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길(고후 11: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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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고후 11:23-27)
성도님들의 기도의 힘을 입어 지난 7월 2일부터 18일까지 터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겸 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터키와 그리스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먼저 터키는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7.8배나 되지만 인구는 1.5배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입니다. 전국토의 대부분이 온대기후로써 40-50도까지 올라가는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비가 오는 겨울로 나눠집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으로써 좁은 해안평원과 높은 중앙고원지대로 나눠지고, 대부분의 지형이 높던 낮던 완만하고 평온한 구릉지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비행기와 자동차로 움직였지만 나무숲이 있는 지역을 한 곳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터키의 동부지역을 순례하면서 느낀 점은 믿음의 조상들이 걸었던 순례의 길이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안착한 아라랏산은 높이가 5,165미터로써 터키의 동부 끝 이란과 아르메니아 국경에 접해 있었고, 아브라함과 야곱이 살았던 하란은 터키 동중부 남쪽끝자락인 시리아 국경에 접한 지역에 있었는데, 도로에는 먼지가 푸석거리고, 40-50도를 넘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하란지역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버섯지붕처럼 생긴 흙집들을 짓고 살아온 흔적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물을 사서 마셔야 합니다. 물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물에 석회석이 많이 녹아있어서 마시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도 정말 귀한 나라들입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터키와 그리스는 지중해성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에만 잠시 비가 내리는 곳들이어서 물이 귀한 곳입니다. 그리스에서 보고 배운 것 가운데 한 가지가 겨울에 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석회석암반에 보관하면 일 년 내내 둬도 물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서 에게해의 바닥은 석회석으로 덮어 있어서 물고기가 살기에 부적합하지만, 대신에 물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고 쾌적하다고 합니다. 에게해뿐만 아니라, 터키의 호수들에서도 고깃배를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마실 물과 농사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우물과 물 때문에 다툼이 나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물을 파서 물을 얻는 일은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출생지로 여겨지는 시리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하란 지역 산리우르파에는 욥의 우물과 야곱의 우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신약성서에는 우물물 곧 생수를 생명과 연관해서 수차례나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이들 지역에 물이 귀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양떼를 몰고 떠돌았던 지역들은 방대하고 험난했으며, 뜨겁고 물이 귀한 곳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신명기 26장 5절의 말씀,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라는 고백과 창세기 47장 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고백한 말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와 같고 외롭고 끝없는 인생길을 작열하는 햇살과 목마름과 싸우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인내로써 순례의 길을 걸었던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이 크게만 보이고, 나의 믿음은 한없이 작게만 보인 그런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고, 계시록 7장 16절에서는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들은 정말 주릴 수밖에 없었고, 목마를 수밖에 없었고, 해의 뜨거운 기운에 상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아무리 험악한들 저들의 삶만 하겠는가? 내가 걸어가는 이 믿음의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한들 저들이 걸었던 길만큼 힘든 길이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과 연관해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란 근처에 1990년 8월에 준공된 아타투르크 댐(Ataturk Barij)에 관한 것입니다. 계시록 16장 12-16절을 보면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이 적혀 있습니다.
[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타투르크 댐은 에덴 동산 근처를 흐르던 4개의 강 가운데 유프라테스 강의 발원지를 막아 만든 소양강 다목적 댐과 같은 사력댐인데, 문제는 시리아와 이라크로 흐르는 물줄기를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다는데 있습니다. 물이 귀한 이들 나라에 물줄기를 차단함으로써 터키가 얻는 효과는 수로를 만들어 거대한 평원에 물을 보내서 스프링클러를 이용해서 농업대국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고, 시리아와 이라크는 물 부족으로 인해서 터키와 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이 바로 이 물 전쟁이 아니겠는가 라는 해석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는 것을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야곱과 욥의 행적을 찾아본 순례였고요, 이후로는 바울 사도의 선교여행지를 둘러보는 여정이었습니다. 여행은 안디옥교회가 처음 세워졌던 수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바울이 교회들을 세웠던 지역들과 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과 밧모섬과 그리스를 둘러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도시와 도시가 멀고 험준하기 이룰 때 없고, 40-50도가 넘나드는 땡볕아래서의 끝도 없는 도보여행들을 물도 귀하고 먹을 것도 귀하고 그늘도 많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바울 사도 일행이 지나갔을 그 머나먼 길들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편하고 안락한 벤츠 버스를 타고 한 구역 한 구역을 지나갈 때마다 바울 사도 일행의 수고와 노고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잠시 지나치는 터키와 그리스 지역의 음식과 물을 이겨내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탈로 밤새도록 고생을 하고, 수 킬로그램이나 체중이 빠지는 상황에서 고린도후서 11장의 구절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3-27절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이들 지역에서 수고를 넘치도록 했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했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했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 번 돌에 맞아 죽었다가 깨어났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주야를 흑암 속에서 지냈고, 여행 중에 여러 번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유대인들로부터의 위험과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로부터의 위험을 당하였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정말 실감났고 뼈에 사무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 지역의 순례를 마치고 나서 느낀 점은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주신 교훈처럼 하나님의 교회일지라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계 2:1-5).
