 가까웠다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년을 맞이할 때, 회개로 맞이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선포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신년에 열흘간 회개하는 풍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유대인들에게 신년이 주는 의미는 회개입니다. 유대인들은 설날을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라 부르는데, 이 날을 심판의 날, 회상의 날, 양각나팔 부는 날로 삼습니다. 탈무드에서는 하나님이 이 날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는 인류창조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로쉬 하샤나는 10일 후에 닿는 ‘욤 키푸르’(Yom Kippur) 곧 대 속죄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이 열흘 기간에 회개하여 죄를 씻고, 용서받고 새 출발합니다.
설날축제의 중요한 상징적 행위는 생명책의 주위를 도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한 해를 복되게 보내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지난해의 잘못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년에는 동일한 잘못들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인봉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유대인들은 신년인사를 건넵니다.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년에 자신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10일 후에 있을 대 속죄일 때 그 책이 인봉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10일간은 두려움의 날들로 간주됩니다.
또 유대인들은 신년에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에 의해서 하나님께 재물로 바쳐질 번한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독생자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고, 제단을 쌓았으며,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순종과 믿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였습니다. 칼로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지 못하도록 막았고, 수풀에 뿔이 걸린 수양 한 마리를 찾게 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신해서 수양을 바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설날에 회상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티쉬리 1일에 발생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믿음과 순종입니다. 신년에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신년에 이 사건을 회상함으로써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 길이며, 진실로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따를 뿐이지, 왜냐고 묻지 아니하며,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보상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설날에 양각나팔을 붑니다. 나팔을 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이삭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것, 이삭을 대신해서 수양이 희생된 것, 회개하여 하나님께 자비를 구할 것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양각나팔을 부는 또 다른 이유는 인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축하하려는 것입니다. 양각나팔을 불어 하나님을 인류의 통치자로 선언하고 재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신년을 맞이해서 회개와 새로운 다짐으로 근신하며 9일간을 보낸 유대인들은 10일째 날이 시작되는 해질 때에 다시 양각나팔을 불어 24시간 금식을 엄숙히 선포하고 금식이 끝나는 다음날 해질 때에도 나팔을 불어 선포합니다. 이 날은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이 일 년간 인봉되는 날이자 그들의 일 년간의 운명이 좌우되는 대 속죄일이요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일 후인 음력 15일 보름날 해질 때부터 8일간 감사절인 초막절 축제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연두(年頭) 혹은 연초(年初)에 지난해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굳게 다짐하며, 속죄선언을 받고, 8일간의 추수감사축제로 새해 첫 달인 티쉬리월을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대 속죄일을 ‘욤 키푸르’(Yom Kippur)라고 부릅니다. 신년인 ‘로쉬 하샤나'로부터 열흘째 날에 지킵니다. 욤 키푸르는 회개의 날이며, 연중 가장 엄숙한 날입니다. 핵심주제는 속죄와 화해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목욕하는 것, 화장하는 것, 가죽옷을 입는 것, 가죽신을 신는 것, 부부행위 등을 금합니다. 이 날은 생명책이 인봉되는 심판의 날이며, 죄 사함을 받고 또 죄를 용서하는 속죄일이고,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해원상생(解寃相生)하는 날이며, 설날부터 시작된 열흘간의 회개의 기도를 완결시키는 날이고, 요일에 관계없이 모든 안식일 가운데 가장 엄숙한 안식일이 됩니다. 이 날은 24시간을 금식하며, 예배로 거룩하고 엄숙하게 보냅니다. 그리고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양각나팔을 붑니다.
