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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하나님의 뜻(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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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156 2007.03.2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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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의존할 능력, 하나님의 뜻(마 26:36-46)

매년 교회는 부활주일 전 주일을 종려주일로 지키고, 종려주일부터 부활주일까지의 한 주간을 고난주간으로 지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 바로 종려주일입니다. 교회가 이 날을 종려주일로 지키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날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민중이 종려 가지를 꺾어들고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람을 택해서 고난의 길로 내모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택하시고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길로 몰아가셨습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예수님은 고뇌에 찬 통렬(痛烈)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의지에는 목적의지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실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의견을 묻지 않으십니다. 특별한 목적에 필요한 일군을 택하실 때에도 그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 의견을 묻지 않으십니다. 우주만물을 만드실 때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실 때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마리아와 바울과 같은 일군들을 택하실 때에도 의견을 묻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고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서 일군들을 택하시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지 않았는지 영적으로 예민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민감하게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살림의 일이 일어납니다. 생명의 일이 이뤄집니다. 놀라운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노아는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그 명령은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순종하기 정말 힘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대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잣나무로 길이 135미터, 폭 22.5미터, 높이 13.5미터(3층), 14,000톤급 크기의 방주를 만들고 8명의 사람과 대략 45,000여 마리의 짐승이 일 년 넘게 먹을 양식을 준비했습니다. 엄청난 양의 노동과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벧후 3:4-6)과 엄청난 비용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방주를 건조(建造)하는 데에 걸린 기간이 120년이란 해석도 있습니다(6:3). 이토록 큰 방주를 그토록 오랜 기간에 걸쳐 건조한 노아의 식구는 고작 여덟 명뿐이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를 불러 방주를 짓게 한 일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을 불러 사명을 주시고 일을 시키는 하나님의 뜻 속에는 ‘살림’의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려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속에 살림의 능력과 지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존해야할 능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을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며 죽임의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을 비방과 험담이 차지하고, 생각의 대부분을 미움과 시기와 원망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임의 대상으로 삼지 살림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내 뜻과 내 생각에 의존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명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들이 건조한 방주가 무엇을 상징합니까? 교회를 상징합니다. 노아의 가족이 힘써 행한 일의 모형이 무엇입니까? 목회와 전도의 일입니다. 목회와 전도의 일은 생명을 살리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일입니다. 목숨을 건진 여덟 식구와 45,000여 동물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혼신을 다해 일궈낸 수고와 인내의 결과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빛과 생명의 일에 수고와 인내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인고의 유랑생활을 시작합니다. 수메르문화의 중심지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에블라문명의 중심지 하란에 잠시 거주하다가 아버지 데라가 죽고 75세가 된 때에 약속의 땅을 향해서 하란을 떠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토대이며 근거이자 기반입니다. 이들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귀소본능을 가진 연약한 사회적 동물로써는 하기 힘든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유랑생활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신앙인의 삶의 기반은 이 세상의 아니라, 약속의 땅 하나님의 나라인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잠시 머물다 철수하는 캠프와 같습니다. 나그네의 삶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삶의 중심과 기반을 하나님의 뜻에 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가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의 근원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으로 가나안 땅에 선민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민의 나라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교회와 영원한 세계를 상징합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야했던(히 11:8) 미지의 세계요, 눈으로 볼 수 없던 신세계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고 나갔습니다. 그가 걸었던 나그네의 길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안전한 길이 아니요, 오히려 모험과 도전이 기다리는 위험천만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름과 사명에는 응답자에게 복을 주시려는 숭고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존해야할 능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00세 때에 주신 이삭을 모리아 산에 데려가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순종하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 흥분하고도 남을만한 터무니없는 명령이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가증이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명령은 정상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거둬 가실 분도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약속한 것은 75세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낳은 것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100세 때였습니다. 하나님이 여러 차례 약속하시고 특별히 선물하신 정말 귀하게 얻은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그 아들을 바치라 했을 때엔 뭔가 숨겨진 거룩한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의도를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살림의 능력이요 살림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존해야할 능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서 바로에게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해 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무능함을 핑계로 극구 사양하며 가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부정과 절망에 쌓인 모세에게 소망을 심으셨습니다. 표적을 보여주시며, 일러주시고, 그래도 주저하는 모세에게 아론을 협력자로 붙여 주시겠다고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세는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의지한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깨닫게 되고, 이집트로 갈 것을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을 무릅쓰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일에 몸을 던집니다.
모세가 돌아간 이집트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악하고 음란한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선민을 구출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죄와 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구출한다는 뜻입니다. 홍해를 건넌 것은 침례의 모형이고, 광야생활은 교회생활의 모형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참 목자이신 예수님의 모형입니다.
모세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살려내고 구해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존해야할 능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마리아를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약혼자를 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했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수치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질 것입니다.”고 했습니다(눅 1:38). 마리아를 통해서 하신 하나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인류를 구원하시고 살리실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어려운 결정이지만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동참한 것입니다. 생명의 일에 동참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몸부림치면서 어려운 결정을 놓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기도를 모두 세 번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는 일도 쉽지 않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일은 인간이 된 예수님으로서는 정말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성공적인 구원사역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뜻을 순종한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처참한 형을 받고 운명하셨지만, 하나님이 그를 다시 살리셨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으며,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고,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천하의 모든 자들로 무릎을 그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만 인류를 살리는 엄청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5장 12-21절에서 말하기를,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고,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죽음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게 되었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의의 선물이 더욱 넘치게 되었고,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19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는 축복이 그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넘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한 사람의 파급효과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존해야할 능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살리고 가정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고 국가를 살리고 세계를 살리는 가치 있고 고상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성공적인 사역의 배경에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데 있습니다. 바울은 그가 쓴 거의 모든 서신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고전 1:1).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후 7:10)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해서 기독교라는 대종교가 탄생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고, 행복을 찾았습니까? 지난 2천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렀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한 사람의 파급효과가 이렇게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존해야할 능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번민하며 괴로워하셨지만, 생명을 구하고자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천년 전 그분의 결단이 있었기에 오늘의 기독교가 있고, 우리 모두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미천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때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크게 미칠지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와 같은 겸손과 순종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드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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