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자(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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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자(빌 4:4-9)
금년의 우리 교회표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해’입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가정,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시와 국가를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기도해야할 제목입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길 위해서 기도하고, 성도들의 가정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더욱 강건하여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와 국가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서 성도님들에게 목회자로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주를 경외함으로 살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두주에 걸쳐 “주를 경외함으로 살자”와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라는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이 몸을 지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것까지를 뇌신경학에서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과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실증해 보이지만, 정작 그 마음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성경과 세상학문의 차이점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영혼이고, 그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 성령과 악령이라고 말합니다. 지난주에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성령님의 위로가 사람의 영혼과 마음을 긍정적으로 지배하고, 또 그 마음이 몸을 지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주를 경외함으로 살자.”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자”라고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야 성령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밤 8시에 KBS 1TV가 방영한 “마음, 몸을 지배한다.”를 시청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 프로를 시청한 사람 2천여 명이 20자평 남기기에 올린 마음에 대한 글들을 몇 개만 살펴보면, ‘마음은 나를 지배하는 곳.’ ‘마음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마음은 행복과 불행의 향방을 결정하는 곳.’ ‘마음은 조정하기 힘든 비행기.’ ‘마음은 나를 움직이는 운전수.’ ‘마음은 담아도 담아도 채울 수 없는 그릇.’이라 하였습니다.
소개한 이 글들은 물론이고 다른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마음이 우리 몸을 지배한다는 주장에 이의가 없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과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주장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정작 그 마음이나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묻기를 주저할 뿐 아니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현대인의 정신세계가 황폐해지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기술문명의 발달로 신앙의 신비현상들이 미신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신앙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경시현상이 과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질병을 낳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기계적인 인과율만으로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의 정신세계는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게 되며, 내면의 정신세계는 공허하게 되고, 그 빈 공간 속을 배금주의, 향락주의, 기술만능주의로 채우게 됩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돈과 향락과 과학과 같은 강한 힘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인들이 물량적이고 피상적인 삶만을 추구함으로서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방영을 시작한 6부작에서도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든지,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 등의 내용만을 다루고 있지,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다루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방영됐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김미숙이란 이름의 젊은 여성은 정상적인 뇌를 가졌고, 뇌손상이 전혀 없으며, 뇌파도 정상인데, 자주 몸이 경직되고 심한 간질발작을 일으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연세대의대 박수철 박사는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그러니까 애정결핍처럼 무엇인가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서 생기는 가상간질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맞서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이란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애정의 중요성은 동물의 실험이나 식물의 실험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았을 때와 따뜻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받았을 때에 나타나는 몸의 현상은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실험에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았던 토끼의 경우 안구가 파열되고, 지방간이 생겨 동맥경화를 보인반면, 같은 음식을 먹고서도 따뜻한 애정을 받았던 토끼들의 경우에는 이런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은혜란 이름의 젊은 여성은 10년간 오이 냄새가 너무 역겨워서 오이를 전혀 먹지 못했던 여성이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청양고추와 된장찌개를 오이와 연상시키는 짧은 훈련을 통해서 오이를 자연스럽게 먹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뱀 같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혐오증은 그런 것들에 대한 좋지 않았던 경험이 마음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설기문 박사는 마음의 습관이 바뀌면 기존의 습관이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싫어하던 것도 좋아하는 것과 연결해서(앵커링) 마음을 바꾸면 좋아진다고 합니다.
마음의 근심이 병을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비타민과 같은 건강프로그램들을 비롯해서 건강에 관한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건강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게 되면 건강염려증이란 병에 걸리게 되고, 근심이 병을 키우는 심각한 상태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중독도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도파민은 뇌신경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 수치를 높이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들에는 담배, 술, 마약과 같은 약물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도파민의 수치를 높이고 뇌에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끌어올려진 극치감이나 좋은 기분은 일순간이고, 결국에는 기분이 다시 나빠진다고 합니다. 약효로 도파민의 수치를 높였기 때문에 약효가 떨어지면 도파민의 수치의 간극이 더 넓어져 이전보다 훨씬 더 기분이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더 많은 뇌신경전달물질이 필요하게 되고 습관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독의 원리입니다.
중독현상은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납니다. 쇼핑중독이나 성형중독도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성형중독에 걸린 사람은 성형할 것이 없을 땐 이전에 했던 곳을 다시 고칠 정도로 억지로 성형 받을 곳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미국판 선풍기 아줌마인 엘라인 영은 무려 49번의 성형수술을 받았고, 이혼도 수차례나 했다고 합니다.
