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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조상의 하나님(출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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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606 2006.08.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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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조상의 하나님(출 3:15)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처럼 짐승의 피로써 맺은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은 관계입니다. 피로써 맺은 관계가 얼마나 끈끈하고 강한 결속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맹세나 서약을 맺고 나서 피로써 그 서약을 공고히 하는 단지의식(斷指儀式)입니다. 서약한 내용을 놓고 손가락을 자르는 의식입니다. 이 단지의식 가운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이 있는데, 안중근 의사와 그의 동지 11명이 결성한 단지동맹입니다. 이들 12명의 동지들은 1909년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을 끊어서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해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몇몇 일본인 유력인사들에게 총상을 입히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과의 관계는 짐승의 피로써 맺은 관계도 아니고, 손가락 마디 하나 잘라 맺은 관계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로써 맺은 특별한 관계입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 보신다면, 그리스도와 우리 성도들과의 관계가 얼마나 강하게 결속된 관계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민족의식에는 ‘언약의 하나님’이란 인식이 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하여 도착한 시내산 기슭에서 소를 잡아 그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 언약으로 인해서 선민이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고, 언약의 내용이 담긴 토라를 사랑하여 몸에 지니고 입을 맞추며, 일 년에 한 차례씩 완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메마르고 척박한 땅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땅으로 여기며, 아득한 과거에 빼앗긴 땅, 주인이 수없이 바꿨을 그 땅을 목숨 바쳐 되찾고 지키고 가꿔서, 사막에 꽃이 피게 하고, 젖과 꿀이 흐르게 하고, 풍부한 종교적 유산과 수천 년간 이어오는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 언약의 보증과 중보가 되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새 언약을 맺고 유대민족을 제치고 새 언약 공동체가 되어 하나님의 선민이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 봐야 할 것입니다.
유대민족의식 속에는 ‘조상의 하나님’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상의 신(神)은 누구입니까? 대답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다양한 부족들의 신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왔고, 정령숭배로부터 시작해서 무교, 불교, 도교, 유교의 순서로 그 사상과 의식을 지층(地層)처럼 축적시켜왔으며, 그 바탕위에서 삶을 영위해 왔습니다. 이런 세월이 4천년이 훌쩍 넘습니다. 유대민족의 야훼신앙의 역사보다 훨씬 더 깁니다. 그런 다층으로 된 민족의 바탕위에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이 상층에 놓이게 된 세월이 1-2백년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여러분의 조상의 신이 누굽니까?”라는 물음에 선뜩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 곧 ‘하느님’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상신을 비롯해서 부처님, 공자님으로 꼬리가 이어지는 다신 사상 때문에 “하늘님이 우리 조상들의 신이요”라고 대답할 사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불러야 옳다는 주장을 아직도 우리 모두가 수용하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다릅니다. 유대민족의식 속에 있는 야훼는 그들 조상의 하나님입니다. 유대민족의식 속에 있는 야훼는 어제 오늘 혹은 지난 몇 세대가 믿어왔던 하나님이거나 외국에서 입수 했거나 외국인이 전래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대대로 3800년간이나 믿어왔던 하나님입니다. 아버지가 믿었고, 할아버지가 믿었고, 증조부가 믿었고, 증조부의 할아버지가 믿었고,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믿었고, 믿었고, 믿었고... 이렇게 조상대대로 믿어왔던 하나님입니다. 외도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듯이 일부 유대인들 가운데 이방신들에게 한눈을 팔아 우상을 숭배한 자들이 적지 않지만, 큰 물줄기를 형성하는 야훼 하나님 신앙은 1백20대가 훨씬 넘도록 야훼 하나님만을 섬겨왔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하나님’에서 살펴보았듯이 매우 특별한 관계입니다. 일찍이 조상들이 시내산 기슭에서 십계명과 율법이 담긴 언약서를 놓고 소의 피로써 맺은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부부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를 외도로 간주합니다. 외도 상황이 빈번해지면 예언자들은 엄격한 질책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 결과가 때로는 이웃나라의 침략과 약탈이 되기도 하고, 포로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질책에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백번이라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런 특별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유대민족의 하나님은 한분 야훼이십니다. 그분과 맺는 언약서, 곧 토라인 십계명과 율법서에서 유대교라는 독특하고 차원 높은 종교가 나왔고 안식일예배가 나왔으며 각종 축일과 전통과 관습이 나왔습니다. 이것들은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거나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져 사는 곳이 지구 이쪽과 저쪽 끝이라고 해도 그들의 종교적인 행사나 문화적인 행사가 모두 한결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조상대대로 믿어온 유일신 야훼 하나님이 계시고, 시대의 흐름에도 결코 변질될 수 없는 그분과 맺은 언약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약서 내용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에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와 전통과 관습에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에 유대민족의 통일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이고, 다신사상에 젖어 살아왔으며, 문화와 전통과 관습에도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민족의 통일성이나 일사불란한 신앙행동을 뛰어넘기가 어렵습니다. 그나마 1500여년의 기독교 전통을 가진 서방인들에서는 어느 정도 통일된 기독교 문화전통이란 것이 있습니다. 불교문화든, 유교문화든, 이슬람문화든, 그 어떤 문화도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문화도 마찬가집니다. 기독교전래역사가 1-2백년이 된 우리나라에 기독교문화가 요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문화란 대개가 무교와 불교와 유교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이들 종교가 이 땅에 뿌린 내린 역사가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에 이릅니다.
참고로 우리 기독교인들 중에는 오랜 민족의 역사 속에 뿌리를 내린 우리문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로 인해서 이뤄지는 문화파괴는 장기적으로 우리 민족에게 큰 손실을 안겨주게 됩니다.