사도 바울 일행이 제2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들을 세웠던 그리스는 우리나라 남한의 면적보다 1.3배가 크지만, 인구는 서울인구보다 적은 1천1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입니다. 기독교의 한 분파인 동방교회 곧 그리스 정교회가 국교이고, 인구의 98퍼센트가 신도들입니다. 신약성서가 기록된 헬라어를 언어로 쓰기 때문에 성서이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는 자부심 또한 대단한 나라입니다. 단어 하나에 신이 하나라는 그래서 무려 3만 명의 신들을 믿었던 신화의 나라 헬라가 사도 바울 일행의 헌신적인 복음전도에 힘입어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요, 오늘날에는 신화를 바탕에 둔 고대 유물들과 기독교 유물들의 혜택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뿌리고 가는 돈으로 풍족하게 살아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우호적이고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있는 나라가 그리스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터키는 기독교인들이 뿌리고 가는 돈으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기독교인들에게 어느 정도는 적대감을 갖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터키에서는 찬송가 한 장도 부를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과 사도 요한을 비롯한 수많은 주의 일군들이 헌신적으로 일궜고, 한 때는 비잔틴이란 이름의 찬란한 기독교 문명의 꽃을 피웠던 터키의 교회들은 13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흔적만 남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십자가를 구경하기 어려운 모슬렘 국가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고, 귀중한 교훈도 얻었습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기독교가 발붙이기가 심히 어려운 나라가 터키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바로 서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놀드 토인비의 지적처럼, 쇠퇴하고 붕괴되는 응보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지역을 순례하면서 받은 강한 인상 가운데는 침례와 무악기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터키 지역을 안내한 가이드는 어려서부터 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중년의 기독교인이었는데, 박해를 피해서 만든 1,000여개의 동굴교회들이 몰려있는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동굴교회에 만들어진 침례탕을 보여주면서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본래 기독교 세례는 침례였는데, 십자군 전쟁 당시 군인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성례를 행하려다보니까 생겨난 것이 약식세례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봤더니, 실제로 십자군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때인 12세기경에 십자군을 모집함에 있어서 일일이 침례를 주기가 어려워 약식세례를 주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고,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행한 그리스도교 대사전(1972)에도 “초기 교회에 있어서 적어도 12세기경까지 세례는 '침례'가 보통이었다. 그 후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물을 뿌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이유로는 병자와 유아를 침수시키기 어렵다는 데서였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침례탕의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모두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밧모섬과 그리스 지역의 가이드들은 여성들로서 그리스에 유학을 왔다가 그리스인들과 결혼해서 20년 또는 28년째 그리스에 살고 있는 이들로써 밧모섬에 계신 분은 박사학위를 가진 예술작업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동방교회 특히 희랍 정교는 신약성서가 처음 쓰인 헬라어로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신념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물속에 세 번 담그는 침례와 예배 때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의 침례방식에 있어서 세 번 물속에 담갔다는 기록은 사도전승이란 책에도 있고, 초기교회사를 아는 사람들은 다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희 대학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수님도 세미나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는 전통은 서방교회 즉 가톨릭교회 전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방교회와 일부 개신교, 유대교 정통파에서는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동방교회의 경우 희랍정교와 러시아 정교 모두에서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카나다에 산재한 북미주 개혁주의 장로교 교단과 스코틀랜드의 일부 개혁교회들, 특히 칼뱅과 낙스 전통의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서에 의하면, 예배용 찬송으로 시편에 고유한 운율을 사용하여 불렀고, 악기의 사용은 금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들의 경우, 19세기 이후 교회음악의 발전과 함께 예배시 악기사용이 허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주승중, 장신대 예배와 설교학 교수).
