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마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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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마 5:43-48)
톨스토이가 쓴 민화가 23개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이 톨스토이의 민화들은 대부분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글들입니다. 이 땅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을 고민하고 제시한 해결책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악은 악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책망하면 책망할수록 악은 더욱 크게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은 악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어떻게 하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있겠는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을 주인공 ‘대자’로 하여금 일생동안 풀어가게 한 것이 민화 「대자의 내용입니다. 또 민화 대자는 톨스토이가 마태복음 5장 43-48절의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톨스토이의 버전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자(代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 소년이 대부(代父)를 통해서 인생을 배워 가는 내용입니다. 본래 대부란 천주교회나 동방교회 등에서 세례식 때 세우는 믿음의 아버지를 말하지만, 민화 대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대자에는 유익한 교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구도자인 우리 신앙인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악한 자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세 가지 방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아시는 이야기지만, 그 의미를 한 번 더 음미하면서 2007년을 어떻게 살아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해 가는 형통한 해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자는 대부로부터 세상에 나가서 30년 동안 대자로 인해서 죽게 된 도둑의 죄를 대신 갚으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둑의 죄를 갚을 수 있을까요?” 대부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지은 만큼의 죄를 세상에 나가 지워 가면 그때 너는 도둑의 죄를 갚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나가 죄를 지울 수 있을까요?” “암자에 사는 은사를 찾아가 말하면 그가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은사가 지시한 일을 모두 해내면 그때 너는 도둑이 지은 죄를 갚게 되는 것이다.”
“대관절 어떻게 이 세상의 죄를 지워 나가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서는 죄인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에 처함으로써 악을 지우고 있는데, 죄를 지워 나가면서 남의 죄를 떠맡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자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흘간 걸어서 은사를 찾아갔습니다.
은사에게 모든 것을 말하자, 은사는 손도끼를 찾아들고 대자를 데리고 숲속에 가서 나무 한 그루를 자르게 했습니다. 그것을 세 토막으로 자르게 한 다음, 불을 지펴서 태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타다 남은 세 개의 냉과리를 땅 속에 심게 했습니다. 은사는 대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산 아래 개울이 있다. 개울에 내려가서 물을 한입 머금고 와서 이 냉과리에 뿜어 주어라.... 이 세 개의 냉과리에 뿌리가 내려 세 개의 사과나무로 자라면, 그때야말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악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죄를 갚게 되는 것이다.”
대자는 은사가 시킨 대로 개울에 내려가 물을 한입 머금고 와서 냉과리에 뿜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은사가 기거하는 암자에 갔을 때 은사는 죽어있었습니다. 은사의 장례를 잘 치른 후에 대자는 은사가 기거했던 암자에 머물면서 냉과리에 물을 뿜어주는 수도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일 년쯤 지나자 대자는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성인이 숲 속에 냉과리들을 심어놓고 개울에 내려가서 물을 머금어다가 냉과리에 끼얹어 주며 수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자를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부자상인들도 찾아와서 여러 가지 선물들을 놓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받은 물건들을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또 다른 한 해가 흘렀지만, 냉과리에 싹은 트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살인강도가 암자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강도인데,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대자는 몸을 움츠리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같은 인간 속에 깃든 악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없애야 할까.... 앞으로 일이 어떻게 꼬이게 될까. 이 강도가 이곳을 맴돌게 되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내게 오지 못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도 불편하겠지만, 또 나는 어떻게 먹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자는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암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자랑하지 않소. 모두가 죄를 뉘우치고 속죄하기를 원하오. 그러니 당신도 하나님이 두렵거든 죄를 뉘우치시오. 또 죄를 뉘우치지 않을 거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시오. 사람들을 겁주어 그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주시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오.”
