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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민족의 통일성(신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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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호
댓글 0 조회 12,538 2006.09.0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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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민족의식: 민족의 통일성(신 6:4-9)

유대인은 수천 년 동안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아온 민족인데도 민족의 통일성을 탁월하게 유지하고 있는 민족입니다. 종교, 문화, 축일, 관습, 교육 등에서 뛰어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몇 가지 소개하려고 합니다.
첫째, 유대민족의 통일성은 그들의 언약서인 토라에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하나님’에서 살펴보았듯이 매우 특별한 관계입니다. 일찍이 조상들이 시내산 기슭에서 십계명과 율법이 담긴 언약서를 놓고 피로써 맺은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부부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를 외도로 간주합니다. 외도 상황이 빈번해지면 예언자들은 엄격한 질책으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 결과가 때로는 이웃나라의 침략과 약탈이 되기도 하고, 포로 신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질책에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백번이라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런 특별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유대민족의 하나님은 한분 야훼이십니다. 그분과 맺는 언약서, 곧 십계명과 율법서에서 유대교라는 독특하고 차원 높은 종교가 나왔고 안식일예배가 나왔으며 각종 축일과 전통과 관습이 나왔습니다. 이것들은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거나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져 사는 곳이 지구 이쪽과 저쪽 끝이라고 해도 그들의 종교적인 행사나 문화적인 행사가 모두 한결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조상대대로 믿어온 유일신 야훼 하나님이 계시고, 시대의 흐름에도 결코 변질될 수 없는 그분과 맺은 언약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언약서 내용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에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와 전통과 관습에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여기에 유대민족의 통일성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이고, 다신사상에 젖어 살아왔으며, 문화와 전통과 관습에도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민족의 통일성과 일사불란한 신앙행동을 따라잡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문화는 대개가 무교와 불교와 유교에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이들 종교가 이 땅에 뿌리내린 역사가 짧게는 수백 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에 이릅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이들 문화를 바탕에 깔고 기독교문화를 만들어가는 일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과제입니다. 고풍스럽고 허름한 한옥이 한 채 있다고 칩시다. 그 한옥을 부셔버리고 말끔하게 터 닦기를 한 후에 그곳에 비잔틴 풍이나 고딕 풍으로 건물을 올리는 것이 기독교문화를 세우는 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장구와 북장단에 맞춰 부르는 우리 가락의 찬양이라든지, 성서이야기를 소재로 한 판소리라든지, 전통기와집모양의 예배당건축과 같은 것들이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기도 합니다.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릴 때 징을 울리는 교회도 있고, ‘어허라디야 상사디야 하나님을 찬양하라’와 ‘할렐루야 상사디아’와 같은 우리 가락찬양이 만들어지고 있고, 우리 악기 우리 가락으로 찬양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둘째, 유대민족의 통일성은 가족이란 연대의식에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창세기에 잘 나타나있는 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하사받은 야곱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한 가족인 셈입니다. 누가의 족보처럼 설사 그 이전으로 올라간다 해도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 그 이상은 ....그 이상은 하다가 마지막에서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눅 3:34-38)로 연결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가족이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족장으로 둔 한 가족입니다. 그래서 친척이란 연대의식이 강한 것이 유대민족의 특징입니다.
피보다 진한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를 쓰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는 헬라의 멸망을 혈통을 중시한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마가 일천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의 공유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유대민족의 통일성이 본받을만하다 해도 친족에 발목이 묶인 유대교는 민족종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유대민족의 가족의식은 선민의식과 더불어 그들을 배타주의, 민족주의, 영토주의에 빠지게 한 올무였던 것입니다. 이 유대교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혈통이나 정신의 공유보다 더 큰 힘을 지닌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가 다 하나님의 자녀요, 형제자매라는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나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상놈과 양반의 차이도 없고, 주인과 노예의 차별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란 것입니다. 기독교가 2천년이 넘도록 세계인의 종교가 될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 유대민족의 통일성은 그들의 신앙교육에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두 살 때부터 시작되고, 세 살 때부터 성경읽기를 가르칩니다. 아이들의 사회성과 잠재력을 개발하고, 창의적인 사고력증진을 위해 조기교육을 시킵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이룬 눈부신 발전은 사람에 대한 투자, 곧 교육의 결과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교육의 밑바닥에는 아브라함 이후 수천 년을 이어온 가정교육이 자리 잡고 있고, 이스라엘의 가정교육은 성경과 탈무드에 바탕을 둔 신앙교육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누구나 동등하고 소중하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개인의 삶에서 뿐 아니라 축일이나 축제 또는 사회제도 속에서 구체화시켜왔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는 유대인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경험하는 것이 하나님과 그들 사이에 계약이 있다는 것을 몸에 표시하는 할례입니다. 이 의식을 통해서 유대인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민, 곧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있는 백성이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평생 몸에 지니게 됩니다. 