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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왕상 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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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3,043 2007.09.15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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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왕상 19:9-18) 솔로몬이 죽고 나서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다음 50년쯤 지나서 북왕국 이스라엘에 강력한 왕이 나타났는데, 그 이름이 오므리(885-874B.C.)입니다.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국제사회에 알릴만큼 뛰어난 왕이었지만, 아들 아합(874-853B.C.)을 옛바알의 딸 이세벨과 혼인시켜 결혼동맹을 맺게 한 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사특한 이세벨이 야훼 하나님 신앙을 말살하려했고, 그것 때문에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북왕국 백성은 바알숭배강요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으며, 왕과 왕족은 엘리사와 예후가 일으킨 쿠데타 때에 멸문을 당했습니다. 아합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이었습니다. 마음이 여리고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이세벨은 남편인 아합을 조종하고 부추긴 사람이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에도 아합은 정당한 값으로 사기를 원했지만, 이세벨은 간계를 부려 사람들로 하여금 나봇을 돌로 쳐 죽이게 하고 탈취했습니다. 이처럼 이세벨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여인이었습니다. 이토록 사특하고 악독한 이세벨을 오므리는 며느리로 맞아들였고, 이세벨은 야훼 하나님 신앙을 말살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도록 무력으로 강요하였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거부하는 자에게는 죽음이 따를 뿐이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로써 이세벨은 야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수없이 잡아 죽였습니다. 이 암울한 시대에 이세벨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이 특심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디셉 사람 엘리야였습니다. 엘리야는 담대하게 아합과 이세벨에 대항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절을 보면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고 통보하고 있습니다. 아열대 사막기후에다 수리시설이 없던 2,850여 년 전에 3년 넘게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기시고 까마귀를 통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사르밧 과부의 집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가뭄이 지속되자 집에 있던 마지막 밀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빚어 먹고 아들과 함께 죽으려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불쌍한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엘리야는 이 여인에게 빵을 구어오라 했고, 아들과 함께 먹고 죽을 작정이었던 과부는 엘리야의 황당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최후의 가루와 기름방울로 빵을 구어 바쳤습니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도 한마디 불평 없이 하나님의 종을 대접했던 과부에게 찾아온 보상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분이 없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 16절을 보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 이 표적은 장차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행하실 오병이어의 표적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표적에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눠주고 나면 다시 그대로 남아있고, 또 나눠주고 나면 다시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보리빵 다섯 개가 다하지 아니하고, 물고기 두 마리가 없어지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모세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아침에 일어나 만나를 거두고 나면, 사라졌다가 다시 그 다음날 일어나보면 그대로 있어서 매일 아침마다 백성이 만나를 거둬들일 수 있었던 표적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오병이어의 표적으로써 우리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보다 더 뛰어난 선지자였음이 밝혀지게 된 것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3년 넘게 비가 내리지 않던 어느 날 엘리야는 아합에게 한 가지 제안을 내놓습니다. 갈멜산에 모여서 아합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가 참 신인지, 엘리야가 섬기는 야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한판 붙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대 1로 참 하나님을 가리는 대결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소문은 순식간에 전 지역에 퍼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대결장인 갈멜산에 모였습니다. 엘리야는 몰려든 백성에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을 보면,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유구무언 대답이 없었습니다.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대결방법은 각각의 팀 앞에 송아지 한 마리씩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각자의 신을 불러 불이 붙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들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들은 이른 아침부터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정오 때부터는 칼과 창으로 자신들의 몸을 상하게 하여 피를 흘리며 바알과 아세라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끝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앞서 백성들로 하여금 가까이 오게 하고 무너진 야훼의 단을 수축하였습니다. 열두지파의 수효대로 돌을 취하여 단을 쌓고 단 주변으로 도랑을 파고 송아지를 각 떠서 나무위에 올린 다음 도랑에 물을 길어다 채우게 하였습니다. 준비를 마친 엘리야는 오후 3시경에 단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말려버렸습니다. 엘리야와 살아계신 야훼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흑암에 처한 인간들의 생각 속에만 존재하는 거짓 신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하늘에서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울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모험을 단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을 거뒀습니다. 대결직후 엘리야는 백성들과 함께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붙잡아 기손강가로 데려가서 모두 처형시켰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정상에 올라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비가 내리도록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무려 일곱 번까지 기도하였고, 일곱 번째에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일자 큰비가 올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아합에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세벨은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에게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고 전갈을 보냈습니다. 