강도가 대자의 설교를 마음에 담았을까요? 아닙니다. 그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대자를 얕잡아보며 으름장을 놓았고,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신앙인들은 대자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강도는 대자를 전혀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강도가 왜 그랬을까요? 왜 대자의 설교는 강도의 심금을 울릴 수 없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아주 명확합니다. 대자의 마음이 순수하고 순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대자는 강도의 영혼을 사랑했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강도가 암자 주변을 맴돌게 되면,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자는 은사를 찾아 암자를 찾아오던 때에 첫날밤을 어느 아주머니 집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대자가 지켜보는데서 주인아주머니는 집안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방을 다 훔치고 나서 이번에는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다 닦고 나니 더러운 걸레 자국이 테이블 위에 줄무늬처럼 남았습니다. 다시 반대쪽으로 문지르면 먼저의 걸레 자국은 없어지지만 새로 자국이 생겼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명절준비로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테이블을 아무리 훔쳐도 깨끗해지지 않고 자꾸 더러워지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대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주머니, 그 걸레를 깨끗이 빨아서 훔치면 될 텐데요.” 대자가 시키는 대로 하자 테이블이 금방 깨끗해졌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의 걸레를 갖지 않는 한 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깨끗한 마음의 걸레를 갖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그쳐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의식주문제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 문제를 마음에서 극복하지 못하는 한 세상의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통과한 첫 번째 사단의 시험도 의식주문제였습니다.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거든요.
대자가 이 사실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 10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서 먹고 산다는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한 강도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해온 일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죽은 은사가 지시한 것과는 다르다. 은사는 내게 고행을 지시했는데, 나는 그 고행을 나날의 양식과 바꾸고, 또 세상 사람의 칭송을 원하게 되었다. 나는 유혹에 빠져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언짢아하고, 사람이 찾아오면 모두가 나를 성인 취급하는 줄 알고 공연히 우쭐해진다. 이런 생활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나는 세상의 평판에 현혹되어 전에 지은 죄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새로 죄를 짓지 않았는가? 숲속의 딴 자리로 옮겨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자. 이미 지은 죄를 갚아 가면서 다시는 새로운 죄를 짓지 않도록 혼자 살아가자.”
대자는 비로소 자신에 대한 걱정을 그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인생살이 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때에 살인강도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대자의 설교를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에 변화의 싹이 돋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대자는 냉과리에 물을 주러 갔다가 들여다보니 그중 한 나무에서 싹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사과나무에 잎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대자는 세상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홀로 살아갔습니다. 살인강도가 대자 몰래 마른 빵이 든 자루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가곤 했는데, 대자는 그것으로 연명해갔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대자는 살인강도를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기를 또 다른 십년이 지난 어느 날 대자는 또다시 지나온 10년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으로 죄 갚음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살인강도가 말을 타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무서워서 몸을 숨겼을 텐데, 이제 그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좋은 꼴이나 나쁜 꼴을 당할 까닭이 없다 생각하고 강도가 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강도는 돈 많은 장사꾼의 아들을 납치하여 그의 아버지가 숨긴 돈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대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살인강도의 말고삐를 붙잡고 놓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젊은이를 놓아주도록 권면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고 분부하신다. 이 사람을 놓아주어라.” 그러자 강도는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을 다 살려주었습니다. 젊은이는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지만, 용기를 낸 대자는 강도에게 이제 흑암의 생활을 접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라고 타일렀습니다.
대자가 은자를 찾아 산으로 오던 둘째 날 농부들이 수레바퀴를 만들 나무를 휘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열심히 빙빙 돌고 있었지만, 나무는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대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버팀목이 꽉 고정되어 있지 않아 나무와 버팀목이 서로 제각기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들, 버팀목을 꽉 고정시키세요. 대와 함께 돌고 있잖아요.” 농부들이 그 말을 듣고 버팀목을 단단히 고정시키니 일이 제대로 되었습니다.
곧고 강직한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는 한 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곧고 강직한 버팀목을 갖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멈추고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 안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에 완고하고 악한 고집도 꺾이고 만다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이 통과한 두 번째 사단의 시험도 생사의 문제였습니다. 높은 첨탑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거든요.
