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요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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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요 2:13-22)
요한복음 2장 13-22절을 보면,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 곧 예수님이 잡히시기 얼마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는 아마 춘분이 지난 직후였을 것입니다.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뜨는 날이 바로 유월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갈릴리지방과 유다지방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성전제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떼를 지어 몰려드는 시기입니다. 이들 순례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해서 성전 뜰에서 제사에 쓰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또 유대인 성인이면 누구나 다 어느 나라에 살든지에 관계없이 로마황제의 화상(畵像)이 새겨지지 아니한 세겔의 절반을 성전세로 내야했습니다. 성전세를 내야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해서 성전 뜰에서 돈을 바꿔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편의 시설이 있던 곳이 이방인의 뜰이란 곳인데, 성전에서는 유일하게 이방인들도 제한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유월절이면 이곳은 제물을 사려는 사람들과 환전하려는 순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성전 뜰에서 이뤄지는 모든 상업행위는 대제사장에게 비싼 자릿세를 내야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물로 바칠 동물이 매우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을 것이고, 환전수수료도 턱없이 높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가 성전에서 이뤄지는 이런 부당한 매매 때문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는 정당한 예배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짐승들을 성전 뜰에서 내어 쫓으셨으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으며,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고함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위를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두 가지로 보았을 것입니다. 첫째는 가히 혁명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이 기다리는 모쉬아크(Moshiach) 곧 메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통수권자인 대제사장의 수입 또는 성전수입을 차단하는 행위는 반역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나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요한복음 2장 18절에서 물은 것입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이 질문은 당신이 메시아란 증거를 우리에게 보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목청을 높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가? 혹시 메시아인가하고 말입니다. 그런 민중의 궁금증을 대변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이런 궁금증을 등에 없고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이 거짓 메시아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그런 거짓 메시아들이 과거 이천년 동안 30명도 넘게 나타났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기록에 남은 자들만의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메시아들은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누가 참 메시아인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잣대 곧 메시아의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잣대 혹은 조건이 바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이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보였던 이들이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는 하늘로써 만나를 내려 먹게 했고, 엘리야는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나 엘리야가 행했던 것처럼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보일 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같은 표적을 행하는 자라야 비로소 메시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정서가 복음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께 표적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절을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39절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똑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16장 1-4절과 누가복음 11장 16-30절에도 나옵니다. 마가복음 8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요한복음 2장 18절의 말씀,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와 요한복음 6장 30절의 말씀,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를 이해하시면 됩니다.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묻는 이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22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의 대답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은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 때문이었고(요 4:48), 둘째는 일반 민중이 표적을 구하는 까닭이 배불리 먹고 사는 의식주문제해결 때문이었고(요 6:26), 셋째는 열심당원들이 정치적인 혁명에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요 6:14-15). 예수님은 마가복음 8장에서 이런 일련의 추구를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에 역행하는 ‘빵의 일’과 ‘세상의 일’로 보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 다수는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직도 오지 않았고, 세상 끝 날에 반드시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같은 내용이 포함된 기도문 「쉐모네 에스레이」를 매일 세 차례씩 암송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적인 뜻을 함축한 ‘메시아’란 말 대신에 ‘모쉬아크’(Moshiach)란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모쉬아크’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써 마지막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될 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모쉬아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救世主)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신적(神的) 존재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모쉬아크가 다윗 왕의 후손인 위대한 정치 지도자일 것이고, 유대법에 정통하여 그것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일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의 본보기를 따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을 위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위대한 군사 지도자일 것이고, 의로운 결정을 내릴 위대한 재판관일 것이지만, 이 모든 것 위에 그는 인간일 것이고, 신적 혹은 반신적 존재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모쉬아크가 될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가 모쉬아크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죽는다면, 그 사람은 모쉬아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곧 모쉬아크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킴으로써 정치적 영적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며, 이스라엘에 한 정부를 세울 것이고,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전 세계 정부의 중심에 세울 것이며, 성전을 재건할 것이고, 성전예배를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의 종교법정 체계를 회복시킬 것이고, 나라 법으로써 유대법을 세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이신 예수님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세워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야말로 하늘로써 내리는 진정한 표적이요, 표적중의 표적입니다. 이 사실,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요, 복음의 일을 하는 자들이며,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자들이요,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고 듣고 깨달은 자란 것이 마가복음의 7-8장의 중요한 가르침이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올인하는 자들이란 것이 마태복음 13장 44-46절의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세상의 일과 빵의 문제에만 집착했던 유대인들은 타고난 소경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요, 귀먹고 어눌한 사람처럼 천국복음을 듣고 말할 수 없었던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자들이요, 값진 진주를 땅에 짓밟는 돼지와 같은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요,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어리석게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이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가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깨달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고전 1:22-24). 그도 일찍이 다른 유대인들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를 싫어했고, 어리석게 생각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믿는 어리석다 생각되는 자들을 잡아들이고, 탄압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가 발견한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인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특히 이방인 선교에 온 몸을 던지는 전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서 올인했던 것들이 무엇입니까? 보장된 장래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평생을 복음전도를 위해서 해외선교에 바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감옥에도 많이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39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았고, 태장을 세 번 이상 맞고, 세 번 이상 파선 당하여 물귀신이 될 뻔했으며, 주리고 목마르고 굶주리고 춥고 헐벗었으며 결국엔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습니다(고후 11:23-27). 그러나 그는 그의 생애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딤후 4:7) 승리자의 삶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온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인 부활이란 값진 진주와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이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16세 때에 진사시에 장원급제를 합니다. 이에 대견하고 기특하게 생각한 정조 대왕이 친히 탑전(임금의 의자)으로 그를 불러 손목을 잡고 "네가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게 벼슬을 주고 나라의 큰 소임을 맡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부와 권력을 약속받은 이 천재 소년은 세계를 가슴에 품었던 정약용 선생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보장된 장래와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27세 때에 의금부에 끌러가 동서남북에서 끄는 황소 네 마리에 묶여 팔다리가 찢기는 능지처참형을 받습니다.
