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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과 명품(딤후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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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747 2006.07.0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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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과 명품(딤후 2:20-21)

예배시간 때문에 볼 수는 없지만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영하는 KBS1 ‘TV쇼 진품명품’이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진행은 왕종근 아나운서가 합니다. 95년부터 10년 넘게 하고 있는 프로그램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TV쇼 진품명품’에 의뢰된 골동품 가운데 역대 최고 감정가를 받은 것은 2004년에 12억 원의 감정가를 받은 고려역상감청자장구(高麗易象嵌靑瓷杖鼓)입니다. 금년 2006년 1월 15일에는 한석봉 선생의 서첩이 7억 원의 감정가를 받았습니다. 2005년 6월 25일에는 국보급 고려청자가 2억 원의 감정가를 받았습니다. 이런 것들은 진품일 뿐 아니라 명품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진품일지라도 어느 수준의 명품인가에 따라서 감정가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입니다. 
‘TV쇼 진품명품’에서 하는 일은 먼저 진품인가를 확인한 다음에 명품여부를 결정합니다. ‘TV쇼 진품명품’에 의뢰된 모든 골동품들이 다 진품으로 판명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진품으로 판명됐다고 해서 다 명품은 아닙니다. 진품이 아닐지라도 가격은 있습니다. 그러나 진품일 경우에는 가격이 훨씬 비쌉니다. 더구나 그것이 명품일 경우에는 그 가격이 월등하게 높아집니다.
신학적으로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다 구원받는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교리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진품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믿고 진품으로 판명됐다고 해서 곧 바로 하나님이 판단하시기에 값나가는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TV쇼 진품 명품’의 진행과정은 이렇습니다. 먼저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 골동품의 감정을 의뢰한 소장자가 소장경위를 설명하고 원하는 가격을 말합니다. 두 번째로 비전문가인 연예인 팀이 의뢰된 골동품을 자세히 살펴본 후에 진위여부를 따져서 합의된 감정가를 내놓습니다. 이 때 소장자가 원하는 가격과 연예인 팀이 매긴 가격에 차이가 생기면서 희비가 교차됩니다. 비전문가들일지라도 그들이 매긴 가격이 소장자가 매긴 가격보다 높게 매겨지면 소장자는 내심 좋아서 흥분하게 됩니다. 그 반대로 소장자가 매긴 가격보다 낮게 매겨지면 내심 실망을 금치 못하면서 전문가들의 감정가에 기대를 걸게 됩니다. 방송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의뢰된 골동품의 진위여부를 충분히 검토하고 감정가를 결정해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전문가들인데, 그들이 세 번째로 나와서 감정결과와 그 골동품의 가치를 발표합니다. 이 때 골동품을 소장한 사람이나 출연한 비전문가 팀이나 시청자들은 모두 전문가들이 매긴 감정가액이 자신들의 생각과 달랐을 때, 또 그 이유를 충분히 듣고 알게 되었을 때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이런 비슷한 장면들이 예수님이 재림하신 직후 마지막 심판 때, 혹은 우리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눈으로 확인하게 될 피할 수 없는 장면들입니다. 사람들은 외적인 현상들, 곧 명예와 권세와 학력과 재력을 중시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들어난 현상들, 곧 거룩해 보이고, 착실해 보이고, 예배에 잘 참석하고, 남들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가액을 매기지만, 하나님은 진실을 보십니다. 마태복음 7장 21-25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는 우리 모두가 다 비전문가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에만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런 사실을 「두 노인」이란 글에서 잘 기술하고 있습니다. 「두 노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두 노인이 성도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 하나는 부자 농부로 예핌 따라스이치 세베료프라는 이름이고, 하나는 그다지 돈이 없는 에리쎄이 보도로프라는 사나이였다.
예핌은 보드까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코담배조차도 쓰지 않았다. 태어난 이후 욕을 한 적이 없고 매사에 엄격하고 야무진 성미였다. 예핌은 두 번이나 마을의 반장을 지냈으나 두 번 다 1꼬뻬이까의 어김도 없이 기한을 마쳤던 것이다....
에리쎄이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노인으로 젊어서는 목수 일을 하러 다녔으나 나이 먹은 뒤로는 집에 있으면서 꿀벌을 치기 시작했다.... 엘리쎄이에는 사람 좋은 명랑한 사나이로 보드까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그는 키가 작달막한 거무스름한 얼굴빛의 빈약한 농군으로 곱실한 턱수염을 기르고 자기와 같은 이름의 옛 예언자 에리쎄이와 마찬가지로 머리가 훌떡 벗겨졌다.