버팀목이 튼튼하면 굵은 철근도 버팀목에 걸려 휘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신념과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꺾이지 아니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대자가 20년 수도 끝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었을 때, 더 이상 강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안에 고정시켰을 때 굽힐 줄 모르던 강도의 고집이 꺾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에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대자가 냉과리에 물을 주러 갔다가 들여다보니 두 번째 나무에도 움이 터서 사과나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움막에 앉아 있던 대자는 더 이상 모자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대자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가!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이렇게 갖가지 인간악을 돌이켜 보며 사람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을 생각하니 인간이 불쌍해졌습니다. “내가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나가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자.”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강도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강도는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엾은 마음이 들어서 달려가 그의 무릎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회개하도록 타일렀습니다.
대자가 은자를 찾아 산으로 오던 셋째 날 거간꾼들이 모여서 소를 매어놓고 화톳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삭정이를 주어다가 불을 붙이면서 활활 타오르기 전에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놓아 이내 밑불을 꺼뜨렸습니다. 거간꾼들은 다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붙였으나 젖은 나뭇가지를 마구 올려서 불은 또다시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대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들, 밑불이 잘 타기를 기다렸다가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보세요.” 대자의 말대로 불길이 잘 타오른 다음에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놓으니까 순조롭게 타기 시작하여 화톳불이 만들어졌습니다.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는 한 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밑불이 강해야 생나무를 태울 수 있습니다. 밑불은 자신의 불입니다. 자신의 불이 약하면, 남에게 불을 주지 못합니다. 밑불이 약한 사람이 섣불리 남에게 불을 주려 하다가는 자신의 불마저 꺼뜨리고 맙니다. 밑불은 사랑의 불입니다. 밑불은 믿음의 불입니다. 밑불은 성령의 불입니다. 밑불이 강하지 못하면, 미움과 증오와 유혹과 시험과 공격과 비방과 험담과 소외와 갈등과 같은 생나무를 태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에 오히려 먹히고 맙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사랑의 불로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에는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미움보다 사랑이 강할 때 미움을 태울 수가 있습니다. 유혹보다 믿음이 강할 때 그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통과한 세 번째 시험도 유혹의 문제였습니다. 사단이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다 줄 터이니 자기를 경배하라고 했거든요.
대자는 30년 수도 끝에 잔인무도한 살인강도를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강도의 마음이 얼음 녹듯이 녹아 버렸습니다. 대자의 뜨거운 마음에 강도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지게 된 것입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에 회개의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대자와 강도가 함께 냉과리가 심어진 곳에 가보았을 때, 세 번째 나무에도 움이 터서 사과나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맑으면 타인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습니다. 신념과 믿음이 강하면 타인의 강퍅한 마음도 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불이 강하면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 있습니다. 걸레가 깨끗하면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습니다. 버팀목이 튼튼하면 철근을 휠 수 있습니다. 밑불이 강하면 젖은 나무도 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의식주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의 밑불을 뜨겁게 달군다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써 이 교훈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불을 강한 밑불로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불을 세상에 던져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악을 하나씩 지워갈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쓴 민화가 23개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이 톨스토이의 민화들은 대부분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 글들입니다. 이 땅의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을 고민하고 제시한 해결책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악은 악 때문에 눈덩이처럼 커진다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책망하면 책망할수록 악은 더욱 크게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은 악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어떻게 하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있겠는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 고민을 주인공 ‘대자’로 하여금 일생동안 풀어가게 한 것이 민화 「대자의 내용입니다. 또 민화 대자는 톨스토이가 마태복음 5장 43-48절의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는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톨스토이의 버전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자(代子)는 가난한 집에 태어난 소년이 대부(代父)를 통해서 인생을 배워 가는 내용입니다. 본래 대부란 천주교회나 동방교회 등에서 세례식 때 세우는 믿음의 아버지를 말하지만, 민화 대자에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대자에는 유익한 교훈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구도자인 우리 신앙인들이 원수를 사랑하고 악한 자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는 세 가지 방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미 아시는 이야기지만, 그 의미를 한 번 더 음미하면서 2007년을 어떻게 살아야 성령님의 위로로 진행해 가는 형통한 해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대자는 대부로부터 세상에 나가서 30년 동안 대자로 인해서 죽게 된 도둑의 죄를 대신 갚으라는 숙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도둑의 죄를 갚을 수 있을까요?” 대부가 대답했습니다. “네가 지은 만큼의 죄를 세상에 나가 지워 가면 그때 너는 도둑의 죄를 갚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세상에 나가 죄를 지울 수 있을까요?” “암자에 사는 은사를 찾아가 말하면 그가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은사가 지시한 일을 모두 해내면 그때 너는 도둑이 지은 죄를 갚게 되는 것이다.”
