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의존한 능력(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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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의존한 능력(골 1:24-29)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당한 고난을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당한 고난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한 고난의 분량이 커서 아직 자신이 당한 고난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예수님께서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당한 고난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훌륭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서 분발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요즘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은 '어머니의 기도'란 주제로 간증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극한 가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을 남을 위해 기도하며 신앙인답게 살았던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여섯 자녀들을 키우셨는데, 어머니가 하루 중에 가장 먼저 행한 일은 4시에 일어나 자녀들을 깨워 일일이 기도해주시고, 또 새벽기도회에 나가 남을 위해 기도하시고, 시장에 나가 리어카 생선 장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가게도 없이 남의 가게 모퉁이에서 리어카를 바쳐놓고 생선을 팔망정 시장상인들로부터는 성실성을 인정받는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은 어머니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분발했고, 결국 정치, 경제, 신앙, 모든 면에서 두루 성공을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명박은 어머니의 근면함과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앙을 의지적으로 닮아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극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후에 받게 된 영광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근거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했겠습니까? 바울이 무엇을 근거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다.”(고후 4:17)고 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5-7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 했고, 빌립보서 3장 10-11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 말씀들은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소망이 드러난 글들입니다. 2000년 전 바울시대에는 이런 소망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사령관들을 모시고 사선을 넘나들며 고난에 동참했던 휘하의 장수들과 부하들은 두둑한 전별금이나 보상금을 받아 챙겼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휘하의 부하들에게 준 전별금에 대한 일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하면 역대 다른 대통령들이 준 전별금은 껌 값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5공 말기에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을 지낸 B씨는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 다른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전별금 봉투 하나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액수는 3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대통령이 따로 불러 봉투 하나를 더 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뜯어보니 무려 3억 원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진짜 3억 원인지 수표의 동그라미 개수를 여러 차례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B씨만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비서관들에게도 1억 원 이상씩의 전별금을 더 줬다는 것이 나중에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C수석비서관이 받은 2억 원이 동화은행 사건 때 발각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런 행위가 잘한 일이니까 본받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000년 전 상황에서 바라볼 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란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불멸의 개선장군의 뒤를 따르는 용맹한 믿음의 군사들이 받아 챙기게 될 전별금이나 보상금은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 또는 전두환과 같은 이들이 주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허망한 몇 푼의 돈이 아니라, 영생과 행복을 보장하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잠시 살다 사라질 보상이 아니라,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던 것이고, 그가 행한 수고의 대가는 자기 자신만이 누린 영생에서 끝나지 않고, 2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속에서 그 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축복에 동참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된 사례를 보셨습니까? 아무리 잘 키운 기업일지라도 그 수명이 몇 대를 지속하지를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노력과 수고는 우리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천국보상은 물론이고,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물리는 보상이 따르는 값진 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2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의해서 교회의 일군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장성한 분량에 차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사명의식이 있는 사람은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바울은 후배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26절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것은 대대로 감춰져왔던 비밀이었는데, 이제는 바울의 노력으로 성도들에게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또 27절은 그 비밀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으로써 하나님은 이 비밀의 영광스런 부요함, 곧 이방인 성도들 안에 계시고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알게 하시려고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하티크바,’ 곧 유대인들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유대인들이 '노쯔림‘이라 부르는 기독교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님이 메시아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후에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을 깨닫게 된 바울로서는 비기독교유대인들이 대대로 믿고 기다렸던 ’모쉬아크‘와는 확연히 다른 기독교인들이 믿는 메시아가 신비요, 비밀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더더욱 ’노쯔림‘의 메시아는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바울과 비기독교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대대로 감춰져왔던 비밀이었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선민이 된 민족이라고 믿었고, 하나님은 조상대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나님은 한분뿐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민족이 섬기는 신들은 다 거짓 신들이고, 거짓 종교들이라 믿었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선민대열에 끼고자 한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유대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완전 개종자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개종침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계명들과 또 랍비들이 613개의 계명들을 범하지 못하도록 만든 보조적인 율법들, 그것을 ‘계명의 울타리’라고 부릅니다만, 그 보조적인 율법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그것들을 모두 지켜야 합니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차별이 없다는 비밀 아닌 비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주인이나 노예나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차별이 없다는 신비 아닌 신비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할례를 포함해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많은 율법들이 이방인들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란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또 하나님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이란 사실을 믿는 믿음뿐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바울의 깨달음이,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대단한 깨달음처럼 느껴지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 사실을 알고, 또 그 사실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믿고, 그 일을 위해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바울에게 유대인들한테서 돌아온 선물은 돌 몰매였고, 39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은 것이었고, 수없이 감옥에 갇힌 것이었고, 죽을 때까지 쫓아다닌 살해위협이었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 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불행하게도 먼저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감춰졌던 비밀을 드러내고,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것을 다짐했고, 또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본문 28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 일, 곧 각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훈계하고 가르치며 모든 지혜를 총동원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또 29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맡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지혜만으로 하지 않고, 자기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으로 힘을 다하여 수고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남에게 뒤지지 않던 바울이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지혜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으로 분투했던 것입니다.