황사영이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토록 어려운 순교자의 길을 택했을까요? 그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다가왔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빛과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 값진 보화를 얻기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보물을 하나님의 비밀(고전 4:1)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엡 3:4)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밀이란 다수의 사람들에게 감춰진 것을 뜻합니다. 이 감춰진 비밀을 발견하고 소유한 자들이 바로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소중한 가치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자들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치는 자들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13-22절을 보면,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 곧 예수님이 잡히시기 얼마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는 아마 춘분이 지난 직후였을 것입니다. 춘분이 지나고 보름달이 뜨는 날이 바로 유월절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갈릴리지방과 유다지방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세계 도처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이 성전제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떼를 지어 몰려드는 시기입니다. 이들 순례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해서 성전 뜰에서 제사에 쓰일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있었습니다. 또 유대인 성인이면 누구나 다 어느 나라에 살든지에 관계없이 로마황제의 화상(畵像)이 새겨지지 아니한 세겔의 절반을 성전세로 내야했습니다. 성전세를 내야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하기위해서 성전 뜰에서 돈을 바꿔주고 있었습니다. 이런 편의 시설이 있던 곳이 이방인의 뜰이란 곳인데, 성전에서는 유일하게 이방인들도 제한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광장이었습니다. 유월절이면 이곳은 제물을 사려는 사람들과 환전하려는 순례자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성전 뜰에서 이뤄지는 모든 상업행위는 대제사장에게 비싼 자릿세를 내야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물로 바칠 동물이 매우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을 것이고, 환전수수료도 턱없이 높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이유가 성전에서 이뤄지는 이런 부당한 매매 때문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향기로운 예배는 정당한 예배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 짐승들을 성전 뜰에서 내어 쫓으셨으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으며, 비둘기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고함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위를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을까요? 두 가지로 보았을 것입니다. 첫째는 가히 혁명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들이 기다리는 모쉬아크(Moshiach) 곧 메시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통수권자인 대제사장의 수입 또는 성전수입을 차단하는 행위는 반역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나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요한복음 2장 18절에서 물은 것입니다.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이 질문은 당신이 메시아란 증거를 우리에게 보일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목청을 높여 회개를 촉구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인가? 혹시 메시아인가하고 말입니다. 그런 민중의 궁금증을 대변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를 보러 나갔더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예언자보다 더 위대한 인물이다.
이런 궁금증을 등에 없고 심심찮게 나타나는 것이 거짓 메시아들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그런 거짓 메시아들이 과거 이천년 동안 30명도 넘게 나타났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기록에 남은 자들만의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거짓 메시아들은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누가 참 메시아인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잣대 곧 메시아의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잣대 혹은 조건이 바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이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이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보였던 이들이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모세는 하늘로써 만나를 내려 먹게 했고, 엘리야는 통에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모세나 엘리야가 행했던 것처럼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보일 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 같은 표적을 행하는 자라야 비로소 메시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정서가 복음서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께 표적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8절을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39절에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똑 같은 말씀이 마태복음 16장 1-4절과 누가복음 11장 16-30절에도 나옵니다. 마가복음 8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마음속에 깊이 탄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요한복음 2장 18절의 말씀,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와 요한복음 6장 30절의 말씀,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를 이해하시면 됩니다.
유대인들이 집요하게 묻는 이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22절의 말씀도 같은 맥락의 대답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예수님은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 때문이었고(요 4:48), 둘째는 일반 민중이 표적을 구하는 까닭이 배불리 먹고 사는 의식주문제해결 때문이었고(요 6:26), 셋째는 열심당원들이 정치적인 혁명에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요 6:14-15). 예수님은 마가복음 8장에서 이런 일련의 추구를 ‘하나님의 일’과 ‘복음의 일’에 역행하는 ‘빵의 일’과 ‘세상의 일’로 보셨습니다.