앞서 예를 든 사례들이 다 뇌의 작용이란 것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이 우리 몸을 지배한다는 증거란 것입니다.
마음은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뇌의 신경망에는 1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뉴런)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수집된 지각정보, 그러니까 우리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정보들이 뇌에 저장되어 마음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마음은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여 처리하는 뇌의 고등기능인 셈입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수상돌기, 축색돌기, 세포체로 이뤄지는데 이것이 마음의 최소단위이라고 합니다. 신경세포말단에는 시냅스란 것이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신경세포들 간에 정보들이 신경전달물질을 통해서 끊임없이 교환된다고 합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한 개의 축색돌기와 1,000개내지 10,000개의 수상돌기를 갖고 있는데, 신경세포가 100억 개라면, 10조에서 100조 개의 시냅스가 있게 되는 셈입니다. 각 신경세포는 10조에서 100조 개의 시냅스를 통해서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고, 이 신경세포(뉴런)에 각종정보가 입력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경세포말단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냅스들이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의 다리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란 것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 사고능력의 기능, 언어표현능력과 같은 의식을 합한 것입니다. 의식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인데, 자기와 남과의 관계, 자아개념, 추상개념까지 뇌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신활동이 바로 뇌신경세포말단에 있는 시냅스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마음은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일대의대 호세 델가도 교수는 뇌에 이식할 수 있는 전자칩을 만들어서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매튜 네이글이란 남성에게 이식을 했는데요, 이 전자칩의 도움으로 그는 생각만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TV도 켜고 채널도 바꿀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브라운대의 존 도나휴 교수는 뇌의 표면에 전자장치를 부착하면, 뇌로부터 나오는 아주 복잡한 신호를 포착하고,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원리를 인용해서 만들어진 인공손은 생각만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MIT공대 마빈 민스키 교수는 20년 후엔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50년 후엔 상점에서 뇌에 부착할 수 있는 외부부품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를 말하고 싶을 땐 소형 컴퓨터를 사서 뇌에 부착하면 중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마음이란 것도 언젠가는 기계장치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계인간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인간에게만 있는 매우 특이한 특성이 있는데요, 그것이 마음이 마음을 반영하는 능력이란 것입니다. 남을 생각하고, 남의 생각을 생각하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 마음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정신 또는 영혼 또는 성령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20자평을 쓴 사람들의 글에 ‘마음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마음은 행복과 불행의 향방을 결정하는 곳.’ ‘마음은 조정하기 힘든 비행기.’ ‘마음은 담아도 담아도 채울 수 없는 그릇.’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음이 우리의 몸을 지배한다면, 영혼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성령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함께 지배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 때,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악령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몸이 마음에 좌우된다면, 마음은 영혼에 좌우되고,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성령과 악령에 좌우됩니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지적한 것처럼 신앙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현상은 과학기술로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질병을 낳게 하여 삶의 깊은 차원을 앗아가고, 내면세계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말한 것처럼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이 상실되고 맙니다. 따라서 인간은 불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 “마음을 위로하시고”(살후 2:16-17),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며(살후 3:5),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하시는”(살전 3:13)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흑암의 상황에서 빛을 보게 하시고, 죽음의 상황에서 생명을 보게 하시며, 혼돈상황에서 질서를 보게 하십니다.
신약성경에는 평강에 관한 단어가 많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평강,” “평강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평강,” “평강의 그리스도”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9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고, 골로새서 3장 15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으며,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축복이 그대로 올 한 해 동안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4-9절, 본문말씀을 다 함께 한 번 더 읽고 마치겠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금년의 우리 교회표어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는 해’입니다.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가정,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는 시와 국가를 위해서 우리 성도님들이 열심히 기도해야할 제목입니다. 우리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길 위해서 기도하고, 성도들의 가정들이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영혼이 잘되며, 범사에 잘되고, 더욱 강건하여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시와 국가가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고 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를 맞아서 성도님들에게 목회자로서 간절히 바라는 것은 주를 경외함으로 살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두주에 걸쳐 “주를 경외함으로 살자”와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라는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몸이 있고, 이 몸을 지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무엇인가라는 것까지를 뇌신경학에서 설명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과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실증해 보이지만, 정작 그 마음을 지배하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성경과 세상학문의 차이점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이 영혼이고, 그 영혼을 지배하는 것이 성령과 악령이라고 말합니다. 지난주에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라는 말씀을 드렸는데, 성령님의 위로가 사람의 영혼과 마음을 긍정적으로 지배하고, 또 그 마음이 몸을 지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주를 경외함으로 살자.”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자”라고 정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야 성령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밤 8시에 KBS 1TV가 방영한 “마음, 몸을 지배한다.”를 시청하신 분이 계십니까? 그 프로를 시청한 사람 2천여 명이 20자평 남기기에 올린 마음에 대한 글들을 몇 개만 살펴보면, ‘마음은 나를 지배하는 곳.’ ‘마음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마음은 행복과 불행의 향방을 결정하는 곳.’ ‘마음은 조정하기 힘든 비행기.’ ‘마음은 나를 움직이는 운전수.’ ‘마음은 담아도 담아도 채울 수 없는 그릇.’이라 하였습니다.