한 때 사도 바울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희망, ‘하티크바’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의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던 그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모든 민족의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의 희망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희망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8년 전인 295년에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속주도시인 테베스테에 막시밀리아누스란 이름의 세무공무원이 있었습니다. 병사였던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22세가 된 막시밀리아누스는 병영세습제로 인해서 입대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시밀리아누스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입대할 수 없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거부하다가 즉결심판을 받아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막시밀리아누스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어 지키려했던 것은 그리스도님께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막시밀리아누스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군사가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충성을 받쳤던 카이사르 황제에게 대를 이어 충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막시밀리아누스는 군단장이자 총독이었던 디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군대의 병사가 아니라 하나님군대의 병사입니다.... 제 영혼과 저를 부르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이미 그리스도의 병사배지를 가진 몸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저는 목에 황제의 화상이 새겨진 구리조각을 걸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신의 아들,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지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인생의 인도자인 그분을 따르는 것만이 저의 사명입니다.... 몸은 죽어도 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이미 제 주님의 병사가 된 이상, 다른 군대의 병사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병사가 된 이후로 이전에 섬기던 대제사장을 더 이상 섬기지 않았던 것처럼, 막시밀리아누스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병사가 된 이후로 더 이상 카이사르 황제를 섬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보다, 카이사르 황제보다 더 높은 분을 알았고, 또 그들의 것보다 더 높고 더 고귀한 뜻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임무를 명령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이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16세 때에 진사시에 장원급제를 합니다. 이에 대견하고 기특하게 생각한 정조 대왕이 친히 불러 손목을 잡고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너라. 벼슬을 내리고 큰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부와 권세를 약속받았던 이 천재 소년은 정약용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보장된 장래와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에 헌신합니다. 그러다가 27세 때에 의금부에 끌러가 황소 네 마리에 묶여 팔다리가 찢기는 능지처참 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황사영 역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어 지키려했던 것은 그리스도님께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나라의 임금을 섬기고 출세를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 선비의 도리란 것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천지대군을 섬기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 이후로 더 이상 대제사장과 유대교를 섬기지 않았던 것처럼, 막시밀리아누스가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 이후로 더 이상 카이사르 황제를 섬기지 않았던 것처럼, 황사영도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나라의 임금을 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대제사장보다, 카이사르보다,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분을 알았고, 그분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는 새로 만난 주인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남에게 뒤지지 않은 인재들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자신들의 지혜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으로 분투했던 것입니다. 그 점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힘이었습니다. 모든 지혜로 하되, 특히 그들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님의 모든 능력에 의존했던 그들의 겸손과 믿음을 본받도록 합시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당한 고난을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당한 고난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한 고난의 분량이 커서 아직 자신이 당한 고난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예수님께서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교회를 위해서 당한 고난을 달게 받고 있는 것입니다.
