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족의 믿음(빌 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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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의 믿음(빌 4:4-13)
일본의 홋카이도에 ‘후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돌을 쪼는 돌쪼시 즉 석수였습니다. 후미는 체격이 좋고 몸이 건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는 일에 조금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후미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날 밤에 기도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건강한 젊은이가 어째서 불평불만만 일삼느냐고 후미를 꾸짖었습니다.
후미를 꾸짖고 돌아왔지만, 천사는 마음이 편치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가 후미의 영혼이 타락하지 않도록 좀 도와주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라고 했습니다.
후미는 어느 날 으리으리한 귀족의 마차 행렬을 보게 되었습니다. 돌을 쪼느라 땀투성이가 되어 돌가루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후미는 그 귀족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신세한탄을 하며 “귀족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 후미를 귀족으로 만들어줬습니다. 후미는 넓은 땅과 많은 말과 많은 하인을 거느린 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도무지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땀이 어찌나 많이 흐르는지 돌쪼시 노릇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머리 위의 태양 때문이었습니다. 후미가 귀족이라고는 하나, 그 위에는 왕들이 있었고, 또 왕들 위에는 황제가 있었고, 황제 위에는 태양이 있었습니다. 귀족 따위는 태양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후미는 태양이 되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 후미를 태양으로 만들어줬습니다. 태양은 아닌 게 아니라 막강하였습니다. 곡식을 무르익게 할 수도 있었고, 까맣게 태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보기가 싫었습니다. 구름이 앞을 가리면 태양은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미는 구름이 될 수 있으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 후미를 구름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이제 후미는 태양을 가려버릴 수도 있었고, 파도를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미가 파도를 일으켜 땅을 쓸어버리려 해도 자꾸만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습니다. 해변의 바윗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후미는 바윗덩어리가 될 수 있으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는 후미를 바윗덩어리로 만들어줬습니다. 후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단단한 쇠가 자기 등을 찌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만히 보니 바로 돌쪼시의 정이었습니다. 후미는 비명을 지르면서 돌쪼시가 되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는 후미를 다시 돌쪼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후미는 결국 돌쪼시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내 소원을 들어주는 천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후미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그는 돌쪼시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이 본래 여러 가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후미에 관한 이야기는 근간에 브라질 출신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우화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번 크리스마스 때 딱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여러분은 무슨 소원을 빌겠습니까? 오늘 저녁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후회 없는 결정을 정말 잘하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이 딱 한 가지의 소원이 위험천만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포도주의 신인 디오뉘소스의 스승겸 양아버지인 실레노스가 실종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레노스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농부들의 손에 이끌리어 미다스 왕의 궁전에까지 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다스는 이 노인이 디오뉘소스의 스승이자 양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열흘간이나 밤이고 낮이고 술잔치를 베풀어 노인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열 하루째가 되는 날에야 노인을 무사히 디오뉘소스에게 보냈습니다. 스승을 무사히 맞이한 디오뉘소스는 미다스 왕의 환대에 대한 답례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터이니 무엇이든지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미다스는, 정히 그러시다면 자기 손으로 만지는 것은 모조리 ‘황금’으로 바뀌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디오뉘소스는 미다스가 좀더 좋은 소원을 말하지 못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미다스는 새로 얻은 권능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그 권능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그가 참나무 가지를 하나 꺾자 그 가지는 곧 손 안에서 황금 가지로 변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권능이었습니다. 미다스는 조약돌을 하나 들어보았습니다. 그것도 곧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잔디에도 손을 대보았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에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한 알 따보았습니다. 사과는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미다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시종들에게 명하여 진수성찬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빵에 손을 대자 빵이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음식을 한 술 입에 떠 넣어도 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어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흡사 녹은 황금처럼 목구멍을 따라 흘러들어갔습니다.
이 일찍이 듣도 보고 못한 재난에 기절초풍한 미다스는 어떻게 하든지 이 마법에서 벗어나려고 힘썼습니다. 그리고 기껏 욕심을 부려 얻은 권능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긋지긋하게 여겨도,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오직 굶어 죽을 날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빛 찬란한 두 팔을 벌리고 디오뉘소스에게 기도했습니다. 이 파멸에서 구해 주십사고 애원한 것입니다. 디오뉘소스는 자비로운 신이었기에 그 소리를 듣자 그 소원도 들어주겠노라면 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팍톨로스 강으로 가되, 그 강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 그대의 머리와 몸을 담그고 그대의 죄와 벌을 씻도록 하여라.