유대인들은 해질 때에 하루가 시작하기 때문에 욤 키푸르가 시작되는 저녁과 해가 뜬 하루 종일을 기도와 명상으로 보내게 되는데, 저녁 기도회 때에 ‘콜 니드레’(Kol Nidre)를 낭송합니다. 가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콜 니드레'는 한 해 동안 자기 자신에게 행한 모든 서약을 없었던 걸로 만드는 일종의 맹세무효선언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서약은 그대로 유효하게 됩니다. 아침 기도회 때에는 ‘셀리코트’(selichot)라 불리는 용서의 탄원과 청원의 기도문을 낭송합니다.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격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책에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탈무드에 “대 속죄일은 하나님을 거슬린 죄를 속하지만, 피해자의 용서가 보장되지 않는 한 동료 인간을 거슬린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Talmud Yoma viii. 9)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웃과의 불편했던 모든 관계를 대 속죄일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해결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이 날에 흰옷을 입습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차례씩 하나님과 이웃과의 불화를 화목으로 바꾸고, 원수관계를 화목관계로 바꾸는 유대교의 이 대 속죄일 전통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던 시절에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자신의 죄, 제사장들의 죄, 온 이스라엘 회중의 죄를 차례로 고백하는 정교한 제사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흰 아마 옷을 입고, 일 년에 한 차례 바로 이 날에만 들어 갈 수 있는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 제물의 피를 뿌리고 분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진 숫염소, 곧 속죄염소를 광야로 몰아내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성문 밖 골고다에서 죽으신 것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대로 회개의 때가 찼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첫 단추인 1월을 바르게 끼워야 나머지 11달의 단추들도 바르게 끼울 수 있습니다. 시작이 좋아야 한 해 동안의 일들이 형통할 것입니다. 선조들은 1월을 바르게 시작해야할 달로 인식하여 정월이라 불렀습니다. 한 해 동안의 일이 형통하기 위해서는 시작이 좋아야 되고, 또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개신교에 대부흥운동이 회개로 인해서 일어났던 것처럼, 회개는 부흥을 가져다주고, 발전을 가져다줍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회개란 자기 자신의 죄만을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잘못까지도 용서하고 아량을 베푸는 것입니다. 2007년 한 해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용서와 사랑이 넘치고, 모든 불편함이 사라진 자리에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게 채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로마인들은 “시작이 좋으면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릴 것이다.”는 생각에서 정월(正月)을 ‘야누아리우스’(Januarius)라는 이름으로 진지하게 새해 첫 달을 맞았습니다. 1월을 뜻하는 영어 ‘January’가 여기서 유래 된 것입니다.
정월이란 말이 본래는 음력 첫 달을 의미한 것이었지만, 태양력을 쓰는 오늘날에는 양력 첫 달을 두고도 정월이란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새해 첫 달인 1월을 정월(正月)이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월의 ‘정’자는 ‘바를 정’(正)입니다. 그러니까 정월은 ‘바른 달,’ 곧 ‘바르게 시작해야할 달’이란 뜻입니다. 한 해 동안의 일이 형통하기 위해서는 시작이 좋아야 되고, 또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에 ‘바를 정’(正)자를 써서 ‘정월’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첫 단추인 1월이 바르게 끼워질 때, 나머지 11달의 단추들도 바르게 끼워질 것이라는 뜻에서 1월을 정월(正月)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금년이 개신교로써는 1907년 평양 대부흥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회개운동과 각성운동이 일어나 대부흥으로 이어진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것을 계기로 해서 한국 개신교회들에서는 교회별, 교단별, 초교파적 기도회와 집회들을 잇달아 열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써 장로교 통합측에서는 교단 차원에서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소속 교회들에서 3주간 계속해서 새벽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3주 동안 1주일씩 세 주제로 나눠서 첫 주는 ‘회개와 갱신’, 둘째 주는 ‘화해와 일치, 회복과 연합’, 셋째 주는 ‘성숙과 성장, 그리고 부흥’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첫 주의 주제가 ‘회개와 갱신’이라는 점입니다. 100년 전 평양 대부흥 때 참석자들이 각자의 비리와 죄악을 눈물로써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기적적인 대부흥이 일어난 점을 감안해서 ‘회개와 갱신’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삼았던 것입니다.