이 의식은 최소 열 명 이상의 유대인 성인이 모여서 행하는데, 계약 공동체로써의 연대의식을 갖기 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유대인은 청소년기가 시작되는 만 13세(여자의 경우는 만 12세)에 종교적 성인식을 갖습니다. 유대법에 따르면,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그 계약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성인입니다. 유대인들은 만 13세가 된 아이들에게 그 같은 능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만 13세에 자신의 삶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게 함으로써 청소년들을 보다 더 성숙하고 신중하게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자의식이 강한 시기에 하나님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 개입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과의 계약을 엄수할 것을 다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가정교육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중심의 문답식교육은 유대인의 유월절 예식에서 잘 드러납니다. 유월절 식사를 나누며, 아버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하셨는지를 설명합니다. 무교병을 먹으며, 당시 얼마나 상황이 긴급했으면 빵에 효모를 넣지 못할 정도였는가를 설명하며, 쓴 나물을 소금물에 찍어 먹으며, 우리의 선조가 얼마나 쓰디쓴 노예의 삶을 살았으며, 얼마나 괴로운 소금물 같은 눈물을 흘렸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런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배우고, 조국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배웁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학교교육보다는 가정과 교회당에서 하는 신앙교육이 자녀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기독교문화가 물씬 풍기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전인적인 건강한 아이로 성장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넷째, 유대민족의 통일성은 뿌리문화에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어머니, 며느리, 손녀딸 삼 세대 간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한 지붕 밑에 살아도 삼 세대의 문화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세대 차이는 쌍둥이한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어떨까요? 정통파 유대인에 국한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유대인은 삼 세대가 거의 세대 차이를 느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삼 대가 다 동일한 삶의 철학과 사상과 생활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라를 잃고 1878년간이나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다가 조국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다시 모여들었는데, 세대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구소련에서 일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에티오피아의 유대인 공동체는 거의 전원이 이스라엘로 옮겨 갔습니다. 북아프리카의 모슬렘 국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일부 이스라엘로 이주했고, 2차 세계대전 때 대학살에서 생존한 유대인들도 일부 이스라엘로 이주했습니다. 이렇게 각처에서 모여들었는데도 세대 차이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힘이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내핍생활을 한 가지 예로 든다면, 한국에서의 경우, 할머니는 열심히 절약할 것이고, 며느리는 조금 절약할 것이고, 손녀딸은 조금도 절약하려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모든 물질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하나님의 것을 낭비하는 것은 죄다.”는 교육을 받고 있어서 세대 간의 내핍생활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세대 차이가 생기는 것은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화에는 뿌리문화와 표피문화가 있는데, 뿌리문화는 종교, 관습, 사상, 이상, 언어, 고전문학, 음악, 철학, 역사 등의 지혜중심의 문화이고, 표피문화는 물질, 명예, 권력, 유행 등의 성공위주의 문화입니다. 표피문화는 외적인 것, 땅의 것, 눈에 보이는 것을 말하고, 뿌리문화는 정신적인 것, 내적인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뿌리문화는 세월이 흘러도 바뀌거나 외부적인 요소에 바람을 타지 않는데 비해서 표피문화는 외부적인 요소에 요동을 치고 쉽게 변해버립니다. 따라서 표피문화에는 사상이 없고 철학이 없고 정신이 없지만, 뿌리문화에는 사상이 있고, 철학이 있고, 정신이 있고, 영혼이 있고, 정체성이 있습니다. 200여 년 전에 쓰인 베토벤의 교향곡 9번 같은 클래식이 뿌리문화의 단면이라면,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의 음악이 표피문화의 단면일 것입니다. 이렇게 유행을 타지 않는 문화가 있는가하면 유행에 민감한 문화도 있는 것입니다.
영상미디어문화는 청소년들한테서 뿐 아니라, 성인들한테서까지 사색을 빼앗고, 인내심을 앗아갔습니다. 전통이 깨지고 원칙이 짓밟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일주일 가운데 하루만은 전화를 받지 않고, TV도 보지 않고, 쇼핑도 하지 않고, 일도 하지 않고, 하루 온 종일 묵상하고, 기도하며, 성경 읽고, 독서하며, 가족이 함께 모여 즐거운 식사와 대화의 시간을 갖는 안식일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묻고 답하는 문답식교육을 통해서 생각의 폭을 넓히고, 할례를 통해서 민족과의 연대감을 굳게 하며,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통해서 정신적인 어른의 대접을 받으며, 스스로의 일에 책임을 지는 훈련을 받습니다. 이런 뿌리문화 때문에 유대인한테서 세계적인 예수님이 나오고, 교육가가 나오고, 철학가가 나오고, 사상가가 나오고, 정치인이 나오고, 경제인이 나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표피문화에 물들게 되면 참을성이 없게 되고, 인생의 무게가 없어지고, 인생을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재미있는 것과 돈 되는 것에만 매달리게 됩니다.
다섯째, 유대민족의 통일성은 역사교육에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수치스런 자기 민족의 역사를 숨기지 않고 철저하게 가르쳐 기억하게 하는 방식으로 역사의식을 심습니다. 자기민족은 떠돌이였다는 것, 자기민족은 노예였다는 것, 솔로몬 성전과 헤롯 성전이 늑탈 당했다는 것, 주권상실로 해외에서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보냈다는 것, 나치로부터 600만 유대인이 희생되었다는 것 등을 눈물로써 가르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자기민족을 인도하여 내시고,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던 하나님, 가나안 일곱 족속을 몰아내시고 그들의 땅을 자기민족에게 주셨던 그 하나님이 기어이 1948년에는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땅에, 조상들이 살았던 바로 그 땅에 건국의 기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날들을 축일과 기념일로 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지나치게 배타적인 면이 있고, 또 하나님을 자기민족의 하나님만으로 제한하는 우를 범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런 점들을 극복만 한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약의 하나님으로, 우리 가문이 대대로 믿고 섬겨온 조상의 하나님으로 세워가는 노력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신앙으로 집안의 전통을 세워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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