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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 5: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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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846 2007.01.1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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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마 5:38-39)

2007년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의 위로로 모든 일이 척척 진행해 가는 복된 해’가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성도들의 기도와 소원대로 과연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믿기는 금년에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을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진행되어진 일의 대표적인 사례로 모악산 기슭인 김제 금산에 있는 ‘ㄱ자 교회’를 세운 마부 이자익과 주인 조덕삼의 복음정신과 삶에 대해서 살펴본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새해의 시작을 회개기도로 시작하는 유대인들의 오랜 전통과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한 한국 개신교의 신년분위기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의 새해맞이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서 소망을 비는 것도 아니고, 가는 해가 아쉬워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망년분위기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한 해 동안의 잘못 된 삶을 반성하고 보다 진전된 성실한 삶을 살기로 하나님과 자신에게 약속하면서 새해를 맞이합니다.
2007년 새해의 화두는 ‘황금돼지’였습니다. 2006년에는 쌍춘절이 있었던 해여서 결혼 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600년에 한번 돌아오는 ’황금돼지 해‘라는 소문이 퍼져서 베이비산업에 붐이 일 것이라고 합니다. 일부 역술인들이 금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행운과 경제적인 부를 함께 누리게 것이라고 퍼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난 2000년도에 있었던 ’밀레니엄 베이비 붐‘(millennial baby boom) 때처럼 출산율이 10퍼센트 정도 높아지게 되고 관련 산업에 활기가 띨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편에서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많이 태어나면, 입시나 취업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 때 태어난 아이들에게 불리하다는 말을 하고 있어서 얼마만큼 출산율이 높아질지는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쌍춘절에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황금돼지 해에 관계없이도 출산율이 높아져서 인구증가에 기여하게 될 것 같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금년은 역법 상으로 황금색의 해가 아니라, 붉은색의 해입니다. 그러니까 금년은 ‘붉은 돼지 해’인 것입니다. 붉은 색은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가 있어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이야 어떻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미신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나 자신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바르게 형성될 때, 그곳에 용서와 사랑이 넘치고, 또 모든 불편함이 사라질 때, 그곳에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게 채워지고, 성령님의 위로가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넘치고, 성령님의 위로가 충만하다면, 만사가 형통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웃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톨스토이의 󰡔대자󰡕를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주의 설교, “회개하라”는 일차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것인가를 살펴본 것이었다면, 오늘의 설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일차적으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우리 성도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가장 빠른 길이 ‘회개’였다면,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가장 빠른 길은 이웃의 적대행위에 맞서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매우 유명한 것이고, 또 매우 멋진 말이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서인지 실천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상황, 예를 들면, 생사가 걸린 전쟁, 악의적인 괴롭힘, 독재자나 기업주의 횡포와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이웃의 적대행위에 맞서지 않고, 왼뺨도 대주는 자세를 가져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이웃에 대한 이런 태도는 이웃을 진정으로 이기는 일이 되고,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하여 가는 일이 됩니다. 적대자의 행위에 맞서지 않고, 왼뺨도 돌려 됨으로써 원수를 진정으로 이기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시켜 간 가장 훌륭한 사례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또 십자가상에서 적대자를 위해서 기도하신 일입니다. 그 일로 예수님은 인류의 구세주란 칭호를 얻으셨고, 셀 수 없는 사람들로부터 경배와 찬양을 받으셨으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방법, 곧 예수님의 삶의 방식으로 진정으로 이기고 성공하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게 해주셨습니다.