유대교는 성전파괴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성전파괴이전에는 시편에 나타난 대로 예배시 악기사용이 허용되었으나 성전파괴이후 회당예배의 발전과 더불어 악기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시작된 개혁주의 유대교에서만 예배시에 악기를 사용하고 정통파에서는 아직도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악기사용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악기의 음을 맞춘다든지 하는 것은 안식일 법에서 금하는 창조행위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 가운데도 무악기 교회들이 있습니다.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 남부지역들, 특히 텍사스주와 테네시주 등에 1만개 이상의 크고 작은 무악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 때에 악기를 쓰고 안 쓰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해석에 의한 것이란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로써 음악을 합당하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배 때에 사용하는 악기들과 사용방법에 대해서 좀더 신중할 필요를 느낍니다. 좀더 경건하고 은혜롭게 예배를 돕는 방편으로 사용되어야지, 심리적 정신적 영적인 조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인위적인 수단과 방편으로 사용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서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 걸었던 순례의 길이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아무리 험악한들 저들의 삶만 하겠는가? 내가 걸어가는 이 믿음의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한들 저들이 걸었던 길만큼 힘든 길이겠는가? 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터키에 세워진 교회들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연조나 행위를 자랑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옳은 행실의 삶을 살고 있는가 반성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행하고 믿는 것이 바른가라는 점입니다. 큰 교단, 큰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반성하고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각자가 가는 믿음의 길이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인가를 깊이 성찰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의 힘을 입어 지난 7월 2일부터 18일까지 터키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겸 성지순례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터키와 그리스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먼저 터키는 우리나라 남한 면적의 7.8배나 되지만 인구는 1.5배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입니다. 전국토의 대부분이 온대기후로써 40-50도까지 올라가는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온화하고 비가 오는 겨울로 나눠집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형으로써 좁은 해안평원과 높은 중앙고원지대로 나눠지고, 대부분의 지형이 높던 낮던 완만하고 평온한 구릉지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비행기와 자동차로 움직였지만 나무숲이 있는 지역을 한 곳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터키의 동부지역을 순례하면서 느낀 점은 믿음의 조상들이 걸었던 순례의 길이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안착한 아라랏산은 높이가 5,165미터로써 터키의 동부 끝 이란과 아르메니아 국경에 접해 있었고, 아브라함과 야곱이 살았던 하란은 터키 동중부 남쪽끝자락인 시리아 국경에 접한 지역에 있었는데, 도로에는 먼지가 푸석거리고, 40-50도를 넘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습니다. 하란지역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버섯지붕처럼 생긴 흙집들을 짓고 살아온 흔적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에서는 물을 사서 마셔야 합니다. 물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물에 석회석이 많이 녹아있어서 마시기에 부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나라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도 정말 귀한 나라들입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해서 터키와 그리스는 지중해성기후이기 때문에 겨울에만 잠시 비가 내리는 곳들이어서 물이 귀한 곳입니다. 그리스에서 보고 배운 것 가운데 한 가지가 겨울에 내리는 빗물을 받아서 석회석암반에 보관하면 일 년 내내 둬도 물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서 에게해의 바닥은 석회석으로 덮어 있어서 물고기가 살기에 부적합하지만, 대신에 물이 상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깨끗하고 쾌적하다고 합니다. 에게해뿐만 아니라, 터키의 호수들에서도 고깃배를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마실 물과 농사에 필요한 물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우물과 물 때문에 다툼이 나는 것을 여러 번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물을 파서 물을 얻는 일은 생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출생지로 여겨지는 시리아 국경에서 멀지 않은 하란 지역 산리우르파에는 욥의 우물과 야곱의 우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신약성서에는 우물물 곧 생수를 생명과 연관해서 수차례나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도 이들 지역에 물이 귀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조상들이 양떼를 몰고 떠돌았던 지역들은 방대하고 험난했으며, 뜨겁고 물이 귀한 곳이었다는 점에서 볼 때, 신명기 26장 5절의 말씀,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이라는 고백과 창세기 47장 9절에 야곱이 바로에게 고백한 말대로,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그네와 같고 외롭고 끝없는 인생길을 작열하는 햇살과 목마름과 싸우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바라보면서 포기하지 않고 굳세게 인내로써 순례의 길을 걸었던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이 크게만 보이고, 나의 믿음은 한없이 작게만 보인 그런 여행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하셨고, 계시록 7장 16절에서는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믿음의 조상들은 정말 주릴 수밖에 없었고, 목마를 수밖에 없었고, 해의 뜨거운 기운에 상할 수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아무리 험악한들 저들의 삶만 하겠는가? 내가 걸어가는 이 믿음의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한들 저들이 걸었던 길만큼 힘든 길이겠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과 연관해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란 근처에 1990년 8월에 준공된 아타투르크 댐(Ataturk Barij)에 관한 것입니다. 계시록 16장 12-16절을 보면 아마겟돈 전쟁에 관한 예언이 적혀 있습니다.