훌륭하게 된 사람들 가운데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서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서 분발한 경우들이 많습니다. 요즘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은 '어머니의 기도'란 주제로 간증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극한 가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을 남을 위해 기도하며 신앙인답게 살았던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 여섯 자녀들을 키우셨는데, 어머니가 하루 중에 가장 먼저 행한 일은 4시에 일어나 자녀들을 깨워 일일이 기도해주시고, 또 새벽기도회에 나가 남을 위해 기도하시고, 시장에 나가 리어카 생선 장사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가게도 없이 남의 가게 모퉁이에서 리어카를 바쳐놓고 생선을 팔망정 시장상인들로부터는 성실성을 인정받는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은 어머니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분발했고, 결국 정치, 경제, 신앙, 모든 면에서 두루 성공을 거두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명박은 어머니의 근면함과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신앙을 의지적으로 닮아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예수님이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당한 고난을 극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신 후에 받게 된 영광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무엇을 근거로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롬 8:18)고 했겠습니까? 바울이 무엇을 근거로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다.”(고후 4:17)고 했겠습니까?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 5-11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께서 보여 주신 태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이들 모두가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5-7절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 도다. 우리가 환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와 구원을 위함이요, 혹 위로 받는 것도 너희의 위로를 위함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 했고, 빌립보서 3장 10-11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 말씀들은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당한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고난에 기꺼이 동참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는 바울의 소망이 드러난 글들입니다. 2000년 전 바울시대에는 이런 소망이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같은 사령관들을 모시고 사선을 넘나들며 고난에 동참했던 휘하의 장수들과 부하들은 두둑한 전별금이나 보상금을 받아 챙겼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휘하의 부하들에게 준 전별금에 대한 일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하면 역대 다른 대통령들이 준 전별금은 껌 값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5공 말기에 청와대의 수석비서관을 지낸 B씨는 청와대를 떠나기 직전 다른 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전별금 봉투 하나씩을 받았다고 합니다. 액수는 3천만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대통령이 따로 불러 봉투 하나를 더 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뜯어보니 무려 3억 원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진짜 3억 원인지 수표의 동그라미 개수를 여러 차례 세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B씨만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비서관들에게도 1억 원 이상씩의 전별금을 더 줬다는 것이 나중에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C수석비서관이 받은 2억 원이 동화은행 사건 때 발각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이런 행위가 잘한 일이니까 본받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2000년 전 상황에서 바라볼 때,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 후에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이야기이란 것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불멸의 개선장군의 뒤를 따르는 용맹한 믿음의 군사들이 받아 챙기게 될 전별금이나 보상금은 알렉산드로스나 카이사르 또는 전두환과 같은 이들이 주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원한 것입니다. 허망한 몇 푼의 돈이 아니라, 영생과 행복을 보장하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잠시 살다 사라질 보상이 아니라,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보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했던 것이고, 그가 행한 수고의 대가는 자기 자신만이 누린 영생에서 끝나지 않고, 20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속에서 그 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축복에 동참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가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된 사례를 보셨습니까? 아무리 잘 키운 기업일지라도 그 수명이 몇 대를 지속하지를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노력과 수고는 우리 개개인들에게 주어지는 천국보상은 물론이고,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물리는 보상이 따르는 값진 일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2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의해서 교회의 일군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장성한 분량에 차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사명의식이 있는 사람은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고린도전서 4장 1-2절에서 바울은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바울은 후배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26절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것은 대대로 감춰져왔던 비밀이었는데, 이제는 바울의 노력으로 성도들에게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또 27절은 그 비밀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으로써 하나님은 이 비밀의 영광스런 부요함, 곧 이방인 성도들 안에 계시고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이방인들에게 알게 하시려고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하티크바,’ 곧 유대인들의 소망이 무엇인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유대인들이 '노쯔림‘이라 부르는 기독교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예수님이 메시아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후에 예수님이 메시아란 사실을 깨닫게 된 바울로서는 비기독교유대인들이 대대로 믿고 기다렸던 ’모쉬아크‘와는 확연히 다른 기독교인들이 믿는 메시아가 신비요, 비밀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더더욱 ’노쯔림‘의 메시아는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이방인들의 메시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이 바울과 비기독교유대인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대대로 감춰져왔던 비밀이었다고 말한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선민이 된 민족이라고 믿었고, 하나님은 조상대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나님은 한분뿐이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민족이 섬기는 신들은 다 거짓 신들이고, 거짓 종교들이라 믿었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의 선민대열에 끼고자 한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반드시 유대교로 개종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완전 개종자는 할례를 받아야 하고, 개종침례를 받아야 하며, 모세오경에 실린 613개의 계명들과 또 랍비들이 613개의 계명들을 범하지 못하도록 만든 보조적인 율법들, 그것을 ‘계명의 울타리’라고 부릅니다만, 그 보조적인 율법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데, 그것들을 모두 지켜야 합니다. 이렇듯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독점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님을 믿게 되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차별이 없다는 비밀 아닌 비밀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주인이나 노예나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는데 있어서 차별이 없다는 신비 아닌 신비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할례를 포함해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많은 율법들이 이방인들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란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또 하나님을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이란 사실을 믿는 믿음뿐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바울의 깨달음이,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는 우리에게는 대단한 깨달음처럼 느껴지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그 사실을 알고, 또 그 사실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자기가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믿고, 그 일을 위해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바울에게 유대인들한테서 돌아온 선물은 돌 몰매였고, 39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은 것이었고, 수없이 감옥에 갇힌 것이었고, 죽을 때까지 쫓아다닌 살해위협이었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 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이, 불행하게도 먼저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자부했던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감춰졌던 비밀을 드러내고, 전파하는 일에 목숨을 바칠 것을 다짐했고, 또 여러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본문 28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 일, 곧 각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훈계하고 가르치며 모든 지혜를 총동원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해서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케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또 29절은 사도 바울이 자기의 맡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지혜만으로 하지 않고, 자기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일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으로 힘을 다하여 수고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남에게 뒤지지 않던 바울이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지혜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으로 분투했던 것입니다.
