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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치와 의미(창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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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129 2007.05.1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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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가치와 의미(창 1:3-10)

가끔씩 내가 존재해야할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존재해야할 가치와 의미는 있는 것인지, 우리 교회와 같이 아주 작은 교회에 무슨 존재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인지, 보좔 것 없는 나의 일들에 무슨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인지, 하찮기 이를 때 없는 허무한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에 대해서 고민해 볼 때가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고민에 빠졌던 사람들 가운데 한 분이 ‘강아지 똥’의 저자 권정생 선생입니다. 그분이 2007년 5월 17일 지병으로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권정생 선생은 열아홉 살 때부터 늑막염과 폐결핵을 앓았고, 신장과 방광과 부고환(副睾丸)으로 번져 전신 결핵을 앓으며 투병했습니다. 1937년 일본 도쿄의 변두리 셋집에서 태어나셨고,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헌책을 가져오면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골라서 읽곤 했다고 합니다. 열 살 때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나서 시작한 것이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였고, 6.25동란 중에는 점원노릇을 하다가 폐결핵을 앓고부터는 3개월간 거지생활도 했습니다. 67년에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마을 예배당 문간방에서 16년간 기거하면서 종지기를 했습니다. 80년 초부터 예배당 뒤 언덕 밑에 5평 남짓한 흙담집을 짓고 살다가 그의 표현대로 오물덩이처럼 뒹굴었던 70평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쓴 ‘강아지 똥’과 󰡔몽실언니󰡕가 60만부 이상 팔렸기 때문에 인세수입이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입의 거의 모두를 자선단체에 기부해왔으며, 무소유를 실천하며 자연과 더불어 소박하게 살다가 하나님 품으로 떠났습니다. 또 인세수입 모두를 어린이들을 위해서 써달라는 유언도 남겼습니다.
‘강아지 똥’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며 길가에 뒹구는 강아지 똥처럼 살아온 자신의 삶에 빗되어 쓴 글일 것입니다. 모두가 다 더럽다고 “퉤퉤”하면서 피해가는 강아지 똥에도 그 나름의 존재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은 강아지 똥을 먹고 예쁜 민들레꽃이 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쓸데없는 것을 단 하나도 만들지 않았고, 따라서 이 세상 어디에도 쓸모없는 삶이 없으며, 반드시 귀하게 쓰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권정생의 작품들은 자연과 생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 많습니다. 어린이, 이웃,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등 그가 그린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영원히 사는 비결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내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오히려 ‘나’를 죽이고, 세상의 맨 끄트머리에 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권정생은 ‘강아지 똥’에서 더럽고 찌꺼기뿐이라고 놀림 받던 강아지 똥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듯이, ‘시궁창에 떨어진 똘배’에서는 아기별의 입을 통해서 더러운 시궁창에도 가장 귀한 영혼이 스며있는 세상의 한 귀퉁이라고 역설합니다.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이 비추는 세상은 평등합니다. 더러운 것도 없고 쓸모없는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더럽고 깨끗하고, 좋고 나쁘고, 많고 적고 하면서 보이는 것을 둘로 갈라놓길 좋아합니다. 보기에 깨끗하면 취하고 더러우면 버립니다. 더러운 것은 쓸모없고, 무가치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더러운 것은 없습니다. 더럽다, 깨끗하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 뿐이라는 것입니다. 권정생은 똘배의 마음을 통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눈에 보이는 것만 볼 것인지, 보이지 않는 뒤에 숨은 귀한 영혼을 볼 것인지를 판단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권정생은 동화를 통해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사람이건 뭐건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쓸모없는 것이 없다.’ ‘모두가 다 평등하다’고 말합니다.