톨스토이의 글 「대자」에 곰 사냥 이야기가 나옵니다. 숲 속 넓은 초원에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그 소나무의 큰 가지에 묵직한 떡갈나무 통나무가 매달려 있습니다. 통나무 밑에는 꿀통이 놓여 있습니다. 잠시 후에 곰 가족이 숲 속에서 나타나 코를 벌름거리며 꿀통으로 다가섭니다. 어미 곰과 새끼 곰들이 한꺼번에 꿀통에 코끝을 처박고 꿀을 핥습니다. 그때 통나무가 슬쩍 밀렸는가싶더니 금방 제자리로 오면서 새끼 곰을 살짝 칩니다. 어미 곰이 그것을 보고 앞발로 통나무를 밀어 젖힙니다. 통나무는 먼저보다 멀리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새끼 곰을 세게 칩니다. 등을 얻어맞는 놈도 있고, 머리를 얻어맞는 놈도 생깁니다. 새끼 곰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집니다. 이에 어미 곰은 화가 나서 으르렁거리며 앞발로 통나무를 멀리 머리 위로 힘껏 내던집니다. 통나무가 공중으로 높이 올라갔으므로 어미 곰은 그 틈에 꿀통에 머리를 박고 꿀을 핥기 시작하고 새끼 곰들도 재빨리 달려듭니다. 그러나 곰에게서 멀어졌던 통나무는 제자리로 돌아오면서 두 살배기 곰의 머리를 세게 때려 그 자리에서 즉사시킵니다. 이에 크게 화가 난 어미 곰은 이전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으르렁거리며 통나무를 움켜잡자마자 더 힘껏, 더 멀리, 더 높이 내던집니다. 통나무는 소나무 가지보다 더 높이 올라갑니다. 어미 곰이 꿀통으로 다가서니 새끼 곰들도 다가섭니다. 그 순간 멀리 밀려갔던 통나무는 더 큰 힘으로 되돌아와서 꿀통에 다가선 어미 곰의 머리를 강한 힘으로 내리 칩니다. 어미 곰은 벌렁 자빠져 버둥거리다가 숨이 끊어집니다. 그러자 새끼 곰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을 칩니다.
졸지에 어미 곰 두 마리가 죽고 말았습니다. 만일 어미 곰이 통나무가 조금 성가시게 하고, 또 조금 괴롭히더라도 그냥 내버려 두었더라면, 꿀도 마음껏 먹고, 통나무에 맞아죽는 불상사도 겪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미 곰이 처음 통나무를 건드렸을 때는 새끼 곰들을 조금 놀랐게 했을 뿐이지만, 두 번째로 밀어젖혔을 때는 두 살배기 곰을 죽게 했고, 세 번째로 집어던졌을 때는 스스로를 파멸시켰습니다.
톨스토이의 이 곰 사냥이야기는 ‘악은 악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사람이 악한 일을 책하면 책할수록 악은 더욱 퍼져간다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악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의 정신을 신봉했던 톨스토이의 신념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어떻게 사람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있는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을 주인공 ‘대자’로 하여금 일생동안 풀어가게 한 것이 민화 「대자󰡕의 내용입니다.
오늘날 아랍과 이슬람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는 테러의 악순환을 보면,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을 뿐이다.’는 톨스토이의 생각을 입증해 주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가 악의 화신으로 믿었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이라크를 조지고 부셨던 것이 미국과 이라크의 불행을 더욱 증폭시킨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라는 의구심을 지을 수 없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악을 책하지 않고 내버려둔 것만 못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톨스토이의 생각이 모든 사례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망가진다.’는 것이 자연법칙이요 철칙입니다. 정의든 사랑이든, 분배든 보복이든 인간의 욕구를 100퍼센트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분배정의와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던 공산사회의 붕괴와 북한의 처참한 현실은 ‘사랑이 빠진 정의는 한낮 빛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주었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평화주의자들의 무조건 퍼주기, 무조건 왼쪽 뺨까지 맞아주기, 무조건 용서하기 등이 얼마나 심각한 폐단을 낳는가?’라는 사실을 밝혀주었습니다. 오늘날 현 정권은 정의와 사랑과 분배 모두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분배정의와 사회정의를 부르짖어왔지만, 사회통합은 고사하고 분열만 가중시켜왔고, 경제만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최근 통일부장관의 발언내용은 맹목적인 통일주의자 또는 맹목적인 평화주의자의 무조건 퍼주기, 무조건 왼쪽 뺨까지 맞아주기, 무조건 용서하기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연걸이 주연배우로 출연한 ‘무인 곽원갑’(霍元甲)이란 영화를 TV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곽원갑(훠이안자)은 중국에 외세침략이 한창이던 1910년 42살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무도 ‘정무문’과 정무체조학교를 설립한 중국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세운 무술학교는 지금 50개국에 퍼져 있고 학생 수도 50여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영화의 내용이 곽원갑의 실제 생애와 차이가 많다는 후손들의 주장도 있습니다만, 영화에서 어린 곽원갑은 아버지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몰래 무술을 연마합니다. 라이벌과의 대결에서 아버지 곽사부는 주먹에 인정을 두다가 실패합니다. 그 모습을 본 곽원갑은 천진의 최강자가 되리라 다짐합니다. 