지금도 유대인 다수는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직도 오지 않았고, 세상 끝 날에 반드시 오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같은 내용이 포함된 기도문 「쉐모네 에스레이」를 매일 세 차례씩 암송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독교적인 뜻을 함축한 ‘메시아’란 말 대신에 ‘모쉬아크’(Moshiach)란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이 기다리는 ‘모쉬아크’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써 마지막 때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될 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모쉬아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救世主)도 아니고, 죄가 없으신 신적(神的) 존재도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모쉬아크가 다윗 왕의 후손인 위대한 정치 지도자일 것이고, 유대법에 정통하여 그것의 계명들을 지킬 것이며,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일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의 본보기를 따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을 위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위대한 군사 지도자일 것이고, 의로운 결정을 내릴 위대한 재판관일 것이지만, 이 모든 것 위에 그는 인간일 것이고, 신적 혹은 반신적 존재나 초자연적 존재가 아닐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모쉬아크가 될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가 모쉬아크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 죽는다면, 그 사람은 모쉬아크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곧 모쉬아크는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킴으로써 정치적 영적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이며, 이스라엘에 한 정부를 세울 것이고, 그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한 전 세계 정부의 중심에 세울 것이며, 성전을 재건할 것이고, 성전예배를 다시 세울 것이며, 이스라엘의 종교법정 체계를 회복시킬 것이고, 나라 법으로써 유대법을 세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고, 오히려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성전이신 예수님을 헐면 사흘 만에 다시 세워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야말로 하늘로써 내리는 진정한 표적이요, 표적중의 표적입니다. 이 사실, 곧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또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요, 복음의 일을 하는 자들이며,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자들이요,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고 듣고 깨달은 자란 것이 마가복음의 7-8장의 중요한 가르침이요,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올인하는 자들이란 것이 마태복음 13장 44-46절의 말씀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세상의 일과 빵의 문제에만 집착했던 유대인들은 타고난 소경처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자들이요, 귀먹고 어눌한 사람처럼 천국복음을 듣고 말할 수 없었던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자들이요, 값진 진주를 땅에 짓밟는 돼지와 같은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리요, 빛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어리석게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지혜를 찾는 헬라인들이 어리석게 생각하는 이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가 바로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깨달은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고전 1:22-24). 그도 일찍이 다른 유대인들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메시아를 싫어했고, 어리석게 생각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믿는 어리석다 생각되는 자들을 잡아들이고, 탄압하는 일에 앞장을 섰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가 발견한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인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일에, 특히 이방인 선교에 온 몸을 던지는 전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가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값진 진주를 얻기 위해서 올인했던 것들이 무엇입니까? 보장된 장래를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평생을 복음전도를 위해서 해외선교에 바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감옥에도 많이 갇혔고, 매도 수없이 맞았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유대인들에게 39대의 곤장을 다섯 번 이상 맞았고, 태장을 세 번 이상 맞고, 세 번 이상 파선 당하여 물귀신이 될 뻔했으며, 주리고 목마르고 굶주리고 춥고 헐벗었으며 결국엔 사형을 언도받고 처형되었습니다(고후 11:23-27). 그러나 그는 그의 생애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킨”(딤후 4:7) 승리자의 삶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가 만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가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온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늘로써 내리는 표적인 부활이란 값진 진주와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이란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16세 때에 진사시에 장원급제를 합니다. 이에 대견하고 기특하게 생각한 정조 대왕이 친히 탑전(임금의 의자)으로 그를 불러 손목을 잡고 "네가 20세가 되거든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네게 벼슬을 주고 나라의 큰 소임을 맡기겠다."고 약속합니다. 부와 권력을 약속받은 이 천재 소년은 세계를 가슴에 품었던 정약용 선생의 셋째형인 정약종의 제자가 되어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 후 그는, “내가 이제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을 알았으니 그분의 신하가 되는 것이 군자의 마땅한 도리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보장된 장래와 명예와 권세를 버리고 복음의 일, 하나님의 일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27세 때에 의금부에 끌러가 동서남북에서 끄는 황소 네 마리에 묶여 팔다리가 찢기는 능지처참형을 받습니다.
황사영이 무엇을 발견했기에, 그토록 어려운 순교자의 길을 택했을까요? 그에게 목숨보다 더 소중한 가치로 다가왔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고 심판하실 제일 높은 임금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빛과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이 값진 보화를 얻기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버렸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보물을 하나님의 비밀(고전 4:1) 또는 그리스도의 비밀(엡 3:4)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밀이란 다수의 사람들에게 감춰진 것을 뜻합니다. 이 감춰진 비밀을 발견하고 소유한 자들이 바로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소중한 가치에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린 자들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목숨까지도 바치는 자들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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