1903년 8월 30일 주일 함남 원산감리교회에서 로버트 하디(1865-1949년) 선교사가 이날 낮 예배시간에 성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시인했습니다. 무능했던 것, 조선인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며 교만했던 것, 사랑과 영적 능력이 부족했던 것 등을 낱낱이 꺼내놓고 회개하였습니다. 그러자 성도들도 한 사람씩 일어나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새 교회 안은 성령의 열기로 달아올랐습니다. 하디 선교사의 진솔한 회개가 성도들의 회개와 성령체험과 윤리갱신의 촉매제가 된 것입니다. 이 날의 영적 각성은 ‘원산 대부흥’으로 일컬어지는 성령부흥운동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한반도에 부흥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란 기념비적인 대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버트 하디 선교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토론토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캐나다 기독청년회의 후원으로 25살 때인 1890년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서울 부산 원산 등에서 의료선교사역을 벌이던 그는 1896년 미국 남감리회 선교부로 소속을 옮겨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열매가 없자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하디 선교사는 1903년 8월 24일부터 1주일간 원산에서 선교사 연합기도회를 인도하며 성령의 임재가 없는 사역은 무의미함을 깨달았습니다. 이때의 체험이 원산 부흥운동을 이끄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는 이어 개성 서울 인천 등에서 순회 집회를 열고 1906년 8월 평양에서 감리교 장로교 선교사 연합기도회 등을 인도했습니다. 이것이 평양 대부흥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하디 선교사는 1935년 한국에서의 45년간 선교활동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 생애를 마쳤지만, 양화진 외인묘지에는 그의 두 딸의 묘비가 남아 있습니다. 1893년 큰딸 마리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숨을 거뒀고, 작은딸 마거릿은 1909년 일곱 살 때 하나님의 품에 안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외인묘지에 세워진 하디 선교사의 기념비에는 아버지가 어린 두 딸을 품에 안고 있는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이런 글귀가 쓰여 있습니다.
감리교 선교사 하디는 1903년 원산 대부흥운동의 위대한 불씨로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한국 교회의 영적 대각성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평양 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시 영적 대각성의 불길을 사모하고 그가 이 땅에 남기고 간 사랑하는 두 딸의 흔적을 기억하며 이 비를 세워 역사에 뜻을 기리고자 한다.
한국교회에 기복만 있고, 회개가 사라진지 오래라는 비판이 있어왔습니다.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계기로 회개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년을 진솔한 회개로 시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예수님은 때가 찼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메시아로서의 공직을 시작하셨습니다. 공직을 수행하기 전에 40일간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한 해가 다 찼다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말은 새 출발의 시대가 가까웠다는 말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신년을 맞이할 때, 회개로 맞이합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선포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은 유대인들이 신년에 열흘간 회개하는 풍습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유대인들에게 신년이 주는 의미는 회개입니다. 유대인들은 설날을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라 부르는데, 이 날을 심판의 날, 회상의 날, 양각나팔 부는 날로 삼습니다. 탈무드에서는 하나님이 이 날 인류를 창조하셨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로쉬 하샤나는 인류창조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로쉬 하샤나는 10일 후에 닿는 ‘욤 키푸르’(Yom Kippur) 곧 대 속죄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데, 이 열흘 기간에 회개하여 죄를 씻고, 용서받고 새 출발합니다.
설날축제의 중요한 상징적 행위는 생명책의 주위를 도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한 해를 복되게 보내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지난해의 잘못들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신년에는 동일한 잘못들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인봉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유대인들은 신년인사를 건넵니다. 회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신년에 자신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고, 10일 후에 있을 대 속죄일 때 그 책이 인봉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10일간은 두려움의 날들로 간주됩니다.
또 유대인들은 신년에 이삭이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에 의해서 하나님께 재물로 바쳐질 번한 이야기를 회상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독생자인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고, 제단을 쌓았으며,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순종과 믿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이삭을 바칠 준비를 하였습니다. 칼로 이삭을 찌르려는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천사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찌르지 못하도록 막았고, 수풀에 뿔이 걸린 수양 한 마리를 찾게 해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대신해서 수양을 바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설날에 회상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티쉬리 1일에 발생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주는 의미는 믿음과 순종입니다. 신년에 믿음과 순종의 중요성을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신년에 이 사건을 회상함으로써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은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 길이며, 진실로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의로운 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따를 뿐이지, 왜냐고 묻지 아니하며,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을 보상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설날에 양각나팔을 붑니다. 나팔을 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이삭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것, 이삭을 대신해서 수양이 희생된 것, 회개하여 하나님께 자비를 구할 것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양각나팔을 부는 또 다른 이유는 인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축하하려는 것입니다. 양각나팔을 불어 하나님을 인류의 통치자로 선언하고 재확인하려는 것입니다.