미다스가 시키는 대로 하자, 황금을 만드는 힘이 강물로 옮아가 강바닥 모래를 황금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금모래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학자인 이윤기선생의 딸아이가 미국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썼다는 “최상의 소원은 최악의 소원”(The best but the worst wish)이라는 에세이가 책에 소개되어 있어서 읽어드립니다.
열두 살배기 착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눈에 번쩍 띄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귀엽습니다. 집안도 그런대로 살림을 꾸려갈 정도는 됩니다. 아버지는 지위가 높지는 않아도 늘 열심히 일을 하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체중이 조금씩 늘어가는 걸 걱정하지만, 그래도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지나치게 짜증스러워하는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녀는 꽤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소녀에게 어느 날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착하게 사는 네가 기특하다. 반드시 들어줄 터이니 소원을 한 가지만 말해라.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 내일 밤에 다시 올 테니까 잘 생각했다가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다오. 딱 한 가지란 걸 잊지 말아라.”
소녀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합니다. 하기야, 천사가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무지하게 예쁘게 만들어 달랠까? 공부를 무지하게 잘하게 만들어 달랠까? 입학시험을 없애 달랠까.....”
그러나 이걸 말하자니 저게 걸리고, 저걸 말하자니 이게 걸립니다. “.... 아버지가 돈을 아주 많이 벌게 해 달랠까? 엄마의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해 달랠까? 커다란 집을 한 채 지어 달랠까? 좋은 자동차를 한 대 사 달랠까..... 아니, 아니, 그러고 보니, 내 생각좀바라.”
소녀는 천사에게 말할 소원을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원을 생각하다보니, 넉넉하고 행복하게 여겨지던 자기 주위가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밤새 고민하던 소녀는 천사가 나타났을 때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둬가세요. 지금이 좋아요. 지금이 행복해요. 천사님께 말씀드릴 소원을 생각하다보니 제가 막 불행해지는 것 있지요. 그 덕분에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천사님이 이뤄주겠다고 한 약속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속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심술궂은 약속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둬 가세요.”라고 적었답니다.
빌립보서 4장 4-13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행한 말씀입니다.
[4-7절](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1-13절](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간략하게 생각해 보고자 하는 주제는 ‘자족의 믿음’입니다. 4-7절의 내용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관용하라,”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쁨, 관용, 감사기도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줄 때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고, 관용을 베풀 수 있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평강의 능력을 부어주시면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상황,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먼저, 그것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후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인간은 욕심꾸러기라서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왜?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상황,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먼저, 그것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13절의 내용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족’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4절의 “주 안에서 항상”이란 말과 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에서 믿음의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든지, 비천에 처해 있든지, 풍부에 처해 있든지, 배부름에 처해 있든지, 배고픔에 처해 있든지, 모든 일에 자족할 수 있는 믿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족의 믿음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 믿음이고,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상황에서 관용을 베푸는 믿음이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믿음이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모든 상황, 모든 악조건 속에서, “주님 안에서” 또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뻐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관용을 베풀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도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런 뜨거운 믿음을 보인 분들이 바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고,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충만했고, 풍성한 연보로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많은 시련과 환난을 당하지만 기뻐할 수 있고, 심히 가난하지만 선교할 수 있는 믿음, 이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요, 바람직한 믿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실라가 태장을 맞고 온몸이 상한 후에 깊은 옥중에서 힘차게 부른 기쁨의 노래로 인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서신은 감옥에 갇힌 바울이 선교헌금을 보내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이자, 옥중에서 부른 기쁨의 노래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기쁨’ 또는 ‘기뻐하다’란 단어를 열여섯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이 편지가 감옥에서 기록됐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고, 찬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찬양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흑암 중에서 빛을 바라보고, 혼돈상태에서 질서를 찾으며, 죽음상태에서 생명을 확신하는 자족의 믿음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족의 믿음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홋카이도에 ‘후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돌을 쪼는 돌쪼시 즉 석수였습니다. 후미는 체격이 좋고 몸이 건강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는 일에 조금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불평과 불만이 많았습니다.
후미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 날 밤에 기도라는 것을 처음 해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건강한 젊은이가 어째서 불평불만만 일삼느냐고 후미를 꾸짖었습니다.
후미를 꾸짖고 돌아왔지만, 천사는 마음이 편치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찾아가 후미의 영혼이 타락하지 않도록 좀 도와주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라고 했습니다.