“대관절 어떻게 이 세상의 죄를 지워 나가야 한단 말인가? 세상에서는 죄인을 감옥에 가두거나 사형에 처함으로써 악을 지우고 있는데, 죄를 지워 나가면서 남의 죄를 떠맡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자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할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나흘간 걸어서 은사를 찾아갔습니다.
은사에게 모든 것을 말하자, 은사는 손도끼를 찾아들고 대자를 데리고 숲속에 가서 나무 한 그루를 자르게 했습니다. 그것을 세 토막으로 자르게 한 다음, 불을 지펴서 태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타다 남은 세 개의 냉과리를 땅 속에 심게 했습니다. 은사는 대자에게 말했습니다. “이 산 아래 개울이 있다. 개울에 내려가서 물을 한입 머금고 와서 이 냉과리에 뿜어 주어라.... 이 세 개의 냉과리에 뿌리가 내려 세 개의 사과나무로 자라면, 그때야말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악을 없앨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는 모든 죄를 갚게 되는 것이다.”
대자는 은사가 시킨 대로 개울에 내려가 물을 한입 머금고 와서 냉과리에 뿜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은사가 기거하는 암자에 갔을 때 은사는 죽어있었습니다. 은사의 장례를 잘 치른 후에 대자는 은사가 기거했던 암자에 머물면서 냉과리에 물을 뿜어주는 수도생활을 지속했습니다. 일 년쯤 지나자 대자는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성인이 숲 속에 냉과리들을 심어놓고 개울에 내려가서 물을 머금어다가 냉과리에 끼얹어 주며 수도하고 있다는 소문이 났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자를 보려고 찾아왔습니다. 부자상인들도 찾아와서 여러 가지 선물들을 놓고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받은 물건들을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또 다른 한 해가 흘렀지만, 냉과리에 싹은 트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살인강도가 암자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강도인데,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을 죽인다. 사람을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기분이 좋아져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 대자는 몸을 움츠리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같은 인간 속에 깃든 악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없애야 할까.... 앞으로 일이 어떻게 꼬이게 될까. 이 강도가 이곳을 맴돌게 되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내게 오지 못하게 될 텐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들도 불편하겠지만, 또 나는 어떻게 먹고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대자는 강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암자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나쁜 일을 자랑하지 않소. 모두가 죄를 뉘우치고 속죄하기를 원하오. 그러니 당신도 하나님이 두렵거든 죄를 뉘우치시오. 또 죄를 뉘우치지 않을 거면 다시는 이곳에 오지 마시오. 사람들을 겁주어 그들이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아주시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이오.”