수년전 극단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하는 탈레반 군사정권이 아프가니스탄 중부 바미안 지역에 있는 세계 최대의 불상을 파괴한 사건으로 세계가 경악한 일이 있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은 이슬람법과 이슬람 지상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건국됐으며 다른 우상들은 모두 파괴해야 한다.”는 최고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서쪽으로 1백25㎞ 떨어진 바미안의 산 암벽에 새겨진 높이가 각각 53m, 38m인 두 개의 마애석불은 주후 2∼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세계적 불교문화유산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는 전체 그리스인이 기독교인이지만, 바울에 의해서 기독교복음이 그리스에 들어가기 전후 수백 년에 걸쳐 꽃피웠던 그리스문화, 곧 올림픽경기와 3만이 넘는 신들의 이야기로 된 신화와 건축과 조각과 미술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아마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던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올림픽경기를 금지시켰고, 그의 손자인 테오도시우스 2세 때에는 제우스 신전을 비롯한 많은 신전들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그 후손들은 폐허가 된 집터를 둘러보는데 만족해야 합니다. 동시대의 이스라엘에도 회당들이 많이 건립되었지만, 성전이 예루살렘에 하나만 존재했었고, 신화도 없고 여신도 없고 신상도 만들 수 없는 교리상의 이유 때문에 특별히 남아있는 유산이 없습니다. 그나마 성전이나 회당들이 유대전쟁으로 인해서 다 파괴되었습니다. 문화유산만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그리스에 비해서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당대의 그리스종교를 유대교보다 우위에 두고 보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3만이 넘는 신(神)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풍부한 신화문학과 학문의 꽃을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번개로 무장한 제우스와 그 휘하의 3만의 신들이 유일신 야훼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종교와 신념이 타종교보다 우월하다면 포용할 필요가 있고, 굳이 파괴라는 방법을 쓰지 않아도 정복이 됩니다. 사람을 진정으로 이기고 그의 마음을 얻는 것은 결코 폭력이나 파괴가 아닙니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파괴는 파괴를 낳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습니다.
아무튼 유대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신앙고백과 그 전통은 우리 기독교인이 세워나가야 할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물려받은 귀중한 유산이요 힘겨운 과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자녀들에게 물려 줄 것입니까? 재물입니까? 명예입니까? 권세입니까? 흑암을 빛이 되게 하시고,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고, 죽음에서 생명을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유산을 물려주는 것 외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수천 년 동안 자손대대로 조상의 하나님을 고백했던 이 엄청난 신앙의 유산을 가진 유대인들이 신생 기독교에 추월을 당하고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자기 민족의 하나님으로 묶어버리고, 소수 유대민족의 신으로 제한해 버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대인들이 그들을 옛 언약공동체로 무시해버린 기독교신앙과 복음에 뒤진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무덤에 찾아온 막달라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요 20:17)이란 표현입니다. 내 아버지가 너희들의 아버지가 되고, 내 하나님이 너희들의 하나님이 된다는 말씀은 소수 민족의 하나님의 경계를 뛰어넘고 지평을 넓혀 만 인류의 아버지가 되게 하고 하나님이 되게 한 위대한 선언입니다. ‘조상들의 하나님 신앙’이 유대민족의 결속에는 도움이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민족신(民族神)으로 묶어버리는 단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 조상에게 계시하셨던 하나님은 결코 소수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으로 제한될 수 없는 이 우주에 한분밖에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점에 있어서 유대인들이 기독교에 패배한 것입니다.
오랜 역사와 완고한 전통 속에 있던 유대교를 뛰어넘어 기독교시대를 연 인물이 누구입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와 부름을 통해서 유대인의 하나님을 만인의 하나님으로 유대인의 구원의 하나님을 만인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지평을 넓힌 사람입니다. 그가 계시로 하나님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닫고 말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자신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신 것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엡 3:6)고 했습니다. 이것이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8절)이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였던 비밀의 경륜”(9절)이며,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11절)이라고 했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말씀의 한 가지 뜻은 아브라함도 죽고, 이삭도 죽고, 야곱도 죽고, 유다도 죽고, 요셉도 죽고, 그의 후손의 후손들도 죽었지만, 그들의 야훼는 죽지도 아니하시고 졸지도 아니하시는 영존하는 하나님이시요, 이전 세대에도 자기 백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이시오, 지금 여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자기 백성을 기억하시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소수 유대민족의 하나님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만 인류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선포한 구원의 복음은 남녀신분학력민족의 차별 없이 또 값없이 또 은혜와 믿음으로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상사디야!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조상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말씀의 또 다른 뜻은 자자손손 대대로 유대민족이 믿어온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의 뿌리가 있고 전통과 문화가 있고 명절과 관습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는 없는 소중한 믿음의 유산이 있습니다. 이것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란 말씀입니다. ‘조상의 하나님’이란 말이 출애굽기 3장에만 네 차례 사용되었고, 그밖에 글에도 상당히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도 특히 출애굽기 3장 15절에서는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라고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에 자주 쓰인 이 표현이 사도행전에도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 모세와 그리스도의 연속성, 율법과 복음의 연속성을 나타냄과 동시에 바통의 이동을 강조한 말씀들입니다. 후대에 이르러 우리 자손들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우리 조상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 우리와도 언약을 맺어주신 하나님, 우리 조상들이 떠돌이였을 때, 남의 집에 종살이를 하던 때에 그들을 인도하여 삶의 터전과 일자리를 주신 하나님, 오늘날에도 어제처럼 또 내일에도 어제처럼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고 찬양하는 때를 위해서 신앙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잘 만들어가고, 또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주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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