권정생을 만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는 투병 때는 물론이고, 거지생활을 할 때조차도 성경을 읽고 많은 것을 스스로 깨우쳤습니다. 그러한 깨달음이 그의 동화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어느 부흥사가 부흥회를 마치고 돌아가서 권정생 선생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권 선생님의 생활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거지 나사로와 꼭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권정생은 이 편지를 읽고 여태까지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과연 그렇다. 나는 부자의 문간에 않아서 얻어먹는 거지이다. 분수를 지킬 줄 모르면 그 이상 불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지나친 욕심을 버린다면 타인에게 끼치는 해가 줄어들 것이다.” 그로부터 그는 나사로와 자신과의 입장을 함께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나사로가 개들에게 헌 데를 핥이면서, 부자가 먹던 찌꺼기를 얻어먹는 거지였지만, 그에게는 하늘나라를 볼 줄 아는 믿음이 있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거지 나사로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천국이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여태까지와는 거꾸로 보게 되었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는 거야 어디서 살든 그것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기름진 고깃국을 먹은 뱃속과 보리밥을 먹은 뱃속의 차이로 인간의 위아래가 구분지어지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것이다. 약탈과 살인으로 살찐 육체보다 성실하게 거둔 곡식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는 정신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의 길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권정생의 생애와 작품들은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3-10절의 말씀도 우리 인간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고, 피조물에 의한 것도 아니고, 초월적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면, 그것은 보통의 작품일 수 없고, 존귀한 가치와 의미가 있을 것이고, 신성한 목적이 있을 것이고,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나란 존재, 이 작은 교회의 존재에 대해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만드시고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가 ‘아름답다’는 뜻일 뿐 아니라, ‘선하다,’ ‘충실하다,’ ‘기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1장에서만 일곱 차례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은 진실합니다. 평가의 주체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이 평가에 오류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실수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번 아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아신 것은 숙명적으로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고 틀림이 없는 진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좋았다’고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나중에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분은 더 이상 하나님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오류가 없고 무엇인가를 잘 못 알고 계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좋았다’고 하셨으면, 그것은 반드시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것에는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피조물 세계를 ‘좋다,’ ‘좋은 것이다,’ ‘선하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만물이 다 하나님의 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고로 만물은 다 선합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면, 가장 작은 것에도, 가장 초라한 것에도, 가장 못난 것에도, 가장 지능이 낮은 자에게도, 존재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면, 가장 가난한 자에게도, 가장 고통이 심한 사람에게도, 가장 장애가 심한 사람에게도, 가장 비극적인 사람에게도, 존재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섭리가 있고, 경륜이 있습니다.
만물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은 그것들이 전능하신 초월적 존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것이 아무리 하잘 것 없고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만들어졌다는데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창조주께서 이 우주를 시험 삼아 만든 것이 아니고 계획적으로 만드셨다면, 그 만드신 것 하나하나에 분명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의미 없이 목적 없이 가치 없이 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연에 의해서 생겨났다면, 거기에는 존재의 가치나 의미나 목적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우연에 의해서 생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셨다는 것부터 범상한 일이 아닙니다. 매우 계획적이고 뚜렷한 목적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특징은 빛을 가장 먼저 만든데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빛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물이 우연에 의해서 생긴 것이 아니란 사실을 웅변적으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빛을 만드신 후에 우주의 틀인 궁창을 만드셨고, 그 안에 인간과 동물을 위한 바다와 육지와 식물을 만드셨습니다. 지구를 해와 달과 별보다 먼저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경륜을 생각지 않고서는 해보다 지구를 먼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해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이 빛이기 때문에 우리는 빛의 근원을 태양광선에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둘 수 있습니다. 해, 달, 별을 만드신 후에 다섯째 날에 살아 움직이는 것들 곧 조류와 어류를 만드셨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짐승과 우리 인간들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드실 작정이었기 때문에 인간보다 만물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주인이 살집이 먼저 만들어지고, 그리고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들로 채워지고, 그러고 나서 사람이 들어가 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을 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칠일창조의 순서에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섭리와 경륜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엄청난 위력과 권위를 드러내보였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은 살림의 말이었다는데, 그 위대한 권세와 위력이 드러났습니다. 이 살림의 말에 따라 무가 유가 되었고, 혼돈이 우주적질서가 되었으며, 흑암이 빛이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능력의 말씀, 창조의 말씀, 살림의 말씀, 생명의 말씀에 의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에 얼마큼이나 소중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있었다고 봐야하겠습니까? 무한한 가능성과 무한한 가치와 무한한 의미가 있다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들을 설명한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마태복음을 쓴 저자는 예수님을 말씀에 권세가 있으신 분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그분의 말씀에 따라서 병자가 고침을 받게 되고, 귀신이 떨며 꼬꾸라져 떠나고, 죄와 억압과 고통 속에 사는 민중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로 어루만져 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는 살림의 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예수님처럼 병자를 고치지는 못하고, 귀신을 떨며 꼬꾸라져 떠나가게는 못한다 해도, 살림의 말, 칭찬의 말, 위로의 말, 감사의 말, 믿음의 말, 소망의 말, 창조의 말, 긍정의 말, 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면, 우리의 그와 같은 말들 속에는 엄청난 권세와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의 권세에 따라서 존재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첫째 날 “빛이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나서 그 빛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는 항상 좋은 열매, 좋은 결과가 따랐다는 데 그 위력과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긍정의 결과 곧 존재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따랐던 것입니다. 만일 우리도 하나님처럼, 예수님처럼, 우리가 하는 말에 보기에 좋은 열매, 보기에 좋은 결과가 따른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살림의 말들은 우리들의 존재에 소중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살림의 말들을 쏟아낸다면, 그들은 분명코 그들 존재에 대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치와 의미와 목적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 또는 교우들에게 살림의 말들을 쏟아낸다면, 삶의 가치와 의미와 목적이 충만해 질 것입니다. 이런 살림의 능력과 지혜가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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