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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의 세 가지 덕목(벧전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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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81 2006.06.30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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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의 세 가지 덕목(벧전 4:8)

톨스토이가 쓴 23개의 민화 가운데 󰡔대자󰡕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이미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기 때문에 생소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좋은 글이나 영화 혹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보면 볼수록, 읽으면 읽을수록 그 감동이 매번 다릅니다. 좋은 예술 작품은 곁에 두고 일 년 삼백육십오일 또는 수십 년씩 봐도 질리지 않고 오히려 그 느낌이 볼 때마다 새로운 법입니다.
톨스토이의 󰡔대자󰡕는 구도자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에게 늘 새로운 통찰과 반성의 기회를 줍니다. 톨스토이는 이 글을 우리와 같은 기독교인들을 교훈하기 위해서 썼을 것으로 봅니다. 이 글에서 톨스토이는 세 가지 덕목에 대해서 적고 있습니다.
첫째, 자신의 걸레가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걸레가 깨끗하지 못하면 청소가 깨끗하게 되지 않습니다. 깨끗하게 빨지 않은 걸레는 악취가 나고, 그 상태로 걸레질을 하게 되면 얼룩이 남게 됩니다.
이 걸레는 우리 구도자들의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앙 상태를 말하기도 하고, 가치관과 세계관을 말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 신앙이 바르지 못한 사람, 가치관과 세계관이 잘못된 사람은 이웃에게 얼룩을 남깁니다. 악취를 남깁니다.
깨끗하지 않은 걸레는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합니다. 그러나 삶거나 비누로 깨끗하게 빨아 말린 걸레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로 간주됩니다. 따라서 구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걸레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 걸레를 깨끗하게 하는 것일까요?
톨스토이는 걸레를 의식주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의식주문제에 얽매인 삶을 불결한 걸레로 본 것입니다. 의식주문제에 집착하거나 얽매어 살게 되면 반드시 이웃에게 얼룩과 악취를 남기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먹고사는데 큰 불편이 없는데도 자기보다 좀 더 잘 사는 사람을 보게 되면 심통을 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 사람은 자기 이웃에게 얼룩과 악취를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걸레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산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내일 무슨 일이 있어날지를 알려주지 않는  것은 사랑으로 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자신의 버팀목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하면 버팀목에 걸어서 휘거나 꺾으려 했던 것에 오히려 휘둘리게 됩니다.
이 버팀목은 우리 구도자들의 믿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념과 생사관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 버팀목이 강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오히려 이웃에게 휘둘리게 됩니다. 집단따돌림이나 이지메를 당하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도 버팀목이 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웃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보이고, 그 영향력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데, 오히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끌러가고 휘둘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믿음이나 신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하면 이웃에게 휘둘립니다. 이웃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꺾어 휘어지게 할 수 없습니다. 이웃에 지배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확고하고 신념이 강한 사람은 이웃에게 존경을 받습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구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버팀목을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버팀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일까요?
톨스토이는 버팀목을 생사문제와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생사문제에 얽매인 삶을 튼튼하게 박히지 못한 버팀목으로 본 것입니다. 생사문제에 집착하거나 얽매어 살게 되면 반드시 이웃에게 휘둘리게 된다고 본 것입니다. 이웃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구도자로서의 사명인 복음전도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톨스토이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버팀목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살림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톨스토이가 󰡔대자󰡕에서 말하고자 한 내용입니다. 예수님도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산다고 하셨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못할 것이 없고,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일당백의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지메를 당하는 아이들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죽을 생각을 했다면, 왜 죽기를 각오하고 괴롭히는 자들과 대항해서 싸우지 못할까요? 죽기를 각오하나 대항하지 못하는 그 약함이 바로 그가 괴롭힘을 당하는 원인이 아닐까요?
셋째, 자신의 밑불이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밑불이 강하지 못하면 불 위에 얹히는 젖은 것들, 잘 타지 않는 것들을 태우지 못합니다. 밑불이 강하지 못하면 자기불도 꺼뜨리게 되고 매캐한 연기만 가득 남기게 됩니다.
이 밑불은 우리 구도자들의 사랑의 충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을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과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이웃에게 매캐한 연기만 가득 남기게 됩니다.
밑불이 약한 사람은 자기 불을 꺼뜨리는 사람입니다. 이웃들의 욕설과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원망과 반대에 부딪히면 불이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웃들로부터 외면을 당합니다. 그러나 사랑이 충만하고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은 이웃들의 욕설도 태워버릴 수 있고, 미움도 시기도 질투도 원망도 반대도 다 태워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험 들어 좌절하거나 낙심하여 쓰러질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구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의 밑불, 성령님의 밑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밑불을 타오르게 하는 것일까요?