한 때 사도 바울은 유대인만의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희망, ‘하티크바’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의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던 그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모든 민족의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의 희망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희망을 위해서 목숨을 걸었습니다. 유대인들만의 메시아가 아니라, 모든 민족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기독교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8년 전인 295년에 북아프리카 누미디아 속주도시인 테베스테에 막시밀리아누스란 이름의 세무공무원이 있었습니다. 병사였던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에 22세가 된 막시밀리아누스는 병영세습제로 인해서 입대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시밀리아누스는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입대할 수 없다며 죽음을 무릅쓰고 거부하다가 즉결심판을 받아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막시밀리아누스가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어 지키려했던 것은 그리스도님께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막시밀리아누스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군사가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충성을 받쳤던 카이사르 황제에게 대를 이어 충성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막시밀리아누스는 군단장이자 총독이었던 디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세상군대의 병사가 아니라 하나님군대의 병사입니다.... 제 영혼과 저를 부르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저는 이미 그리스도의 병사배지를 가진 몸입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저는 목에 황제의 화상이 새겨진 구리조각을 걸고 다닐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모르는 신의 아들,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지상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 인생의 인도자인 그분을 따르는 것만이 저의 사명입니다.... 몸은 죽어도 제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이미 제 주님의 병사가 된 이상, 다른 군대의 병사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병사가 된 이후로 이전에 섬기던 대제사장을 더 이상 섬기지 않았던 것처럼, 막시밀리아누스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병사가 된 이후로 더 이상 카이사르 황제를 섬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보다, 카이사르 황제보다 더 높은 분을 알았고, 또 그들의 것보다 더 높고 더 고귀한 뜻을 위해서 충성하라는 임무를 명령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약용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이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16세 때에 진사시에 장원급제를 합니다. 이에 대견하고 기특하게 생각한 정조 대왕이 친히 불러 손목을 잡고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너라. 벼슬을 내리고 큰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부와 권세를 약속받았던 이 천재 소년은 정약용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보장된 장래와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에 헌신합니다. 그러다가 27세 때에 의금부에 끌러가 황소 네 마리에 묶여 팔다리가 찢기는 능지처참 형을 받아 죽었습니다.
황사영 역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걸어 지키려했던 것은 그리스도님께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나라의 임금을 섬기고 출세를 위해서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 선비의 도리란 것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천지대군을 섬기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 이후로 더 이상 대제사장과 유대교를 섬기지 않았던 것처럼, 막시밀리아누스가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 이후로 더 이상 카이사르 황제를 섬기지 않았던 것처럼, 황사영도 그리스도의 병사가 된 이후로는 더 이상 나라의 임금을 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대제사장보다, 카이사르보다, 나라의 임금보다 더 높은 분을 알았고, 그분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모두는 새로 만난 주인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그들 모두는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남에게 뒤지지 않은 인재들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자신들의 지혜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 안에서 매우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모든 능력으로 분투했던 것입니다. 그 점이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힘이었습니다. 모든 지혜로 하되, 특히 그들 속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님의 모든 능력에 의존했던 그들의 겸손과 믿음을 본받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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