소개한 이 글들은 물론이고 다른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마음이 우리 몸을 지배한다는 주장에 이의가 없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마음을 움직이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는 것과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는 주장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정작 그 마음이나 생각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묻기를 주저할 뿐 아니라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현대인의 정신세계가 황폐해지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기술문명의 발달로 신앙의 신비현상들이 미신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신앙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경시현상이 과학기술로는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질병을 낳게 한다고 했습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을 기계적인 인과율만으로 설명하려 할 때 인간의 정신세계는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게 되며, 내면의 정신세계는 공허하게 되고, 그 빈 공간 속을 배금주의, 향락주의, 기술만능주의로 채우게 됩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돈과 향락과 과학과 같은 강한 힘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신학자 폴 틸리히는 현대인들이 물량적이고 피상적인 삶만을 추구함으로서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을 상실하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
KBS 1TV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방영을 시작한 6부작에서도 마음이 몸을 지배한다든지,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 등의 내용만을 다루고 있지,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이는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다루지를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방영됐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김미숙이란 이름의 젊은 여성은 정상적인 뇌를 가졌고, 뇌손상이 전혀 없으며, 뇌파도 정상인데, 자주 몸이 경직되고 심한 간질발작을 일으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연세대의대 박수철 박사는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그러니까 애정결핍처럼 무엇인가에 대한 보상을 얻기 위해서 생기는 가상간질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불행한 현실에 맞서 대응하는 한 가지 방법이란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애정의 중요성은 동물의 실험이나 식물의 실험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았을 때와 따뜻한 애정을 지속적으로 받았을 때에 나타나는 몸의 현상은 현저한 차이를 보입니다. 실험에서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았던 토끼의 경우 안구가 파열되고, 지방간이 생겨 동맥경화를 보인반면, 같은 음식을 먹고서도 따뜻한 애정을 받았던 토끼들의 경우에는 이런 증상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은혜란 이름의 젊은 여성은 10년간 오이 냄새가 너무 역겨워서 오이를 전혀 먹지 못했던 여성이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청양고추와 된장찌개를 오이와 연상시키는 짧은 훈련을 통해서 오이를 자연스럽게 먹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습니다. 특정 인물이나 뱀 같은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혐오증은 그런 것들에 대한 좋지 않았던 경험이 마음에 강하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설기문 박사는 마음의 습관이 바뀌면 기존의 습관이 바뀐다고 말했습니다. 싫어하던 것도 좋아하는 것과 연결해서(앵커링) 마음을 바꾸면 좋아진다고 합니다.
마음의 근심이 병을 키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나 비타민과 같은 건강프로그램들을 비롯해서 건강에 관한 정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 건강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게 되면 건강염려증이란 병에 걸리게 되고, 근심이 병을 키우는 심각한 상태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중독도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도파민은 뇌신경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인데요, 그 수치를 높이기 위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들에는 담배, 술, 마약과 같은 약물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 도파민의 수치를 높이고 뇌에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끌어올려진 극치감이나 좋은 기분은 일순간이고, 결국에는 기분이 다시 나빠진다고 합니다. 약효로 도파민의 수치를 높였기 때문에 약효가 떨어지면 도파민의 수치의 간극이 더 넓어져 이전보다 훨씬 더 기분이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더 많은 뇌신경전달물질이 필요하게 되고 습관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독의 원리입니다.
중독현상은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납니다. 쇼핑중독이나 성형중독도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작용이라고 합니다. 성형중독에 걸린 사람은 성형할 것이 없을 땐 이전에 했던 곳을 다시 고칠 정도로 억지로 성형 받을 곳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미국판 선풍기 아줌마인 엘라인 영은 무려 49번의 성형수술을 받았고, 이혼도 수차례나 했다고 합니다.