강도가 대자의 설교를 마음에 담았을까요? 아닙니다. 그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대자를 얕잡아보며 으름장을 놓았고, 무시하고 멸시했습니다. 신앙인들은 대자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강도는 대자를 전혀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강도가 왜 그랬을까요? 왜 대자의 설교는 강도의 심금을 울릴 수 없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아주 명확합니다. 대자의 마음이 순수하고 순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대자는 강도의 영혼을 사랑했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강도가 암자 주변을 맴돌게 되면,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자는 은사를 찾아 암자를 찾아오던 때에 첫날밤을 어느 아주머니 집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대자가 지켜보는데서 주인아주머니는 집안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머니는 방을 다 훔치고 나서 이번에는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다 닦고 나니 더러운 걸레 자국이 테이블 위에 줄무늬처럼 남았습니다. 다시 반대쪽으로 문지르면 먼저의 걸레 자국은 없어지지만 새로 자국이 생겼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명절준비로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인데, 테이블을 아무리 훔쳐도 깨끗해지지 않고 자꾸 더러워지기 때문에 힘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대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주머니, 그 걸레를 깨끗이 빨아서 훔치면 될 텐데요.” 대자가 시키는 대로 하자 테이블이 금방 깨끗해졌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순수하고 순결한 사랑의 걸레를 갖지 않는 한 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깨끗한 마음의 걸레를 갖기 위해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신의 근심과 걱정을 그쳐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의식주문제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이긴 하지만, 그 문제를 마음에서 극복하지 못하는 한 세상의 악을 제거해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통과한 첫 번째 사단의 시험도 의식주문제였습니다. 돌들을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고 했거든요.
대자가 이 사실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 10년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서 먹고 산다는 자신의 생활방식에 대한 강도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지난 10년 동안 해온 일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이 죽은 은사가 지시한 것과는 다르다. 은사는 내게 고행을 지시했는데, 나는 그 고행을 나날의 양식과 바꾸고, 또 세상 사람의 칭송을 원하게 되었다. 나는 유혹에 빠져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언짢아하고, 사람이 찾아오면 모두가 나를 성인 취급하는 줄 알고 공연히 우쭐해진다. 이런 생활방식으로는 안 되겠다. 나는 세상의 평판에 현혹되어 전에 지은 죄를 갚기는커녕 오히려 새로 죄를 짓지 않았는가? 숲속의 딴 자리로 옮겨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자. 이미 지은 죄를 갚아 가면서 다시는 새로운 죄를 짓지 않도록 혼자 살아가자.”
대자는 비로소 자신에 대한 걱정을 그치고 자기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인생살이 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때에 살인강도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라는 대자의 설교를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에 변화의 싹이 돋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날 밤 대자는 냉과리에 물을 주러 갔다가 들여다보니 그중 한 나무에서 싹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사과나무에 잎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대자는 세상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홀로 살아갔습니다. 살인강도가 대자 몰래 마른 빵이 든 자루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가곤 했는데, 대자는 그것으로 연명해갔습니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대자는 살인강도를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그러기를 또 다른 십년이 지난 어느 날 대자는 또다시 지나온 10년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죄를 범하고 말았다. 죽음을 두려워하다니.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음으로 죄 갚음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살인강도가 말을 타고 욕지거리를 하면서 다가오는 기척이 있었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무서워서 몸을 숨겼을 텐데, 이제 그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좋은 꼴이나 나쁜 꼴을 당할 까닭이 없다 생각하고 강도가 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강도는 돈 많은 장사꾼의 아들을 납치하여 그의 아버지가 숨긴 돈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대자는 죽음을 각오하고 살인강도의 말고삐를 붙잡고 놓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젊은이를 놓아주도록 권면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더 이상 무섭지 않다.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할 뿐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안 된다고 분부하신다. 이 사람을 놓아주어라.” 그러자 강도는 어쩐 일인지 두 사람을 다 살려주었습니다. 젊은이는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지만, 용기를 낸 대자는 강도에게 이제 흑암의 생활을 접고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라고 타일렀습니다.
대자가 은자를 찾아 산으로 오던 둘째 날 농부들이 수레바퀴를 만들 나무를 휘려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열심히 빙빙 돌고 있었지만, 나무는 조금도 구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대자가 자세히 살펴보니 버팀목이 꽉 고정되어 있지 않아 나무와 버팀목이 서로 제각기 돌아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대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들, 버팀목을 꽉 고정시키세요. 대와 함께 돌고 있잖아요.” 농부들이 그 말을 듣고 버팀목을 단단히 고정시키니 일이 제대로 되었습니다.