청년으로 자란 곽원갑은 생사를 건 대련에서 연전연승하게 되고, 마지막 상대인 진사부를 죽이고 천진 최강자의 자리에 오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잃은 진사부의 아들로부터 보복을 받아 어머니와 딸이 살해됩니다. 아내도 아버지도 없던 곽원갑은 졸지에 당한 슬픔으로 절망에 빠집니다. 세상을 헤매던 그는 외진 시골농촌마을에 당도해 맹인소녀 문(베티 선)과 농사일을 통해서 무예와 인생에 대해서 깊이 깨닫게 됩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다른 세상이 되어버린 천진에 돌아온 곽원갑은 정무체조회를 만들고 외세가 주도한 무술대회에 중국의 자존심을 걸고 참여해서 승리함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됩니다. 이에 서양세력은 세계 각국의 최 고수들을 불러들여 무술대회를 개최하고, 거기에 곽원갑을 출전시켜 그를 굴욕 시킬 음모를 꾸밉니다. 곽원갑은 연전연승하지만, 일본의 고수와의 결투 때에 독약을 탄 물을 마시게 되고, 시합도중에 피를 토하고 쓰러지게 됩니다. 곽원갑은 죽음에 직면해서도 시합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쓰러지지만, 일본인 무사는 곽원갑을 일으켜 세워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그가 진정한 승자임을 알립니다. 제자들은 죽어가는 스승에게 복수를 다짐하지만, 곽원갑은 이렇게 유언을 합니다.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복수가 아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만 불러오게 될거다. 난 그런 걸 원치 않는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거라.”
‘무(武)’는 ‘그칠 지’(止)와 ‘창 과’(戈)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창을 그친다’는 것은 ‘싸움을 멈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무술은 ‘싸움을 피하는 기술’이라는 뜻입니다. 무술의 진정한 정신은 폭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강자가 끊임없이 남과 겨루어 자신을 확인하는 강박증 환자라면, 고수는 승리를 포기하면서도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곽원갑은 강자였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패자나 다름없었습니다. 시골농촌에 은둔하여 살면서 맹인소녀 문을 통해서 무예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된 곽원갑은 고수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는 비록 독약으로 인해서 시합에 지게 되지만,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승자는 타인을 힘으로 굴복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긴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이겨야 할 적은 눈앞에 있는 상대가 아니라 내면의 나약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복수는 더 큰 복수를 낳을 뿐입니다. 난관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폭력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악한 자들을 위해서 어떤 방책을 세우셨습니까? 하나님은 인간들이 상상 조차할 수 없는 비책을 세우셨는데, 악한 모든 인간들을 응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서야 할 죽음과 저주의 자리에 예수님을 통해서 대신 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세전부터 감춰놓으셨던 복음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배반하고 죄지은 모든 인간에게 영생의 축복을 마련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자신에게는 십자가에 처형당해 죽는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셨습니다.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오히려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셨고,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 자신에게는 인간이 받아야 할 저주와 죽음을 대신 받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몫을 자기가 받는 대신에 자기의 몫, 곧 축복과 생명을 악한 우리 인간에게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어울려진 아가페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우리를 대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우리를 대신해서 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과 더불어 우리 악한 자들을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셨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으며,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은 하나님이 우리 악한 자들을 구원하시려고 흘리신 보혈이었습니다. 우리를 속죄하시려고 속죄제물이 되셨고, 우리와 화목하시려고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2007년 한해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해 가기 위해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기자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황금돼지 1000마리를 키우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위로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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