[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아타투르크 댐은 에덴 동산 근처를 흐르던 4개의 강 가운데 유프라테스 강의 발원지를 막아 만든 소양강 다목적 댐과 같은 사력댐인데, 문제는 시리아와 이라크로 흐르는 물줄기를 차단하는 효과를 갖는다는데 있습니다. 물이 귀한 이들 나라에 물줄기를 차단함으로써 터키가 얻는 효과는 수로를 만들어 거대한 평원에 물을 보내서 스프링클러를 이용해서 농업대국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고, 시리아와 이라크는 물 부족으로 인해서 터키와 물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이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계시록의 아마겟돈 전쟁이 바로 이 물 전쟁이 아니겠는가 라는 해석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는 것을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노아와 아브라함과 야곱과 욥의 행적을 찾아본 순례였고요, 이후로는 바울 사도의 선교여행지를 둘러보는 여정이었습니다. 여행은 안디옥교회가 처음 세워졌던 수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바울이 교회들을 세웠던 지역들과 계시록에 언급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과 밧모섬과 그리스를 둘러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도시와 도시가 멀고 험준하기 이룰 때 없고, 40-50도가 넘나드는 땡볕아래서의 끝도 없는 도보여행들을 물도 귀하고 먹을 것도 귀하고 그늘도 많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바울 사도 일행이 지나갔을 그 머나먼 길들을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편하고 안락한 벤츠 버스를 타고 한 구역 한 구역을 지나갈 때마다 바울 사도 일행의 수고와 노고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목이 메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습니다. 잠시 지나치는 터키와 그리스 지역의 음식과 물을 이겨내지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탈로 밤새도록 고생을 하고, 수 킬로그램이나 체중이 빠지는 상황에서 고린도후서 11장의 구절들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3-27절에 잘 나타나 있듯이, 이들 지역에서 수고를 넘치도록 했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했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뻔했고,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았고, 한 번 돌에 맞아 죽었다가 깨어났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주야를 흑암 속에서 지냈고, 여행 중에 여러 번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유대인들로부터의 위험과 이방인들로부터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로부터의 위험을 당하였고,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정말 실감났고 뼈에 사무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터키와 그리스 지역의 순례를 마치고 나서 느낀 점은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주신 교훈처럼 하나님의 교회일지라도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계 2:1-5).
사도 바울 일행이 제2차 선교여행을 통해서 많은 교회들을 세웠던 그리스는 우리나라 남한의 면적보다 1.3배가 크지만, 인구는 서울인구보다 적은 1천1백만 명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입니다. 기독교의 한 분파인 동방교회 곧 그리스 정교회가 국교이고, 인구의 98퍼센트가 신도들입니다. 신약성서가 기록된 헬라어를 언어로 쓰기 때문에 성서이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그대로 지켜오고 있다는 자부심 또한 대단한 나라입니다. 단어 하나에 신이 하나라는 그래서 무려 3만 명의 신들을 믿었던 신화의 나라 헬라가 사도 바울 일행의 헌신적인 복음전도에 힘입어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나라요, 오늘날에는 신화를 바탕에 둔 고대 유물들과 기독교 유물들의 혜택으로 수많은 여행자들이 뿌리고 가는 돈으로 풍족하게 살아가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우호적이고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있는 나라가 그리스입니다. 이스라엘이나 터키는 기독교인들이 뿌리고 가는 돈으로 부를 축적하면서도 기독교인들에게 어느 정도는 적대감을 갖고 있는 나라들입니다. 터키에서는 찬송가 한 장도 부를 수 없는 현실이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과 사도 요한을 비롯한 수많은 주의 일군들이 헌신적으로 일궜고, 한 때는 비잔틴이란 이름의 찬란한 기독교 문명의 꽃을 피웠던 터키의 교회들은 13세기에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흔적만 남김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오늘날에는 십자가를 구경하기 어려운 모슬렘 국가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고, 귀중한 교훈도 얻었습니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기독교가 발붙이기가 심히 어려운 나라가 터키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바로 서지 못하고, 새로운 도전에 적응하지 못하면, 아놀드 토인비의 지적처럼, 쇠퇴하고 붕괴되는 응보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지역을 순례하면서 받은 강한 인상 가운데는 침례와 무악기 예배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터키 지역을 안내한 가이드는 어려서부터 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온 중년의 기독교인이었는데, 박해를 피해서 만든 1,000여개의 동굴교회들이 몰려있는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동굴교회에 만들어진 침례탕을 보여주면서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본래 기독교 세례는 침례였는데, 십자군 전쟁 당시 군인들에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성례를 행하려다보니까 생겨난 것이 약식세례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봤더니, 실제로 십자군 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때인 12세기경에 십자군을 모집함에 있어서 일일이 침례를 주기가 어려워 약식세례를 주기 시작했다는 설이 있고,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행한 그리스도교 대사전(1972)에도 “초기 교회에 있어서 적어도 12세기경까지 세례는 '침례'가 보통이었다. 