톨스토이는 밑불을 이웃에 대한 불같은 사랑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이 불이 약한 사람을 매캐한 연기만 남기는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잘되는 것은 자기 탓이고, 잘못 된 것은 이웃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본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톨스토이는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사는 것은 죽음을 걱정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사는 것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랑의 불이 뜨겁지 않으면 자기 인생에 매캐한 연기를 내게 되고, 매우니까 눈물을 뿌리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넷째, 걸레가 깨끗하지 못한 사람, 버팀목이 튼튼하지 못한 사람, 밑불이 강하지 못한 사람은 살림의 일을 하지 못합니다. 대자의 수도생활의 특징은 살림의 일이었습니다.
대자는 나이 들어서 숲 속에서 수도생활을 했는데, 그의 사명은 불에 타다 꺼져 죽은 숯검정이가 되다시피 한 세 개의 사과나무 막대기를 땅에 심고 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냇가에 내려가 입에 물을 머금어다가, 이미 죽은데다가 불에 타기까지 해서 소생의 가능성이 전무한 마른 막대기에 물주는 일을 거르지 않았습니다. 소문이 나자 신도들이 찾아들었고, 대자는 그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고살았습니다. 사람들은 대자를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그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람 죽이는 재미로 사는 잔악무도한 살인강도였습니다. 이 강도는 일종의 스토커로서 수시로 대자를 찾아와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아무튼 대자는 이 강도를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만드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30년이었습니다. 이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왜 이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느냐 의문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대자가 먹고 입고 사는 의식주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데 걸린 시간이 10년이나 되었고, 죽느냐 사느냐의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는데 또 10년이 걸렸고, 자기를 무시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살인강도를 뜨겁게 사랑하는데 또 10년이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자가 의식주문제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시간과 자기를 무시하고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살인강도를 뜨겁게 사랑하는 데 걸린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면, 살인강도가 변화를 받는 시간도 그만큼 줄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시간이 무려 30년이나 되었기에 살인강도가 변화를 받고 예수님과 대자의 제자가 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30년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대자가 강도를 만나 마음고생을 시작한 것은 수도생활을 시작한 직후였습니다. 대자는 강도가 두려웠습니다. 강도가 무서워서 신자들이 암자로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할지 늘 근심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런 세월이 무려 10년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수도생활 10년 끝에 대자는 깨달은바가 있어서 암자를 버리고 사람들이 찾아올 수 없는 깊은 숲 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대자가 자신에 대한 걱정을 그치고 자신의 마음을 맑게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명예를 얻을 수 있을까? 이런 인생살이 문제들은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찾을 수 없는 더 깊은 숲 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살인강도만은 대자의 그런 참뜻을 읽고 있었고, 대자가 숨어들어간 곳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도는 대자의 먹을 것을 자루에 넣어 몰래 가져다주었습니다. 대자의 깨끗한 마음에 살인강도의 마음 한구석에 변화가 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야 강도는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는 대자의 설교를 마음에 새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변화의 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불에 타서 죽은 사과나무 막대기 세 개 가운데 하나에 대자가 계곡의 물을 입에 머금어다가 뿜어 준지 10년 만에 기적처럼 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대자가 사람들을 피해 더 깊은 숲속에 들어가 수도한지 다시 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대자는 이 20년 수도 끝에 더 이상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옳은 것을 위해서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강도라 할지라도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강도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삶을 하나님 안에 단단히 고정시켰을 때, 굽힐 줄 모르던 강도의 고집이 꺾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변화의 기적이 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자 불에 타서 죽은 또 하나의 사과나무에 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십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대자는 이제야 비로소 30년 수도생활 끝에 잔악무도한 강도를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며 온갖 욕설을 퍼붓는 강도의 영혼을 정말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뜨거운 사랑에  강도의 차디찬 마음이 얼음 녹듯이 녹아내렸습니다. 강도의 타버리고 말라버린 마음에 회개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자 마지막 남은 사과나무마저도 싹이 돋기 시작했습니다.
대자가 불에 타서 죽은 사과나무 막대기와 같았던 살인강도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의 싹이 돋게 한 것은 무엇입니까?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켜 새 사람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톨스토이는 󰡔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세 가지 덕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의식주문제를 하나님께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물질문제, 금전문제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버리고 마음의 심지를 굳게 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지, 의식주문제나 생사문제를 염려함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뜨겁게 사랑하며 감사하며 전도하며 살림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불에 타서 죽어버린 사과나무 막대기와 같은 살인강도의 마음을 움직인 힘이었다는 것입니다. 마른 막대기와 같았던 우리들의 마음을 녹인 예수님과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와 생사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살림의 일, 사랑의 일, 복음의 일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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