엘리야는 겁을 먹고 크게 낙심하여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왕 앞에서 하나님의 불을 토하며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을 단칼에 멸했던 엘리야는 왕후 앞에서는 겁을 먹고 유다왕국으로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광야에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스스로 죽기를 소원할 만큼 지치고 탈진하여 쓰러졌습니다. 그런 엘리야를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시어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여러 날을 먹고 마시우고 쉬고 잠들게 하셨습니다. 지치고 탈진한 사람에게 이 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지요? 스스로 죽기를 바랐던 엘리야였지만, 여러 날 먹고 마시고 푹 쉰 후에는 기력이 회복되었고, 무려 사십일 밤낮을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이 호렙산은 모세가 엘리야보다 500년 먼저 하나님께 세미한 음성을 들었던 곳이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후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전달했던 신성한 장소입니다. 호렙산의 한 동굴에서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그래서 엘리야는 동굴 밖으로 나가서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크고 강한 바람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치 못했습니다. 바람 후에 일어난 큰 지진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치 못했습니다. 지진 후에 일어난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강풍이 불고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소동 속에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호렙산으로 피신하기 전까지만 해도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했고, 강풍처럼 달렸으며, 850인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을 처단함으로써 천지를 진동시켰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까지는 이세벨을 두려워했고, 암담한 현실에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소란이 있고난 다음 고요 속에서, 동굴 어귀에 서서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엘리야는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라고 묻는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보다 500년 먼저 모세에게 같은 산에서 특명을 내리셨던 하나님이 동일한 산에서 엘리야에게 새로운 특명을 내리셨습니다. 특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엘리야야, 너는 하사엘에게 가서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라!” 둘째, “엘리야야, 너는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셋째, “엘리야야, 너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가가 되게 하라!” 그리고 엘리야는 이 세 가지 특명을 다 수행한 후에 죽지 않고 회리바람 속에 나타난 불수레와 불말들을 타고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낸 모세는 죽어서 시체로 승천했지만, 북왕국 이스라엘 민족을 아합과 이세벨의 우상숭배정책에서 건져낸 엘리야는 에녹처럼 죽지 않고 바로 승천하였습니다. 모세와 엘리야의 원형이신 예수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셨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욥에게도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욥은 사단의 장난으로 재산과 가족을 다 잃고, 몸에 난 악창 때문에 잿더미에 나앉아 기와로 자신의 몸을 긁어야 했을 만큼 고통이 극심했습니다. 그것을 본 아내가 배신하고 돌아섰습니다. 친구들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며 욥의 숨겨진 죄악을 추궁하였고, 그의 불행의 원인을 캐내려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인간이 겪는 모든 고통과 불행이 다 죄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욥은 참담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냥꾼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함정으로 몰아간다고 원망했습니다(욥 10:16). 욥은 그가 하나님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앞에 다가서서 왜 악한 자가 세상에서 잘 살며 불의와 부정함이 세상에서 승리를 거두는지를 물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고통이 가중될수록 하나님의 침묵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 하시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 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 23:8-9) 라며 탄식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 욥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욥이 하나님을 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욥은 폭풍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었습니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하라.”(욥 38:1-3)고 말씀하시며,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욥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미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내가 한두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하지도 아니하겠고 대답지도 아니하겠나이다”(욥 40:4-5). 그러자 하나님께서 욥에게 또 다시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하라”(욥 40:7)고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며,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때 비로소 욥은 하나님께 대답하기를,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1-6)라고 했습니다. 이 일 후에 욥은 배전의 재산을 모았고, 장수의 축복을 누리고 죽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욥과 모세와 엘리야처럼 여러 형태의 시련과 시험을 만납니다. 그것을 극복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첫째, 정신을 집중하여 묵상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침묵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강풍이 불고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는 소란 속에서는 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TV나 MP3을 통해서는 들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할 때,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경험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만 해도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우리에게 필요합니까? 모세와 엘리야처럼 혹은 욥처럼 실패자란 생각이 들 때, 절망감에 빠졌을 때 필요합니다. 그밖에도 실패했을 때, 난관에 부딪혔을 때, 소망이 사라졌을 때, 두려움이 엄습할 때, 시험을 당했을 때, 마음이 저며 올 때,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미래가 불확실 할 때,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엄청난 문제가 앞을 가로 막을 때, 하나님이 멀리 계시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필요합니다. 모세처럼, 엘리야처럼, 욥처럼 성공적인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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