후미는 어느 날 으리으리한 귀족의 마차 행렬을 보게 되었습니다. 돌을 쪼느라 땀투성이가 되어 돌가루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후미는 그 귀족이 매우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신세한탄을 하며 “귀족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 후미를 귀족으로 만들어줬습니다. 후미는 넓은 땅과 많은 말과 많은 하인을 거느린 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도무지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땀이 어찌나 많이 흐르는지 돌쪼시 노릇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머리 위의 태양 때문이었습니다. 후미가 귀족이라고는 하나, 그 위에는 왕들이 있었고, 또 왕들 위에는 황제가 있었고, 황제 위에는 태양이 있었습니다. 귀족 따위는 태양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후미는 태양이 되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 후미를 태양으로 만들어줬습니다. 태양은 아닌 게 아니라 막강하였습니다. 곡식을 무르익게 할 수도 있었고, 까맣게 태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보기가 싫었습니다. 구름이 앞을 가리면 태양은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후미는 구름이 될 수 있으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 후미를 구름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이제 후미는 태양을 가려버릴 수도 있었고, 파도를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후미가 파도를 일으켜 땅을 쓸어버리려 해도 자꾸만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었습니다. 해변의 바윗덩어리였습니다. 그래서 후미는 바윗덩어리가 될 수 있으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는 후미를 바윗덩어리로 만들어줬습니다. 후미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존재가 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단단한 쇠가 자기 등을 찌르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만히 보니 바로 돌쪼시의 정이었습니다. 후미는 비명을 지르면서 돌쪼시가 되면 좀 좋겠느냐고 투덜거렸습니다. 천사가 이 소리를 듣고는 후미를 다시 돌쪼시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후미는 결국 돌쪼시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내 소원을 들어주는 천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후미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그는 돌쪼시로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신들이 본래 여러 가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후미에 관한 이야기는 근간에 브라질 출신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쓴 우화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번 크리스마스 때 딱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여러분은 무슨 소원을 빌겠습니까? 오늘 저녁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후회 없는 결정을 정말 잘하기 위해서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는 이 딱 한 가지의 소원이 위험천만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포도주의 신인 디오뉘소스의 스승겸 양아버지인 실레노스가 실종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실레노스는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다가 농부들의 손에 이끌리어 미다스 왕의 궁전에까지 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다스는 이 노인이 디오뉘소스의 스승이자 양아버지란 사실을 알고 열흘간이나 밤이고 낮이고 술잔치를 베풀어 노인을 즐겁게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열 하루째가 되는 날에야 노인을 무사히 디오뉘소스에게 보냈습니다. 스승을 무사히 맞이한 디오뉘소스는 미다스 왕의 환대에 대한 답례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 터이니 무엇이든지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미다스는, 정히 그러시다면 자기 손으로 만지는 것은 모조리 ‘황금’으로 바뀌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디오뉘소스는 미다스가 좀더 좋은 소원을 말하지 못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미다스는 새로 얻은 권능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그 권능을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그가 참나무 가지를 하나 꺾자 그 가지는 곧 손 안에서 황금 가지로 변했습니다.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놀라운 권능이었습니다. 미다스는 조약돌을 하나 들어보았습니다. 그것도 곧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잔디에도 손을 대보았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에는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한 알 따보았습니다. 사과는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미다스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는 시종들에게 명하여 진수성찬을 차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빵에 손을 대자 빵이 딱딱하게 굳어버렸고, 음식을 한 술 입에 떠 넣어도 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어서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흡사 녹은 황금처럼 목구멍을 따라 흘러들어갔습니다.
이 일찍이 듣도 보고 못한 재난에 기절초풍한 미다스는 어떻게 하든지 이 마법에서 벗어나려고 힘썼습니다. 그리고 기껏 욕심을 부려 얻은 권능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긋지긋하게 여겨도,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오직 굶어 죽을 날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금빛 찬란한 두 팔을 벌리고 디오뉘소스에게 기도했습니다. 이 파멸에서 구해 주십사고 애원한 것입니다. 디오뉘소스는 자비로운 신이었기에 그 소리를 듣자 그 소원도 들어주겠노라면 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팍톨로스 강으로 가되, 그 강의 원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거기에 그대의 머리와 몸을 담그고 그대의 죄와 벌을 씻도록 하여라.