그 후 머리에 물을 적시거나 물을 뿌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발전했다. 그 이유로는 병자와 유아를 침수시키기 어렵다는 데서였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 침례탕의 흔적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모두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밧모섬과 그리스 지역의 가이드들은 여성들로서 그리스에 유학을 왔다가 그리스인들과 결혼해서 20년 또는 28년째 그리스에 살고 있는 이들로써 밧모섬에 계신 분은 박사학위를 가진 예술작업을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동방교회 특히 희랍 정교는 신약성서가 처음 쓰인 헬라어로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과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신념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물속에 세 번 담그는 침례와 예배 때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때의 침례방식에 있어서 세 번 물속에 담갔다는 기록은 사도전승이란 책에도 있고, 초기교회사를 아는 사람들은 다 인정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희 대학에서 구약학을 가르치는 예수교 장로회 소속 교수님도 세미나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는 전통은 서방교회 즉 가톨릭교회 전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방교회와 일부 개신교, 유대교 정통파에서는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동방교회의 경우 희랍정교와 러시아 정교 모두에서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미국과 카나다에 산재한 북미주 개혁주의 장로교 교단과 스코틀랜드의 일부 개혁교회들, 특히 칼뱅과 낙스 전통의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서에 의하면, 예배용 찬송으로 시편에 고유한 운율을 사용하여 불렀고, 악기의 사용은 금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들의 경우, 19세기 이후 교회음악의 발전과 함께 예배시 악기사용이 허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주승중, 장신대 예배와 설교학 교수).
유대교는 성전파괴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성전파괴이전에는 시편에 나타난 대로 예배시 악기사용이 허용되었으나 성전파괴이후 회당예배의 발전과 더불어 악기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미국에서 시작된 개혁주의 유대교에서만 예배시에 악기를 사용하고 정통파에서는 아직도 예배 시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악기사용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악기의 음을 맞춘다든지 하는 것은 안식일 법에서 금하는 창조행위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들 가운데도 무악기 교회들이 있습니다. 보수성향이 강한 미국 남부지역들, 특히 텍사스주와 테네시주 등에 1만개 이상의 크고 작은 무악기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배 때에 악기를 쓰고 안 쓰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해석에 의한 것이란 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예배로써 음악을 합당하게 사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예배 때에 사용하는 악기들과 사용방법에 대해서 좀더 신중할 필요를 느낍니다. 좀더 경건하고 은혜롭게 예배를 돕는 방편으로 사용되어야지, 심리적 정신적 영적인 조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인위적인 수단과 방편으로 사용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서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이 걸었던 순례의 길이 정말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인생길이 아무리 험악한들 저들의 삶만 하겠는가? 내가 걸어가는 이 믿음의 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한들 저들이 걸었던 길만큼 힘든 길이겠는가? 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터키에 세워진 교회들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자녀일지라도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촛대가 옮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연조나 행위를 자랑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옳은 행실의 삶을 살고 있는가 반성하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우리가 행하고 믿는 것이 바른가라는 점입니다. 큰 교단, 큰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랑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받으실만한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반성하고 회개하자는 것입니다. 각자가 가는 믿음의 길이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인가를 깊이 성찰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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