앞서 예를 든 사례들이 다 뇌의 작용이란 것입니다.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이 우리 몸을 지배한다는 증거란 것입니다.
마음은 심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작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뇌의 신경망에는 100억 개 이상의 신경세포(뉴런)가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수집된 지각정보, 그러니까 우리가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정보들이 뇌에 저장되어 마음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고 합니다. 마음은 정보를 수집하고 보관하여 처리하는 뇌의 고등기능인 셈입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수상돌기, 축색돌기, 세포체로 이뤄지는데 이것이 마음의 최소단위이라고 합니다. 신경세포말단에는 시냅스란 것이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신경세포들 간에 정보들이 신경전달물질을 통해서 끊임없이 교환된다고 합니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한 개의 축색돌기와 1,000개내지 10,000개의 수상돌기를 갖고 있는데, 신경세포가 100억 개라면, 10조에서 100조 개의 시냅스가 있게 되는 셈입니다. 각 신경세포는 10조에서 100조 개의 시냅스를 통해서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결되고, 이 신경세포(뉴런)에 각종정보가 입력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경세포말단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시냅스들이 신경세포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의 다리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음이 작동하는 기본 원리란 것입니다.
마음은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 사고능력의 기능, 언어표현능력과 같은 의식을 합한 것입니다. 의식이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아는 것인데, 자기와 남과의 관계, 자아개념, 추상개념까지 뇌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정신활동이 바로 뇌신경세포말단에 있는 시냅스작용의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마음은 뇌에서 나오는 전기신호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일대의대 호세 델가도 교수는 뇌에 이식할 수 있는 전자칩을 만들어서 전신마비를 앓고 있는 매튜 네이글이란 남성에게 이식을 했는데요, 이 전자칩의 도움으로 그는 생각만으로 휠체어에 앉아서 TV도 켜고 채널도 바꿀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브라운대의 존 도나휴 교수는 뇌의 표면에 전자장치를 부착하면, 뇌로부터 나오는 아주 복잡한 신호를 포착하고, 그 뜻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원리를 인용해서 만들어진 인공손은 생각만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MIT공대 마빈 민스키 교수는 20년 후엔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50년 후엔 상점에서 뇌에 부착할 수 있는 외부부품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어를 말하고 싶을 땐 소형 컴퓨터를 사서 뇌에 부착하면 중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마음이란 것도 언젠가는 기계장치로 변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계인간이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는 인간에게만 있는 매우 특이한 특성이 있는데요, 그것이 마음이 마음을 반영하는 능력이란 것입니다. 남을 생각하고, 남의 생각을 생각하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인간 마음의 본질이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정신 또는 영혼 또는 성령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20자평을 쓴 사람들의 글에 ‘마음은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곳.’ ‘마음은 행복과 불행의 향방을 결정하는 곳.’ ‘마음은 조정하기 힘든 비행기.’ ‘마음은 담아도 담아도 채울 수 없는 그릇.’이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마음이 우리의 몸을 지배한다면, 영혼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성령님은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함께 지배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고, 성령님의 위로를 받으며 살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살 때, 평안하여 든든히 세워져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악령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고, 성령의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몸이 마음에 좌우된다면, 마음은 영혼에 좌우되고,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성령과 악령에 좌우됩니다.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지적한 것처럼 신앙에 대한 무관심과 경시현상은 과학기술로 치료할 수 없는 정신적 질병을 낳게 하여 삶의 깊은 차원을 앗아가고, 내면세계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되면, 신학자 폴 틸리히가 말한 것처럼 삶의 의미와 목적과 깊이의 차원이 상실되고 맙니다. 따라서 인간은 불행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 “마음을 위로하시고”(살후 2:16-17), 우리의 마음을 인도하시며(살후 3:5), 우리의 “마음을 굳게 하시는”(살전 3:13)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흑암의 상황에서 빛을 보게 하시고, 죽음의 상황에서 생명을 보게 하시며, 혼돈상황에서 질서를 보게 하십니다.
신약성경에는 평강에 관한 단어가 많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강은 일시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평강,” “평강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평강,” “평강의 그리스도”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9절에서 그리스도는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했고, 골로새서 3장 15절은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했으며, 데살로니가후서 3장 16절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축복이 그대로 올 한 해 동안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4-9절, 본문말씀을 다 함께 한 번 더 읽고 마치겠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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