곧고 강직한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는 한 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곧고 강직한 버팀목을 갖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멈추고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 안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에 완고하고 악한 고집도 꺾이고 만다는 교훈입니다. 예수님이 통과한 두 번째 사단의 시험도 생사의 문제였습니다. 높은 첨탑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했거든요.
버팀목이 튼튼하면 굵은 철근도 버팀목에 걸려 휘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신념과 믿음이 강한 사람 앞에서는 꺾이지 아니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대자가 20년 수도 끝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생사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었을 때, 더 이상 강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안에 고정시켰을 때 굽힐 줄 모르던 강도의 고집이 꺾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에 변화의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튿날 아침 대자가 냉과리에 물을 주러 갔다가 들여다보니 두 번째 나무에도 움이 터서 사과나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움막에 앉아 있던 대자는 더 이상 모자랄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가득 찼습니다. 대자는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큰 행복을 인간에게 내려주셨는가! 실상은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공연히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이렇게 갖가지 인간악을 돌이켜 보며 사람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괴롭히고 있음을 생각하니 인간이 불쌍해졌습니다. “내가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잘못이다. 세상에 나가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자.”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강도의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강도는 시름에 잠긴 표정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말을 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엾은 마음이 들어서 달려가 그의 무릎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회개하도록 타일렀습니다.
대자가 은자를 찾아 산으로 오던 셋째 날 거간꾼들이 모여서 소를 매어놓고 화톳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삭정이를 주어다가 불을 붙이면서 활활 타오르기 전에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놓아 이내 밑불을 꺼뜨렸습니다. 거간꾼들은 다시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붙였으나 젖은 나뭇가지를 마구 올려서 불은 또다시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대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들, 밑불이 잘 타기를 기다렸다가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보세요.” 대자의 말대로 불길이 잘 타오른 다음에 젖은 나뭇가지를 올려놓으니까 순조롭게 타기 시작하여 화톳불이 만들어졌습니다.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는 한 악을 제거할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밑불이 강해야 생나무를 태울 수 있습니다. 밑불은 자신의 불입니다. 자신의 불이 약하면, 남에게 불을 주지 못합니다. 밑불이 약한 사람이 섣불리 남에게 불을 주려 하다가는 자신의 불마저 꺼뜨리고 맙니다. 밑불은 사랑의 불입니다. 밑불은 믿음의 불입니다. 밑불은 성령의 불입니다. 밑불이 강하지 못하면, 미움과 증오와 유혹과 시험과 공격과 비방과 험담과 소외와 갈등과 같은 생나무를 태울 수가 없습니다. 그것들에 오히려 먹히고 맙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이 사랑의 불로 뜨겁게 달아올랐을 때에는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미움보다 사랑이 강할 때 미움을 태울 수가 있습니다. 유혹보다 믿음이 강할 때 그 유혹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통과한 세 번째 시험도 유혹의 문제였습니다. 사단이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다 줄 터이니 자기를 경배하라고 했거든요.
대자는 30년 수도 끝에 잔인무도한 살인강도를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강도의 마음이 얼음 녹듯이 녹아 버렸습니다. 대자의 뜨거운 마음에 강도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지게 된 것입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리고 죽어버린 마음에 회개의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대자와 강도가 함께 냉과리가 심어진 곳에 가보았을 때, 세 번째 나무에도 움이 터서 사과나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마음이 맑으면 타인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습니다. 신념과 믿음이 강하면 타인의 강퍅한 마음도 꺾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의 불이 강하면 타인의 마음에 불을 던질 수 있습니다. 걸레가 깨끗하면 테이블을 깨끗하게 닦을 수 있습니다. 버팀목이 튼튼하면 철근을 휠 수 있습니다. 밑불이 강하면 젖은 나무도 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의식주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의 밑불을 뜨겁게 달군다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으로써 이 교훈을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의 불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불을 강한 밑불로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불을 세상에 던져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악을 하나씩 지워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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