미다스가 시키는 대로 하자, 황금을 만드는 힘이 강물로 옮아가 강바닥 모래를 황금으로 바꾸어놓았습니다. 이 금모래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학자인 이윤기선생의 딸아이가 미국에서 중학교 2학년 때 썼다는 “최상의 소원은 최악의 소원”(The best but the worst wish)이라는 에세이가 책에 소개되어 있어서 읽어드립니다.
열두 살배기 착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눈에 번쩍 띄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귀엽습니다. 집안도 그런대로 살림을 꾸려갈 정도는 됩니다. 아버지는 지위가 높지는 않아도 늘 열심히 일을 하는 분입니다. 어머니는 체중이 조금씩 늘어가는 걸 걱정하지만, 그래도 건강이 나빠지는 것보다는 낫다면서 지나치게 짜증스러워하는 빛은 보이지 않습니다. 소녀는 꽤 행복합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소녀에게 어느 날 천사가 와서 말합니다. “착하게 사는 네가 기특하다. 반드시 들어줄 터이니 소원을 한 가지만 말해라. 딱 한 가지만 말해야 한다. 내일 밤에 다시 올 테니까 잘 생각했다가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다오. 딱 한 가지란 걸 잊지 말아라.”
소녀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합니다. 하기야, 천사가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는데 싫다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를 무지하게 예쁘게 만들어 달랠까? 공부를 무지하게 잘하게 만들어 달랠까? 입학시험을 없애 달랠까.....”
그러나 이걸 말하자니 저게 걸리고, 저걸 말하자니 이게 걸립니다. “.... 아버지가 돈을 아주 많이 벌게 해 달랠까? 엄마의 체중이 불어나지 않게 해 달랠까? 커다란 집을 한 채 지어 달랠까? 좋은 자동차를 한 대 사 달랠까..... 아니, 아니, 그러고 보니, 내 생각좀바라.”
소녀는 천사에게 말할 소원을 생각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소원을 생각하다보니, 넉넉하고 행복하게 여겨지던 자기 주위가 초라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밤새 고민하던 소녀는 천사가 나타났을 때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닐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둬가세요. 지금이 좋아요. 지금이 행복해요. 천사님께 말씀드릴 소원을 생각하다보니 제가 막 불행해지는 것 있지요. 그 덕분에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천사님이 이뤄주겠다고 한 약속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속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심술궂은 약속이더라고요. 그러니까 약속을 거둬 가세요.”라고 적었답니다.
빌립보서 4장 4-13절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행한 말씀입니다.
[4-7절](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1-13절](11)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가 간략하게 생각해 보고자 하는 주제는 ‘자족의 믿음’입니다. 4-7절의 내용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관용하라,”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쁨, 관용, 감사기도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줄 때 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고, 관용을 베풀 수 있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꾸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평강의 능력을 부어주시면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상황,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먼저, 그것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후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인간은 욕심꾸러기라서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왜?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상황,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먼저, 그것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1-13절의 내용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족’에 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4절의 “주 안에서 항상”이란 말과 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에서 믿음의 능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형편에 처해있든지, 비천에 처해 있든지, 풍부에 처해 있든지, 배부름에 처해 있든지, 배고픔에 처해 있든지, 모든 일에 자족할 수 있는 믿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자족의 믿음은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 믿음이고, 관용을 베풀 수 없는 상황에서 관용을 베푸는 믿음이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믿음이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모든 상황, 모든 악조건 속에서, “주님 안에서” 또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뻐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관용을 베풀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기도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이런 뜨거운 믿음을 보인 분들이 바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이고,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기쁨이 충만했고, 풍성한 연보로 선교에 동참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많은 시련과 환난을 당하지만 기뻐할 수 있고, 심히 가난하지만 선교할 수 있는 믿음, 이 믿음이 올바른 믿음이요, 바람직한 믿음이란 생각이 듭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실라가 태장을 맞고 온몸이 상한 후에 깊은 옥중에서 힘차게 부른 기쁨의 노래로 인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리고 빌립보 서신은 감옥에 갇힌 바울이 선교헌금을 보내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이자, 옥중에서 부른 기쁨의 노래였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기쁨’ 또는 ‘기뻐하다’란 단어를 열여섯 번이나 사용했습니다. 이 편지가 감옥에서 기록됐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얼마나 역설적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고, 찬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찬양하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고,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고, 흑암 중에서 빛을 바라보고, 혼돈상태에서 질서를 찾으며, 죽음상태에서 생명을 확신하는 자족의 믿음이 우리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족의 믿음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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