이 이야기의 끝부분에 가서 보면, 술과 담배도 안하고 잘생기고 부유하고 매사에 반듯한 예핌은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지순례를 마치게 되고, 술과 담배도 하고 인물도 없고 부유하지도 않은 에리쎄이는 중도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만나 돌보느라 노잣돈을 다 그들을 위해서 써버리고 예루살렘에는 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갔다 온 예핌이 중도에서 돌아온 에리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몸만 갔다 왔지 영혼은 갔다 왔는지 누가 알겠나? 정작 다른 사람이 갔다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야.” 예핌은 예루살렘에 몸만 갔다 온 것이고, 에리쎄이는 예루살렘에 영으로 갔다 온 것이니, 예핌의 성지순례는 다 헛된 수고였던 것이고, 에리쎄이의 사랑의 희생은 값진 것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핌과 엘리쎄이에서처럼 사람에 대한 평가는 외모나 겉으로 드러난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그들이 행한 선행에 있다는 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값을 매기는 방법과 하나님이 값을 매기는 방법이 이토록 다르다는 것을 교훈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진품과 명품에 관한 이야기를 신앙에 관련해서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모든 인간은 다 진품으로 세상에 나옵니다. 진품이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보아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딤전 4:4)는 말씀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러나 주님, 주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님은 우리를 빚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손수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라는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64장 8절에 실린 이 말씀은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우리 인간을 토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그릇은 세상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모두 하나님이 빚어 만든 진품들입니다. 가짜가 아닙니다.
둘째, 모든 인간은 자기 죄로 인해서 모두 땅 속에 묻혔거나 먼지에 덮여 빛을 보지 못했던 자들입니다. 이 가운데는 깨진 토기그릇, 녹슨 쇠붙이, 빛바랜 금은 장식과 같이 대부분 처음 하나님이 빚어 만드신 그대로 원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죄악 가운데서 깨지고 녹슨 채 방치되었던 자들입니다. 버림받았던 유물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땅 속에 묻혀 있었던 보물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 발견이 되어 진품으로 확인되기까지는 아무 쓸모없게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조자로서 자신이 정성 들여 만든 그릇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깨지고 녹슨 채 흙 속에 묻혀 버린 그릇들을 찾아 발견하기 위해서 각 시대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자기 그릇을 찾으시다가 그것도 마땅치 않아서 아들까지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히 1:1-2). 세상에 오신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목숨까지 바치며 일하셨고, 주의 종들이 전보다 훨씬 많은 그릇들을 찾을 수 있도록 은혜와 믿음의 길을 열어 놓으시고, 하나님 곁으로 올라가신 아들은 다시 종들을 보내어 잊히고 묻힌 그릇들을 지속적으로 찾도록 하셨습니다.
셋째,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 그가 파송한 전도자들에게 발굴되어 옛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가게인 교회를 채우는 골동품들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이 말씀하고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한 때 죄로 인해서 깨지고 녹슬고 버려졌던 자들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발굴되어 옛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새로운 피조물로서 더럽혀진 곳이 씻기고, 깨진 곳이 수리되고, 녹슬었던 곳이 깨끗하게 닦여 반짝 반짝 빛나는 진품들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혹은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자신의 상태를 잘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어떤 도자기를 찾아 수년간 헤매다가 그것을 자기 창고에서 발견한 사람과 같습니다.
넷째, 진품으로 확인된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명품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가가 수 억 원에 이르는 명품이 있는가 하면, 수 만원에 불과한 골동품이 있듯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명품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 진열된 그리스도인 골동품들 가운데 사탄이 만들어낸 모조품들이 적지 아니 많다고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된 진품들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진품이라고 해서 반드시 명품인 것은 아닙니다. 또 진품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가 다 같은 종류의 같은 그릇들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큰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내가 말한 이러한 것들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입니다.”
로마서 9장 20-21절과 이사야 45장 9-10절의 말씀을 보면, 각 사람이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혹은 질그릇으로 태어나는 것은 숙명처럼 어찌해볼 수 없는 닫힌 부분입니다. 따라서 자기 운명이나 숙명에 대해서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다투는 자에게는 화가 닥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디모데후서 2장 21절은 어떤 운명과 숙명을 타고 나왔던, 그릇의 종류가 무엇이든 간에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께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쓰이는 귀하고 성별된 그릇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되느냐, 천하게 쓰이는 그릇이 되느냐의 문제는 닫힌 운명과 숙명이 아니라, 열려 있는 노력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라 표현한 고린도후서 4장 7절의 말씀에서처럼, 비록 우리가 금그릇, 은그릇이 못되고 질그릇 혹은 나무그릇일지라도 노력여하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보배를 담는 귀하게 쓰이는 명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명품에 관한 감정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이 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명품여부가 결정될지 모르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 진실 여부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고후 5:10; 계 20:12). 그 때에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마 3:12) 구별하실 것이고, 감추인 것과 숨은 것을 찾아내실 것입니다(마 10:26). 그 때에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히 4:13; 벧후 3:10).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진품과 명품으로 감정평가를 받았었는데 알고 보니까 가짜였다든지, 진품인 것은 확실한데 형편없는 값어치에 불과했다든지, 어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명품 같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명품중의 명품이었다든지 하면서 희비가 교차되기도 하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역대기하 15장 7절은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했고, 또 야고보서 2장 14절은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앙인이 되어 높은 감정가를 받는 명품이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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