신년을 맞이해서 회개와 새로운 다짐으로 근신하며 9일간을 보낸 유대인들은 10일째 날이 시작되는 해질 때에 다시 양각나팔을 불어 24시간 금식을 엄숙히 선포하고 금식이 끝나는 다음날 해질 때에도 나팔을 불어 선포합니다. 이 날은 그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이 일 년간 인봉되는 날이자 그들의 일 년간의 운명이 좌우되는 대 속죄일이요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일 후인 음력 15일 보름날 해질 때부터 8일간 감사절인 초막절 축제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연두(年頭) 혹은 연초(年初)에 지난해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삶을 굳게 다짐하며, 속죄선언을 받고, 8일간의 추수감사축제로 새해 첫 달인 티쉬리월을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대 속죄일을 ‘욤 키푸르’(Yom Kippur)라고 부릅니다. 신년인 ‘로쉬 하샤나'로부터 열흘째 날에 지킵니다. 욤 키푸르는 회개의 날이며, 연중 가장 엄숙한 날입니다. 핵심주제는 속죄와 화해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 목욕하는 것, 화장하는 것, 가죽옷을 입는 것, 가죽신을 신는 것, 부부행위 등을 금합니다. 이 날은 생명책이 인봉되는 심판의 날이며, 죄 사함을 받고 또 죄를 용서하는 속죄일이고, 하나님과 이웃과 더불어 해원상생(解寃相生)하는 날이며, 설날부터 시작된 열흘간의 회개의 기도를 완결시키는 날이고, 요일에 관계없이 모든 안식일 가운데 가장 엄숙한 안식일이 됩니다. 이 날은 24시간을 금식하며, 예배로 거룩하고 엄숙하게 보냅니다. 그리고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양각나팔을 붑니다.
유대인들은 해질 때에 하루가 시작하기 때문에 욤 키푸르가 시작되는 저녁과 해가 뜬 하루 종일을 기도와 명상으로 보내게 되는데, 저녁 기도회 때에 ‘콜 니드레’(Kol Nidre)를 낭송합니다. 가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콜 니드레'는 한 해 동안 자기 자신에게 행한 모든 서약을 없었던 걸로 만드는 일종의 맹세무효선언 기도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행한 서약은 그대로 유효하게 됩니다. 아침 기도회 때에는 ‘셀리코트’(selichot)라 불리는 용서의 탄원과 청원의 기도문을 낭송합니다. 생명책에 자기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자격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우리로 하여금 생명책에 들어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탈무드에 “대 속죄일은 하나님을 거슬린 죄를 속하지만, 피해자의 용서가 보장되지 않는 한 동료 인간을 거슬린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Talmud Yoma viii. 9)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웃과의 불편했던 모든 관계를 대 속죄일 기도회가 시작되기 전에 해결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이 날에 흰옷을 입습니다. 적어도 일 년에 한 차례씩 하나님과 이웃과의 불화를 화목으로 바꾸고, 원수관계를 화목관계로 바꾸는 유대교의 이 대 속죄일 전통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속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던 시절에는 대제사장이 성전에서 자신의 죄, 제사장들의 죄, 온 이스라엘 회중의 죄를 차례로 고백하는 정교한 제사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흰 아마 옷을 입고, 일 년에 한 차례 바로 이 날에만 들어 갈 수 있는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 제물의 피를 뿌리고 분향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죄를 상징적으로 짊어진 숫염소, 곧 속죄염소를 광야로 몰아내 죽게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짊어지고 성문 밖 골고다에서 죽으신 것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대로 회개의 때가 찼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첫 단추인 1월을 바르게 끼워야 나머지 11달의 단추들도 바르게 끼울 수 있습니다. 시작이 좋아야 한 해 동안의 일들이 형통할 것입니다. 선조들은 1월을 바르게 시작해야할 달로 인식하여 정월이라 불렀습니다. 한 해 동안의 일이 형통하기 위해서는 시작이 좋아야 되고, 또 시작을 바르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 개신교에 대부흥운동이 회개로 인해서 일어났던 것처럼, 회개는 부흥을 가져다주고, 발전을 가져다줍니다. 유대인들의 전통에서 볼 수 있듯이 진정한 회개란 자기 자신의 죄만을 고백하고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잘못까지도 용서하고 아량을 베푸는 것입니다. 2007년 한 해 동안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용서와 사랑이 넘치고, 모든 불편함이 사라진 자리에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게 채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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